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아스트리드는 입교합니다
수도 페르상트의 위성도시 미셀부르크.
학원도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미셀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아카데미이며, 아카데미가 곧 도시였다.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황립 군사학교는, 미셀부르크의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이기도 해서 생도뿐만 아니라 교관, 조교, 그리고 그들의 가족, 그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 시설 기반으로 살아 숨 쉬는 도시이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축제로 변모한 것 같은 오늘.
군데군데 아인트하펜의 국기가 휘날리고, 신입생도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는 이 풍경.
입교 당일까지 가족, 친지, 연인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른 신입 생도들의 인파를 내려다보며 아스트리드는ㅡ
‘그래도 여기는 그 부대찌개가 없어서 다행이다.’
원래 세계에서 입대하던 날 먹었던 부대찌개의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지난주에 수도에 도착하고 일주일간 보냈던 시간과 그 부대찌개의 맛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
아마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라고 아스트리드는 생각했다.
도착한 날부터, 자택은 가지도 못했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이상하리만치 반가워하는 크로이츠에게 붙들려서 그대로 황궁에서 지내게 되었고, 어젯밤 미리 미셀부르크로 와서 하룻밤 묵고 이제 오늘이 입교식이 있는 날이었다.
- 아스트리드, 슬슬 나가지.
“알겠어요.”
숙소 문밖에서 들려온 레오폴트의 목소리에 아스트리드는 벽에 걸려있던 검은 그리핀 털목도리를 집어 들고 목에 둘렀다.
입고 있는 것은, 미테리엔 가문의 제식 전투복.
애초에 무기는 지참할 수 없으니, 저택에 두고 왔다지만 전투복만큼은 가지고 왔다.
‘…두 번째 군 생활은 간부로 시작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사병부터 시작이 아닌 게 어디야.’
애써 그렇게 위안하며 아스트리드는 방문을 열었다.
황실 로얄가드 지휘관복을 차려입은 황태자, 레오폴트를 위아래로 훑어본 아스트리드의 소감은ㅡ
‘옷이 날개이긴 하네.’
잘생기긴 했다.
그래서 더 짜증 나지만.
“가지.”
“네, 그러죠.”
*
입교식 내내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황립 군사학교라는 이름으로 인재를 발굴한다는 모토 아래, 평민에게도 입교의 기회는 열려있는 만큼 전국 각지에서 수재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유달리 분위기가 무거웠다.
제국을 상징하는 황가의 후계자, 황태자 레오폴트 폰 아인트하펜.
제국의 건국 공신이면서도 스스로 권력과 멀어져 북부로 임관한 대공, 볼프강 폰 미테리엔의 장녀인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
이 둘이 동시에 입교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이 상황.
아스트리드는 기분이 좋았다.
이 입교식에 오고서야 알았다. 자기 외에도, 이 유력한 가문에서 영애가 셋이나 더 입교한다는 것을.
게다가 미테리엔 가문에 비하면 하나둘은 모자란 게 있긴 해도 그래도 명문가이니 황태자비로서도 손색이 없는 영애들이지 않은가.
저 중에서 적당히 붙여주면, 아스트리드는 자유다.
물론 레오폴트도 그녀에게 짝을 붙여주려 애를 쓸 테지만 아마도 헛수고일 터.
애초에 아스트리드는 결혼 따위 할 생각이 없다.
이 아카데미에서 4년의 세월을 보내며 그사이에 어떻게든, 반드시, 기필코,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반드시 돌아갈 거야…!’
어쨌든, 동맹이니까, 레오폴트에게는 반듯한 짝을 찾아주는 것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반드시 돌아갈 거다.
반드시.
살짝 시선을 돌려 아래 강당을 내려다보면, 줄잡아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신입 생도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앉아있다.
아카데미에 입교하면 그 길로 직위고 신분이고 싹 사라지는 생도가 된다고는 하지만 아직 입교를 안 했다.
입교식도 시작하기 전이니 황태자도 그렇고 이 제국의 유력 가문의 자제들을 상대적으로 허술한 강당에 앉힐 수는 없는 일이라, 강당 강연대 뒤에 마련된 특별석에 앉아있었다.
