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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40화 (40/62)

40화. 샴페인과 감귤 소스는 같이 먹으면 안돼요 (2)

확실히 변했다.

누님은 변했다.

아슈레이는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빠져들었다.

‘누님이 고기를 넘겨준다고?’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샐러드를 가져가고 대신 스테이크를 넘겨주던 아스트리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슈레이 몫의 고기를 더 뺏어가면 뺏어갔지 절대 넘겨줄 위인이 아니다. 적어도 아슈레이가 기억하는 아스트리드는 그랬다.

게다가 저녁 먹고 가지 않겠냐는 권유를 한다? 볼일 다 봤으면 썩 꺼지라고 했을 아스트리드다.

‘이상해… 아무리 기억이 일부 없어졌다고는 해도 이건 아예 사람이 바뀐 수준인데.’

어쩌면 저 모습이 누님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아슈레이는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아스트리드가 20살, 아슈레이가 19살. 아슈레이가 미테리엔 대공가로 입적한 것이 5살이었고 아스트리드가 6살이었지만 그때도 누님은 그랬다.

아슈레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 누나라고 안 부르면 어떠냐며 야! 아스트리드! 하고 불렀을 때 그날 벌어졌던 참상을 아슈레이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능에 새겨진 공포가 오늘날까지, 지금 이 순간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아스트리드가 그런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뭐지? 대체 뭔지 모르겠네.’

기억이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슈레이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딱히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나서 한 달, 죽은 듯이 잠만 자다가 깨어난 아스트리드는 처음에 아슈레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인 볼프강마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었다. 첫마디가 누구세요, 였으니까. 그래서 알게 된 사실, 기억상실.

그 뒤로부터 집안에서는 아스트리드가 변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일절 금지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원래 내심 다정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대하기로 모두가 입을 맞추었었다.

적어도 예전의 그 설원의 표범 아스트리드보다는 지금의 아스트리드가 훨씬 낫다는 점에서 미테리엔 대공가 사람들은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

‘...변하나?’

레오폴트는 눈앞에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아스트리드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샴페인 석 잔. 그것도 노멀 글라스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잔이었다.

게다가 식전주를 겸하는 샴페인인 만큼 술도 딱히 세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아스트리드와 함께 박자를 맞춰서 마신 레오폴트는 취기는커녕 이제 식욕이 돋궈지고 있는 그런 찰나다.

그런데 아스트리드의 얼굴에는 온통 붉은 홍조가 피어올라, 처음 이 소연회실에 들어올 때의 불그스름한 색조 화장 대신 아예 능소화처럼 붉고도 붉게 달아올랐다.

모르긴 해도 그녀의 뺨에 손을 대보면 후끈후끈 열이 올라 있을 것이다.

한번 손을 대보고 싶다는 욕망을, 레오폴트는 간신히 눌러 참았다.

“아스트리드.”

“녜헤?”

앞에 있는 잼을 숟가락으로 퍼먹던 아스트리드가 고개를 들어 레오폴트를 바라보았다.

“…그건 잼이다. 수프가 아니야.”

“아. 어쩐지 수프가 새큰새큰했지여어오…”

헤실헤실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

그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스트리드는 레오폴트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웃음.

미소.

저 밝은 미소.

10년 이래로 처음 보는 것 같은,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능소화 같은 웃음.

레오폴트는 그 모습에,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환하게, 정말 티 없이 웃는 얼굴.

제국에서도 그 미모로 제일간다는 아스트리드지만, 그 타고난 흉포함과 날카로움으로 인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아스트리드의 미모가 지금 이 순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늘 연한 잿빛이었던 입술은 립스틱을 발라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르고, 새하얗던 피부는 화장인지 술기운인지 붉게 확 피어올랐다.

눈가가 가득 휘어지도록, 초승달처럼 가득 휘어질 정도로 떠오른 미소가 입술에도 피어났다.

만개한 입술 사이로 새하얀 치아가 부끄럽게 머리를 내밀고, 그 사이로 따스한 숨결이 새액새액 소리 내며 흘러나왔다.

“이보셔요오오, 잘생긴 왕자니이임. 부르셨쓰면, 말을 하셔야죠오오…”

“괘, 괜찮나, 아스트리드.”

“괜찮져어… 당연히 괜찮져… 이정도로오, 술이 취하지느으은, 않는데에.”

아니, 아무리 봐도 괜찮지 않았다. 에피타이저였던 카나페가 아까 나왔고, 이제 메인 디시인 거위 요리가 나왔다.

레오폴트는 거의 다 먹었지만, 아스트리드는 아직 대부분이 남아있는 상태.

“야, 레오폴트…!”

‘…야?’

“너, 너… 왜 자꾸. 어?”

아스트리드가 노려보는 곳은 레오폴트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레오폴트의 앞에 놓인 접시였다.

“너 왜 자꾸 샐러드는 안 먹냐, 응? 너 자꾸 그럴래? 아까 누나가… 어? 아닌… 가? 맞… 나?”

포크를 들고 뭔가를 한참 중얼거리던 아스트리드.

그녀는 마침내 포크를 들고서 레오폴트의 접시 위에 거의 그대로 남아있던 샐러드를 거둬들여 자기 접시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스트리드, 너 지금 뭘 하는…?”

“누나한테 아스트리드라니, 누나라고 안 해…?!”

