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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2화 (2/62)

2화. 아스트리드는 말을 돌려서 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리드, 지금 뭐라 했느냐?”

“아카데미를 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버님.”

볼프강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반반 섞여있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선언.

그토록 아카데미를 권유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딸이, 갑작스럽게 이 상견례 자리에서 아카데미 입교를 선언했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볼프강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말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로서의 볼프강에게는 의구심이 남는 상황이기도 했다.

아인트하펜 제국이 아직 왕국이었던 시절부터 미테리엔 가문은 대대로 무관이었다.

볼프강 역시도 무관이었고, 그 기개는 아스트리드까지 이어져 별의 가호까지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카데미는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완강하게 거부하던 딸이 지금에 와서 갑작스레 아카데미를 가겠다는 선언을 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아버님.”

‘나라고 가고싶은 게 아니야! 군대 두 번 가고 싶은 놈이 어디 있냐고!’

아스트리드가 속으로 뭐라 울부짖건 간에 그건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다.

군대 두 번.

평상시라면 절대, 절대, 절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상상조차 하지 않을 일이지만, 적어도 남자와 결혼하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는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저희 가문에 내려주신 하해와도 같은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또한 제국을 수호하는 얼어붙은 북방의 방패인 저희 미테리엔의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이 자리에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호오.”

볼프강보다도, 크로이츠의 대답이 빨랐다.

턱수염을 매만지며, 뭐가 그리 흡족한지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보게, 볼프강.”

“음.”

“자네, 딸 정말 잘 키웠군. 레오폴트같은 뺀질이하고는 마음가짐부터 다르잖나.”

아스트리드의 속마음이 어떻든 그걸 알 리 없는 크로이츠에게는, 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가문에 대한 향상심이 물씬 느껴지는 아스트리드의 그 말이 흡족할 수 밖에 없었다.

크로이츠의 말에, 볼프강의 눈빛에서도 의구심은 싹 사라지고 딸의 칭찬을 바로 옆에서 듣는 아버지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내가 딸은 정말 잘 키웠지.”

팔짱을 끼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볼프강과, 턱수염을 매만지며 웃고 있는 크로이츠.

“그래, 좋다. 아스트리드, 너의 아카데미 입교를 황명으로 허가하지. 별도로 신청서는 보내지 않아도 좋다. 내가 미리 일러두마.”

본래 서류 심사라거나 체력 검정 등의 입교 테스트를 거쳐야 하지만, 이렇게 황명으로 입교를 허락한다고 하면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제군주제란 그런 것이다.

“헌데… 아스트리드야.”

“예, 폐하.”

“레오폴트와는 사이가 안좋아보이더니,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느냐? 항상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싸우기만 하니, 사이가 나빠서 결혼을 시키고도 그럴까 걱정했다만.”

크로이츠의 말에 아스트리드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채워졌다.

‘저 노친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카데미 입교랑 레오폴트놈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이해를 잘 못하여…”

“그러게 말입니다, 폐하. 설마하니 이 아스트리드가, 아카데미 입교까지 자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옆에서 들려온 레오폴트의 말에, 아스트리드는 문득 불안해졌다.

뭔가, 자기가 놓친 게 있는 느낌이다.

반년 전에 이 몸에 빙의된 이후, 지금까지 아스트리드에 대한 기록이란 기록은 죄다 뒤져봤다고 생각했건만 혹시라도 놓친 게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아스트리드가 그토록 아카데미를 가기 싫어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ㅡ

“ㅡ저를 따라 말입니다.”

레오폴트의 말에, 아스트리드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

크로이츠와 볼프강은 아무래도 환담이 더 길어질 것 같아, 레오폴트와 아스트리드는 조용히 응접실을 떠나 정원으로 나왔다.

전쟁의 상흔이 한껏 남아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진 기둥을 비롯한 건물의 잔해가 미처 복구되지 못한 이 폐장원은, 뽀얗게 달빛이 내려앉으니 오히려 제법 운치가 있었다.

하늘에는 대공마룡이 기수를 태운 채 날아다니며 이따금 지면에 그림자를 그리고, 지금도 인기척은 전혀 없으나 로얄가드들이 빈틈없이 경계를 서고 있을 터.

그러기에 제국에서 가장 귀한 남녀인 둘은 별 걱정 없이 정원을 걸을 수 있었다.

비록 아스트리드의 마음 속은 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말이다.

“왜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나요.”

“뭘 말인가?”

폐허라는 것은, 앉을 곳이 많다는 뜻과도 통하는 바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끼가 앉고 곰팡이가 슨 곳도 있겠지만, 그런 곳은 이미 황궁의 사용인들이 먼저 와서 깨끗이 쓸고닦고 처리한 지 오래.

즉 이 폐허는 아무데나 앉을 만 한 곳이면 다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있는 상태다.

레오폴트는 기둥이 무너져 가로로 길게 누워있는 잔해에 걸터앉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스트리드 역시도 그 손짓을 딱히 거부하지는 않고 약간 거리를 둔 채 나란히 앉았다. 앉자마자 엉덩이를 타고 오르는 한기에 가볍게 몸을 떨었다.

