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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31화 (1,530/1,559)

제 1531화

연합의 참모이자 총괄 디렉터는 유리아의 손에 떨어졌다.

“우선 영지개발부서분들은 저희가 계획을 짤 때 기술적인 부분이나 소품에 관련해서 만들어주셔야 해요. 가능하겠어요?”

“너무 터무니없는 것만 아니면요.”

“그리고, 저희 미식연구부서는 두 가지를 할 겁니다. 첫째. 상황에 걸맞은 식거리나 계획을 짜고 그때그때 걸맞은 상황 보조를 하게 될 거에요.”

“그 정도는 뭐…….”

미식연구회는 륀느나 점순이나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 헬창 바보분들은 제발 부탁이니 그 책 달달 외우세요. 그리고 계획이 짜지는 대로 기본 리허설부터 행동 하나하나 모든 면에서 제가 코칭을 해드릴 거에요.”

보팔 레빗과 타우르스 그리고 두억시니가 들고 있는 건 [기초상식]이라는 글귀가 적힌 책이었다.

“우리를 상식도 없는 야만인 취급하는 것인가?”

두억시니가 불쾌감을 드러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유리아는 웃는 얼굴로 그의 말을 긍정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네, 당신들은 지금부터 상식을 좀 주입할 필요가 있어요. 당신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그놈의 상식이 결여되어 있으니까요.”

“들어서 알고 있다. 책으로 배운 상식은 아무런 쓸모가…….”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는 게 아무것도 모른 채 있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 아닐까요?”

유리아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거 전부 외우고 일단 말씀하세요.”

유리아의 강력한 압박에 결국 세 근육 바보들은 서로 머리를 마주 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트레이닝과 전투를 제외하고 별로 관심도 없는 것들이다.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쑤셔 넣지 않으면 큰 사고가 터지리라.

“영지개발부분들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장비나 도구들을 점검해주세요.”

“그럼 일단 언제든 연락하기 쉽도록 통신장비를 좀 챙겨둘게요.”

영지개발부가 활동 정지를 당한 이상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미리 만들어놓은 장비들을 가져와 제공해주거나 즉석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영지개발부가 떠나자 유리아는 륀느와 점순이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어떤 작전을 세우냐에 따라 완벽하게 흘러갈 수도,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좋은 계획이 있으면 우선 말씀해보실래요?”

동시에 륀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게임을 륀느가 제안해.”

“좋네요. 그 제안. 괜히 요란스러운 것보다 자연스러운 게 더 좋죠.”

* * *

날이 밝고 레밀리아는 오랜만에 감옥같이 딱딱하거나 칙칙한 장소가 아닌 포근하고 따스한 곳에서 눈을 떴다.

멍하던 머리가 찌르르 울리며 이전의 기억이 돋아난다.

모든 것을 잃고 복수에 미쳐 살던 그녀는 끝내 적들에게 잡혔고, 화형에 처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기적처럼 세상에 여신이 강림했다.

그녀의 운명을 가지고 놀던 빌어먹을 초월자라 불리는 존재를 소멸시켜버린 그녀는 망가져 버린 세상을 다시 리셋시킨 뒤 그녀에게도 신경을 써주었다.

죽음을 바라던 그녀에게 여신은 그렇게 죽으면 억울하지 않으냐고. 차라리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해보라고 말했다.

물론,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의욕이라곤 나지 않았고 그저 푹 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신께서 데려온 세 남자를 보았을 때. 그녀는 순간적으로 망설인 것도 사실이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들을 봤을 때 그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고, 당장 죽고 싶다는 말도 못한 채 어버버거렸던 추태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여신이라.

자신은 그런 고귀한 존재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존재하는 것일까.

“기침하셨습니까.”

“아…… 네.”

이윽고 들려오는 단아한 목소리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기다렸다는 듯 들어온 시녀들은 그녀를 안내해 몸을 씻겼고 예쁘게 치장해주었다.

“저기…… 저는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존재가 아닌데요…….”

