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54화
일의 발단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타닥…… 타닥…….
에반젤린의 곁을 떠나지 않거나 가끔 레인보우 슬라임의 알을 낳으러 지하 공동으로 향하는 것 말고는 크게 하는 짓이 없던 녀석이 바로 검둥이였다.
다만 이클립스의 잔재를 먹으며 진화를 이루어낸 결과 녀석은 아직 어리숙하지만 어느 정도 달라진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당연히 에반젤린을 향한 무한한 모성애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클립스와 다른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게 검둥이가 에반젤린을 유난히 챙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때문에 녀석은 특유의 호기심을 마구마구 드러냈다.
그 시작이 바로 컴퓨터였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설마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사고라도 친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블랙 슬라임 검둥이가 저지른 사고는 다름 아닌…….
띠링!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무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예쁜 명품 목걸이가 결제된다.
검둥이는 자신의 기억력을 떠올려 에반젤린이 주문을 받는 위치를 기억해 정확하게 기입했다.
무덤덤한 이클립스의 얼굴이 한껏 풀어진다.
이걸 어디다 쓰려는 것일까.
녀석은 망설임 없이 다음 창을 넘기며 마우스를 마구잡이로 두들겼다.
“오.”
그리고 짧은 탄성과 함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또 결제 버튼을 누른다.
띠링! 결제되었습니다!
세상이 변했고, 요즘 시대에 인터넷으로 못사는 물건이 없다고 하던가.
특히 과거보다 이런 부분에선 더 발달한 탓에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이면 차도 집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인만큼 애초에 구매에 한계 따윈 없었다.
총 결제금액 82,353,021원.
총 8천만 원이 넘는 결제가 무려 세 시간 만에 이어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갑작스레 과도한 결제가 이루어지면 상대측에서도 이상하게 여길법하지만 사실 에반젤린의 카드는 특수한 케이스였던 만큼 제약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에반젤린이 벌어들이는 돈도 대단했지만, 그녀의 부친이라는 존재가 데이비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말해 무엇할까.
작정하고 퍼뜨리면 지구 최고의 부호 순위권에서도 교란종에 가까운 것이 데이비였다.
씀씀이를 헤프게 하지는 않되 정말로 써야 하는 일에는 망설임 없이 지원해주는 게 바로 그였다.
“오오…….”
아주 작은 의사소통만을 배운 녀석은 이번엔 예쁘장한 드레스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작은 체격인 이클립스의 몸으로 입을법한 의상이 아닌 에반젤린에게 잘 맞을 법한 의상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물론 에반젤린의 사이즈를 알지 못하는 만큼 제대로 된 물건을 결제할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망설임 따윈 없었다.
현재 녀석은 돈이라는 개념을 아직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구경만 하던걸 직접 하니 재미가 있었던 것일까.
녀석은 이내 눈을 반짝이면서 더욱더 결제에 빠져들었고, 에반젤린에게 깜짝 선물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 사실까지 그대로 숨기는 기행을 보였다.
그 결과.
청구된 대금 7억 3천.
에반젤린은 갑작스레 날아든 어마어마한 문자폭탄에 깜짝 놀라 사용 내역을 확인했고.
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검둥이!! 검둥이 어딨어!! 당장 튀어나와!!”
극대노한 에반젤린이 블랙 슬라임 검둥이를 찾는 동안 검둥이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모른 채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래라는 개념도 아직 온전하게 잡히지 않은 이 녀석은 당장 에반젤린에게 깜짝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실제로 선물을 주었을 때 에반젤린이 기뻐할 거라는 맹목적인 기대만 품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이 소식을 알게 된 에반젤린과 데이비가 자신을 잡으러 올 거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저 기뻐할 에반젤린의 모습만을 떠올리며 키득거릴 뿐이다.
물론 쇼핑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 이후로도 에반젤린에게 또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마음에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녀석은 지구로 통하는 문을 가볍게 열고는 훌쩍 뛰어들어가 버렸다.
물론, 녀석은 몰랐다. 녀석이 사라진 직후 곧바로 에반젤린이 들이닥치며 녀석을 찾느라 극대노의 포효를 내지른 것을 말이다.
* * *
“그래서…… 얼마라고?”
“그게…….”
“아니다 네가 혼날 일이 아니지. 아빠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빠아…….”
“이클립스와 공명하고 진화한 탓에 녀석은 지성이 있는 어린아이와 같아. 제대로 하나하나 가르쳐야 해.”
“네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녀석이 기행을 저지르다 누군가를 해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일까.
울먹거리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에반젤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사춘기 초창기엔 이런 것도 싫어하더니 요즘엔 그렇지않은 느낌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네에…… 이미 결제가 된 마당에 이걸 물리려고 해도 물품은 배송된 후이기도 하고…… 괜히 환불 요청했다가 괜히 아빠한테 피해가 갈까 봐…….”
확실히 물건을 파는 입장에선 이 같은 테러도 없을 것이다.
