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11화 (11/62)

11화. 아스트리드는 굳게 다짐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전공 배정으로 이행한다. 다들 기립.”

“오, 오늘은 입교 당일인데 바로 훈련을 시작한단 말입니까?!”

입교식의 마무리를 선언하면서 곧장 다음 절차로 이행한다는 교관의 말에, 신입 생도들 중 한 명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주위 사람들 속에서, 아스트리드 혼자만이 태연하다.

‘군대니까 뭐.’

입대 당일이라고 봐주는 거 있던가, 없지.

“레오폴트 전하.”

“음?”

“전하는 전공이 마도기사시겠지요?”

마도기사.

왼손에는 브레이슬릿, 오른손에는 세검.

세검으로 근접전을 펼치는 한편, 부족한 공격력과 방어, 그 외 다양한 서포트 마법을 구사하는 일명 마검사.

본래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검사로서 일류도 될 수 없고 마법사로서 일류도 될 수 없는 이들이라는 인식이었지만 통일 전쟁 중에 그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동부에 위치한 지식의 보고, 마법사의 탑.

줄여서 마탑이라고 불리는 곳의 주인인 조르지엔 가의 가주이자 마법사인 에스카로트 폰 조르지엔이 개발한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 그 계기였는데, 마법에 필요한 영창을 단순 시동어 수준까지 단축시키면서 그 효율성이 입증되었고, 실례로 현 황제인 크로이츠 폰 아인트하펜 또한 마도기사다.

“당연한 일이다. 한 손에는 마법을, 한 손에는 검을. 이 얼마나 사나이다운 일이냐.”

“그러시겠지요.”

“뭐냐, 그 미적지근한 반응은.”

‘꼬챙이 들고 폭폭폭 찌르다가 마법으로 투닥거리는 게 뭐가 멋있다는 건지. 사나이 다 얼어 죽었나.’

“아, 아스트리드 너 또 지금 이상한 생각을…!”

“이동하는군요. 가시죠.”

레오폴트를 비롯한 아스트리드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에서 빠져나가는 생도들의 뒤를 따랐다.

*

전공 배정이라고 하더라도 딱히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이미 자기 적성이 무엇인지 정도는 다들 알고 있고, 그에 맞는 실력도 꾸준히 쌓아 올리는 만큼 이건 그저 단순한 절차에 불과하지만, 아스트리드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

보조라고 적힌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는, 아직 앳된 모습이 그대로인 소년에 가까운 청년이 차트를 들고서 한참이나 뒤적거렸다.

“미테리엔 영애… 아, 여기 있군요. 아직 전공 배정이 안 되어 계신데, 혹시 지망하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스트리드는 비교적 갑작스럽게 입교가 결정된 케이스여서, 전공 배정이 아직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생도들은 서류 심사도 하고 실기 테스트를 거치고 나서야 합격 여부를 판정 받으니 이미 전공 배정도 다 되어 있고 혹시나 뒤늦게 변경하려는 이가 있는지 검증하는 절차라고는 해도, 아스트리드는 아예 배정 자체가 되어 있지 않다.

“중장기사.”

“중장기사… 중장기사. 네, 중장기사는 네 종류의 무기가 있습니다.”

장비가 고정되어 있는 마도기사와는 달리 순수 육박전을 펼쳐야 하는 중장기사.

“창, 해머, 검, 대검으로 네 가지 무기입니다만.”

아스트리드는 조금 앞에 사열되어 있는 무기 거치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부 목재로 되어있다. 1학년에게는 진검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었지 아마…

목재로 된 무기다보니 전부 하나같이 장난감 같다.

“목재라고 하더라도 우습게 보시면 안됩니다. 진검과 거의 차이가 없는 무게로 만들어져 있… 여, 영애?!”

아스트리드는 보조의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쓰고 싶은 무기는 단 하나고, 다른 무기는 관심도 없다.

남자라면, 남자의 무기라면 역시ㅡ

“좀 가볍긴 하네.”

아스트리드의 키만큼이나 길고, 또 그녀의 허리만큼이나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대검.

그 대검의 손잡이를 집어들고서, 아스트리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대검의 손잡이를 한손으로 움켜잡고 훙훙 소리나게 휘둘러대는 아스트리드를 본 보조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목검이라고는 해도 무게는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졌기에, 한손으로 다룰 무게는 아닐텐데ㅡ

아니, 아니다. 보조의 머릿속에 순간 눈 앞의 저 미녀가 그 소문이 자자한 미테리엔 영애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고, 그러면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간다.

“그, 그…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검… 으로. 전공 심사는 이쪽입니다.”

중장기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다 되는 건 아니다.

아스트리드가 분명 그 무명을 떨치고 있다고는 하나 절차는 절차이니 중장기사 전공을 위한 심사는 필요하다.

*

“다른 생도들은요?”

“다시 강당으로 돌아가 있다. 아스트리드, 너도 빨리 보급을 받고 강당으로 돌아가라.”

전공 합격 판정을 받은 후, 다음 절차는 보급품 수령이었다.

확실히 아스트리드가 입교 결정이 늦었던 터라 다른 이들은 이미 보급품 수령을 다 하고서 강당으로 돌아간 모양이라, 아스트리드는 조교가 내미는 보급품 가방을 받아들고는 건물을 나섰다.

“늦잖나. 뭘 그렇게 오래 질질 끄는지 원.”

레오폴트였다.

보급소 출입문 바로 옆에 서서 레오폴트가 아스트리드를 향해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널 기다렸다. 보면 알지 않나.”

“말해주지 않으니 모르지요. 전하께서 왜 절 기다리셨을까요?”