“아뇨. 레밀리아 님은 귀한 손님이시니 저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잠시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공허하던 마음에 그들과 만남으로 파장이 생겨버린 탓인지 저도 모르게 시녀들의 손에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이게 다 그 세 남자 때문이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시녀들의 요구에 따랐다.

“자. 다되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윽고 거울을 가져다주는 그 모습에 그녀는 옅게 감탄했다.

사실 그녀에게 꾸미는 건 굉장히 어색하고 반감이 드는 행동이었다.

그녀의 삶은 대부분 소중한 친구와 악마들을 때려잡는 흙탕물의 삶이었으니까.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에서 꾸밀 틈 따윈 없다.

마나를 아끼기 위해 냄새를 지우려고 진흙을 뒤집어쓰는 건 부지기수였다.

그렇기에 꾸민다는 건 그녀가 싫어하던 귀족들의 비위에 맞춰주는 느낌이 들어서 거북함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걸 지워달라 요구하려던 찰나.

“어머. 이정도면 그 남성분들도 깜짝 놀라실 거에요.”

그 한마디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구릿빛 피부를 지니고 있던 잘생긴 남성. 하는 행동은 이상하지만, 그가 온전히 그녀 본인을 시야에 담고 있었을 때.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흙과 피를 뒤집어쓴 엉망진창의 몰골을 그에게 보인다면…….

‘그건 싫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속물적이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몸은 정직하게 거부하지 않는다.

아직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확립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의 그런 몰골을 그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저는 흉하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질문을 하자 시녀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물론, 정말 아름다우세요.”

왜일까. 그저 묘한 기쁨이 감돈다. 뒤늦게 자신에 대한 극심한 자괴감으로 우는소리를 낼 정도로 말이다.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마친 그녀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영주성을 벗어나 어디론가 향했다.

이 하인스라는 도시는 정말로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자신이 지내던 가식과 허영이 가득하던 수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멍하니 걷기를 한참.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붉은 피부의 거한을 올려다보고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기다리고 있었다.”

“저…… 레밀리아라고 해요.”

“음?”

“토…… 통성명도 하지 않아서.”

평소 이렇게까지 자신을 소개하는 것에 말을 더듬거린 적이 있던가.

그녀는 자신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당황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세 남성은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도급 존재들이라 했다.

겉보기엔 인간이지만 그들은 반신에 필적한 존재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래. 높은 존재를 만나 긴장한 것뿐이야.

넬타리드가 일부러 그녀의 연정이라는 감정을 끌어내려 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레밀리아는 그저 두억시니를 대하는 태도가 단순한 긴장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다.

“도깨비의 왕 두억시니라고 한다. 잘 부탁하지. 차원의 용사.”

“저는 용사 같은 게 아닌걸요.”

“아니. 넌 충분히 용사의 자격을 지니고 있다. 정확히는 일개 용사 이상으로 큰 운명을 짊어지고 있지.”

아니 저야말로는 무슨 말인가. 지금이라도 다 괜찮으니 그만 죽게 내버려 두라고 말해야 하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흐음, 그나저나 너무 말랐군. 든든하게 먹는 게 좋지 않겠나.”

“모, 몸이 무거워지면 그만큼 활동이 힘드니까요. 혹시…… 보기 흉한가요?”

그 질문에 두억시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기 흉한 것은 아니다. 따라와라. 갈 곳이 있다.”

그리고는 고스란히 그녀의 팔을 커다란 손으로 잡아챘다.

“꺅?!”

깜짝 놀란 그녀는 자신이 순식간에 그의 손에 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주님을 안아 든 것처럼 들려진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허둥지둥하든 말든 두억시니는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꽉 잡아라. 조금 빠를 테니.”

터어어엉!!!!

“네? 꺄아악?!”

갑작스러운 속도에 당황한다. 하지만 레밀리아가 정말로 당황한 건 속도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마나의 축복을 받은 대마법사. 이만한 속도로 부유해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귀족영애마냥 비명이나 내지른 꼴이라니!

자신도 모르게 나간 비명에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이미 두억시니는 낄낄거릴 뿐이다.

“속도는 조금 줄여도 되겠군.”

“어…… 음. 죄송해요.”

