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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14화 (14/62)

14화. 아스트리드는 싸웠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순간이 다가왔다.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으로서 깨어난 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녀의 일신에 깃든 무력이었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런 판타지 속으로 끌려들어온 것도 모자라 그 몸의 주인이 원래 설원의 표범이라 불리던 무투파였다면.

갑작스럽게 대검을 들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력이라 불리는 거인의 힘이 함께 하는 어마어마한 완력.

신무라고 불리는 본능에 가까운 전투 감각.

이 두 가지에, 호전적이었던 그녀의 본래 성격이 합쳐지면서 아버지인 볼프강과 더불어 이민족의 목을 날려버리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던 그녀, 아스트리드.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대검을 다루는 것에는 금방 익숙해졌다. 무게에 있어서는 어차피 힘이 있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기술.

아스트리드가 살아오며 익히고 쌓아올렸던 그 무력이 지금의 아스트리드에게는 없다. 그래서 그 무력을 선보여야 할 지점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바리안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교탁과 생도들의 책상 사이에 있던 넓은 공간에 갑자기 펜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모양은 육각형이고, 펜스가 다 세워진 그 공간은 흡사 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자, 들어가라.”

바리안트는 만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뛰어난 학생을 보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맞이하는 전사의 미소와도 같아서, 아스트리드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 작자는 일부러 자기를 지명한 것이라고.

생도인 아스트리드가 아니라,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을 꺾고 싶은 것이라고.

사실을 깨닫게 되니, 급격한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전율이 몸을 달리고, 흥분이 뇌리를 스쳐지나며 알 수 없는 쾌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호오, 웃을 수 있나. 여유가 있군 그래.”

바리안트는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아스트리드는 그제서야 자기가 웃고 있음을 알았다.

의도하지 않았고, 알아채지도 못했다. 본능적으로 웃고 있었다.

신무가, 움직이고 있다.

링 안에는 나무로 된 대검을 한손으로 든 아스트리드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마찬가지로 나무로 된 도끼를 든 바리안트가 마주 서있었다.

“자, 너희들 중에서 여기 있는 아스트리드 생도에 비해 확실히 강하다고 자부하는 이가 있는가?”

교육장 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하다못해 레오폴트까지도 딱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테리엔 가의 이름은 그런 것.

북부를 지키며 이민족이 단 한 발자국도 제국의 영토로 침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가문.

불사의 사자, 볼프강.

설원의 표범, 아스트리드.

설원의 흑곰, 아슈레이.

제국의 무를 상징하는 미테리엔 가의 장녀, 아스트리드 폰 미테리엔이 지금 이 링 안에 서있다.

그리고 그녀를 상대할 수 있다.

바리안트의 가슴 속에 호승심이 검게 불타오른다.

“그래, 그러면 아스트리드 생도. 너의 실력을 알면 이번 기수 생도들의 실력을 대충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군?”

“…억측이시라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 없을 리가 없지.’

그런 아스트리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리안트는 한손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힘조절은 할테니 걱정하지 마라, 아스트리드. 실력만 보고자 함이니까.”

그런 것 치고는 바리안트의 표정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전사니까 그런 거겠지. 지금 아스트리드 안의 사람은 전사가 아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가볍게 하는 거다, 아스트리드. 알겠나?”

“제 동의가 필요하긴 하신지요?”

아스트리드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군대라는 걸 알고 들어왔어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생도를 대하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니까.

“패기가 좋군 그래. 그럼 시작하도록 할까. 거기, 레오폴트 생도. 이리로 와라.”

황태자인 걸 알면서도 반말을 하는 저 당당함. 전사라서 그런 것인지, 교관이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름이 불린 레오폴트는 썩 기분 나쁜 얼굴은 아닌 채 자리에서 일어나 링으로 다가왔다.

“숫자 셋을 세고, 시작이라고 외쳐라.”

본격적으로 할 모양이었다.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손아귀에 파고드는 낯선 감각.

링으로 다가오는 레오폴트의 시선이 와닿는 게,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느껴졌다.

생경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생도들의 시선이 와닿는 것이 느껴진다.

링 옆에 선 레오폴트의 시선이 다소 걱정스러운 것이 느껴진다.

교관의 시선이 손을 거쳐 팔뚝을 거쳐 어깨를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교관의 도끼가 천천히 들어올려지고, 이윽고 자세를 잡았다.

“시작!”

시작을 알리는 레오폴트의 목소리가 들리고, 도끼가 좌에서 우로, 횡베기.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빠르다.

대검의 옆면에 도끼가 부딪히고, 나무 파편을 날리며 대검의 면을 타고 위로 치솟는 것이 느껴진다.

옆으로 세웠던 대검을 눕히며 손잡이로 교관을 찔러본다.

닿지않았다.

거리가 멀다.

손잡이를 찔러넣는 기세로 대검을 횡으로 깊게 휘둘렀다.

도끼보다 대검이 길다. 리치는 이쪽이 위.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교관은 없었다.

위다.

위에서 짓쳐드는 도끼가 느껴지고, 대검을 들어올려 막기에는 늦다.

물러섰다.

