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23화
“솔직히 말해도 돼?”
찰칵.
“응. 말해.”
찰칵
“여기, 영화랑 완전히 달라.”
찰칵!
“나도 알아.”
찰칵!!
“대체 여기 뭐 하는 곳이야?”
찰칵!
“난들 아니?”
찰칵!
퐁!!
비화가 플라스틱 장난감에 장난감 칼을 꽂아 넣기가 무섭게 중앙에 있던 해적 인형이 퐁! 하며 튕겨 올라갔다.
“아. 이겼다…….”
“아…… 씨.”
에반젤린이 한창 뭉그적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비화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힘없이 한쪽 벽면에 놓인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찰칵!
동시에 기묘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비화는 수치심에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기본 피지컬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 유연하고 박자감 있게 춤을 추는 비화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무언가 잡히면 다 때려 부숴버릴 것같이 서늘하고 공허했다.
반면 에반젤린은 한참 따분한 얼굴로 손뼉을 치며 말한다.
“언니. 표정관리.”
“…….”
한차례 선례가 있었던 탓에 비화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자 에반젤린은 추욱 늘어지며 중얼거렸다.
“역시 영화랑 달라. 무슨 놀이방이야? 대체 이거 정체가 뭐야? 여신의 힘까지 계약조건에 걸어 봉인시켜놓고 한다는 짓이…….”
“여신의 힘이니까 이 정도에 그치…… 끼아아악! 35점?! 표정 문제라고?! 이 개자식아!!”
삑! 삑! 소리와 함께 점수를 출력하는 모니터를 그대로 후려쳐 박살 내버린 비화가 씩씩거렸다.
특정 조건 때문에 신력의 사용이 억제되어있지만 그렇다고 비화의 기본 신체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무엄한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춤을 추게 해?!”
“이걸 만든 놈이 누군진 몰라도 진짜 악질인 건 분명해. 그리고 일부러 실패하지 마.”
“조용히 해. 너도 똑같아.”
“아니 그렇게 오글거리는 춤을 어떻게 춰!”
“넌 방송하는 애가 이런 것도 못 해?! 꼭 이런 걸 나를 시켜야 직성이 풀려?”
“응, 억울하면 이겨.”
에반젤린이 칼을 꽂는 장난감을 들어 휙휙 흔들자 비화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이 정체 모를 공간에 들어온 지 벌써 몇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긴장을 하며 빨리 초단이를 찾아 헤매던 둘이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그곳에 비치된 통신기를 통해 초단이가 현재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 김이 팍 새버린 참이었다.
-여기 인형이 가득해! 귀여워!
그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이 공간이 단순히 영화처럼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이라는 느낌이 사라져버렸다.
실제로 처음 방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그녀들이 마주친 건 바로 이 공간이었으니 말이다.
방은 특정 조건을 완수하면 다음 방이 열리게 되어있었다.
그 조건은 대부분 비밀번호나 어떤 키워드였는데 그 키워드를 알아내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은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춤이라는 게 문제였다.
처음엔 돌아가며 한 번씩 시도해본 둘이었으나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게임을 통해 독박을 쓰는 이를 고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니 먼저 동생 먼저, 서로서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곳에서 장시간을 허비하는 꼴이 되었다.
무엇보다 둘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삐익! 제한시간 초과! 실패하였으므로 참가자 전원 퇴장합…… 삐익! 에러, 에러, 퇴장절차 실패. @#%$@$@$
정체 모를 문구와 함께 밖으로 내보내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것도 언니 때문이지?”
“……먹고 탈 난 거지.”
여신의 힘을 빨아먹었으니 그 대가가 절대 녹록하진 않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언니는 상위여신이잖아. 그런 여신의 힘을 어떻게 봉할 수가 있는 거야.”
“나보다 위계나 힘이 더 상위존재거나.”
그녀가 말한다.
“이 공간에 숨겨진 특수한 조건이 있는 경우에는.”
다만, 이런 조건을 걸기 위해선 똑같이 상위존재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언니보다 상위의 존재라면 여신님뿐이잖아.”
“그렇지.”
그럼 여신님이 만든 것인가.
대체 왜?
의문이 들지만, 비화는 적어도 프리아 여신이 만든 공간이라면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혹시 말이야. 이 방의 끝에 선물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음…… 그럴싸해.”
이쯤 되니 사실상 이곳을 위험한 곳이라기보단 여신의 선물 정도로 추측하는 게 맞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찰칵!