“자, 잠깐. 아스트리드, 생일은 내가 더 빠르니 엄밀히 따지면 누나가 아닌…”

“시끄러워 임뫄아아!”

그렇게 샐러드를 자기 접시로 몽땅 옮긴 아스트리드. 그리고서 그녀는 자기 접시에 있던 거위 요리를 듬뿍듬뿍 들어내서 레오폴트의 접시로 옮겨주었다.

“누나가아아아아… 몇 번이나 말했잖으아아… 샐러드으, 꼬오오옥… 먹으라고오오… 그래야 건강, 해진다고오…”

말을 할수록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말이 끝났는지 아스트리드는 포크를 든 채로 선잠이라도 든 듯,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도 눈은 감겨있었다.

“후우…”

식기를 내려놓은 레오폴트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뭔가 화가 난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 아스트리드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

그러니까 말하자면 좀 걱정된다는 것에 가까운 그런 기분이었다.

“저, 전하.”

“아무 문제 없다. 물러들 가라. 내 약혼녀를 누구의 손에 맡기겠느냐?”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아스트리드를 이대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이 황궁에서 하룻밤 재우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미테리엔 대공 자택으로 가서, 미테리엔 영애께서는 황궁에서 하루 주무시게 한 뒤 무사히 귀가하시도록 하겠다고 전하라.”

“예, 전하!”

이렇게 늦게까지 아스트리드가 귀가하지 않으면 또 그녀가 누군가를 두들겨 패기라도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할 것이 분명하기에 레오폴트는 서둘러 전령을 보냈고, 경장 차림의 근위대원 하나가 깊이 목례하고서 연회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이제…”

객궁으로 데려가야 할 텐데.

시종들을 시키거나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엄연히 황태자의 약혼녀이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미테리엔 대공가 영애인 아스트리드다.

그 몸에 손댈 수 있는 시종이 있을 리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의 어깨를 짚고 흔들었다.

“아스트리드, 일어나라. 정신 차려.”

“우으으응… 아슈레이… 5분만…”

‘아슈레이…?’

순간 레오폴트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듣건대 남자 이름이다. 왜 이 자리에서 남자의 이름이 나오는가.

‘아. 아스트리드의 동생 이름이 아슈레이였지.’

그제서야 레오폴트의 미간이 다시 펴졌다.

“아스트리드, 나다. 레오폴트다. 어서 일어나도록 해라.”

“우흐흣… 황태자 전흐아아…?”

푹 숙이고 있던 아스트리드가 고개를 휙 들어 레오폴트를 올려다보았다.

샐쭉하니 가늘게, 그리고 초승달 같은 눈웃음이 그녀의 눈가에 가득 걸려 있어, 레오폴트는 그 미소를 차마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끼야으응…”

아스트리드가 팔을 뻗었다.

그 바람에 연파란색 드레스 소매가 말려 올라가며 새하얀 손목과 팔이 드러났다.

스르륵 다가온 그 새하얀 팔이 레오폴트의 목을 감았다.

“후후후…”

그녀의 팔이 끌어당기는 대로 레오폴트가 몸을 숙이고, 어느새 귓가에 아스트리드의 뜨거운 숨결이 와닿았다.

“…진정해라.”

술이 많이 취했다.

레오폴트는 조금씩 더워지는 얼굴을 숨기려 아스트리드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객궁은 준비가 되었나?”

“예, 전하.”

“안내하라.”

소리 없이 앞서 걷는 시종의 뒤를 따라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

“이 방이옵니다.”

“그래, 물러가라.”

“침구는 두 벌 준비해두었나이다.”

그 말에 묻어나는 의미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대로 시종이 깊게 절을 한 후 물러가고, 레오폴트는 방 안으로 들어가 아스트리드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깊이 잠든 듯, 새근새근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스트리드.

그 모습을 잠시간 내려다보던 레오폴트는 손을 뻗어 아스트리드의 이마에 늘어뜨려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부드럽고도 부드러운 살결이 손가락 끝에 스쳐 갔다.

그 손길이 간지러운지 아스트리드도 으응, 하며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흐이… 으…”

“목이라도 마른가.”

물이 준비되어 있나 싶어 주위를 돌아보면 침대 머리맡에 포트와 컵이 놓여있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목이 마르게 마련이라,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에게 물을 먹여주고자 침대 옆에서 일어서서 머리맡으로 손을 뻗었다.

“힝그윽.”

“엇…?!”

그렇게 몸을 뻗고 있던 레오폴드의 목을, 아스트리드의 팔이 뻗어오는가 싶더니 그대로 감싸 안고 끌어당겼다.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에게 안긴 채 침대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스트리드를 깔아뭉개기 직전 간신히 팔로 지탱하긴 했으나, 오히려 그 자세가 더 미묘해졌다.

잠든 채 누워있는 아스트리드와 그 위를 덮친 격이 되어버린 레오폴트.

어떻게든 벗어나려 해도, 레오폴트의 힘으로는 아스트리드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다.

레오폴트의 목을 끌어안은 채 누워있던 아스트리드의 눈꺼풀이 잠깐 파들파들 떨리더니 이내 천천히 눈이 떠졌다.

“자꾸 바꿔 달라고 땍땍거려 봐야… 안바꿔줄거야…! 내가… 왜 너희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술 마시면 귀여워지는 타입

Arm Cut 天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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