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21화 (21/62)

21화. 아스트리드는 베라시엔을 만났습니다

“베라시엔이에요. 기도 주간이 끝나서 이제 교육에 합류하게 됐네요.”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는 보라색 머리의 수녀는 분대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딱히 부담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일주일 늦었지만요. 그래도 에테란느 여신님은 기도 주간을 어기면 굉장히 싫어하시거든요. 이해해주실거죠?”

헤어밴드 아래에서 머리색과 같은 보랏빛의 눈동자가 연신 반짝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띈 눈매가 앞에 모여앉은 분대원들을 슥 훑어보며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이나 늦게 합류를 한만큼 다른 분대원들은 자기들끼리 제법 많이 친해져 있는 게 당연하고, 베라시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제가 군종수녀이기는 해도 사실 전투 교육은 잘 받았답니다. 물론 기사분들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요. 제 몸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

옆구리에 차고 있던 메이스를 슬쩍 들어보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베라시엔에게, 아스트리드는 이내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분대장 아스트리드예요. 잘 부탁합니다, 베라시엔 수녀님.”

“그래요, 일주일 만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근데 다들 기운이 없어보이네요?”

“그게.”

아스트리드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전쟁 때의 혹독함을 체험한다는 미명 아래 지난 일주일 간의 식단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갈아낸 순무로 끝이 아니었다.

톱밥이 섞인 빵이라던가, 손톱만한 고기조각 몇 개 떠다니는 수프라던가 이런 것들만 일주일 내내 나오니까 다들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날이 갈수록 퀭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레오폴트는 유독 심했었다.

“아하, 그러셨구나.”

“베라시엔은 잘 먹었나봐?”

엘프이긴 한지 채식에 익숙하다던 에라냐도 그게 사흘쯤 넘어가니까 조금씩 힘들어 보이더니 어제 낮에는 고기가 보인다며 풀밭을 나뒹구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저야 잘 먹고 잘 지냈죠. 에테란느 여신님은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시니까요. 먹을 건 아끼지 않는 분이시구요.”

“…그거 참 부럽군요.”

아스테인 역시도 테이블 위에 늘어지다시피 엎드려 힘없이 중얼거렸다.

비교적 잘 버티던 아스테인도 이제 도저히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스트리드 생도는 제법 멀쩡해보이네요. 아, 분대장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뇨, 괜찮습니다. 편하신대로 하세요.”

아스트리드라고 괜찮지는 않지만, 원래부터 소식가인데다 딱히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라서 갈아낸 순무에 거친 호밀빵이라도 그럭저럭 배가 찰 정도는 먹었다.

하지만 음식의 질이 절대적으로 떨어지니…

“아무튼 오늘로 끝입니다. 매점도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고 하니까, 내일 저녁에는 제가 살 테니까 같이 회식이라도 하시죠.”

그 전쟁식단이 시작된 첫 날, 첫 식단부터 일부 생도들이 매점에서 몰래 음식을 사려다가 걸렸고, 그것 때문에 매점이 아예 문을 닫아버렸던 슬픈 기억.

그 소동의 장본인인 레오폴트와 에라냐가 반색을 했다.

“오오… 회식…!”

“아무튼, 자… 오늘 교육을 받으러 가도록 하죠.”

오늘은 분대원 전체가 강당에서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1학년 전용 강당이어서 그 크기도 보통이 아니었는데, 입교식 이후로 처음 오는 강당이었다. 수백명에 달하는 생도들이 모두 모여 앉아있는 강당은 그 분위기부터도 입교식 때와는 남달랐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제법 친해졌는지 입교식 때 감돌던 다소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오늘은 무슨 교육입니까, 분대장님?”

아스테인의 말에 아스트리드도 고개를 저었다.

교육 시간표에도 이 날은 아무 표시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강당 집합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었고, 분대장들에게도 어떤 교육이 될 것인지는 따로 전달된 바가 없었다.

“글쎄요, 따로 전달이 된 바가 없네요.”

그러면서 아스트리드가 힐긋 레오폴트를 바라보았다.

그 날 이후로 레오폴트와는 대화가 없었다. 마주치더라도 그저 고개만 까딱, 아는 체 하는 정도로만 스쳐 지나갈 뿐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

어색한 분위기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별다른 흥미가 없다는 것처럼 생활하는 사이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레오폴트는 별 표정 없이 강당에 설치된 강연대와 그 옆의 칠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려는 것인지 이미 준비된 강연대. 그리고 커다란 칠판.

