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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22화 (1,559/1,559)

제 1522화

분명 별거 아닐 텐데.

실제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리가 만무한데.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보고 쫄아버린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출처가 불분명하다. 대체 이 택배가 어떻게 균열을 뚫고 에반젤린의 레어까지 날아왔는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손대는 건 위험한 짓이라 판단했다.

“으음…… 으으으음!”

한참 동안 팔짱을 낀 채 택배 박스를 중간에 두고 빙빙 돌던 그녀는 눈을 번뜩였다.

“이거 설마…….”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이다.

“언니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건 아니겠지?”

비화라면 얼마든지 박스를 속여서 이렇게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쯤 되니 그녀는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분명하다. 이건 분명히 비화의 짓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비화를 불러서 물어본들, 사실 그녀가 자백할 이유는 없을 터.

에반젤린은 그 작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비화가 범인이 맞다면 저 택배 상자는 절대 열면 안 된다.

여는 순간 고생확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비화를 어떻게 골탕 먹일까 하는 계획을 짜야만 했다.

“일단 저건 건드리지 말자…….”

그녀는 마치 경계하기 시작한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물러나 멀찍이서 택배 박스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늘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스팡!!

“에린아. 뭐해?”

공간이 찢어지며 날개옷을 팔랑거리는 비화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흐꺄아아악!!”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비화가 불쑥 튀어나와 버리자 깜짝 놀란 그녀가 기묘한 비명을 내지르며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푸훕…… 너 뭐하냐?”

“아…… 언니…….”

평소라면 화를 냈을 에반젤린이 한창 경계하며 자신을 보자 비화도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물론 에반젤린도 시간이 부족하기에 역으로 한 방 먹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화를 냈다.

“언니.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뭐가. 왜.”

“내가 영화가 안 무섭다고 했다고 이런 수작을 저질러? 저거 까면 갑자기 수면 가스 같은 게 튀어나와서 날 기절시킬 거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얘는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절대 안 속으니까 저거 빨리 치워!”

에반젤린이 화를 내듯 저 멀리 해안가에 놓인 박스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비화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아까부터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박스는 뭔데.”

“……발뺌할 셈이야?”

“발뺌이라니. 너 뭐 영화 보고 그 컨셉 잡아서 언니 물 먹이는 거야? 미안한데. 무슨 수로 나 기절시키게?”

“헛소리하지 마! 저거 언니가 가져다 놓은 거잖아!”

“난 방금 왔어. 이년아! 뭔 헛소리야!”

“박스만 보내고 모른 척 온 거겠지!”

땍땍거리며 싸우기 시작한 두 자매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박스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만 드러낸 채 고요하게 침묵했다.

급기야 서로 뺨을 콱 잡아당기며 싸우던 두 자매가 멈칫한다.

“진짜…… 언니 아니야?”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해.”

“못 믿겠는데…….”

“대체 신용도가 얼마나 안 좋은 거야.”

“아니 생각해봐!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잖아…….”

“그래. 네 말대로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말이야.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도 너 못 믿거든?”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았을까.

우선은 서로가 아니라고 하니 저 택배 상자는 다른 이가 보냈다는 쪽으로 시선이 기울었다.

“그럼 저거 어떻게 해?”

“기다려봐…….”

박스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간 비화는 긴장한 얼굴로 박스 끝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여신치고는 참 볼품없는 행동거지였지만 그녀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에반젤린의 연극이었다면 우스운 꼴을 당할 수 있으니 그녀도 나름대로 긴장한 것이다.

아니라곤 하지만…… 솔직히 알게 무엇인가.

“언니, 빨리 좀…….”

“가만히 좀 있어 봐, 이 기지배야!”

에반젤린에게 역성을 토해낸 비화는 숨을 골랐다.

‘그래. 나는 조율의 여신이야. 이깟 걸로 겁을 먹을 리가 없지.’

그녀는 당당하게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때였다.

“언니…….”

“어…… 어어?”

“조심해…….”

“조심하라니. 에반젤린이 한 게 아닌가?”

