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46화 (46/62)

46화. 의심과 연심 (4)

「아버님, 휴가가 한 달이라 하지만 왕복하는 데에 2주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번 휴가에는 미테리엔 영지로 가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아슈레이가 와있으니 남매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황립 도서관의 이용 허가를 받았습니다. 영원히 불멸할 아인트하펜 제국을 지키는 최북단의 얼어붙은 방패, 미테리엔 대공가의 자랑스러운 영애로서 지식의 함양을 위해 이 아스트리드는 먼 페르상트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으니, 아버님께서도 부디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편지를 그런 식으로 써요? 가기 귀찮으니 안 간다고 쓰면 될 일을.】

‘…네가 그러니까… 아니, 아니. 됐다 됐어.’

【뭐죠?】

‘아냐, 아무것도.’

아스트리드는 곱게 쓴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봉인 씰을 접은 봉투 머리에 붙이고, 미리 달궈놓은 인장으로 꾹 눌러 미테리엔 대공가의 문장을 찍어 넣었다.

“아슈레이, 이걸 아버님께 보내드리렴.”

“거 뭐 안 가면 안 오는구나 하실 텐데 뭘 편지까지 보내십니까?”

“왜 자꾸 말대답을 할까? 한 살 차이라고 점점 기어오르는 거니?”

짐짓 노려보는 아스트리드에게 아슈레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슈레이가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한들 아스트리드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완력도 그렇고 무력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아슈레이가 아스트리드보다 강하다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알았다구요, 누님. 뭘 그리 노려보고 그러십니까.”

“노려보긴 무얼. 그냥 쳐다보기만 한 건데.”

아스트리드는 그녀 자신의 쏘아보는 시선이 어떤 이미지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아슈레이는 조금 전까지 그녀가 노려보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시선이었다.

아슈레이가 오기도 전에 이미 북방에 있었던 아스트리드다. 갓 걸음마를 시작하던 무렵에 별의 가호를 그것도 두 개나 받았고, 그 덕분에 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병영에서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던가.

아스트리드를 낳은 직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에 유모가 돌봐주기는 했지만 별의 가호를 받은 그 이후부터는 볼프강이 아스트리드를 데리고 전장을 누볐다. 그 시기부터 벌써 제 몸집보다 큰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서 전장을 돌아다녔다는 믿을 수 없는 일화를 가진 아스트리드.

그 시선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달리 없을 것이다.

“내일도 도서관 가실 겁니까?”

“가야지.”

“뭘 그렇게 열심히 찾으십니까?”

“…그런 게 있어. 찾는 것도 있고 하니까.”

“뭐, 제가 도움이 될만한 게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문득 생각했다. 이 몸에 깃들어 있는 아스트리드에게도 이미 물어봤지만 그녀는 잘 모른다고 했던 것인데, 바로 야만족의 주술에 관련된 일이었다.

특정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주술이 있을까.

레오폴트에게 말하려고 했을 때, 아스트리드는 사실 아스트리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다른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었어도 그것만, 딱 그거 하나만 말을 하려고 하면 목이 콱 잠기면서 아무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뿐이랴, 글로 써보려고 해도 써지지 않았다. 딱 그 사실만, 그 부분만 기술하려 할 때면 손가락이 제 말을 듣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쓰려고 힘을 주다가 팔힘이 엇나가는 바람에 책상을 하나 반으로 뽀갠 후에야 안되겠다고 포기했었다.

“아슈레이.”

“예?”

“너도 북방 야만족의 주술이라는 거, 대충 알고 있지?”

“뭐, 대충은 알지요. 계속 싸운 게 그것들이니까 말이죠.”

“음… 그러면, 뭔가… 말이라던가 행동에,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해?’

【잠깐 바꿔봐요.】

‘뭘 하려고?’

【이상한 짓 안 할 테니까. 잠깐 바꿔요.】

몸에 힘을 빼면 스르륵, 시야가 바뀐다.

아스트리드는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다리를 꼬아 앉았다. 드레스 자락이 다리 사이로 말려들어 가 구겨지건 말건 그녀는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미간 사이를 찡그리고서 아스트리드가 관자놀이를 쓱쓱 긁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 때마다 하는 그녀의 습관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아슈레이.”

“예, 누님.”

“대답 빨리 안 할래?”

“죄송합니다.”

“너, 예전에 바이칸테라 협곡에서. 그 제단 말이야.”

“바이칸테라라면 그…”

갈라티콘 쌍둥이 산 사이의 길고 좁은 협곡, 바이칸테라. 미테리엔 대공가 사병 스무 명이 갈라테지아 부족의 술수에 빠져 고립되었을 때의 일이다.

“누님이랑 저, 그리고 열… 열 몇 명 고립됐을 때 그때 말입니까?”

“그래, 그때. 기억나지? 기억나야 할 텐데.”

“기… 어, 네. 기억나죠. 당연히 기억납니다.”