비화가 장난감 칼을 통에 꽂아 넣었다.
“그건 그렇고. 우선 네 차례야.”
“언니. 우리 이 짓만 한 시간 넘게 하고 있거든? 슬슬 초단이 언니도 찾아야 하고 끝에 있는 것도 궁금하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
“그럼 여기서 지는 사람이 책임지고 이번 거 끝내기로 하자.”
“콜.”
그 말에 에반젤린이 음흉하게 웃었다.
‘풉. 이미 이 게임의 허점을 눈치챘다 이 말이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더는 언니가 나한테 이길 방법은 없어.’
안전한 장소는…… 이곳이다!
찰캉!! 피잉!
한방에 당첨되어버린 에반젤린의 표정에 얼이 빠진다.
“어?”
“왜? 절대 날아가면 안 되는 장소인데 날아가서 당황했어?”
비화가 예쁘게 웃으며 팔꿈치로 탁자를 받친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어…… 어어?”
“뭐해. 시작해.”
“이…… 이건 사기야!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해!”
“이상하네? 이건 엄연히 랜덤 게임 아니야?”
대놓고 수작을 부렸다고 했다간 비화의 손에 머리채가 쥐어질 상황인 터라 에반젤린이 부들부들 떨었다.
“어…… 언니. 우리 무승부로…….”
“웃기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지? 용서해줬잖아.”
“…….”
결국, 울먹거리며 스테이지 위로 올라간 에반젤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애교가 뒤섞인 춤을 용케 추지만…….
-삐익!! 표정관리가 안 됩니다. 40점.
“야 이!!”
격분한 그녀가 모니터를 박살 내려던 찰나 비화가 말렸다.
“그거 부숴도 어차피 네가 해야 해. 나 같으면 빨리 끝낸다.
얄미워죽겠다.
에반젤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울먹거렸다.
“나 진짜 싫어 이거…….”
“싫다고 뭐가 해결되니? 그냥 해.”
결국, 함정을 팠던 에반젤린은 제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비화는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은 채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는 동생을 보며 깔깔거렸고 에반젤린은 속으로 분을 삭이며 애써 미소를 짓고 춤을 완수했다.
딴따라딴!! 합격.
철컹!!
결국, 수차례 반복 끝에 목표점수를 채운 에반젤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걸 만든 작자 절대 용서 못 해.”
“여신님에게 복수라도 하게?”
“아니 이게 말이 돼?! 태초 신이라는 양반이 왜 이런 거나 만들어?!”
목표점수를 채우기가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금고가 열리고 그곳에서 나온 키워드를 입력하자 다음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응?”
“여신님의 힘이 사용된 건 맞는 거 같지만 아무리 봐도 여신님이 이 공간을 만든 건 아닌 거 같네.”
“무슨 소리야?”
“인과가 없어. 여기엔.”
여신의 모든 행동엔 어떤 인과가 존재한다.
하지만 비화의 눈으로 봐도 이곳에는 어떤 인과도 존재하지 않았다.
막말로 태초 신인 프리아 여신이 노망이라도 든 게 아닌 이상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
“여신님의 힘을 빌린 누군가가 만든 거지. 이를테면…….”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나간 비화가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아빠라든지.”
덜컹!!
이윽고 문이 열린다.
각방에는 마치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듯한 느낌의 물건들이 있었다.
첫 번째 방에선 금속으로 만들어진 옷 같은 것에 있었고 스테이지가 있던 방에선 미묘하게 생긴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방에는…….
“이거. 우리 앨범이잖아.”
굳게 봉인되어있는 책표지를 가볍게 풀어헤치자 한창 어린 모습으로 아기침대에 누워있는 에반젤린의 사진이 보였다.
한창 생크림을 먹었는지 입가에 생크림을 잔뜩 묻히고 너무도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는 청단이와 홍단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는 모습도 담겨있었다.
뿌득…….
그제야 범인을 눈치챈 에반젤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빠가 꾸민 짓이다. 이거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내 예상인데. 이 장소…… 아마 아빠가 중요한 물건을 보관해놓은 비상금 금고가 아닐까 해.”
비상금 금고?
“엄마한테 걸리면 맞아 죽을 것들을 숨겨놓은 거지. 물론 이런 앨범들은 그런 축에 속하는 건 아니니까. 소중한 물건을 보관해놓은 것일 수도 있고.”
확실히 이 공간은 누군가를 해치기보다는 쫓아내려는 행보가 강했다.
