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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544화 (1,543/1,559)

제 1544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생존을 향한 갈망이었다.

설마 저걸 먹고 죽기야 하겠느냐마는 그에 따르는 무언가는 대비해야 하리라.

단순한 요리의 수준은 아니다.

가득 담긴 정체 모를 무언가가 흘러넘치지도 않을 정도의 기예를 선보이며 다가온 이클립스는 에반젤린에게 먹이기 전 내게 그것을 먹여 확인해보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아니.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덜컥…… 덜컥!!

저거 왜 솥이 멋대로 움직이는데.

왜 솥의 표면이 마치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절규처럼 일그러지는 착각이 드는 건데.

애초에 저거 흐물거리는 게 금속이 맞긴 한 것인가.

확신이 선다. 저건 단순히 재료를 저렇게 때려 넣는다고 만들어질 무언가가 아니다.

먹는 순간 에반젤린의 떡볶이 이상의 무언가를 보게 될 터.

“으아아악!!”

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내뱉으며 이클립스에게서 도망치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듯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국자를 들고 솥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국자에 담긴 그 무언가를 솥에 부은 뒤 고개를 돌렸다.

내가 도망가니까 일단 잡아서 먹여보겠다?

애초에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이곳에 왔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에게 다른 존재는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조졌네.”

그리고. 그녀가 솥을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것은…….

작정하고 나를 잡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단순 생사를 나누는 전투라면 이쪽이 앞서지만 잡는 게 목적이라면 이쪽이 한없이 불리하다.

단순히 게임에서 보스를 클리어하는 것과 노히트 클리어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다고 그냥 잡혀줄 수야 있나.

나는 곧바로 바닥을 박차며 그녀에게서 멀어지듯 도망쳤다.

반대로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똑바로 직시하더니 천천히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아. 조졌네.

마치 탄환처럼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살기 위해. 그녀는 먹이기 위해 본체와도 해본 적 없던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 * *

쾅!!! 쾅!!!

에반젤린의 레어는 차원의 틈에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어낸 거대한 섬이다.

사방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아름다운 섬은 좋은 기온과 습도를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의 휴양지 같은 공간.

그런 만큼 부지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

애초에 이클립스가 한번 튕겨 움직이는 순간 섬의 끝에서 끝까지 날아가는 마당에.

그나마 에반젤린을 위한다는 단순한 목적 아래에 그녀의 레어와 그녀의 신변에 해가 되지 않도록 파괴 행동을 자제한다는 점일까.

아니 얘는 자기 레어 박살 나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으아악!! 저리 꺼져!!”

정신을 잠깐만 놓고 있어도 나를 휘감아서 입안에 솥에 든 내용물을 쏟아부으려 드는 모양새다.

금실 좋은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갓 만든 음식을 먹여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그녀는 실험체로써 나를 쓰려 들고 있고, 나는 그녀를 피해 도망치려 한다는 점이 그 예시였다.

차원의 틈을 열기가 무섭게 맨몸으로 들이박아 그것을 박살 내버리는 걸 보면 이성만 없다뿐이지 그녀의 힘은 가히 재앙에 가깝다.

그러니 손가락으로 짚은 수준으로 록샌드웜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겠지만.

급기야 그녀는 나를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고 나는 그녀의 양팔을 잡아 힘겨루기하듯 버텼다.

아니 이게 말이 돼?

타우르스를 상대로도 힘겨루기에서 이렇게 부담이 된 적은 없는데.

그녀의 힘이 잔재일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도 이건 너무할 정도로 막대한 완력이었다.

고요한 모래사장에서 나를 깔고 앉은 이클립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히 힘을 가한다.

누가 보면 참 미묘한 자세였지만 지금 나는 극심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작정하고 그녀와 싸우려 들기엔 그녀가 블랙 슬라임과 연동되어있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에반젤린에게 검둥이가 살아있다고 전해야 하는데 자칫 실수로 죽여버리면 본말전도일 테니.

“진정해 이 미친년아! 맨눈으로 봐도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그걸 에반젤린에게 먹일 생각이냐?!”

내 외침에도 그녀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전혀 모르는 기색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원래부터 저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클립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으으으아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들자 그녀도 힘에 달리는지 표정에 변화가 인다.

협상. 협상의 카드가 필요하다. 대화는 똑바로 통하지 않지만, 그녀의 행동을 바꿀 키워드는 먹힐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내가 가르쳐줄게! 요리 가르쳐줄 테니까 그 흉물 좀 치워!!!”

염동 능력으로 떠오른 솥을 가리키며 소리 지르자 그녀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다.

하지만 결국 내 대답은 전달되지 않은 듯 그녀는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빠?”

툭!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란 내가 고개를 들자 손에 들고 있던 미술용품 통을 툭 떨어뜨린 에반젤린이 보인다.

