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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25화 (1,524/1,559)

제 1525화

에오니샤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데이비의 얼굴이었다.

“흐악!!”

기겁하듯 놀란 그녀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데이비는 손가락 하나로 그녀의 이마를 쿡 눌러 다시 눕혔다.

“에오니샤 올 라운.”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데이비를 보며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킨다.

“오…… 오라버니.”

잘못한 게 있으니 찔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저거 뭐야?”

“그…… 그것은…….”

“비상금보관소. 실험하다가 폭주했다고?”

“오…… 오라버니!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근엄한 얼굴로 쏘아붙이자 에오니샤가 다급히 소리쳤다.

“제가 다 설명할게요! 잘할 자신 있어요! 그러니 예산 동결이나 부서해체만큼은!”

영지개발부는 에오니샤가 바라던 꿈을 이루어주는 장소였으며 현재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나 다름없었다.

예산삭감을 했음에도 사고를 쳤고, 이번 일이 잘못 비치면 영지개발부의 해체까지도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동안 극심한 과로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던 그녀였기에 이 실수와 문제를 금방 눈치챘다.

“잘못한 건 알고 있지?”

“그…… 그건…….”

“에오니샤. 결과를 내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을 완전히 등한시하면 언젠가 너는 괴물이 될 거다.”

“…….”

에오니샤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에오니샤. 당분간 너를 직위 해임한다.”

“…….”

동시에 그녀의 눈이 쟁반처럼 둥글게 뜨여지며 고개가 확 들렸다.

“…….”

“기간은 지금부터 3주. 그동안 해온 게 있으니 이 정도로 그친다. 그동안 너는 그 어떤 연구도 진행할 수 없어. 이해했어?”

데이비가 내린 특단의 조치는 비화와 에반젤린의 영상을 편집해 올리려 했다는 명목을 죄목 삼아 에오니샤를 강제로 쉬게 하는 것이었다.

“네에…….”

“티아라도 마찬가지. 두 사람 전부. 영지개발부에서 잠시 손 떼도록.”

상황을 모르는 에오니샤와 달리 티아라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저는…… 흐흑…….”

그때 에오니샤가 울먹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오…… 오라버니를 실망하게 했나요……. 제가 실적을 못 내서…… 자꾸 실수하고 사고 쳐서…….”

그녀는 급기야 크게 흐느끼며 눈물을 떨구었다.

“제게 실망하셨나요.”

에오니샤 올 라운.

그녀는 중간이 없는 존재였다.

게임을 하라고 쉬게 했더니 게임에 빠져서 다른 것을 등한시하고 방구석에 처박히질 않나. 연구를 시켰더니 실적을 내야 한다면서 자신을 갈아버리질 않나.

데이비의 입장에서도 그녀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면서까지 그녀를 바꾸고 싶진 앓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그녀는 단명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에오니샤. 결과가 중요하다고 했지.”

“네?”

“그럼 네 말을 인용해서 의사로서 소견을 내주마. 넌 이렇다 할 마나를 다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육체가 약하기 그지없다. 이런 식이면 넌 이른 시간 안에 과로로 죽어.”

“…….”

“네가 죽으면 엄청난 차질이 생겨. 실질적으로 결과가 망가지는 셈이지. 과정만 훌륭하고 결과가 별로인 꼴이 된다는 뜻이다.”

그녀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해주자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보았다.

“그러니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 애초에 영지개발부서는 너를 위해서 내가 만든 거야. 영지개발부서가 아무리 실적이 없어도 널 어떻게 하진 않을 거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한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넌 또 뒤도 보지 않겠지만.”

“죄송합니다. 오라버니…….”

“알아들었으면 당분간 여기 얼씬도 하지 마. 나가서 다과회나 마음에 드는 영식과 데이트라도 좀 해. 너 인마 요즘 라운 내의 귀족 영식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 있더라.”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연회장에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어린 영식들도 제법 있다는 소리였다.

“전 정략혼을 할 바엔 차라리 독신으로…….”

“정치적인 점 이런 건 다 내버려 두고. 네가 좋으면 오라버니가 다 밀어주마. 상대가 평민이건 노예건.”

“…….”

“다만. 상대 인성에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아무리 그녀가 좋다고 해도 상대가 쓰레기 같은 놈이라면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허락해줄 수 없다.

“알아들었으면 푹 쉬어. 그리고 에디손 기술고문, 저거 영상 원본은 아티펙트에 담아주세요.”

“바로 폐기하지 않을 것이오?”

“협상해야죠.”

* * *

초단이를 격렬하게 응징하고 난 뒤.

비화와 에반젤린의 분노의 화살이 향한 곳은 이런 시스템을 만든 아빠에게 향했다.

다만 둘 다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 상황이 데이비가 유도한 상황이 아님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확인과정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페르세르크와 일리나 그리고 에이리아의 자잘한 흑역사가 저장된 아티펙트를 몰래 챙긴 비화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나가는데?”

“으으…….”

“야…… 야야. 정신 차려.”

