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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49화 (49/62)

49화. 야시장 (1)

뭔가 부서지고 쪼개지는 소리에 응접실로 온 아슈레이는, 바로 눈앞에서 문이 열리는 통에 잠시 물러섰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스트리드의 손님. 아… 아 뭐였는데. 이름이 어려워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벌꿀 색 머리를 보면 그 손님이 맞았다.

배웅을 나가야 예의에 맞을 터라 서둘러 쫓아가 봐도 뭔가 귀신이라도 본 듯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저택을 나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바라보다가 아슈레이는 응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아름드리나무를 통째로 잘라내어 두께만 좀 다듬어서 꾸며놓은 응접실 테이블이 반으로 쪼개져서 나뒹굴고 있고, 아스트리드가 앉아있는 발치의 대리석에는 커다랗게 금이 가 있었다.

“거, 이리들 좀 와라.”

어쨌든 치워야 할 것이기에 사용인들을 불렀다. 두꺼운 테이블은 아슈레이조차 혼자서는 들기 버거운 무게일터라, 사용인들도 대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온 끝에 간신히 들어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스트리드는 특유의 냉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게 다 뭐랍니까?”

“낸들 아니.”

“누님이 모르면 누가 안다고…”

“사실은 내가 그랬어.”

“…그거야 그렇겠지만요.”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게 아스트리드가 아니면 또 누가 있다고. 아슈레이는 새삼 제 누이의 완력에 혀를 내둘렀다. 정신 나간 거 아닌가 싶은 정도의 힘이다. 저 두꺼운 테이블을 쪼개놓지 않나, 앉은 자세에서 대리석을 반파시키질 않나.

‘그때는 살살 때렸다는 게 사실이긴 하군.’

겨우 세 살 차이인데 무슨 누나냐, 야, 아스트리드! 하고 불렀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서 아슈레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가만 보면 지금 아스트리드는 심각하게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아슈레이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북방에서 함께 싸워오지 않았는가. 바로 옆에서 항상 누이를 지켜봐 왔기에 알 수 있는 아스트리드의 아주 작고 작은 표정.

제 맘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나오는, 아주 조금 부풀린 뺨이 그 증거이기도 했다.

“…거, 누님. 저 듣자 하니까 오늘 밤에 요 앞 광장에서 야시장이 열린다던데, 거기나 가보시렵니까?”

“관심 없어.”

오늘 아침에 정원 귀퉁이에서 같이 노닥거리던 사용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한 달에 한 번, 황도 12궁의 별 기운이 강해지는 날에 열리는 야시장. 그게 바로 오늘이라고 했다.

“누님, 오늘 열리는 야시장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야시장이라고 합디다. 누님 아카데미 돌아가시면 언제 또 보겠습니까? 기분 전환도 할 겸 같이 다녀오시죠. 맛있는 것도 좀 먹고요.”

‘어떻게 할까?’

혹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고, 진짜 아스트리드의 감정에 휩쓸리는 바람에 아스트리드 본인의 기분도 영 언짢았다. 아케밀라가 괜스레 긁어놓은 심기가 못내 불편했다.

【뭐, 하루쯤은 괜찮지 않겠어요?】

“…몇 시에 열리는데?”

아슈레이는 히죽 웃었다. 옛날부터 누이는 이런 거 좋아했으니까. 우호적인 야만족, 아카누트 족이 열었던 향토 축제에서도 제 누이는 보기 드물게 활짝 웃으며 즐겁게 어울려 놀았었으니까.

“이제 곧 해가 지니까, 한 두어 시간 뒤면 시작하지 싶네요. 이야, 이거 마침 타이밍도 딱 아닙니까? 우리 누님, 치장하실 시간이 충분하네요. 아닌가? 이미 어여쁘시니까 치장 따위 안 해도 될라나요?”

“말은 잘하는구나, 정말.”

그러면서도 아스트리드는 딱히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살짝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그 증거이기도 했다.

“여기야?”

“마차 주차장으로 가야 하니 조금만 더 타고 계십쇼, 누님. 뛰어내리시면 안 됩니다.”

“넌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니.”

불퉁하게 대답하고서 아스트리드는 마차 창을 내다보았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대공 자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관대작의 주택지를 벗어나서 중상급 계층의 거주지로 들어가는 초입, 아인트하펜 기념 광장은 이미 온갖 좌판들이 들어서서 장사를 시작하는 참이었다.

보통은 이런 소란스러운 행사는 이런 광장에서 진행하도록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각 달에 한 번 있는 별 기운이 강해지는 날 열리는 야시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에도 별자리는 있다.