“그보다. 주변을 봐라.”

그는 뭔가 어색한 말투로 주변을 가리켰다.

“하인스. 이곳은 내 계약자의 영지다. 이 땅에서 이곳만큼 인간의 기준으로 예쁜 곳은 잘 없다고 하더군.”

그의 말에 그제야 주변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아름다운 건물, 활기찬 거리.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예쁜 노래.

다만 무엇보다 그녀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반짝거리는 빛을 머금은 하늘에 뜬 투명한 물줄기들이었다.

하인스 영지의 허공에는 아름다운 절경 같은 물줄기 같은 투명한 관들을 통해 맑은 물이 이동하는 게 보인다.

“와아…….”

마치 요정의 나라 같은 이 풍경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름답다. 조금 전까지 죽음만을 바라던 그녀였으나 지금의 풍경은 오로지 감탄과 아름답다는 감상만을 자아냈다.

“다 왔군.”

그렇게 멍하니 풍경만을 바라보았을까. 이내 그녀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긴…… 어디죠?”

“제법 재미있을 거다. 장담한다고 하더군.”

“네?”

“커흠! 아……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와라. 여기는 올빼미다. 도착했으니 그 조형인지 뭔지는 철수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은 그가 성큼성큼 예쁜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내부에는 아름다운 외관을 한 시녀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저희 지금 뭘 하러 가는 거죠?”

“식사를 하러 간다.”

“시…… 식사요?”

“그래.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 법이지. 지금부터 배불리 먹는 거다.”

그 말과 함께 내부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이 부릅 뜨여졌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여긴?”

치이이익!!

그때 기다렸다는 듯 안쪽에서 무언가가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난다.

공복 정도야 얼마든지 컨트롤이 가능했는데. 언제부터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 나약해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

그리고, 내부로 들어간 그녀는 잠시 멍한 얼굴로 그 안에 있는 이를 시야에 담았다.

몸의 라인이 살아있는 듯한 셰프 복장이다.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린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익숙하게 한 손으로 프라이팬을 들고 스테이크를 구우며 한 손은 조미료를 살살 뿌려 넣는 무표정한 얼굴의 구릿빛 남성이 보인다.

“저기……저분은?”

“타우르스. 금우궁 타우르스라는 녀석이다.”

“아…… 저기 타우르스 씨는 뭘 하는…….”

“네게 줄 요리를 하고 있지.”

대체 왜?

자신이 뭐라고? 솔직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여신께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신경 써줘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도 들지만 지금 그녀의 눈은 사내의 걷힌 소매 쪽에서 도저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치익…… 촤악!!

이윽고 익숙하게 요리를 끝마친 그는 깨끗한 접시에 스테이크를 플레이팅한 후 접시를 들고 나왔다.

“자자. 여기 앉아. 식사라도 해.”

“저…… 두억시니 씨나 타우르스 씨는 드시지 않나요?”

그 질문에 두억시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근손실나는 음식…… 컥!”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어딘가를 노려본다.

그러더니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우선은 부담되지 않게 식사를 하는 게 먼저다. 이곳은 미식연구부서다. 요리를 하는 곳이지.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우선 손님인 네게 대접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말한 두억시니는 이내 테이블의 의자를 빼낸 뒤 말했다.

“자. 앉아라.”

“아…… 네.”

우물쭈물하며 그녀가 의자에 앉자 뒤이어 두억시니는 그녀의 의자를 안쪽으로 밀어 넣어준 뒤 준비해둔 냅킨을 그녀에게 씌워주었다.

이후 플레이팅을 마친 타우르스가 묵묵히 다가와 그녀의 앞에 접시를 내려다 부었다.

“특수 가공 처리한 소고기를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

“아…… 네?”

“호의의 선물.”

“어…… 음…….”

당황한 그녀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타우르스는 담담하게 말한 뒤 살짝 물러났다.

“우리가 만든 것이니 한번 먹어봐라.”

그래도 신경 써서 대접해줬는데 거부하는 것도 미묘하다. 레밀리아는 조심스레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한입 입에 넣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맛있다!’