“언니. 초단이 언니 웃는데? 내버려 둘까? 좋은 꿈 꾸는 거 같은데.”

“내버려 두긴 뭘 내버려 둬 얼른 깨워. 나가야 할 거 아냐.”

비화는 초단이의 옆구리를 발가락 끝으로 쿡쿡 찔러 깨워냈다.

“흐꺄악?!”

갑작스러운 감각에 그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야. 이거 어떻게 나가?”

“어…… 음, 저기 출구가 있긴 한데…….”

한쪽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금고 문 같은 것이 떡하니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이것만 숨기진 않았을 텐데…….”

“저기…… 이 이상 숨긴걸 찾을 필요는 있을까?”

“……그래 뭐 아빠 사생활이니까.”

아쉬운 감정을 뒤로한 채 셋은 금고문을 열고는 공간 너머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변하며 다시 에반젤린의 레어로 돌아온 셋이었다.

그리고 그 셋이 레어로 돌아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데이비의 모습이었다.

빙그레 웃으며 그녀들을 맞이한 데이비를 보며 비화와 에반젤린은 싱긋 웃었다.

“재밌었니?”

“네. 재밌었어요.”

무언가 말하려는 에반젤린을 저지한 비화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잠깐 자리 좀 옮길까?”

데이비가 에반젤린의 레어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자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다시 움직이는 신력을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 일순간 그들은 에반젤린이 대충 꾸며놓은 응접실에 도달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여신의 힘까지 봉인해요?”

“몇 가지 조건이 있지. 파괴 불가. 상해 불가.”

내부에 있는 이는 서로 상해를 입힐 수 없고, 그 안에 있는 것을 파괴할 수 없다.

물론 맨몸으로 모니터를 후려치곤 했던 비화의 입장에선 조금 허점투성이로 보였지만 그 정도 파괴 공작으론 공간에 타격을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그래. 우선 좀 짚고 가죠. 저거. 아빠가 보냈어요?”

“아니. 아티펙트의 에너지가 폭주하면서 비슷한 공간인 이곳으로 날아온 모양이야. 뒤늦게 알고 아빠가 급히 왔는데…… 이미 나왔을 줄 몰랐네. 그럼 이제 아빠가 물어도 될까?”

데이비의 미소에 비화도 미소로 화답했다.

“말씀하세요.”

“그 안에서 뭘 봤니?”

“후후…… 아빠가 엄마한테 반으로 찢길 미래요.”

“하하하하!”

“히히히힛!”

데이비와 비화는 서로 웃었다.

에반젤린은 질린 얼굴로 비화를 바라보았고 초단이는 조심스레 데이비의 곁으로 다가가 다소곳이 앉았다.

쾅!!

데이비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어디 건방지게! 아빠 물건에 손을 대!”

“웃기시네! 그거 안 먹히거든요? 그리고 관리 못 한 아빠 잘못이지 우리 잘못인가?”

“협상하자…….”

결국, 첫 번째 공방전은 비화의 승리로 돌아갔다.

“협상? 협상은 동등한 조건에서 하는 거 알고 계시죠? 제가 입만 뻥긋하면 아빠는 반으로 갈라져서 죽는 거예요.”

“그걸 너도 봤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전 어쩔 수 없이 알리기 위해 보았다고 하면 되는데요?”

비화가 한 손에 든 아티펙트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데이비가 짧게 혀를 찼다.

“비화야. 에린아. 아빠가 일부러 너희를 골탕 먹인 게 아니잖니. 아빠를 봐서라도 그걸 못 본 척해줄 순 없을까?”

데이비의 간절한 부탁에 에반젤린이 우물쭈물했다.

확실히 이번 일이 데이비가 의도한 게 아니라면, 그에게 이렇게 강짜를 부리는 것도 웃긴 상황이었다. 이 일의 전말이 무엇이고,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건 그 후에 알아봐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저기 언니…… 아빠도 그러시는데…….”

“속지 마, 멍청아. 아빠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감정에 호소할 대책 없는 사람으로 보여?”

“어?”

비화의 날카로운 추리에 에반젤린이 입을 다물었다.

“아빠.”

“그래 우리 사랑스러운 공주님.”

데이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글거리는 말로 비화를 치켜세웠다.

“나 예뻐요?”

“응. 세상에서 제일.”

“후후. 그럼 우리 조금 협상을 유하게 해볼까요? 제가 이걸 돌려드리는 대신 아빠는 뭘 주실 수 있어요?”

“뭘 원하니?”

선 제시요.

아빠가 선제시요.

서로 웃는 얼굴로 속마음을 숨기지만 이미 상대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서로 웃는 얼굴로 바라본다.

“잘 안 넘어가네.”

“제가 아빠를 얼마나 봤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아빠가 황색 바위 드워프들과 만날 때부터 전부 봐왔어요.”

“좋아. 최대한 수용해줄게. 말해봐.”

데이비는 어째서인지 어느 정도 물러나 저자세를 취했다.

이에 비화는 주도권을 쥐고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제가 요구할 건 총 다섯 가지에요.”