그렇다면 데이비가 범인이라 쳤을 때 남에게 숨기려고 이곳에 무언가를 만들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방은 뭘 하는 방이야? 보이는 건 죄다 앨범들뿐인데.”
어떤 앨범은 바리스와 윈리, 그리고 타냐 삼 남매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앨범이. 어떤 앨범은 데이비가 친모인 레니 알리샤드 왕비와 함께 있는 사진도 있었다.
“여긴 그냥 보관소인가 보네.”
이렇다 할 문제도 보이지 않고 다음 방으로 가는 문 또한 열려있다.
다만, 앨범 같은 것들은 절대 가지고 나갈 수 없게끔. 그리고 파손할 수 없게 막대한 힘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이거 손 못 대?”
“응. 안되네.”
담담하게 대답한 비화는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로도 별의별 기괴한 컨셉들이 그녀들을 덮쳤다.
기묘한 율동과 동요를 부르게 하거나 정체 모를 애교를 부리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등 두 사람의 심적 에너지를 순식간에 고갈시켜나갔다.
그제야 비화는 이 공간이 얼마나 악랄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막대한 힘을 이용하여 침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 쳤을 때 그런 존재가 이곳에 와서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부리고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그 외의 기믹들을 수행한다?
“적어도 내가 아빠의 적이었으면 피를 토하면서 지독하다 욕했을 거야.”
좋은 예시로 최근 한바탕 싸운 적이 있던 초대 리치 닉스를 예시로 들어보면 이해가 쉬웠다.
그의 성격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존재가 이곳에 와서 미소짓고 애교부리면서 춤을 춰가면서까지 목적지에 이른다?
귀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정체 모를 소꿉장난 같은 연기를 한다?
그의 자존심상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힘을 사용하여 부숴버릴 수도 없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다.
강제퇴장.
비화라는 존재 때문에 강제퇴장에 버그가 생기긴 했지만, 본래라면 그녀들은 이미 옛날옛적에 쫓겨났어야 했다.
물론, 침입자가 아니라면 이런 것들을 겪을 필요 없이 곧바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게 그 증거였다.
대충 실마리가 잡히자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못 알아본 거야? 아빠가 만든 거면 못 알아볼 리가 없는데.”
“작정하고 숨긴 거겠지. 그만큼 숨겨야 하는 거거나. 중요한 물건이거나.”
그 예시로 이런 앨범이 있다는 건 조금 뭉클했지만 조금 전에 당했던 수모로 인해 둘의 분노가 상당히 쌓여있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며 진행했을까.
그들은 곧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한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형들 사이에 폭 안긴 채 잠들어있는 초단이를 보호 헛숨을 내뱉었다.
초단이의 손에는 작은 통신기가 쥐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것으로 연락을 한 듯싶었다.
애초에 이런 공간에 왜 통신기가 있고, 왜 초단이만 끝방에 가까운 이곳에 먼저 와있는 것일까.
“허…… 누군 그 고생하면서 여길 왔는데.”
“누군 팔자 좋게 자고 있네?”
비화가 씩씩거리며 다가가 초단이의 뺨을 콱 잡아당겼다.
“아야야야야!”
“일어나 이년아. 누군 그 고생해가면서 왔는데.”
“아야야…… 비화야?”
“너 우리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모르지? 개 쪽팔리게 카메라 앞에서 미소 팔아가면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이상한 애교 부리고!!”
“이상한 동요도 부르면서 율동도 추고!!”
에반젤린도 분을 참지 못해 소리치자 초단이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어…… 음……. 미안.”
“그런데 넌 팔자 좋게 여기 와있네? 뭐야? 이 정체 모를 공간이 너만 편애하는 거야?”
“에헤헤…… 사실 말이야.”
초단이가 시선을 피한다.
“뭐. 왜.”
“여기…… 아버지 비상금보관소야……. 헤헤, 미안해. 처음엔 진짜 몰랐는데 여기 오고 나서 알았지 뭐야.”
“…….”
“여기 무슨 방인지 알아? 비화랑 에린이 너한테 선물 주려고 열심히 모은 인형들이 있는 방이야. 축복을 서리는 중이라 이곳에 놓여있긴 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모인 인형들을 둘러보며 초단이가 말했다.
“저기 저 인형 보여? 저거 아버지가 이번에 비화 너 선물 주려고 어렵게 구한 거야. 장인이 만들었대.”
“아니…… 하…… 그래서. 왜 우린 안되고 너만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건데?”