방송 중이 아닌 건 다행인데.

지금의 나는 해변가에서 이클립스에게 깔리듯 드러누워 그녀와 양손을 마주 잡고 있다.

실상은 엄청난 힘이 응집된 힘겨루기이며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아…….

에반젤린의 얼굴에 눈물이 어린다. 그러더니 곧바로 통신용 아티펙트를 꺼내 어딘가로 연결한다.

“흐윽…… 흑 어, 엄마……. 엄마아아아! 아빠가. 흐윽…… 아빠가 내 레어에서…… 바람피워!!!”

조졌네.

* * *

이클립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에반젤린에게 들키는 건 상관이 없는 건가.

지금까지는 왜 에반젤린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에반젤린이 이클립스의 모습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등지고 있는 이 상황에선 제대로 알아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죽었다고 알려진 친엄마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어이없는 상황일 테니까.

하지만 에반젤린이 울기 시작하자마자 이클립스의 행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스팡!!

순식간에 사라지듯 움직인 그녀는 쪼그려 앉아 서럽게 우는 에반젤린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인다.

“흐윽…… 흑……. 응?”

그쯤 되니 당혹스러운지 에반젤린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고, 담담한 얼굴로 그녀를 다독여주고 있는 작은 소녀를 시야에 담는다.

동시에 에반젤린의 눈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지 떨떠름한 얼굴이다.

쩌어억!!! 콰드드득!!!

동시에 근처 하늘의 공간이 거칠게 찢어지더니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으며 세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개자식이 우리가 있는데 바람을 피워? 그것도 에린이 레어에서?!”

“최근 데이비를 너무 풀어주긴 했지. 다른 생각을 못할 정도로 쥐어짜야 하는데.”

“우…… 우선은 상황부터 확인하고…….”

척 봐도 사실확인 후 아작을 내겠다는 기세를 내풍기는 페르세르크와 일리나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연락을 받자마자 일리나가 시공격검으로 차원을 갈라버리고 밀고 들어온 모양새였다.

물론, 이쪽도 억울할 뿐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 좋은 예로 나를 노려보던 세 사람이 에반젤린에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클립스?”

“이클립스가 왜 여기…….”

일리나는 긴장한 채 검을 들었고 페르세르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녀들의 적의에도 불구하고 이클립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에반젤린을 다독일 뿐이다.

“엄…… 마?”

이윽고 에반젤린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진짜 엄마…… 에요?”

“에반젤린. 그 여자는 이클립스가 아니야.”

“하, 하지만!”

“두 눈 뜨고 잘 봐.”

천천히 몸을 일으킨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녀는 이클립스를 다시금 시야에 담았다.

에반젤린이 눈물을 그치자 이클립스는 생각이 난 듯 다시 사라졌고 이내 커다란 솥을 가지고 와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검게 변질되어버린 국자로 한번 뜨더니 맛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무슨…….”

그러거나 말거나 이클립스는 또다시 아공간을 찢어내고는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식판에 그것을 담고 내밀었다.

“머…… 먹으라구요?”

이클립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반젤린의 말을 받아들이고 판단할 이성이 없으니까.

담담하게 내미는 그것을 보며 에반젤린은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떨떠름하게 식판에 손을 벋었다.

“에반젤린!! 그거 먹으면 너 골로 간다!”

내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손이 움찔 떨렸다.

냄새부터 외관까지 척 봐도 먹으면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엄마?”

에반젤린이 겁을 먹은 듯 물러나자 이클립스는 말없이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치이익…….

이윽고 철제식판까지 검게 변질되자 그녀는 뭔가 판단을 한 듯 식판 채로 솥에 던져버리고는 숲 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서걱!!!

동시에 나무 몇 그루가 잘려나가며 토막 났고 그녀는 염동력으로 그것을 가져와 순식간에 모닥불을 만든 뒤 새까만 화염을 피워올렸다.

그리고는 아공간에서 또 다른 솥을 꺼내고는 토끼를 던져넣고 정체불명의 조미료들을 마구잡이로 털어 넣기 시작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지켜보길 잠시.

그녀는 또 다른 괴식을 만들어낸 뒤 그것을 또 다른 철제식판에 담아 내밀었다.

“흐읍!?”

끔찍한 잡내가 섞여나오는 음식에 에반젤린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한 발 두 발 물러났다.

그리고는 준비한 것들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게 뭔…….”

“데이비. 어떻게 된 거야? 이클립스가 왜…….”

“엄마…… 엄마 맞아요? 정말로…….”

사실 지금 상황에 가장 혼란스러운 건 에반젤린이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상황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 서방님?”

일리나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에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뒤 에반젤린에게 말했다.

“에반젤린. 들어가 있어.”

“나도 들을 거예요!!”