“네 가지? 좀 많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상하네. 전 다섯 가지라고 했는데?”

“네 가지? 너무 많은데…….”

“하…… 좋아요. 네 가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이거 엄마에게 전해줘도 되죠?”

“일단 말해봐.”

데이비가 웃는 얼굴로 이마에 혈관을 띄웠다.

“그래요? 그럼 에린아. 네가 원하는 걸 하나 말해.”

비화가 선택권을 던지자 에반젤린이 눈을 반짝였다.

“용돈 인상!!”

“용돈?”

“네! 지금의 3배를 요구합니다!”

“…….”

애초에 데이비의 자신을 기준으로 에반젤린의 용돈이 작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돈을 마구잡이로 쓰지 말라는 의미도 있었기에 데이비로썬 달갑지 않았다

벌이가 커지면 씀씀이가 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계속해봐.”

“둘째 조건은 제가 낼게요. 아빠가 가지고 있는 신궁 브류나크를 주세요.”

“……뭐 좋아. 계속해봐.”

“세 번째 조건은 네가 말할래!”

에반젤린은 신이 난 채 소리쳤다.

“아빠! 세 번째 조건은 저 게임하는 거에 간섭 금지! 돈 얼마 쓴다고 뭐라 하지 말고 혼내지도 말고!”

돈 지른다고 뭐라 하지 말아라 이 소리였다.

“얘는 이런 귀한 기회를 저렇게 날리네.”

비화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간섭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에반젤린의 요구는 참 소박하면서도 어린애의 입장 그 자체였다.

뿌득.

“……계속해.”

이윽고 마지막 조건을 비화가 거론했다.

“마지막 조건, 프리아 여신님이…….”

진지하게 말하는 비화의 행동에 데이비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여신님이 날 혼내려고 하면 아빠가 막아주는 거예요. 나 여신이란 말이에요. 그래도 꽤 귀한 몸인데 툭하면 프리아 여신님한테 혼나기나 하고! 이게 쪽팔려서 어디 말도 못 하겠어요!”

그러니까 혼날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서 막아달라는 소리였다.

이에 데이비는 천천히 웃었다.

“하하…… 하하하.”

동시에 비화와 에반젤린도 따라 웃었다.

“우후후후.”

“쿠히히히…….”

기묘한 웃음을 터뜨리는 둘의 모습에 초단이는 불안한 기색으로 데이비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는 기겁하며 물러난다.

쾅!!

“이것들이 적당히를 모르고!”

“꺅!”

데이비의 노호성에 비화와 에반젤린이 깜짝 놀라 움찔했다.

이에 데이비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보려고 했더니 아주 밑도 끝도 없이 어? 에반젤린은 어리니까 그렇다 치는데 비화 넌 그러면 안 되지!”

“아…… 왜요! 뭐요! 그럼 이거 엄마한테 보여줘요? 보여주는 수가 있어요?!”

“아니다. 너는 임마, 말로 해선 안 되겠다.”

데이비는 품 안에서 작은 아티펙트 하나를 꺼내 가동시켰다.

그러자 아티펙트 안에선 비화가 잔뜩 빨개진 얼굴로 애교를 부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 잠시동안 나타났다.

동시에 비화와 에반젤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아…… 아빠가 이걸 어떻게…….”

“그 공간을 누가 만들었는지 잊었냐? 이거 지구에 있는 동영상 사이트에 투고해? 해봐?”

“아…… 아빠 잠깐만요!”

“서로 갈 때까지 가봐? 어?”

“자…… 잠깐만요! 진정하시고!”

“협상을 다시 해볼까?”

데이비가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데이비가 숨겨놓은 것을 페르세르크가 보면 데이비는 반으로 찢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도 끝이지만 너희는 두고두고 조리돌림 당하는 거야. 알겠어? 에린이 너는 방송 내내 놀림당하는 거고, 비화 너는…….”

그토록 신경 쓰는 위엄이 한방에 박살 나는 것이다.

협상의 주도권이 데이비로 넘어갔다.

하지만 비화도 마냥 휘둘릴 생각은 없었다.

“그…… 그게 뭐요!”

“그래? 그럼 협상은 없던 거로 하고 아빠는 이걸 업로드나 하러…….”

“초…… 초상권! 초상권침해!!”

“알 게 뭐야. 그리고 지금 네가 하는 짓도 결국 똑같은 짓이야. 아빠가 작정하면 그거 무마시키는 건 일도 아닌 거 알지?”

“치졸하게 뭐 하는 짓이에요!”

“그럼 치졸하게 아빠가 보관해놓은 걸 꺼내서 협박하는 이 작은 머리통은 누구의 것이지?”

데이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만 셋은 모르고 있었다.

에반젤린의 목에 걸린 붉은 보석이 어느새 에반젤린을 빠져나가 비상금 보관소 쪽으로 날아간 것을 말이다.

쉬이이이익!!! 꺼억!

이후 보석은 망설임 없이 보관소가 빨아들인 비화의 신력까지 죄다 삼켜버린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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