“헤헤. 사실 청단이랑 홍단이로 여기 온 적이 한 번 있어서 통행허가를 등록해놓았는데. 그때 나도 같이…….”
초단이가 데굴데굴 굴러 인형의 품 안에서 나오더니 어디론가 향하는 방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비밀번호도 없이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헤헤. 바로 열리는 거 보이지?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여기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숨겨놓은 것들이 많아. 저런 것들.”
초단이가 문을 연 곳에는 여러 물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앨범을 꺼내 펼치자 페르세르크의 흑역사나 다름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컨셉질을 하며 연기하는 장면을 지금의 페르세르크가 본다면 비명을 지르며 데이비를 반으로 찢어버릴 것들이었다.
“어머니에겐 없앴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아까웠는지 몰래 숨겨둔 거 있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처음부터 합류했으면 됐잖아.
처음부터 데리러 왔으면 됐잖아. 그럼 그 쪽팔린 짓을 안 해도 됐을 텐데.
비화와 에반젤린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지자 초단이가 해맑게 웃었다.
“헤헤. 재밌을까 봐. 실제로 너희 노는 거 엄청 재밌게 봤어.”
초단이는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 에반젤린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춤을 추는 영상을 틀어 보여준다.
즉, 초단이는 이곳에 와서 진실을 깨닫자마자 입을 꾹 다물고 짐짓 모른 척, 둘의 헛짓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죽어! 죽어 이년아 그냥!”
비화가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초단이의 뺨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기자 에반젤린도 달려들어 초단이의 옆구리를 마구잡이로 꼬집었다.
“꺄악! 아파!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어!?”
“안 위험하면 상관없다고?! 언니가 그 쪽팔린 춤을 춰볼래?!”
순식간에 의기투합한 비화와 에반젤린이 초단이를 가차 없이 응징해나갔다.
다만 두 사람은 몰랐다.
에반젤린과 비화가 그동안 해온 부끄러운 짓거리가 죄다 녹화되어 어디론 가로 향했다는 것을 말이다.
“어? 에오니샤 왕녀님. 이거…….”
“세상에. 에린이와 비화잖아? 얘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하인스의 영지개발부서. 그 안에서 가장 바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다.
데이비의 막냇동생이자 유일하게 바리에타 공작가의 혈통이면서 데이비와 함께하는 에오니샤.
그리고 대륙 6대 미인 중 하나라 불리면서도 이런 공학과 연금술에 미쳐 사는 과거 데이비의 혼약대상 중 하나였던 티아라가 그 정체였다.
“그렇지않아도 영지 개발부 쪽에 연락을 해온 참이었는데…….”
비상금보관소 입구가 사라져버렸다고 말이다.
사실 그 내막에는 에오니샤와 티아라가 공간 아티펙트를 연구하다 실수로 비상금보관소의 에너지를 폭주시켜버린 탓이었지만 그건 두 사람의 비밀이었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했더니 이곳에 있었구나. 아무래도 비슷한 공간인 에반젤린의 레어 쪽으로 날아간 모양이었다.
“저기 그런데…… 이거 돈 될 거 같지 않아요?”
“돈?”
“에린이 지구에서 유명하니까. 비화도 그렇고. 둘이서 저러는 거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면 조회 수가…….”
“얼마 전에 사고 쳐서 우리 예산도 삭감됐는데.”
에오니샤와 티아라가 수군거렸다.
같은 영지 개발부 소속인 골다 장로 형제나 에디손 기술고문이 봤다면 꿀밤을 놓으면서 헛소리 말라 했겠지만, 에오니샤나 티아라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영상을 내리면 수익이 정지되지만 말이에요. 이번에 규약이 바뀌어서 영상을 내려도 그전까지 쌓인 조회 수만큼의 금액은 정산을 해주는 모양이에요.”
“진짜 위험한 생각인 건 알아요?”
“그렇죠?”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당장 하죠.”
영지개발부.
하인스에 있는 부서 중 미식연구부서와 헬창부서와 어깨를 견주는 사고 치는 부서라는 사실은 사실 익히 알려져 있었다.
“오라버니에겐 내가 협상할게요.”
“비화와 에린이가 알면 난리 칠 거 같은데.”
“우리도 몰랐다고 하죠. 뭐.”
이일의 원흉인 주제에 점점 뻔뻔해지는 에오니샤 올 라운이었다.
“그런데, 저 애들 괜히 오라버니에게 화풀이하는 거 아니야?”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데이비는 열심히 상자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