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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22화 (22/62)

22화. 아스트리드는 싸웁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산, 훈련장은 그 산 하나를 통채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다니기라도 했으면 오솔길이라도 나 있거나, 하다못해 풀이며 덩굴이 누운 흔적이라도 있을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어서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숲 그 자체였다.

아무튼 들고 있는 게 대검이라 제일 길기도 하고, 분대에서 맡은 역할이 최전방 전위이다보니 아스트리드가 가장 앞에 서서 대검을 휘두르며 앞을 가로막는 수풀을 쳐 넘어뜨렸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언니, 이번엔 또 뭐가 문제인 거에요?”

길을 가로막듯 쓰러져있는 나무 등걸을 한손으로 잡아들어 저만치 던져버리며 아스트리드는 투덜대는 에라냐를 쳐다보았다.

에라냐는 엘프라서 숲에서의 활동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아서 저 여자가 진짜 엘프가 맞긴 한가 싶은 상황이었지만, 뭐 엘프라고 해봐야 혼자 편한거지 분대가 편한 건 아니니까 아스트리드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일주일이나 밥도 제대로 안먹여놓고는, 마지막 날 이런 실전 훈련이라니. 말이 안되잖아요.”

‘…그건 맞지.’

전시 체제에서 밥을 제일 잘 먹어야 하는 게 군대 아닌가 말이다.

아스트리드는 지난 일주일간 먹었던 메뉴를 떠올려보았다.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던 메뉴들. 그게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진짜 치를 떨 지경이었다.

“그 뭐, 평시에 잘 먹던 생도들이니까 전쟁 나면 이렇게 된다는 걸 알려주려나 보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요.”

이마에서 송글송글 솟는 땀을 닦아내며 아스테인이 씩 웃었다.

그 실눈도 이제 일주일쯤 보니까 쟤가 비웃는 건지 순수하게 웃는 건지 제법 구분이 된다.

“그래도 이거 끝나면 오늘 하루 훈련 끝이라니까 조금만 참자고요.”

“에이. 어디서 토끼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구워먹으면 좋을텐데.”

점심식사는 배급이 없다.

산에서 식재료 현지 조달이라, 어쩌면, 운이 좋다면 산짐승이라도 잡아서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머나, 엘프 아가씨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여태 별 말이 없던 바이시엔이 톡 끼어들었다. 헤어거들까지 쓰고 긴 팔에 치마까지 치렁치렁 긴 수녀복은 온통 검은 색이어서 보기만 해도 더웠는데, 정작 바이시엔은 딱히 상관없는지 땀도 거의 흘리지 않고 있었다.

“에이, 엘프들이 고기를 안먹어봐서 그런거죠. 먹어보면 다 뻑갈 건데.”

‘상상했던 엘프랑은 너무 다른데.’

아스트리드는 이 세계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엘프에 대한 환상을 되새겨보았다.

장신, 거유, 숲의 자식, 채식주의자, 극단적으로 날카로운 성격, 뭐 그런 것들인데 어느 하나 지금의 에라냐에게 적용되는 게 없었다.

“어, 잠깐. 쉿.”

그 때, 에라냐가 갑자기 손을 휘젓더니 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가져다댔다.

조용히 하라는 에라냐의 수신호에 따라 분대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에라냐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서 옆에 서 있던 나무 등걸을 마치 허공을 걷듯 탁탁탁 작은 발소리만 남긴 채 타고 올라 나뭇가지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숲의 자식은 해당되네.’

나뭇가지에 쪼그리고 앉은 에라냐. 에라냐가 손차양으로 햇빛을 막으며 어딘가를 보더니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쭉 밑으로 내렸다. 그 신호에 따라, 분대원들도 일제히 몸을 낮춰 쪼그리고 앉았다.

그 상태에서 조금 더 관찰하던 에라냐가 아래로 폴짝 뛰어내렸다.

수풀 위로 뛰어내렸는데도 아주 작은 발소리 정도만이 날 뿐,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

“뭔가 있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스트리드가 묻자, 에라냐가 손가락을 꼽아보였다.

총 일곱.

고블린.

고블린 일곱마리.

고작해야 열살배기 어린아이 정도의 체구에 불과한 고블린이고, 숙달된 기사라면 전혀 어려울 게 없는 하급 중의 하급이며 소형 몬스터.

하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게 위협적이다.

‘진짜 그렇게 생겼으려나?’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스트리드는 고블린 정도라면 별 무리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거리는요?”

“여기서 15미터 정도?”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다. 여기서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소리가 저쪽까지 들리지는 않을 거리. 그 거리에서 소리를 알아챈 에라냐를 보면 확실히 엘프이긴 한가보다.

“일단… 제가 전위니까, 제가 선돌입할게요.”

무슨 자신감인가 싶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리안트하고도 제법 대등하게 싸웠지 않은가 말이다. 적어도 고블린이 바리안트보다는 세지 않을 터. 아스트리드가 알고 있는 고블린의 그 모습이 맞다면 별 무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스트리드는 호기롭게 소근거렸다.