“안돼. 아직 확실시된 것도 없는 상황에서 괜한 말을 할 순 없어.”

“아빠!!”

에반젤린은 다시 울먹거리는듯하더니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알려주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사실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녀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 잔념인지도 모르고, 정말로 안전한지도 모를 상황이다.

게다가 친모의 등장은 아직 어린 에반젤린의 정신계 능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었다.

육아는 사실 초짜나 다름없었던 만큼 나는 결론을 쉬이 내릴 수가 없다.

이후 나는 힘이 빠져 그대로 백사장에 드러누우며 천천히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성이 없는 게 문제인지 지능 쪽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는지 에반젤린에게 요리를 해주겠답시고 멧돼지나 토끼를 잡아서 털이나 가죽. 내장 정리도 안 하고 그대로 요리하는 기행을 저지른 건 사실 이해가 안 되지만 말이다.

* * *

훌쩍거리며 에반젤린은 인형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 이클립스가 분명했다.

이야기로만 들었고, 비화를 통해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그녀의 친모.

세상에서 가장 강한 고대룡이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파문을 불러오는 존재이자…….

꿈속에서 몇 번이고 바라본 적이 있는 존재였다.

겉보기엔 이클립스가 훨씬 어려 보이지만 고대룡, 그것도 장로급인 그녀에게 외관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에반젤린도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친모를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태어난 그녀를 키워준 건 데이비이며 나머지 세 어머니지만 피가 이어진 존재.

태어나기 전부터 그녀를 지켜주었고 그녀를 위해 희생한 친모에 대한 그리움이 없을 순 없었다.

물론 그녀는 죽었고, 그녀가 데이비에게 자신을 맡기면서 이제 부모님은 데이비를 포함한 세 어머니가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갑자기 그녀가 나타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라리 그녀가 따스한 존재가 아니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데이비와 몸싸움하던 그녀는 에반젤린이 울자마자 하던 것을 다 내팽개치고 다가와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미소 하나 없는 얼굴이지만 마치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같은 따스함.

그 따스함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후엔 이상한걸 먹이려 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데이비는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는다.

이에 그녀는 울먹거리며 인형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이대론 안 돼. 혼란스러운 건 정리해야 하는 법이야.”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분명 이클립스는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만나봐야 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대화가 불가하며 단순한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녀였다.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곧바로 옷을 껴입고는 종이에 무언가를 써서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레어를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반젤린의 레어에 일리나가 찾아왔다.

“에린아. 할 이야기가 있는…….”

아무도 없는 방을 둘러보던 일리나는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임신 중이고 배가 불러오고 있기에 움직이는 건 자제하는 게 좋지만, 일리나 본인보다 배 속의 아이가 더 크게 보호를 받는 상황인 터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녀가 직접 온 것이다.

“에린아?”

이후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당분간 찾지 말아 주세요.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가출 선언!

“가출? 가출한 거야 지금?”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린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통신 아티펙트를 활성화한 뒤 말했다.

“얘기 아빠. 에린이 가출한 거 같은데?”

쿠당탕~!!!

아티펙트 너머로 데이비의 당황한 외침이 들려온다.

이클립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고 이제 진실을 말해주려 했건만.

그새를 못 참은 모양이었다.

같은 시각.

연못을 통해 세상을 구경하던 프리아 여신이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한 손을 뻗어 투명한 물방울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것을 말없이 직시하며 손을 휘저었다.

지직…… 지지직.

이후 그녀의 곁에 놓여있던 태블릿이 노이즈를 일으키며 문자를 드러낸다.

-아…… 뒤틀렸다.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 밤. 술집과 음식점 가게들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이 거니는 시내의 거리.

한창 가출을 위해 레어를 빠져나온 에반젤린은 어떻게 이클립스를 찾아야 하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이면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다.

속으로 그리 생각하지만, 이클립스를 만나 대화하기 전까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아빠인 데이비가 말했던 대로 이클립스는 그녀가 보기에도 조금 이질적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에반젤린은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고개를 푹 숙이며 걸어가던 탓에 길을 가던 취객과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술에 잔뜩 취했는지 에반젤린과 부딪힌 행인이 벌러덩 넘어지자 에반젤린이 깜짝 놀라 그를 부축하려 했다.

“괘…… 괜찮으세요?!”

아무리 체격이 작아도 그녀가 인간의 어깨빵에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에반젤린이 당황하며 그를 부축하려 들자 취객이 그녀의 손을 쳐냈다.

“아이 씨x 눈을 어따 뜨고 다니는 거야!!”

“아…….”

동시에 밀려드는 지독한 악의.

“아이고! 아이고 내 어깨 부러졌네! 아이고! 요즘 젊은것들은 사람 어깨를 아주 부숴놓는구나아아!!”