생각지도 못한 감칠맛과 육즙, 그리고 씹는 맛이 느껴진다. 여러 산해진미를 먹어봤지만 흔한 스테이크에 이런 맛이 날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와…… 정말 요리 잘하시네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찬사를 보냈다.

이에 타우르스가 담담하게 말한다.

“흉내만 낸 것뿐이다, 미식연구부에서 만든 것과 영지개발부가 만든 도구는…… 컥!!”

담담하게 말하던 타우르스가 갑자기 고개를 팍 꺾더니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노력…… 했다.”

부끄럼을 타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풉하고 웃었다.

“아앗! 죄송합니다.”

“아니.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되었다.”

타우르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길 잠시.

타우르스는 조용히 냅킨을 들어 그녀의 뺨에 묻은 소스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아…….”

“뺨에 묻었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속이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보았다.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행동으로 그녀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 같이 식사를…….”

“네게 요리를 준비해야 한다. 손님의 입장인 게 대접하는 것이다.”

“그건…….”

“맛을 보고 그 평가를 해주면 좋겠다.”

이윽고 두 헬창들이 내부로 들어가자 레밀리아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음식에 신경을 쏟았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것을 전달해주었고, 그들은 만족스러운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잘 먹었어요. 정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맛이 있었다면 되었다.”

“저…… 이제 저는 뭘 하면 되나요?”

그 질문에 타우르스와 두억시니는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나머지 한 명이 흥미로운 걸 준비하고 있다. 그리로 가보겠나?”

“네? 그건…….”

“우린 네가 함께 즐겨주었으면 한다.”

타우르스의 부탁에 그녀는 또다시 평소와 다르게 유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어차피 여신도 며칠 정도만 할 수 있는걸 다해보라고 했으니까.

“그…… 그럼 조금만 같이…….”

그녀는 지금에 와서도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 * *

사람이라는 건 은근히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꺄악!!! 왼쪽!! 왼쪽!!!”

끼이이이이익!!!!

허공에 낮게 떠오른 카트 차량이 맹렬한 마나 엔진음을 내며 드리프트를 한다.

작은 차량에 올라탄 그녀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이 신기한 놀잇거리에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엔 대체 이런걸 왜 하는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뭘 하려는 건지 그들의 의도도 알 수 없었다.

타우르스와 함께 카트에 올라탄 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두억시니의 카트와 보팔레빗의 카트에 맹렬한 견제를 당하고 나니 알게 모르게 그녀의 승부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위험.”

게다가 간간이 견제를 받거나 충돌할 때마다 타우르스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뒤에서 감싸 보호하듯 끌어안아 주자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외…… 왼쪽 올 거예요! 쏴, 쏴야 하지 않을까요?!”

“명답.”

타우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감싸던 팔 하나를 풀어 작은 단추를 눌렀다.

쉬쉬쉬쉬쉭!!!

퍼어엉!!!

동시에 빛으로 된 광탄이 빠르게 날아들며 맹추격하던 두억시니의 차량에 충돌해 녀석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크아아아! 타우르스!”

“멍청하다.”

짧게 일축하고는 뱅글뱅글 돌며 갓길에 처박히는 두억시니를 두고 두 사람의 카트가 빠르게 전진해나갔다.

“운전은 맡긴다.”

“어…… 어어? 진짜요?!”

당황한 그녀는 타우르스가 핸들을 놓기가 무섭게 당황하다 카트가 흔들리자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잡고 집중하며 운전하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상황에 몰려서 집중하고 있는 자신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다만 잊을만하면 느껴지는 타우르스의 단단한 몸의 감촉과 남성스러운 몸 냄새가 그녀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했다.

“으으…… 아 몰라요!”

제 나잇대의 소녀처럼 똑바로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경험은 굉장히 독특했다.

레밀리아. 그녀는 용사 아리스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차이점이라면 절대 무너지지 않던 아리스와 다르게 그녀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는 점일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닌 즐기기 위한 것. 증오하고, 경계하고 저주하는 삶 속에서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즐겨본 적은 없다.