“황태자 저하도 아카데미에 입교하신다는 사실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미 1년도 더 전에 알려주지 않았나. 아카데미에 입교하게 되었으니, 혼인은 졸업 후에 하도록 하자고 했었는데. 네가 잊어버리다니, 별일이로군.”

‘그야 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니까…!’

눈을 뜨니까 이 몸이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게 그 빙의인가 뭔가 하는 거구나 하고 눈치는 챘다지만 아쉽게도 이 몸의 기억까지 읽어올 수는 없었다.

지금 이렇게 아스트리드 본인인 것처럼 행세할 수 있는 것도, 평소에 로맨틱 판타지를 많이 읽어서 이런 악역 영애의 말투는 익숙한 덕분이다. 그리고 미친듯이 아스트리드에 대한 자료를 긁어모아 읽어댄 것도 있고.

하지만 그런 기록이 없이 말로 오고간 것들까지는 알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 너도 인간이긴 하군. 잊어버리는 것도 있다니 말이야.”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도 인간이지요.”

레오폴트의 푸르른 눈동자가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실린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가? 인간이기는 하겠지. 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군.”

그 말을 끝으로 레오폴트는 입을 다물었다.

아스트리드도 굳이 먼저 말을 걸 생각은 없어, 나란히 앉은 채 조용히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정보가 부족하다. 정보가 너무 많이 부족하다.

아스트리드는 이 상견례가 끝나면 저택으로 돌아가는 즉시, 아카데미에 관련된 자료를 긁어모아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 세계에는 입대할 때 K-2 사서 입대하라는 소리는 안할 테지만 말이다.

달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대공마룡이 보였다.

*

“아카데미라.”

백금 접시에 놓여진 육포를 하나 집어들어 손으로 잘게 찢어내며 크로이츠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찢어낸 육포 조각을 볼프강이 하나 낼름 집어먹고서 의자에 푹 기대앉았다.

어느 새 둘이서 비운 술통이 세 개가 넘어간다.

황제이기 이전에 친우로서, 친우이자 예비 사돈으로서 만난 자리라 격식이고 뭐고 다 집어치운 자리.

“이보게, 볼프강.”

“으음.”

“아스트리드, 이제 괜찮은 겐가?”

“괜찮다라… 그러게 말이네. 괜찮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은 말이 직선적이고 성정이 사납기로 유명해서, 사교계고 어디고 적이 많기로도 악명이 드높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닌 볼프강이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대제국 아인트하펜의 황제 바로 다음의 권력자, 볼프강 폰 미테리엔.

권력은 그런 것이다.

사소한 것들에는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물론 볼프강은 그런 권력에 그리 흥미가 없다.

아스트리드가 사교계의 꽃이 되기보다는 북방 영구동토를 누비는 새하얀 표범이 되기를 바랐다.

아직 통일하지 못한 북방을 정벌하고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아스트리드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랬던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은 반년 전 갑작스레 저택 안에서 의식을 잃고서 쓰러지고 말았고, 하필 식사 때문에 계단을 내려오다 쓰러진 탓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었다.

그렇게 깨어나지 못한 채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눈을 뜬 아스트리드는ㅡ

“뭐, 말을 좀 돌려서 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다행이긴 하지. 미테리엔 무장들은 하나같이 거친 놈들 뿐이라, 아스트리드가 그 말버릇 그대로 보고 배운 덕분에 말로 적을 만드는 재주 하나는 끝내주지 않았나. 깨어나니까 제법 달라졌기에, 그건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참일세.”

“그런가.”

그 때, 밖에서 레오폴트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황태자에게 그게 무슨 망발인가, 아스트리드!”

“…실례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정말 보기 드물게 흥분한 레오폴트의 목소리와, 나긋나긋하지만 제 할 말 다 하고 있는 아스트리드의 목소리.

크로이츠와 볼프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한 손에는 본인의 무기인 세검을 들고서 금방이라도 휘두를 듯 잔뜩 흥분한 레오폴트와, 그 앞에서 딱히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는 아스트리드.

“레오폴트, 무슨 일이냐.”

“숙부님, 아스트리드가 제 애검을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세검.

날이 아주 가늘고, 베기보다는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는 가볍고 뾰족한 검.

레오폴트의 주무기이도 한 것이 바로 세검이었다.

“뭐라 했길래 그러느냐?”

“사내답지 못한 겁쟁이들이나 쓰는 무기라고 했습니다!”

순간 크로이츠와 볼프강이 입을 다물었다.

속으로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군, 하고 중얼거리는 볼프강.

“…이보게 볼프강, 말을 좀 돌려서 하게 됐다고 하지 않았는가?”

크로이츠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표지 야하다는 분들이 많으셔서 왜들 이렇게 음란하실까 생각하다가 표지를 자세히 보니까 제가 타이즈를 안그렸더라고요

설원에서 맨다리 드러내고 거기서 김이 나오고 있으니 음란하긴 한데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어요

저도 야한 거 좋아하거든요

심봉사님 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시는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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