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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30화 (30/62)

30화. 이 암캐같은 게

“아스트리드 분대장에게 허락은 받으셨습니까?”

“에이, 레오폴트 생도만 허락하시면 될 일이지 않나요?”

작전을 바꾼 모양이었다.

아스트리드에게는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을 정도로 매몰차게 거절당한 아케밀라는 이제 레오폴트에게 직접 허락을 받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는지, 훈련 기간 내내 레오폴트 옆에 딱 붙어서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고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레오폴트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열심히, 아주 부지런히 무도회에서의 첫 춤을 자기와 추자고 구애를 하고 있는 아케밀라를 잡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잘들 논다, 잘들 놀아. 내가 저딴 거한테 질투를 한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원.’

아스트리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술을 비죽였다.

훈련 기간 4주 중 마지막 4주차가 시작되었다.

4주차는 기본적인 교육은 모두 끝난 상태라 이제 종합훈련으로, 분대 두 개씩 섞어서 다른 숙영 훈련장으로 진입하여 5일에 걸친 숙영 훈련이 진행된다.

오늘은 그 이틀째, 그리고 저녁.

낮의 전투 훈련의 끝마치고서 이제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었다. 해가 딱 넘어가기 시작하는 그즈음이라 식자재를 구하러 간 분대원들을 기다리면서 레오폴트와 아스트리드, 아케밀라 셋만 숙영지에 남아 불자리를 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아스테인까지도 “잘 해보세요, 분대장님.”이라는 말과 함께 뜻 모를 윙크를 아스트리드에게 남긴 채 다른 분대원들과 장작을 구해온다며 사라졌고, 덕분에 불을 피우는 건 그 세 사람의 몫이 되었다.

‘이거 진짜 이렇게 하면 불이 붙는 게 맞나?’

홈이 움푹 파인 약간 널찍한 나무판에 뾰족한 나뭇가지를 하나 꽂다시피 한 후 부지런히 비비기를 10여분을 했는데도 불이 붙기는커녕 연기만 좀 피어오르다 말고 있었다.

“분대장님, 이제 제가 하겠습니다.”

딱히 힘들지는 않고 그냥 지루하기만 한 작업인데, 아스트리드가 연달아 한숨을 쉬며 나뭇가지를 비벼대고 있으니 힘들어 보였는지 레오폴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이, 레오폴트 생도, 아스트리드 분대장님이 모범을 보이신다는데 뭘 그러세요.”

그 말을 들으니 아스트리드가 짜증이 많이 난다. 그리고, 굳이 참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저따위 소리를 듣고도 얌전히 참을 만큼 아스트리드는 얌전하지 못했다.

“그래요? 저만 분대장인 게 아니니 이참에 모범을 좀 보이시는 게 어떤가요.”

아스트리드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와 함께 나무판이 퍽, 퍽 소리를 내며 아케밀라의 발치의 지면에 박혔다.

힉, 하며 올려다보는 아케밀라를 아스트리드가 쏘아보았다.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며 아케밀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단주의 딸로 태어나 전투처럼 피를 보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삶을 살아온 아케밀라로서는 그 눈빛을 차마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분대장으로서 모범을 보였으니, 아케밀라 분대장님도 모범을 좀 보이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그렇게 말한 아스트리드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내심 레오폴트에게도 따끔하게 한마디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레오폴트는 아까부터 장작을 화덕에 밀어 넣기 쉽도록 조각내고 있었다.

에라냐에게 빌린 단검을 가지고 잔가지도 쳐내고 덜 마른 부분이 있으면 깎아내기도 하고.

즉, 놀고 있던 건 아케밀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스트리드도 레오폴트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잡아먹을 듯이 한번 노려보고 돌아설 뿐.

- 어머, 그건 질투라고 하는 거예요.

베라시엔 수녀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질투, 질투라. 이게 질투라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인정을 할 수도 없었다. 질투라고 하면 뭔가, 아주 조금이라도 연심이 있어야 할 것인데 레오폴트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째, 아스테인이 아까처럼 아스트리드와 뭔가 속닥이는 걸 보면 레오폴트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좋지 않다기보다는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인지 아케밀라가 옆에 와서 첫 춤을 같이 추자는 치근덕거림에도 레오폴트는 밀어내지 않고 넌지시 말을 돌리며 확실한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아, 팔이야…”

아케밀라가 채 5분도 안 돼서,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는데도 팔이 아프다며 칭얼거리고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10분 넘게 혼자 하면서도 싫은 기색, 힘든 기색 하나 없었는데.’

무의식중에 아스트리드와 비교하는 생각이 떠오르고, 레오폴트는 얼른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렸다.

“아이, 뭐하셨습니까 진짜. 불도 안 피우시고.”

걸쭉한 목소리.

아케밀라 분대의 전위를 맡고 있는 중장기사, 데오트였다.

등에 짊어진 토끼 서너마리를 턱 하니 화톳가에 내려놓고는 데오트는 아케밀라에게 다가갔다.

“이리 주십쇼, 분대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응, 해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판자를 내미는 아케밀라.

그 모습에 아스테인이 나섰다.

“그래가지고 언제 불 피우겠습니까? 제가 피울게요.”

중장기사가 둘인 대신 마법사가 없는 아케밀라 분대와, 중장기사가 아스트리드 하나인 대신 마법사가 있는 아스트리드 분대.

“분대장님, 그 장작 몇 개만 집어주세요.”

아스테인의 말에, 가만히 앉아있던 아스트리드가 옆에 있던 장작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던지려는 듯 휙 들어 올렸다.

“어, 어어. 분대장님, 그렇게 던지시면 저 못 받습니다?”