“그래도 숫자가 많은데, 일곱이니까요. 무턱대고 돌입하는 건 위험하겠죠.”

아스테인이 다른 의견을 낼 모양이었다.

“어차피 고블린은 원거리에 대적이 안되니까, 제가 매직 미사일을 날려서 시선을 끌면 어떨까요?”

“음…”

매직 미사일로 시선을 끌고 아스트리드가 돌입한다?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었다. 매직 미사일이 날아가면 어쨌든 시선이 그리로 끌릴 테니까 아스트리드가 돌입해도…

“그럼, 이렇게 하죠. 아스테인이 매직 미사일로 시선을 끌고, 그 사이에 저와 레오폴트 생도가 돌입할게요. 그러면 여기까지 세 마리, 그 사이에 에라냐 언니가 하나씩 요격을 해주세요. 베라시엔 생도는 혹시 보호막 같은 게 되면 후방에 계시다가 아스테인을 보호해 주시구요.”

숲 속에서의 싸움은 먼저 발견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 정도는 아스트리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제 상황이라는 점에서 다소 긴장이 된다.

이제 고블린들이 보이는 위치까지 다가왔다.

슬쩍 보기만 해도 고블린들은 이쪽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기네들끼리 깨득걸리며 폴짝폴짝, 짤막한 몽둥이를 휘두르며 제자리 뛰기를 하는가 하면 우키킥 하는 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뭔가 얘기를 하느라고 지금 아스트리드 분대가 있는 쪽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제 아스테인이 매직 미사일을 저기다가 날리기만 하면 되는 타이밍인데, 그 때 문득 아스트리드가 한 가지 문제점을 떠올렸다.

“아스테인.”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스테인을 부르자, 뒤에 있던 아스테인이 입을 벙긋거렸다.

“…마법 영창, 외워야 하지 않아?”

마법을 쓰려면 영창이 필요하다.

고위급 마법사가 되면 매직 미사일처럼 하급 마법은 딱히 영창도 필요없다고는 하지만 아스테인은 그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영창이 필요할 거다.

“…아.”

아스테인이 아, 하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영창을 하면 기습의 의미가 없다. 영창을 시작하면 저 고블린들도 시선이 이쪽을 향할테고, 그게 무슨 기습인가.

“레오폴트 생도, 어쩔 수 없네요.”

이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우리 분대원들은 다 바보다, 바보. 나까지 포함해서.

“제가 돌입할테니까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돌입해주세요.”

“그리하지요.”

레오폴트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하지만 어차피 전투를 앞둔 이 와중에 목소리에 감정을 실을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스트리드는 쥐고 있던 대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이야아아아아아아!”

“우끽?!”

타다다닥 달려나가는 아스트리드의 발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대검이 하늘을 날았다.

고블린 하나의 모가지가 덜렁 분리되어 허공으로 솟구치고, 그 뒤로 세검에 목이 꿰뚫린 고블린 하나가 레오폴트의 발길질에 날아가 널부러졌다.

그 사이로 화살이 한 발 날아와 다른 고블린의 이마에 박히자마자 고블린이 흰자위를 드러내며 스르륵 무너지고, 다시 그 뒤로 아스테인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연푸른색의 화살 모양이 날아와 고블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또 다른 고블린 하나는 메이스에 의해 머리통이 짓눌린 채 잠시 끼엑, 끼엑… 하다가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흡.”

대검이 다시 한번 하늘을 날았다. 날카롭지는 않아도 그 무게와 리치, 그리고 거기에 실린 아스트리드 특유의 힘이 고블린 두 마리를 한번에 후려갈기며 전신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작전이 필요없었던 거 아닙니까?”

아스트리드, 셋.

레오폴트, 하나.

에라냐, 하나.

아스테인, 하나.

베라시엔, 하나.

총 일곱의 고블린을 때려죽이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블린이니까 그런 겁니다.”

세검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낸 레오폴트가 검집에 세검을 밀어넣으며 아스테인의 말에 대답했다.

고블린이니까.

여기 있는 아스트리드 분대에 비해서는 고블린이라는 게 너무 약해서 그런거라고 레오폴트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어차피 산 초입이고, 저희가 가야할 곳은 저 산 정상입니다. 갈수록 어려워질테니 너무 마음 풀면 좋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분대원들의 시선이 레오폴트를 향했다.

단번에 모든 시선들이 자기를 향하는데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도 없는 레오폴트.

그는 오히려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분대장님, 다음 지시를.”

“아, 아.”

아스트리드마저 당황해서 레오폴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동하죠. 에라냐 언니는 조금 전처럼 척후를 계속 맡아주세요. 레오폴트 생도는 후미를 담당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초전은 성공이었다.

다만, 아스트리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조금 전까지 살아있었던 저것들이 단번에 피떡이 되었고, 그렇게 만든 게 본인이라는 사실이 어쨌든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저녁에 한편 더 올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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