세상에 울분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취객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악을 고래고래 지르며 시선을 끌어모았다.

“죄송합니다.”

앞을 안 보고 걸어가던 건 그녀였고 괜히 사고 쳤다가 시선이 끌리면 곤란했기에 에반젤린이 그에게 재차 사과했다.

“사과하면 경찰이 왜 필요해!! 엉?!”

눈을 게슴츠레 뜬 사내는 에반젤린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이거 어쩔 거야 어?! 어쩔 거냐고!”

방금 어깨가 부러졌다 소리쳤던 주제에. 멀쩡히 손을 들어 삿대질을 하는 꼴이라니. 그럼에도 주변에서 다가오지 않는 건 취객과 괜히 엮였다가 피곤해진다는 진리를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어찌해야 할까.

에반젤린이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가만히 취객을 보자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휘청거렸다.

“응? 너 뭐야. 어디 쥐방울만 한 게 눈을 똑바로 뜨고 째려봐! 어?! 네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냐?! 어?! 너도 날 무시해?!”

부모님이 언급되자마자 에반젤린의 주먹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그의 지독한 악의가 그녀의 안에 스며든다.

악의라는 게 눈앞의 남성 말고도 여럿 봐오긴 했지만, 눈앞의 사내는 그 악의 자체를 그녀의 면전에 대고 지독하게 쏟아냈다.

이에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무시하고 떠나려 했다.

“어? 한숨?”

팍!!!

순간적으로 취객의 손이 에반젤린의 머리로 날아들었고 그녀는 곧바로 그의 손을 낚아챘다.

“저기요. 부딪힌 건 죄송한데. 그쪽도 앞에 안 보고 가다가 부딪힌 거잖아요. 뭘 잘했다고 자꾸 소리를 질러요.”

“이년이 건방지게. 요즘 세상에 말이야. 어디 겁도 없이 여자애가 나돌아 어?! 시간이 몇십 줄 알아?! 나 때는 어? 상상도 못했어 이거!”

시청자들이 흔히 말하는 지독한 가부장제의 꼰대.

어지간한 꼰대라 불리는 이들도 이 정도는 잘 없는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에반젤린이 그의 팔을 털어내고는 그를 무시하곤 지나갔다.

참자. 사고 쳤다가 눈에 띄는 순간 아빠가 잡으러 온다.

직접 만나기 전에 잡히는 건 반드시 피해야 했다.

에반젤린이 그렇게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하자 그는 자신이 완전히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비틀거리다 주변 전봇대에 버려진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

“너도 날 무시해?! 어?!”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취객이 사고를 치는 게 어디 한둘이던가.

대놓고 공격해 들어오긴 하지만 애초에 소드마스터 이상의 실력을 지닌 그녀에겐 느리디느린 기습일 뿐이었다.

적당히 제압하자.

그렇게 그녀가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팍!!!

순식간에 에반젤린을 향해 휘둘러진 쇠파이프가 가루처럼 흩어졌다.

“어?”

놀란 사내가 휘청거린다.

동시에.

에반젤린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고딕 드레스에 보랏빛 눈동자. 검은 머릿결을 지닌 지독히도 아름다운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녀는 말없이 다가왔고, 에반젤린에게 적의를 보내던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에반젤린이 깜짝 놀라 이클립스의 뒤에서 끌어안는다.

“아…… 안돼요. 죽이면!!”

비명을 지르듯 소리친다. 이클립스는 굉장히 저돌적이고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 들었는데.

자신의 말을 들어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거지 같은 인간이라도 살생은 이쪽만 디메리트가 가득하다.

이에 필사적으로 말리자 이클립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에반젤린을 보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고개를 취객 쪽으로 돌렸다.

이미 주변에선 시선이 모여든 상황이다.

“방금…… 뭐야?”

“각성자?”

어수선해진 분위기 속에서 취객은 이클립스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려다 멈칫했다.

이클립스의 은은하게 빛나는 보랏빛 안광을 직시한 뒤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으…… 으으…… 으으으!!”

동시에 그가 지독한 공포에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사…… 살려…… 줘.”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덜덜 떠는 취객의 모습에 이클립스가 다시 손가락을 뻗었다.

“안 돼요!”

그녀의 외침에 이클립스의 몸이 다시 한번 굳었다.

“엄마…… 안돼…….”

이어지는 에반젤린의 중얼거림에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뻗고 있던 이클립스의 눈이 살짝 크게 뜨여진다.

그러더니 이내 에반젤린을 보고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어 쓰다듬어준 뒤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어딜 가는 거예요! 계속 찾고 있었어요!!”

그녀의 외침에 사라지려던 이클립스는 다시 모습을 형상화하며 에반젤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판단을 내린 듯 아공간을 열어 작은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삼각김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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