이렇게 특별석에 앉아있는 다섯 남녀들 중에서도 생도들의 시선이 유독 잡아끄는 이가 바로 아스트리드였다.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조금씩 흩날리고 있는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이고, 살짝 치켜뜬 눈매는 도도하고 사나운 인상이었다.
민트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와 살짝 잿빛이 도는 입술은 천고의 절색이라, 과연 볼프강 폰 미테리엔이그토록 애지중지할 만 한 딸이다ㅡ 라는 것이, 생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입교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카데미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강연대에 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순식간에 강당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메아리까지 만들어 내는 그 어마어마한 성량에 신입 생도들은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마법도 없이 순수 육체 능력만으로 만들어내는 거대한 음성.
순식간에 압도당한 실내는 이내 침묵이 감돌았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은빛의 플레이트 갑옷을 걸친 초로의 중년 남성이 걸어 나왔다.
강연대에 마련된 단상에 오른 남자는 그 인상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당을 가득 메운 신입 생도들을 훑어보다가,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군들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갑작스레 던져진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르나? 그러면… 뒤에 있는 우리 황태자 전하. 대답해보도록.”
질문이 그 방향을 뒤틀어 레오폴트를 향했다.
강연대 뒤쪽의 특별석에 앉아있던 레오폴트는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기립하여, 중년 남성을 마주 보았다.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을 수호하며, 무를 숭상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기사가 되고자 함입니다.”
정론에 가까운 대답.
중년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야를 돌려, 다시 강당에 있는 생도들을 내려다보는 남자.
“제군들, 이 대답을 잘 기억하길 바라지. 나는 이 황립 군사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오르테가다. 오르테가 반 다이킨스. 제군들에게, 하나 더 질문을 하지.”
그리고서, 오르테가는 주먹을 쥐고서 제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도인가?”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생도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이 학교는, 여러분의 보호를 원하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지. 그리고 그 세금으로 이 학교를 세우신 황제 폐하. 그리고 나는 폐하께 전권을 위임받아 이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자, 그러면. 자네.”
오르테가의 손가락이 아스트리드를 가리켰다.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 이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제군주제가 아닌가. 엄연히 황제가 존재하는데 세금 어쩌고가 나오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아스트리드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대충 말을 지어내는 게 가장 좋으리라.
“황제 폐하입니다.”
전제군주제니까.
아스트리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가장 무난한 대답이었다.
“호오. 황제 폐하라?”
오르테가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생도들은 학교의 주인은 황제 폐하라고 대답했었고, 그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은 이 제국의 주인이 황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었다.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
꽤나 직설적이고 특이한 아가씨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도 그냥 헛소문이었던 걸까.
“왜지?”
“돈 내는 사람이 황제 폐하니까요.”
“뭐라?”
오르테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하지만 아스트리드의 생각에는, 돈 내는 사람이 황제 폐하니까 학교의 주인도 황제 폐하다.
“돈 내는 사람이 주인인 게 당연하지 않나요? 세금이고 뭐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돈 냈으면 그 사람 소유죠.”
“허. 허허.”
오르테가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웃었다.
특이한 면이 있기는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기는 했으나, 확실히 특이한 면이 있는 영애였다.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오르테가가 다시 강당의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황태자에게도, 아스트리드에게도, 그 둘의 배경이 어떻든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는 오르테가에게, 생도들 역시도 제법 큰 인상을 받고 있었다.
“확실한 건, 학교의 주인은 너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학교는 그저 학교일 뿐, 너희들을 그럴듯한 기사로 만들어내기 위한 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너희는 기사가 될 것이고 그러고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군인답게 움직이고 군인답게 사고하며 군인답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오르테가의 눈빛이 번뜩였다.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짐승과도 같은 눈빛.
“나를 비롯한 여기 있는 모두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어주마.”
안 그래도 조용하던 강당 안에, 더욱더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기사는 기사답게. 그렇게 만들어주마. 알았나?”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화만에 아카데미 입학...ㅠㅠ
저 표지에 있는 복장이 아카데미 교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