“일단 가지. 분반 배정이 진행중인 모양이니까.”

“그럴까요.”

어째 돌아가는 순서조차 똑같다. 대충 입교하고 입교식하고 소대 배정하고 보급품 받고… 으으.

문득 떠오르는 어두운 기억에 아스트리드가 도리질을 쳐 털어내기에 바빴다.

“네가 여기서 길이라도 잃어서 헤메다가 늦기라도 하면 평판이 깎이지 않나.”

강당으로 걸어가는 길은 조용하지는 않았다.

저 멀리서 군가 같기도 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어디선가 구령 소리와 함께 우렁찬 발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뭔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며ㅡ

“전하께서 제 평판을 걱정해주시다니, 의외네요.”

진심이었다. 레오폴트가 아스트리드의 평판을 신경쓰고 있다는 그 말이, 아스트리드에게는 정말로 큰 놀라움이었다.

“네 평판은 더 이상 깎일 것도 없잖나. 숙부님의 평판을 걱정하는 거다.”

“아, 그래요.”

그럼 그렇지.

아스트리드가 입을 비죽이며 걷는 사이, 강당에 도착했다.

강당 안에는 이미 생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제 입교식도 끝났으니, 레오폴트에 대한 황태자 대우라던가 아스트리드에 대한 대공녀 대우들은 싹 사라지고 그냥 황립 군사학교 소속 생도, 그 1학년이 되었을 뿐이다.

“늦게 온 생도들은 빨리빨리 합류한다! 뭐하나! 멀뚱히 서서! 다들 기다리잖나!”

은색 전투복 차림의 남자가, 뒤늦게 강당으로 들어서는 둘을 향해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바락바락 악을 써댔다.

‘어우… 진짜, 어째 저런 것까지…’

진짜, 정말로 군대를 두번째 왔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아스트리드였다.

눈앞에서 방긋방긋 미소짓고 있는 보랏빛 머리의 수녀.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테란느 여신님의 충실한 종복, 베라시엔입니다. 전공은 신성학, 주무기는 메이스에요.”

그러고 보면 수녀복 허리춤에는 뭉툭한 머리에 짤막한 단봉이 결합된 메이스가 메어져 있었다.

“아스테인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마법사지요.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아스트리드 생도, 레오폴트 생도.”

눈을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굳이 말하자면 실눈… 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 같은 남자.

아스테인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유들유들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폴트와 아스트리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에라냐입니다. 엘프에요. 궁술과 단검술은 자신 있답니다?”

머리카락 사이로 툭 튀어나온 길다란 귀.

그리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오금까지 닿을 것 같은 녹색 머리카락.

아스트리드도 엘프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마도기사 레오폴트.

중장기사 아스트리드.

성직자 베라시엔.

마법사 아스테인.

궁수 에라냐.

어째 노린 것 같은 조합이 탄생했다.

그러니까, 바로 작년 기수까지만 하더라도 1학년들은 각자의 전공에 따라 분반을 나누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입교 안내서에도 분명히 그렇게 기재가 되어 있었다.

1학년에는 전공을 더욱 갈고 닦는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전공인 생도들만 모아서 분반을 구성하고, 커리큘럼도 전공 심화 위주였었다.

그랬는데ㅡ

1학년때부터 다른 전공과의 순환 전투에 숙달된 정예 기사를 양성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갑작스럽게 커리큘럼이 바뀌었다고 했다.

아스트리드가 하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에 질세라 레오폴트도 한숨을 쉬었다.

“미리 손을 쓰신 거겠죠.”

아스트리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레오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그들 뒤편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다들 분반 구성원은 확인했나!”

넓은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교관이 강연대 위에 올라서서 생도들을 내려다보며 강렬한 눈빛으로 생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이 구성이 너희들과 1년간 동고동락할 동반자들이다. 너희들 다섯명이 이제부터 분반이 아닌, 분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며, 분대 번호는 잠시 후 이 자리에서 호명할테니 그동안 너희들은 분대장을 뽑도록 해라. 알았나?”

분대.

그 이름을 또 듣게 되다니.

아스트리드는 끔찍한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어깨 위를 어루만졌다.

분대장 견장이 붙어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소름이 돋았지만 다행히 손 끝에 닿는 느낌은 견장의 거친 느낌이 아니라, 익숙한 제복의 느낌이라 다행이었다.

“…분대장은 또 뭐야.”

“이 분대의 장을 뽑으라는 거겠죠. 당연히 레오폴트 전… 아니, 레오폴트 생도가 하시겠죠?”

레오폴트의 시선이 아스트리드를 향했다.

그 눈빛이 뭔가 심상치가 않아서, 아스트리드는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레오폴트의 입술이 달싹였다.

“중장기사가 분대장 해야지. 안그런가? 우리 분대의 최전선에서 최전방 전위 역할을 해줘야 할테니 말이야.”

“어머… 그거,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장기사님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는 성직자 베라시엔.

“중장기사님이라고 하기에는 내구성이 괜찮으실까 싶지만, 아스트리드 생도라면 문제없겠죠?”

변함없이 유들유들, 만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동의하는 아스테인.

“체격이 얇으셔서 오인사격을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저도 찬성이에요!”

뭔가 무서운 소리를 하는 궁수 에라냐.

‘…1년. 1년이다. 기필코 1년 안에 돌아가자.’

그냥 봐도 이것들은, 레오폴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폐급이다.

오랜 감으로 그 사실을 눈치채며, 아스트리드는 굳게 다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저녁에 올리기 힘들지도 모르겠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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