아스트리드도 레오폴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강연대를 올려다보자, 이윽고 교관이 강연대 위로 올라와 탁탁 손뼉을 쳐 생도들의 시선을 끌었다.

“다들 모였나?”

“네!”

각 분대의 분대장들만 힘차게 대답했다. 전부 다 대답하면 우왕좌왕 중구난방처럼 보일 수 있으니 분대장들만 대답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

단 일주일이지만 제법 달라진 모습이기도 했다.

“좋다. 단도직입적으로, 오늘의 교육이 무슨 교육일지 궁금하겠지?”

교관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모르긴 해도, 뭔가 본격적인 교육이 될 것 같아서 아스트리드도 썩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힘든 훈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테고, 아스트리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의 설립은, 이 대륙을 통일한 아인트하펜 제국의 무궁한 영광과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제국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수호하는 강력한 기사의 육성에 그 목적이 있다. 너희들은 그 첫발은 내딛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이제 일주일의 교육을 받았지.”

교관이 말을 멈추고 칠판 앞으로 다가가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분대단위 기본전투 실습… 이라.”

아스트리드가 자기도 모르게 그 글자들을 한글자씩 따라읽었다.

분대단위 기본전투 실습. 어감조차 좋지 않다.

“자, 이게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하겠지만 추가로 설명하마.”

교관이 이어서 손뼉을 가볍게 치자, 조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들고 있던 서류들을 분대원들이 모여앉은 테이블마다 나눠주기 시작했다.

분대단위 전투실습.

아카데미 내에 조성된 훈련장 중 산악 훈련장이 있는데, 그 곳에는 어젯 밤 굶주린 마물들을 풀어놓은 상태라고 했다.

“즉, 간단하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그 훈련장에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마물들을 소탕하면 된다. 마물은 소형, 중형으로 나누어지고, 소형은 1점, 중형은 2점이다. 각 마물을 잡을 때마다 점수는 자동으로 합산되니 채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가장 많이 잡은 분대는 포상을 주겠다.”

실전.

실제 마물을 상대하는 훈련.

다른 생도들도 대부분 실제 마물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중앙기사단의 기사, 또는 귀족의 고용 기사는 전쟁 외에도 영지 주변의 야만인, 도적, 마물 등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는 일이 잦았다.

때문에,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전쟁 외에도 그것을 퇴치하기 위한 전투를 교육한다. 이 훈련도 그 일환인 모양이었다.

‘필요한 일이기는 한데… 역시 좀 꺼려지기는 하네.’

원래의 아스트리드라면야 마물을 잡는다거나 야만인을 죽이는 일에 무감각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아스트리드는 그렇지 않았다.

‘잘 할 수 있으려나…’

힘이야 이미 증명됐고, 실전에 들어가면 싸울 수 있다는 것도 확인은 했지만 그게 어디까지 통할지는 의문이다.

약간, 불안해졌다.

분대가 수십개다보니 이들마다 교육장을 따로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공간결계였는데, 입구는 같아도 들어가는 즉시 각각 분리된 공간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체크 포인트가 있었는데, 이 곳은 공용 공간이라서 휴식처이기도 한 동시에 다른 분대와 조우할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약한 마물들 위주로 배치가 되어있다. 이제 일주일이 된 너희들에게 강력한 마물을 배치할 수는 없으니, 이번 훈련은 분대끼리 순환 전투에 익숙해진다는 느낌으로 임하도록 해라. 알겠나?”

“네!”

드디어 실전이었다.

이번 훈련에 한해서 보급받은 철제 대검 손잡이를 꾹 움켜잡으며, 아스트리드는 살짝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천하의 아스트리드가 겨우 이정도를 가지고 긴장한 기색을 보이면 안되겠지만, 그럼에도 제법 긴장이 된다.

“분대장님, 긴장하지 마시고요. 그간 충분히, 열심히 교육 받았잖습니까.”

문득 아스테인이 말을 걸어왔다.

“딱히 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우와, 아스테인! 분대장님한테 점수 따려는 거야? 치사한데?! 아스트리드, 긴장하지 마! 언니가 다 해치워줄게!”

에라냐가 활을 들고서 피슝피슝 입으로 화살 쏘는 소리를 흉내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마는 아스트리드와, 분대장님이 웃었다며 같이 웃는 에라냐.

그런 그들 앞에 서 있던 교관이 차트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1분대부터 돌입한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다섯명이 동시에 들어가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반원 형태의 문이 열리고, 아스트리드를 위시한 1분대는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끝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외부 연병장이 아닌, 울창한 숲이 우거진 어딘가의 공터였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도 내일부터는 다시 하루 한편으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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