위험하지 않은 게임이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외…… 왼쪽…… 오른쪽! 으아아아아. 오른쪽!!!”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어대고는 핸들을 조정하기를 한참.

놀라우리만치 상황을 통제하여 적당한 상황에 견제를 하거나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는 두억시니나 보팔 레빗 덕분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젠장! 저버렸군! 한판 더하지!”

“어…… 어어? 한판 더요?”

“그래! 네 실력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이리 와라! 이번엔 나와 함께하는 거다!”

한쪽 손을 귀에 가져다 대고 있던 두억시니가 외치자 그녀는 뒤쪽에 있는 타우르스를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이에 타우르스도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녀는 쭈뼛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억시니가 타고 있던 카트 차량에 올라탔다.

“그…… 이제는…….”

“혹시……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별로인가?”

두억시니가 보기 드물게 우울한 기색을 드러내자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녜요! 괜찮아요! 정말 즐거운걸요!”

평소라면 절대 이런 멍청한 대답은 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 그들과 있으면 자꾸 미련이 쭉쭉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령을 전달받고 있는 두억시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하하하하! 실력이 제법이던데! 어디 한번 제대로 가보자고!”

처음엔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레밀리아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현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호선을 그린 입꼬리에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내가…… 웃고 있어?”

그제야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하던 것도 멈추고 벌떡 일어났다.

“음? 왜 그러나?”

“죄…… 죄송합니다! 먼저 가볼게요!”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어찌하지 못해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에 그 모습을 보던 두억시니의 곁으로 타우르스와 보팔 레빗이 카트를 이끌고 와 툭툭 부딪혔다.

“요란 피우지 마! 이것들아. 이봐. 디렉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잘하셨어요.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지만 정말 최고의 효과를 끌어냈어요, 그녀는 현재 혼란스러워하는 거예요. 세상만사 다 의미 없고 죽고 싶어 하던 주제에 잘생긴 남성에게 홀라당 넘어가서 거절도 못 하고 참가한 게임이 생각보다 재밌고 즐거우니까.

물론 이 놀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에게 살아가는 의미라는 걸 조금씩 깨워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구심점으로 근육 바보 셋의 존재는 중요했다.

유리아는 마치 레밀리아의 속내 따윈 금방 눈치챌 수 있다는 듯 말했다.

-다만 이쯤 되니 의문도 드는군요. 취향에 저격했다는 핑계만으론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넬타리드 신께서도 뭔가 본 게 있으시니 이런 상황을 만드셨겠죠? 여러분은 즐거우셨나요?

“아무래도 좋다 나는.”

두억시니의 대답이었다.

“자기. 난 이 상황을 보는 게 재밌는데.”

보팔 레빗도 따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였다.

“향기가 좋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타우르스가 중얼거리자 두억시니와 보팔레빗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향했다.

“미친 새끼.”

“음. 자기야. 그건 좀…….”

타우르스는 무덤덤하게 후진을 하더니 다시 속도를 올려 두억시니의 카트에 돌진했다.

“음…… 그나저나 이거 재밌군. 우리는 좀 더 즐겨도 되나? 조금만 근육에 긴장을 풀어도 몸이 튕겨 나가는군!”

사실 영지개발부서에서 만든 이 카트는 명백한 실패작. 실제로 근육 바보 셋이 아니었다면 얼마 못 가 타고 있는 사람이 튕겨 나갈 정도로 엄청난 부담을 주는 물건이었다.

그걸 유리아는 그들의 피지컬로 압살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뭐…… 상관은 없지만요. 우리 영지개발부서장님 말로는…… 그거 실패작이라 곧 터진다는데요?

“어?”

두억시니가 멍한 얼굴을 했다.

동시에 타우르스와 보팔레빗의 카트가 다시 한번 뒤로 갔다가 두억시니의 카트와 충돌한 그 순간.

마나 엔진이 순식간에 과부하를 일으켰고…….

콰아아아앙!!!

대 폭발을 일으켰다.

1초만 늦어도 대참사가 날뻔한 계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세우는 유리아였다.

“거봐 저 또X이…….”

멀리서 상황을 보다 자신의 힘을 거둬들인 점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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