“대체 그 녀석 그 많은 것들을 사서 뭘 하려고 했던 걸까요.”
“아마 선물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네?”
“네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거야. 기억나? 이클립스가 네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군부대를 털었던 거?”
어쩌다가 군부대를 털었는지는 미스테리하지만 그런 이클립스의 성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면 녀석의 행동 패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물…….”
선물이라는 말에 에반젤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혼내려고 작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마음 씀씀이에 생각이 흔들린 탓이리라.
“걱정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솔직히 이런 사고 한번 친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까짓거 썩어 넘치는 돈 중 아주 극소량을 쓴 것뿐인데.
“그래도 괘씸하니까 반나절 정도만 매달아 놓자.”
돈?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만 지배나 억압이 아닌 교류를 택했다면, 상대를 존중하고 그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권리를 누린다면 의무를 다해라. 그 말은 여러 방면에서 쓰일 수 있다.
그러니.
이견은 없다.
* * *
길거리를 거니는 블랙 슬라임 검둥이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잘 보기 힘든 고딕 드레스라곤 하지만 과하게 티는 느낌의 복장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녀의 외관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게 한몫했다.
컨셉질에 잡아먹힌 각성자들이 간간이 보이는 요즘 시대에 검둥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소녀 한 명 정도로 일축될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알게 모르게 시선을 받는 본인인 검둥이는 물론 그런 문제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이클립스는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게 성숙하고 성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터라 기묘한 접근이 존재하진 않았다.
길거리 한복판을 걸으며 검둥이는 현재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머릿속에 새로운 묘안들이 떠오르니 곧 기뻐할 에반젤린을 떠올리곤 저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던 중 산책하던 사람과 함께 나온 개 한 마리가 검둥이를 발견하고 맹렬하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댔다.
“야야!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견주가 어떻게든 저지해보려 하지만 본능적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임을 깨달았는지 개는 머리를 그녀의 다리에 비벼대며 애정을 표현한다.
“어……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이런 애가 아닌데…….”
목줄을 쥐고도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견주를 뒤로한 채 검둥이는 작고 흰 손을 뻗어 말없이 개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발라당 배를 까뒤집는다.
강아지 한 마리와 그런 강아지를 쓰다듬는 아름답고 우아한 소녀.
멀리서 보면 정말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었다.
그 탓에 견주도 할 말을 잃은 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개와 놀아주었을까.
잠시동안 계획도 잊고 강아지와 놀아주던 검둥이는 온몸을 휘감는 스산한 기색에 눈을 크게 뜨며 벌떡 일어났다.
녀석의 시야엔 두 명의 남녀가 담겼다.
“멀리 안 도망갔네.”
“…….”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검둥이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분위기가 풍기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아주 큰일 난다는 것을.
파악!!
녀석은 곧바로 작은 다리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에반젤린이 앗! 소리를 내며 뒤쫓기 시작했다.
“아빠! 쟤 도망가요!”
“그래. 뭔진 몰라도 도망쳐야 한다는 건 아는 모양이네.”
스산하게 웃는 데이비가 천천히 손을 뻗는다.
쉬리리리릭!!!
동시에 검은 마나로 이루어진 끈 같은 것들이 도망치는 검둥이의 팔다리를 휘감는다.
“윽!”
깜짝 놀라며 신음을 터뜨린 검둥이는 양팔과 다리를 묶어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버린 데이비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왜? 왜 그가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것인가.
점점 그를 향한 두려움이 커지자 그것이 표정에 드러났다.
“너 거기 서!”
뒤이어 에반젤린이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콱 잡자 검둥이가 버둥거렸다.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반면.
“와…… 카타르시스…….”
데이비는 저 이클립스의 형체를 한 존재가 자신을 향해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아주 흡족해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지금의 그를 봤다면 질려버렸을 모습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이는 없었다.
데이비에게 있어서 이클립스는 하나의 거대한 벽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심만큼은 부러지지 않던 존재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용물이 달라도 겉면은 이클립스와 거의 닮았으니 이런 느낌을 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검둥이 너! 대체 내 카드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에반젤린이 화를 내며 검둥이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자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렇게 물건을 함부로 사면 안 돼!”
“함부로…… 안 삼. 선물.”
머리를 쥐어짜 의사소통에 성공한 검둥이는 자신은 정말 억울하다는 기색이었다.
이에 검둥이가 생각 이상으로 순수한 존재임을 깨달은 에반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방법이 잘못됐잖아. 네가 한 짓은 나쁜 일이야!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
양손을 허리에 대고 말하는 에반젤린의 모습에 검둥이는 어떤 울컥함을 느꼈다.
자신은 선물을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몇 시간이고 인터넷이라는 것을 뒤졌는데. 나쁜 일이라며 화를 내다니!
그 서러움이 배가되자 결국 검둥이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검은 밧줄을 뿌리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특유의 공간이동능력을 사용해 사라져버렸다.