정말로 몰라서 화를 낸 것인가? 그럼 저 박스는 누가 보낸 것인가.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 에반젤린이 보낸 게 아니라면 정말로 정체불명의 무언가라는 소리였다.

즉. 장난의 범주를 넘어섰다.

“안 되겠다. 에린아. 물러나.”

“응? 어쩌려고…….”

“아예 지워버리게.”

생각해보니 직접 개봉만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비화가 에반젤린을 데리고 한발 두발 물러났다.

에반젤린이 정말 관련이 없다면. 비화의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하등 없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으면 어떻게 해?”

“그…… 그건.”

“솔직히 정체불명의 택배잖아. 알지? 내 레어에 이렇게 물건만 날려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엄마나 아빠. 여신님이나 그 다른 분들이나…….”

가능성은 크지만 그들이라는 보장도 사실 없었다.

당장 지금은 연옥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는 가르강티아 같은 놈이 또 없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그럼 더 터뜨려야지. 저걸 보낸 게 누군지 알고. 폭탄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고민을 해봐야 비화는 멀리서 날려버리는 게 맞다는 입장이 나왔고 에반젤린은 혹시라도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도 고려하려 했다.

그때였다.

“어? 초단이 언니다.”

에반젤린의 감각에 초단이가 그녀의 레어에 찾아온 것을 확인한 그녀가 말하자 둘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채 곧바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땐…….

“저…… 저기 얘들아?”

“저거 봐 언니.”

“저거 봐.”

순식간에 초단이를 납치해온 그녀들이었다.

“택배 상자? 저게 뭔데?”

초단이가 귀엽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이에 에반젤린과 비화는 지금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푸훕…….”

이에 초단이가 꺄르륵 웃기 시작하자 에반젤린의 표정이 미묘해졌고 비화의 표정이 콱 찡그려졌다.

“야. 뭐가 웃겨?”

“아하하핫! 그렇잖아. 무슨 고대룡과 여신이 상자 하나에 겁을 먹는 거야?”

한창 홍단이의 활발함을 드러내며 그녀가 상자에 다가간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이거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어? 그냥 열면 되는 거 아냐?”

초단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상자에 다가가자 에반젤린과 비화가 침을 꼴깍 삼켰다.

호기심과 묘한 불안함이 공존하는 둘의 시선을 보며 초단이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상자를 천천히 개봉했다.

손끝에 날카로운 기류를 만들어 스윽 그어낸 그녀는 밀봉을 뜯어내고 상자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그때였다.

퍼어어엉!!!!! 푸쉬이이이이이익!!!!!

갑자기 퍼져나온 엄청난 양의 가스에 에반젤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수면 가스야! 우린 이제 기절하고 기괴한 방에서 눈을 뜨게 될 거야!!”

“뭐, 뭔데! 너 그 영화 전혀 안 무섭다며!”

“무서운 거랑 절묘한 건 별개지!”

단순히 무섭냐면 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에 오래 남는 장면들은 많았다.

간이 크지만 아직 어린 그들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미묘한 무언가가 분명했다.

이윽고 가스가 서서히 에반젤린과 비화가 있는 곳까지 퍼져 나오자 둘은 빠르게 물러났다.

“물러나!”

“초…… 초단이 언니는?!”

“늦었어! 일단 물러나! 내가 저걸 치워볼 테니!”

그 말과 함께 비화는 신력을 일으켜 그대로 가스를 강력한 바람으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갑작스레 주변의 힘이 모조리 동결되더니 어마어마한 광풍이 일며 일대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화가 흠칫 놀라며 중얼거렸다.

“내…… 내 신력이 안 먹혀?”

스스슷…….

그리고, 순식간에 광풍에 영역에 노출된 둘은 순식간에 주변의 모습이 변했음을 깨달았다.

“아이고…… 어지러워라…….”

생각지도 못한 전이에 놀란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작스러운 전이에 반동이 왔는지 비화는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언니…… 언니!”

에반젤린이 다급히 엉금엉금 기어가 비화를 부축하듯 부여잡았다.

“언니 괜찮아??!”

