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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55화 (55/62)

55화. 저 암캐년이 (1)

“좋아! 그럼 아스티도 참석하는 걸로 하고!”

“싫다고 했잖아요! 사람 말을 좀 들어!”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스트리드에게, 에라냐는 조금 전까지 싱글벙글 웃고 있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왜, 왜 그러는데요, 갑자기.”

표정이 확 변하니까 그 자체로도 뭔가, 아스트리드는 자기가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녀가 잘못한 건 없지 않나 싶지만, 저렇게 비 맞은 강아지처럼 풀이 팍 죽어있는 에라냐를 보니까 어쩐지 측은해졌다.

에라냐는 그런 아스트리드를 향해 풀죽은 모습 그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티, 생각해봐. 우리 이제 1학년이 되면 다 같이 모일 기회가 좀처럼 없을걸?”

“윽.”

그건 또 맞는 말이었다. 아까 에라냐에게서 듣기로도 1학년이 되어 정식 생도가 되면 숙소가 달라진다고 했었다. 그러면 아스테인도 그렇고, 레… 레오폴트하고도 숙소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바로 맞은편 방이라서 문만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추억도 만들 겸 자리 마련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

“아, 아니… 그게…”

【당신도 밀어붙이는 사람에겐 약한가 보군요.】

‘그, 그런 게 아냐!’

【변명 안 해도 되는데.】

“그럼 아스티, 허락한 거다!? 오늘 밤에 우리 방에서 할 거야!”

별수 없이 아스트리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술, 정 못 마시겠으면 얘기해요. 전 술이 아주 세거든요.】

‘안마실 거거든?!’

방 밖으로 나온 에라냐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맞은편 방이었다.

노크를 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아스테인의 목소리가 들려와, 에라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스테이이이인! 이제 좀 적응했어?”

“아이고, 에라냐 생도는 여전하네요.”

아스테인이 침대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있다가 에라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스테인도 복귀한지 이제 하루가 된 참이었다. 푹 쉬고 놀다가 한 달 만에 온 아카데미에서 이제야 적응이 되는 참이기도 했고.

“레오폴트는 아직 안 왔어?”

“네, 뭐 곧 오지 않겠어요? 분대장님은 오신 거 같더니. 같이 오실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네요.”

“그런가봐. 아무튼 어제 얘기한 건데, 아스티도 허락했거든?”

“그래요?”

아스테인은 의외였다. 아스트리드 분대장이 그런 걸 허락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스트리드의 성격상 밀어붙이면 거절 못할 거고 그 밀어붙이는 걸 워낙에 잘하는 게 또 에라냐였으니 가능성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그럼 오늘 저녁에 하는 거예요?”

“응. 레오폴트 오면 얘기 좀 전해줘. 알았지? 난 베라시엔 부르러 갈 테니까!”

“그래요. 그럼 이따 봐요.”

“응!”

에라냐가 손을 흔들기 무섭게 쌩하니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여전히 기운찬 거 보면 숲의 자식이 맞긴 하는가 싶어 아스테인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디 보자… 베라시엔은…”

아스테인이 조용히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 베라시엔.

- 응.

머릿속으로 베라시엔을 부르고, 베라시엔 역시도 그에 응답했다. 서로 가까이 있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끼리 통신하는 마법. 인간계에서는 매개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통신 마법이었지만 지금 아스테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고 있었다.

- 지금 에라냐가 네 방으로 갈 거다. 지금 방에 있지?

- 응. 레오폴트는 좀 전에 교관실에 들렀어. 곧 올라갈 거야.

- 알았어. 레오폴트가 온 것 같군. 이만 끊겠어.

- 그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이고, 레오폴트 생도. 들어오라는 말도 안 했는데 벌컥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방 안으로 들어서는 이가 바로 금발의 화려한 귀공자, 레오폴트였다. 레오폴트는 비교적 가벼운 짐가방만을 들고 있었다.

“여기는 내 방도 되니 그러지. 잘 지냈나, 아스테인?”

짐가방을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레오폴트가 아스테인에게 묻자, 아스테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에라냐 생도가 왔었습니다.”

“음? 무슨 일로.”

짐가방을 열어 침대 위에 가져온 짐들을 풀기 시작하는 레오폴트. 그런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아스테인은 에라냐의 용건을 말하자, 레오폴트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배움의 장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술자리라니. 안될 말이지. 안돼. 불참은 물론이고 허가할 수도 없어.”

“분대장은 아스트리드 생도입니다만. 아스트리드 생도는 허가한 모양이던데요?”

“윽.”

아직 황실에 있었던 습관이 남은 모양이었다. 여기서는 레오폴트도 그냥 생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딱히 허가하고 말고 할 권한이 없고 아스트리드가 허락했다면 그에 반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레오폴트 생도가 참석을 안 하면 저 혼자 남자라고요. 그렇게 두실 겁니까?”