싸늘하게 노려보는 아스트리드의 시선은 좀 전보다 더욱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관자놀이를 긁적이던 손가락은 이내 책상 위를 가볍게 긁고 있었다.

“그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외침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목이 잠겼던 거, 그런 일이 있었잖아. 기억나지?”

“아, 맞습니다. 그랬죠.”

“그거, 그 종족 이름이 뭐였지? 갈라… 갈라… 갈릭?”

“갈라테지아였나 그럴 겁니다.”

“그래… 그 주술사 좀 잡아와.”

주술사를 잡아 와라. 단순한 지시였다.

【오, 대단한데?】

확실히 싸움에 관한 면에서는 진짜 아스트리드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이었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슈레이를 순식간에 압도하는 기백 하며, 전투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기억력, 그리고 냉정하게 본질을 파악하는 판단력과 그에 따른 해결책 제시까지.

“못 잡아 오죠, 누님.”

“뭐?”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무는 아슈레이를 향해 아스트리드가 다시금 찌릿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아슈레이가 대답했다.

“이 건방진 새끼 때문에 시집도 못 가고 뒈질 뻔했다고 머리통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갈라버리신 게 누님이잖습니까.”

“걔가 걔였어?”

다만 그 해결책이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

어느덧 휴가도 2주 가까이 지났다.

매일같이 오전에는 도서관에 가고 오후에는 아슈레이와 가볍게 몸풀기 대련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는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패턴.

【아카데미 때랑 뭐 별로 다른 게 없네요.】

‘그러게. 뭐 딱히 휴가라고 할 만한 게 없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북방으로 돌아갈 걸 그랬다.

도서관에 있는 소환마법서적이나 공간마법서적도 대부분 훑어봤다.

하지만 정작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었다.

대부분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내용들이라서, 이제는 서문만 훑어봐도 이 책에 있는 내용이 대략 어떤 것들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라.”

3층을 담당하고 있던 사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여기…”

“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사서라고만 여겼고, 매일같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있었던 사서였기에 뭐 딱히 이름을 물어봐야 하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못 했었는데, 오늘 도서관에 와보니 사서가 바뀌어 있었다.

“여기, 원래 계시던 사서 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히려 그녀에게 되물어왔다.

“아, 그분은 어제 퇴직하셨어요.”

“갑자기요?”

갈색머리의 그 사서가 그만뒀다는 말에, 아스트리드는 조금이지만 당황했다. 원래 이런 사서는 하루 만에 그만두고 그러나? 보통 며칠은 여유를 두지 않나?

그보다도 제법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언질도 없이 그만둬버릴 줄은 몰랐다.

‘인사도 못 했는데.’

【뭐 사서들은 어차피 인적 기록이 남으니까, 나중에 알아내서 감사 편지라도 보내면 될 일이에요.】

‘그렇겠지?’

대수로운 일은 아닐 터였다. 아스트리드는 가져온 책을 사서에게 반납하고 다른 책을 찾기 위해 서가 사이를 돌아다녔다.

소환 마법, 공간 마법.

이 둘을 키워드로 하는 서가는 이미 다 뒤져봤다. 더 이상 찾아볼 책이 없을 정도다. 다른 마법들에 비해서 관련된 자료가 워낙 적기도 했고, 게다가 깊은 내용을 다루는 것도 아니었기에 2주라는 시간 동안 훑어본 것으로도 충분했다.

‘주술에 관련된 자료가 있을까.’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귀신같이 도서관만 들어오면 잠들어버리는 아스트리드.

그렇게 돌아다니던 중, 황실의 문장이 찍힌 철문이 하나 있었다. 그리 큰 크기의 철문은 아니었지만 정중앙에 박힌 황실 인장은 이 문이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 문이었다.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소환 마법과 공간 마법 서가만 봐서 모른 듯했다. 실제로도 거리상 좀 떨어져 있기도 했고.

“저기, 사서님.”

“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사서를 불러세워 철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열람실은 뭔가요?”

“아, 저기는. 제한공개 서적들이 비치된 곳이에요.”

“저길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서는 아스트리드를 보면서 방긋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 상큼한 미소여서, 아스트리드는 무심결에 예쁘다고 생각했다.

“저곳은 허가를 얻을 수도 없는 곳이에요. 저길 들어가시려면 황실의 일원이어야만 하거든요.”

“황실의 일원…?”

황실의 일원.

“하지만 뭐, 미테리엔 영애시라면 곧 가능하시지 않을까요?”

“네?”

사서는 만면 가득 미소를 띤 채, 조금도 망설임 없이 말했다.

“곧 황태자비가 되실 텐데, 그러면 황실의 일원이시니까 이용이 가능하시게 되겠지요.”

느낌상 저곳에 뭔가 실마리가 될 법한 게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걸 잡으려면 황실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황태자비가 되어야 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과 황태자비가 되는 것, 순서를 바꾸는 게 낫지 않겠어요?】

‘돌겠네, 진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이 기대하신 "어린이날에 어린이 만드는 외전" 은 없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