“앗! 튀었다!”
“걱정하지 마. 흔적이 남았으니 쫓는 건 어렵지 않아.”
담담하게 말하며 데이비는 허공을 가볍게 걷어차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에반젤린을 데리고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당연히 그곳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상황을 볼 뿐이었다.
* * *
잽싸게 도망쳐버린 검둥이가 향한 곳은 해안가 부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날아온 곳이다.
평소라면 어떤 이유라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으…… 으우으…….”
울먹거리며 해안가에 쪼그려 앉은 검둥이가 방울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데이비가 무서운 건 아무래도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에반젤린이 화를 내는 건 너무 서러운 기분이었다.
그렇게 울먹거리며 한참을 앉아있었을까.
문득 검둥이는 해안가에서 무언가가 대포 쏘아지듯 날아오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으…… 으아아아! 수호자님! 너무 빨라요!!”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인어. 소야였다.
“꾸엑!”
비명을 지르며 검둥이의 근처 백사장에 풀썩 처박힌 녀석은 끙끙대며 박힌 머리를 빼내고는 입을 삐쭉였다.
그리고는 그녀와 함께 다니는 수호자. 다른 이름으로 환수왕 베헤모스를 향해 화를 내려다 검둥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머나. 그 슬라임이네?”
소야는 몸을 데굴데굴 굴려 검둥이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 오랜만에 봐요,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침울해하고 있는 거예요?”
소야의 질문에 검둥이는 마치 서러움이 폭발한 듯 울먹거리며 어렵게 단어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선물…… 에반젤린…… 화남. 혼남……. 흑.”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소야가 그녀의 곁에 앉았다.
“화를 냈다고요? 어째서?”
“몰라…….”
그 말에 소야는 고민하다가 여러 질문을 던졌고.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대충 알겠네요.”
소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저기 뭐라고 부를까요?”
“검둥이…….”
“검둥이라…… 다시 들어도 너무 대충 지은 이름 같긴 하지만…… 어쨌든 선물을 샀는데 혼이 났다는 거죠? 그게 서러운 거고.”
검둥이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당신이 선물을 산다는 이유로 그 대가를 너무 무계획하게 지불해버린 탓이죠.”
“대가?”
“네. 생명체는 살아가면서 많은 거래를 해요. 이를테면 선물을 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재화나 돈을 내야 하죠.”
소야는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언니처럼 손가락을 까딱이며 물질거래의 개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이야기할수록 검둥이는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 돈이라는 건 모으기가 어려운 물건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원해도 꾹 참기도 하죠. 저도 맛있는 대게찜을 먹으려고 부지런히 저금한다고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에반젤린이 왜 화를 내듯 쫓아온 건지 깨달은 검둥이가 눈물을 닦아냈다.
“사과.”
“네?”
“사과해야 해.”
“헤헤. 착하네요. 검둥이 씨는.”
푸쉬이이익!!!
그때 바닷가 너머에서 기다란 촉수 하나가 소야의 몸을 휘감는다.
“아. 수호자님이 부르세요. 가봐야겠네요.”
촉수에 휘감긴 채 손을 흔드는 소야를 뒤로한 채 검둥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이긴 했지만 소야의 말이 사실이라면 에반젤린에게 선물을 한다는 걸 핑계로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이니까.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에 녀석은 애써 몸을 일으켰다.
콰직!! 크드드득!!!
물론.
“검둥이!!! 너 거기서!!”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린 채 맹렬하게 자신을 쫓아오는 에반젤린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사과는 해야 하는데.
지금의 에반젤린은 너무 무섭다.
그렇기에 우선은 도망쳤다가 나중에 사과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녀석은 도망쳤다.
그런데 이 숲 묘하게 익숙한데.
아. 아무 생각 없이 오다 보니 이곳에 륀느의 비밀아지트 섬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섬뜩한 느낌이 그녀를 휘감는다.
파악!!!
바닥이 꺼지며 커다란 극히 촘촘한 그물이 검둥이를 감싸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거수자 확인 포획 완료.”
의도한 건 아니었던 것일까.
모습을 드러낸 륀느가 창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물에 묶인 검둥이를 본 뒤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기에 검둥이는 육신을 액체처럼 바꾸어 그물에서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뒷덜미를 잡혀버렸다.
“잡았다 요놈.”
스산한 안광을 번뜩이며 검둥이를 잡아버린 에반젤린이 낮게 숨을 뱉어냈다.
“걱정하지 마. 죽이기야 하겠어?”
에반젤린의 환한 목소리에 검둥이는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흔히들 감정에 호소한 용서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래도 괘씸하니까 반나절만 매달리자.”
결국, 검둥이의 일탈과 도망은 얼마 가지 않아 진압되고 말았고…….
반나절 간 멍한 얼굴로 나무에 매달린 뒤에야 경제와 거래개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검둥이는 동일한 사고는 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막내가 태어나기로 한 예정일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