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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녀는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62화 (62/62)

62화. 술 취하면 귀여운 편 (4)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아닌가요?”

에밀리에는 그녀와 레오폴트가 앉은 식탁 옆에 서서 씩씩거리고 있는 아스트리드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 어째 나보다 더 앞뒤가 없는…】

‘아, 아니야! 그렇지 않다니까?’

【그럼 말을 해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요?】

다른 여자, 그것도 황태자비에 입후보한 에밀리에와 다정하게 점심을 먹고 있는 레오폴트를 보고 어쩐지 급격하게 화가 나서 달려오기는 했는데 막상 오니까 할 말이 없었다.

황태자비 후보, 하라고 했던 것도 본인이었고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던 것도 본인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약혼자에게 무슨 수작질을 하냐고 말해봐야 본인이 한 말도 못 지키는 팔푼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아스트리드,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바꿔줘.’

【뭐, 뭐라고요? 지금? 네?!】

‘바꾸라고! 빨리!’

지금까지는, 보통 바꾸자고 난리를 치는 쪽은 진짜 아스트리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오히려 먼저 바꿔 달라고 하는 건 반대로 아스트리드. 그녀로서는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애초에 본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레오폴트가 에밀리에와 점심을 같이 먹든 말든 그 정도쯤은 별로 신경 쓸 일도 아닌데 어째서 무턱대고 여기까지 왔는지, 그래 놓고 왜 아무 말도 못 하는지 아스트리드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사고 쳐놓고 뒷수습을 왜 저한테…】

‘그래서 바꿀 거야, 안 바꿀 거야?!’

【알았어요, 바꿔요. 바꿔.】

아스트리드가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여지없이 시야가 바뀌며, 진짜 아스트리드가 레오폴트의 옆자리에 앉는 모습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조르지엔 영애… 아니, 에밀리에 생도.”

“….”

에밀리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또 이런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마나의 교감이 두텁고도 강한 에밀리에는 순간적으로 찾아온 위화감에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

무도회에서 한번, 지금 또 한 번. 아스트리드의 기세가 바뀌면서 찾아드는 강렬한 위화감에 에밀리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아스트리드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에밀리에 생도?”

“…아, 네. 아스트리드 생도. 실례했어요.”

그제서야 대답하는 에밀리에를 잠시 못마땅한 눈으로 쏘아보던 아스트리드가 이번에는 레오폴트를 쳐다보았다.

“레오폴트 생도.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몸짓이 변했다. 살며시 빈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아스트리드의 양손은 곱게 포개진 채 단아하게 놓여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아스트리드 역시 귀족 영애라는 것이 티가 난다.

게다가 이전과는 다르게 에밀리에를 몰아붙이기보다는, 레오폴트에게 설명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전과는 변하기는 했다.

“두 분이서 점심을 드셨다는 것에는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공개된 장소에서 약혼녀가 아닌 타 영애와의 점심 식사는 조심하셔야 할 부분이 아니었을까요, 전하. 하여, 저는 두 분께서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아스트리드의 시선이 에밀리에를 향했다가, 다시 레오폴트를 향했다.

‘뭔가… 변하기는 했군. 좋은 방향으로.’

어찌 되었건 레오폴트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지금 아스트리드는 놀랍게도 논리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었다. 약혼녀라는 입장에서, 레오폴트와 에밀리에의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알고 싶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으니까.

무턱대고 둘이 무슨 수작질을 하냐며 들이닥쳤을 것이 뻔했던 과거에 비해서, 아스트리드는 변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스트리드 생도, 내 병과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지요.”

“마도 기사가 아닙니까. 그, 이쑤시… 실례. 세검과 브레이슬릿을 사용하는.”

뭔가 신경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기는 했으나 레오폴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매직 브레이슬릿의 개발자가 어느 분인지도 아시겠지요?”

“조르지엔 후작님이 아니신가요.”

싸움에 있어서는 아스트리드 역시 지식이 방대했다. 매직 브레이슬릿이 어떤 장비이며 어떤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장비인지, 그 정도는 아스트리드도 잘 알았다.

“맞습니다.”

레오폴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잘 알고 있다면 설명은 쉬워진다.

“그 매직 브레이슬릿의 후계기 개발이 완료되어, 제게 시착 후 소감을 부탁하고자 하신 겁니다. 여기 계신 에밀리에 생도의 부친인 조르지엔 후작님께서 말이지요.”

【매직 브레이슬릿이 뭐야?】

‘있어요, 그런 게. 나중에 공부하세요.’

【네가 공부하라니까 진짜 어색하다…】

‘시끄러워요!’

“어쨌든, 무슨 오해를 하셨는지는 잘 알겠으나… 그런 일은 아닙니다.”

레오폴트는 선선히 대답하며 아스트리드를 향해 살짝 웃었다.