조금만 늦었어도 맞았을 것이다.

물러선 자리에 도끼가 내리찍혔다.

‘손대중 하겠다고 하더니.’

애초에 믿어서는 안됐겠지. 아스트리드는 생각하며 대검을 추슬렀다.

긴 대신 느리고, 느린 대신 강하지만 그 강함도 맞춰야 발휘되는 법.

“왜 그러나, 벌써 지치는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생각보다 진심이신 듯 해서.”

묘한 감각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감이 모조리 곧추서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직접 보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지고 있다.

생각하는 것은 느리다.

움직임이 더 빠르다.

“가겠습니다.”

대검을 똑바로 세워들고서 왼발부터 파고들었다. 왼발을 디디며 세워든 대검을 우상에서 좌하로.

오른발을 디디며 몸 전체가 회전한다. 대검은 좌하에서 우하로 한바퀴 돌듯이 하단을 노리고, 예상대로 교관은 살짝 뛰어 피한다.

그러면 회전하던 몸이 방향만 살짝 뒤틀어ㅡ

*

‘기술은 명백히 교관이 우위군요.’

아케밀라 유레이드는 어느새 나무끼리 부딪히는 소리만이 가득한 교육장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가 보기에, 기술은 명백히 교관이 위였다.

출중한 파괴력을 갖춘 대신 느려터진 대검이지만, 그만큼 탁월한 힘이 있어 보통의 대검이 움직일 수 없는 경로로 날아드는 대검.

하지만 아스트리드의 대검은 번번히 교관의 도끼에 막히고 있고, 교관이 움직이는 한손도끼는 그 틈마다 파고들어 아스트리드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주위에서는 소근소근, 아스트리드가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은 게 아니냐는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20분 가까이 전투가 이어지고 있고, 어지간한 체력이 아니라면 저런 육박전을 20분이나 이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기술은 확실히 우위이긴 한데… 어째서일까…’

아스트리드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아니다.

아케밀라는 그 생각 끝에, 아스트리드가 이 싸움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우지직, 하고 울려왔다.

도끼 머리가 날아가 펜스에 부딪힌 후 지면에 굴렀다.

‘역시 그랬군.’

아케밀라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생각한 그대로.

아스트리드의 대검은 그 우월한 리치를 이용해서 교관이 피할 경로를 차단하며 조금씩 나무를 깎아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스트리드 본인은 날아드는 도끼를 피하며 무기의 손상을 줄이고 있었다. 그 결과가 이렇다.

교관의 도끼는 부러졌고, 아스트리드의 대검은 남아있다.

“끝입니까?”

적수공권인 교관을 향해 대검을 들어보이며 아스트리드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교관은ㅡ

“그럴 리가.”

그리고 순식간에 아스트리드의 허리를 향해 깊이 태클을 시도하는 교관.

아스트리드는 그마저도 예상한 듯, 그런 교관이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대검을 버리며, 교관의 태클을 흘려냈다.

“제법이군.”

회심의 태클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교관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너도 빈손이 되었다, 아스트리드 생도.”

“피차 빈손이군요. 그럼 남은 건 하나겠지요?”

“그렇지. 잘 아는군, 아스트리드.”

어느새 생도라는 단어조차 사라졌다.

교관이 양 팔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아스트리드 역시 양 팔을 치켜들고 격돌했다.

마치 두 마리의 곰이 힘싸움을 하듯이 서로가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서 벌이는 원시적인 싸움.

겉보기에는 지극히 가냘픈 여성인 아스트리드와, 불곰같은 덩치의 바리안트가 벌이는 것은, 일견 말이 성립되지도 않을 정도의 힘싸움.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크흡…!”

새하얀 얼굴로 표정조차 바뀌지 않은 채 바리안트를 내리누르는 아스트리드.

그에 비해 이를 악문 바리안트는 연신 땀을 흘리며 기괴한 소리를 흘려냈다.

조금씩, 조금씩 바리안트의 팔이 굽어지기 시작하고, 내리누르는 아스트리드의 힘을 이기지 못한 바리안트의 무릎마저 굽혀지며ㅡ

- 텅.

링 바닥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바리안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 터텅.

마침내 양쪽 무릎이 전부 지면에 닿고서, 조금만 더 아스트리드가 내리누르면 양 팔마저 완전히 굽혀질 그 즈음.

“좋은 승부, 감사합니다. 교관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갑작스럽게 아스트리드가 손을 풀고서 자세를 바로했다.

전투는 끝났다는 듯이, 싸움은 이제 끝이라는 듯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아스트리드는 양 무릎을 꿇고 있는 교관, 바리안트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대검을 집어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케밀라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긴 거지?’

자리에 돌아와 앉은 아스트리드는, 자기가 하고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스트리드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제서야 억제되어 있던 긴장이 확 풀리며,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 떨림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마침내 손 끝까지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어깨를 짚는 누군가의 손길.

“힉.”

갑작스러운 그 손길에 아스트리드가 놀라 몸을 움츠리고ㅡ

“아스트리드. 괜찮나? 많이 떨고 있는데.”

레오폴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산대학교 맞춤법 검사기가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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