“아이고 머리가 울리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진짜였어! 수면 가스는 아니지만, 우리 지금 이상한 방으로 날려진 거라고!”

당황한 에반젤린이 횡설수설하듯 소리 질렀다.

“아…… 그 멍청이는?”

이에 비화가 초단이를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초단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단이 언니…… 어디 간 거야?”

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이런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당황한 에반젤린이 어쩔 줄 몰라 중얼거리자 비화가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진정해. 언니가 있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 주변을 봐! 이 음산한 분위기에 저거! 저거만 봐도!”

에반젤린은 한쪽에 놓인 기괴한 장치를 가리켰다.

물론, 영화에서 본 것처럼 흉악하게 생긴 건 아니지만 기괴하게 생긴 철제 옷이었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할 거야. 그리고 못 하면 저 철제 옷에 들어가서 가시에 온몸이 꿰뚫려서…….”

“아니 정신 차리라고! 그래 봐야 너나 나한테 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건 알잖아! 얘가 정말!”

“으으으…….”

패닉이 문제였지 사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사실상 문제는 없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야 에반젤린은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진정했어?”

“어…… 응.”

“아무 걱정 마. 지금 신력이 잘 안 움직이긴 하지만. 돌아오기만 하면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

“신력이…… 안 움직인다고?”

“어…… 음……. 조금 정도는 움직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세상에…….”

여신의 힘을 봉인한다고? 겁에 질린 에반젤린이 몸을 파르르 덜었다.

“우선 문을 열려면 방법은 있어.”

“안돼…….”

“엉?”

“안된다고! 구해야 해! 초단이 언니 구해야 해!”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우리 때문에 초단이 언니가 휘말린 거잖아! 그냥 두고 갈 순 없어! 찾자!”

사실 영화 때문에 괜히 찜찜하긴 해도, 힘을 봉인 당한 터라 굉장히 불안하긴 해도 이런 데서 초단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흐음…… 걔를 누가 해쳐. 그냥 나가면.”

“언니!!”

“아…… 알았어. 장난이야…….”

비화가 입을 삐쭉였다.

에반젤린은 초단이와 비화가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겠는 데라는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방에서 탈출하면 다음 방이 나오는 구조일 거야. 이 방 어딘가에 초단이 언니가 잡혀있겠지. 그러니 찾아야 해.”

그렇게 말한 에반젤린은 그동안 게임을 하면서 쌓아온 모든 정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힘이 한차례 방전된 기묘한 공간이지만 기믹만 잘 찾아낸다면 문제없으리라.

“거참…… 힘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면 될 텐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

그리 말한 에반젤린은 이리저리 둘러보다 무언가를 찾았다.

“언니. 여기 무언가 쓰여있어.”

“응?”

작은 전자패드 아래에 쓰인 기묘한 문자들의 배열에 에반젤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대체 뭐라고 써놓은 거야.”

“고어야. 별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이긴 한데…….”

잠시 고민하던 비화는 눈을 반짝였다.

“잠깐. 이거 수수께끼인가?”

그러더니 완전히 방전되고 얼마 없는 신력을 살짝 끌어올려 허공에 문자들을 배열하기 시작했다.

기묘한 배열 끝에 그녀가 중얼거렸다.

“8…… 3…… 2…… 1…… 5.”

“응?”

“빨리 눌러봐!”

이에 에반젤린이 순서대로 버튼을 패드에 입력한다.

삐익! 철컹!!

동시에 패드 뒤편의 문이 열리며 작은 열쇠가 나타났다.

“찾았다!”

이후 둘은 빠르게 이 방에 있는 유일한 문에 다가가 열쇠를 꽂았다.

철컥!!

동시에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에린아.”

“응.”

“긴장해. 우리 목표는 초단이 그 기지배를 찾아서 나가는 거야. 힘이 방전돼서 간섭하기 어렵지만, 언니가 반드시 지켜줄게.”

“응…….”

에반젤린은 긴장한 표정으로 앞장서는 비화의 옷깃을 잡은 채 조심스레 복도로 나아갔다.

첫 번째 방 이후로 놀라우리만치 내부는 조용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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