“게다가, 조르지엔 후작께서는 제게 마법과 마도학에 대해서도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고, 제게는 또 하나의 스승님인 셈이라. 에밀리에 생도와는 딱히, 아스트리드 생도가 신경 쓸 정도의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습니다.”

【좋겠네.】

‘좋죠, 당연히.’

【…솔직한 건 장점이네, 그래.】

아스트리드가 보기에도, 그리고 진짜 아스트리드가 보기에도 이 두 사람은 딱히 남녀관계로 이어질 만한 그런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에의 표정은 딱히 변화가 없어서 자기 용건은 다 말했다는 표정이었고, 레오폴트 역시도 남녀 사이에 오고갈 만한 그런 대화를 했다기에는 거리가 먼 표정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죠?’

【음… 뭐, 그런 거 같아. 딱히 우려할 만한 일은 없는 것 같네.】

“아스트리드 생도.”

그즈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아스트리드와 레오폴트를 번갈아 쳐다보던 에밀리에가 갑자기 아스트리드를 불렀다.

눈에서 꿀을 뚝뚝 떨구며 레오폴트를 바라보고 있던 아스트리드의 시선이 급변하며 에밀리에를 향하고, 무슨 일이냐 라고 물어보려던 그와 동시에 에밀리에가 아스트리드에게 물었다.

“아스트리드 생도. 당신은 레오폴트 전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뭐라고요?”

이렇게 되니 정작 당황한 건 아스트리드였다.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저 질문이 왜 지금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두 번째, 보통 이런 질문을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하냐는 의문이 세 번째.

“말 그대로예요. 아스트리드 생도는 레오폴트 생도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입니다.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현 상황에서 두 분의 관계에 대한 근거를 얻어내기 위해 적합한 질문이 아닌가요?”

‘무, 무슨 소리죠, 저게?’

【그냥 네가 레오폴트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인 것 같은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시는군요. 하지만 저는 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에밀리에가 식탁 위에 놓여있던 냅킨을 집어 입가를 꼼꼼히 닦았다. 남부식 볶음국수의 소스가 입가에 살짝 묻어나고, 에밀리에는 다시 냅킨을 접어 식탁 위로 내려놓았다.

“저는 황태자비가 될 겁니다.”

【적이다!】

‘적이네요!’

“저는 황태자비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음, 잠시만… 에밀리에 생도, 지금 그게 무슨…”

아스트리드가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 레오폴트가 그런 아스트리드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먼저 대답했다. 레오폴트 역시도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는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케밀라가 몇 차례 나서기는 했었고, 바이올렛도 그랬긴 하지만 에밀리에까지도 이렇게 나설 줄은 몰랐다.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저도 황태자비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 하시면…?”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아스트리드 생도.”

“말씀해 보시죠.”

아스트리드의 얼굴에 심통이 가득했다. 딱히 별 얘기 나눈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조금이지만 안심하고 있었던 참인데 이렇게 에밀리에가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다.

‘역시, 화근을 없애야…’

【진정, 진정해…! 그러면 안 된다고!】

가까스로 레오폴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이렇게 말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스트리드의 노력도 부질없이 진짜 아스트리드는 인내심의 한계를 가뿐하게 넘기고 있었다.

“그걸 허락한건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에밀리에 생도, 당신 지금…!”

상황을 수습하려는 레오폴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분노에 차서 눈을 치켜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스트리드는 이미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어쩐지 요즘 들어서는 참을성도 많이 늘었고,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던 즈음이었지만 역시 그건 틀렸다.

세상은 봐주면 안 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에밀리에처럼.

“자, 진정해. 아스트리드.”

그런 그녀의 어깨를 꾹 눌러 도로 앉히는 목소리.

장난기가 가득한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의 그녀는 다름 아닌 바이올렛이었다.

“아스트리드, 너 여기서 사고 치면 상당히 곤란해질 거야.”

소근소근 아스트리드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바이올렛의 말에 아스트리드가 뚱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여기서 사고를 친다고 해서 곤란해질 게 뭐가 있을까. 딱히 문제가 될 소지가 없지 않은가.

“너, 어제 술 마신 것 때문에 우리 벌점 먹은 거 모르는 듯한데. 여기서 소란 일으켜서 벌점 더 먹으면 앞으로 엄청 힘들어져. 레오폴트랑 같이 아카데미 다니기 싫은 건 아니지?”

【아니지?】

‘아니죠.’

그렇다면 지금은 참아야 했다. 아스트리드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뜻대로는 안 되겠지만, 건투를 빌겠어요. 에밀리에 생도.”

“고마워요.”

그 말속에 담긴 아스트리드의 은근한 협박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에밀리에는 딱히 별 표정이 없었다. 오히려, 레오폴트가 아스트리드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틀림없이 즐거워 보이는 듯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그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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