레오폴트는 그런 아스테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혼자 남자라고 했다. 실제로 이 분대에는 레오폴트와 아스테인을 제외하면 남자가 없으니 아스테인의 말마따나 레오폴트가 불참하면 남자라고는 아스테인 혼자였다.

아마, 예전의 레오폴트였다면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긴 있었고, 아스트리드가 레오폴트를 볼 때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듯이 레오폴트도 아스트리드를 볼 때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상황이 달랐다.

아스트리드와 함께했던 저녁 식사와 그 저녁 식사에서 가볍게 마신 술에 취해버린 아스트리드. 그리고 그런 아스트리드를 재우려다가 일어난 대참사와 그 대참사의 끝에 아스트리드의 잠든 얼굴을 코앞에서 보게 되었던 일.

그때의 레오폴트는 분명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복귀 직전에 갔었던 야시장의 일도 그랬다. 착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점괘를 들으며 레오폴트는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레오폴트는 아스트리드를 볼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랬는데, 자기가 막을 수 없는 저 술자리에 유일하게 참석하는 남자가 아스테인이라니. 게다가 아스테인도 아스트리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아스트리드가 술이라도 마시는 날에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 나도 참석하지.”

“오,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기셨군요. 어쩐 일입니까?”

“몰라도 된다.”

약간은 퉁명스러운 레오폴트의 말에도, 아스테인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몇 시에 하나?”

창문 밖에는 이제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밤이 다 되어서 어스름이 잔뜩 내려앉았지만, 아직 초저녁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시간이지 밤은 아니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하지 싶은데요.”

“그렇군.”

“됐어! 베라시엔도 온대! 바이올렛도 온다고 그랬어!”

“그래요?”

아스트리드는 좀 뚱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게, 바이올렛이 굳이 온다고 하니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어쨌든 지금은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바이올렛이 왜 오는지 아스트리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분대 단위 회식이라고 했는데 거기 끼는 것도 이상하고, 눈치 없이 낀다는 것도 이상하고, 끼겠다고 허락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다 이상해!’

【맞아요! 그 계집애, 시커메 가지고선! 동굴에 들어가면 이빨밖에 안 보일 년이!】

‘…그거 좀 위험한 발언인데…’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지금 와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장소를 만들어야 해.”

“장소요?”

방에서 먹기로 하지 않았나. 이제 와서 장소를 만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스트리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 방에 사람이 여섯 명 어떻게 둘러앉냐구. 침대에 앉고 바닥에 앉고 책상 의자에 앉고 그러면 재미없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회식을 안 하면 몰라도 하면 또 둥그렇게 둘러앉아야 재미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아스티. 힘 좀 쓰자. 응?”

“힘이요?”

여기서 갑자기 힘 얘기는 또 왜 나오는지 아스트리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 침대 들어!”

“예?!”

에라냐가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에라냐의 침대였다. 방 안에는 조금 거리를 두고서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방 안쪽에 있는 게 아스트리드의 침대, 문 쪽에 있는 게 에라냐의 침대였다.

“내 침대를 들어서 네 침대 위로 겹쳐놔.”

“…응?”

아스트리드는 일단 침대를 매트리스 채로 들어 올렸다. 약간 자세가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침대를 비스듬히 세운 뒤 밑바닥을 잡고 들어 올리면 충분히 들리긴 했다.

“네 침대 위에 올려!”

-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침대 두 개가 위아래로 겹쳐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구석으로 쭉 밀어버리면, 이제 침대가 있던 자리는 휑한 공간이 되었다.

“어때, 이만하면 여섯 명이 둘러앉을 만하지?”

“그렇긴 하네요.”

침대가 있던 자리에 있던 먼지를 좀 쓸고 닦아내면 바닥도 깨끗해진다. 넓이도 제법 괜찮았다.

“자… 그러면, 이제 내 차례구만.”

에라냐가 자기 관물대를 열고 구석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관물대라고 해봐야 공간이 뭐 얼마나 된다고 저기서 뭘 꺼내나 싶었는데, 이윽고 에라냐의 손에 들려 나오는 것을 본 아스트리드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거, 다 술이에요?”

“응. 위스키가 3병, 럼이 2병, 과실주가 2병. 일곱 병인데… 음.”

술병을 주르륵 세워놓으면 일곱 병이다. 이 술들을 도대체 저 관물대에 어떻게 숨겨두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 정도면 뭐 한 사람당 한 병씩 하고 좀 남겠다. 모자라면 바이올렛보고 더 가져오라고 하면 되니까.”

“네? 걔도 술을 갖고 있어요?”

“당연한 거 아냐?”

에라냐가 그런 아스트리드에게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애초에 걔랑 나 술 마시다가 친구 된 거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7시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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