태양과 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자리 잡은 12개의 별자리.

이 별자리를 일컬어 황도 12궁이라고 하였는데, 그 12궁에 따라 달력 역시도 12개월로 나누어졌다.

매 개월마다 그에 맞는 별자리도 가지게 되는데 이번 달은 쌍아궁(Gemini).

카스토르와 폴룩스라는 쌍둥이 자매의 신화가 엮인 달이기도 했다.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르단 말이지.’

황도 12궁이라. 아스트리드는 원래 세계에서도 그런 이름이었었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아마 있었던 거 같고, 별자리 이름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면 천문도 거의 다르지 않다는 얘기일까.

하지만 천문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분야이니 뭐가 다른지, 뭐가 비슷한지 그런 것들도 알 수가 없었다.

“들어보니까, 여름과 겨울에는 여기 말고 저 아래쪽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엄청 큰 규모의 축제가 열린다고 합디다.”

“그러니?”

그냥 멍하니, 잡생각을 하며 밖을 내다보고 있는 아스트리드에게 아슈레이가 말을 걸었다. 아슈레이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야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좀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스트리드 역시 그런 것 같아서 아슈레이는 어쩐지 변명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다가오는 여름을 준비하는 봄의 야시장이라 규모가 이리 작다고 하고, 봄이랑 가을만 이렇다고 하니 다음 달이나 다다음달에는 아마 엄청 크게 열릴 겁니다, 누님.”

“그래. 근데 넌 왜 그렇게 긴장을 하니?”

아슈레이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생각보다 야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누님이 실망했을까 봐 그렇다고 아슈레이는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뭐 괜찮네. 이만하면 나름 즐길것도 많은 거 같고.”

“그, 그래요? 다행입니다, 그거.”

아슈레이는 어쩐지 안심하는 것 같았다.

*

“곧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못 본다고 하니 나오긴 했다만… 봄이라서 그런지 규모는 작군.”

“그러합니다, 전하. 하지만 복귀 전에 눈요기라도 하신다 생각하시지요.”

“그래.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괘념치 마라.”

“황송합니다.”

시종장은 곁눈질로 슬쩍 레오폴트를 올려다보았다. 검은색의 가발을 써서 그 금발을 가렸다고는 하나, 레오폴트의 외모는 지나가는 여성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게다가 옆에 선 시종장 때문에 그 신분마저도 높디높은 인물이라는 게 티가 나서 주위 사람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어쨌든 권해줘서 고맙군. 그러잖아도 심경이 복잡하던 참이다.”

그럴 일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밤만 되면 아스트리드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공연히 그녀와 나란히 누워서 잤던 객궁의 침실에 가서 잠을 청해보기도 하였으나 그것도 효과가 없이 오히려 아스트리드의 그 달뜬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황태자비로서는 그릇이 많이 부족하지…’

이성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녀의 외모는 천고의 절색이다. 그건 레오폴트도 인정하는 바였다. 고고하며 도도하고 표표하여 그 미모가 비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타고난 흉포함과 잔인함, 그리고 타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그 냉혹무비한 언사는 황태자비로서 과연 그녀가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 본인조차 모르는 감정을 제가 알 리 없지요. 무릇 사내란 본인의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에 따라 행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네 감정조차 네가 모르느냐는 호된 질책.

욱하는 심정에 다시 찾아오지 마라, 아카데미에 돌아올 때까지는 다시 만나지 말자는 뜻을 남기고 돌아서긴 했으나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도 정작 괴로운 건 레오폴트였다.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것이 그녀의 달큰한 목소리.

귀를 막으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이 그녀의 발갛게 달아오른 미소.

그러니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모습을 알고 있던 시종장이 권해서 나온 것이 이 야시장이었는데, 아카데미에 돌아가기 전에 기분을 전환하기로는 그래도 이만한 게 없었구나 싶었다.

“전하.”

“그래.”

잠시 눈을 감고서 야시장의 혼잡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레오폴트에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어찌 부르느냐.”

하지만 시종장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제서야 레오폴트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옆머리를 땋아 뒤로 감아 돌린 은빛 머리카락.

청명한 빛을 담고서 그를 직시하는 민트색의 눈동자.

갸름하고 선이 고운 얼굴선과, 도톰하니 매력적인 양 볼.

옅은 붉은빛이 감도는 조그만 입술.

아스트리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사실 형제입니다ㅋㅋ

니켄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오늘 저녁 7시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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