아스테인의 너스레에 아스트리드가 픽 웃더니 일어서서 아스테인에게 직접 나뭇가지를 건네주었고, 그 모습에 레오폴트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겨우 그거 못 받아서 뭐 어쩔 거냐, 아스테인. 그래도 군종 마법사 할 거면 반사신경 좀 키워야 하지 않겠어?”

“에, 그게.”

“아스테인은 마법사니까 괜찮아요. 날아오는 무기 막고 피하는 건 저희 같은 전위들이나 신경 쓸 일이지 후위인 마법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 그런 상황이 되면 저희가 능력 부족이라는 소리잖아요.”

보란 듯이 아스테인을 감싸고 도는 아스트리드.

레오폴트는 뭔가 속에서 훅하고 치솟는 느낌에 항변을 하려다가 가까스로 입을 다물었다.

*

텐트가 4동 쳐져 있었다.

아스트리드와 에라냐, 베라시엔이 쓰는 텐트와 레오폴트, 아스테인이 쓰는 텐트.

아케밀라와 베라크레사가 쓰는 텐트와, 데오트를 비롯한 세 남자 분대원들이 쓰는 텐트.

밤이 깊고 취침 시간으로 접어들면, 각 분대에서 한명씩 나와서 불침번 근무를 서기로 했었다.

초번초 근무가 그나마 나아서 경쟁자가 있을 수밖에 없고, 가장 피곤한 말번초가 누구나 가장 기피하는 근무 순번이었다.

“…제가 말번초 하죠.”

체력이 가장 뛰어나니까. 남들에게 맡기느니 그냥 자기가 하고 만다는 아스트리드와, 피튀기는 가위바위보 싸움 끝에 말번초가 되어버린 아케밀라.

딱히 표정이 없는 아스트리드와 달리 오만상을 쓰고 있는 아케밀라는 표정이 상당히 대조적이기도 했다.

아스트리드는 마음 같아서는 아케밀라는 그냥 자게 두고 혼자 불침번을 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일이고, 어쩔 수 없이 불편한 근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짜증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미테리엔 영애는 북방에 얼마나 계셨어요?”

예상대로다.

아스트리드가 근무를 서러 나오고 나서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까스로 텐트 밖으로 기어 나온 아케밀라는, 한참 동안 졸기도 하다가 겨우겨우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서 첫 마디가 이거다.

“…태어나서부터 쭉 북방이었습니다.”

“우와, 추웠겠다.”

“당연히 춥죠.”

아마, 아스트리드라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스트리드가 언제부터 북방에 살았는지 지금의 그녀로서는 모른다. 일기장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러니 그냥 태어나서부터 북방에서 쭉 살았겠거니 하는 그 정도의 일.

“미테리엔 영애는 레오폴트 전하와 혼인할 생각이 있긴 있으신가요?”

아케밀라는 그게 이상했다.

분명히 서로 별 관심이 없다고 해놓고, 그리고 얼굴이 그렇게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데도 둘 사이에서는 별다른 감정의 기류가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돈이라는 휘황찬란한 장막 속에서 자라온 아케밀라는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았다. 아스트리드와 레오폴트 사이에 약혼 관계라는 게 전혀 보이질 않았고, 둘 사이에는 연인이라고 볼 만한 그런 기류가 조금도 없었다.

정말 약혼한 게 맞는 걸까.

아니라면…

아케밀라에게 강렬한 촉이 찾아왔다.

유레이드 상단을 더욱더 거대하게,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이 되면서 오히려 축소된 상단의 영향력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 수 있는 자리.

그러고도 남음이 있는, 힘이 있는 자리.

돈밖에 없는, 평민이라는 한계를 당당하게 벗어던질 수 있는 자리.

황태자비.

그리고 나아가, 황후.

그렇게만 된다면, 유레이드 상단을 더욱 거대하고도 찬란하게, 대륙 전체에 힘을 뻗칠 수 있는 그런 상단으로 자라날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레오폴트 공략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스트리드가 방해를 하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감정도 딱히 없고, 황태자비 후보로 입후보한다고 해도 선선히 그러라고 할 정도면 그냥 놔둬도 되는 일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간섭을 하니까.

“…없어요.”

아스트리드의 새하얀 얼굴에 화톳불의 불길이 비쳐서 어른거렸다.

특이한 민트색의 눈동자가 그 화톳불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그 눈동자 안에서도 화톳불이 비쳐서 넘실거렸다.

“그러면ㅡ”

“없어도.”

아스트리드의 말이, 아케밀라의 말허리를 싹둑 잘라버렸다.

없어도, 로 끝난 그 말이 어떻게 이어질지가 궁금해서 아케밀라는 잠자코 기다렸다.

“없어도, 내줘도 제가 내주는 건 괜찮지만 뺏기는 건 싫습니다.”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 되묻는 아케밀라를, 이번에는 아스트리드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그녀의 시선이 아케밀라를 직시하고 있다.

“황태자비, 노려도 좋다고 한 건. 뺏을 수 있다면 뺏어보라는 의미입니다. 내주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아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재주껏 뺏어보세요. 저는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아스트리드는 자기가 말해놓고는 자기가 당황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오히려 잘되라고 붙여줘도 모자랄 판인데…?’

…하지만, 적어도 괜찮은 사람이었을 때 얘기잖아. 얘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고.

딱 봐도 레오폴트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는 거니까.

‘음음. 나는 정당한 거야.’

아스트리드는 속으로 합리화를 마쳤다.

그렇게 아스트리드가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는 동안, 아케밀라는 입을 꾹 다물고 아스트리드를 쏘아보고 있었다.

‘이 하얀 암캐 같은 년이…’

입술을 깨물어서 찌릿한 통증이 퍼지고, 아케밀라의 가슴 속에서 아스트리드를 향한 증오의 씨앗이, 마침내 싹을 틔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암캐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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