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1화 - 제목 : 창세기 (1/72)



〈 1화 〉1화 - 제목 :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빛이 있었니라

2장 1절 아득한 어둠과 들끓는 혼돈 가운데서 빛이 스스로를 인지하매,
2장 2절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여 자신이 아닌 것을 세계라 명하고
2장 3절 스스로를 ‘엘로아흐’라 칭하시더라.

3장 1절 엘로아흐께서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계를 보시니
3장 2절 주의 눈이 담기에 세계가 아름답지 못하더라
3장 3절 주께서 세계의 모든 어둠과 혼돈을 한곳으로 모으사
3장 4절 혼돈은 작게 뭉쳐 세계 밖으로 버리시고
3장 5절 어둠으로는 무한히 얇은 실을 뽑아 끝없이 넓은 천을 짜시더라
3장 6절 주께서 천을 넓게 펼쳐 세계를 덮으시고는
3장 7절 당신을 구성하는 빛을 일부 떼어내 잘게 쪼개고
3장 8절 광명체 조각을 천 위에 군데군데 올려두어 천을 세계에 고정하시더라
3장 9절 주께서 천을 우주, 광명체를 별이라 이르시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3장 10절 주께서 우주 중앙에 놓인 광명체 하나를 보시고는
3장 11절 광명체 주위를 회전하는 땅덩어리를 만드시고 그 위를 궁창으로 덮으시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3장 12절 주께서 땅 위와 하늘 아래에서 흐르는 것을 만드사
3장 13절 땅 위를 흐르는 것을 물, 하늘 아래에서 흐르는 것을 마나라 부르시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3장 14절 주꼐서 스스로 변하는 것을 만들어 땅 아래에 심으시니
땅에서 새싹이 돋아올라 하늘에 닿는 나무가 자라더라
3장 15절 최초의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고 씨가 온 세상으로 퍼져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후략)...




추천(12) 비추천(2)

댓글(19)

- 사이비교주 어서오고

- 꾸준추

- 응 느그 신 천지창조 2주나 걸렸어~ 하느님보다 못해~

-성경에 판타지를 쓰깠노 ㅋㅋㅋ

인사해줘

- ㅋㅋ 요즘은 인터넷으로 포교하네
–유입-
 이 새끼 10년 넘게 컨셉 유지중인데 ㅋㅋㅋ

- ㅂㅅ

-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그 낙원교임?
 그건 신생 사이비고 이건 ㅈㄴ 오래된 사이비 ㅋㅋ
 근데 왜 신도는 낙원교가 더 많노...
 이걸 믿는 빡대가리가 있겠냐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 근데 설정 쓸데없이 잘 만들긴함
ㄴ ㅇㅈㅋㅋ
ㄴ 시험 전날 읽으면 재밌긴 하지 ㅋ
 은근 뒷부분이랑 앞부분이랑 아귀가 맞단 말이지
ㄴ 응 사이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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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틀 녘, 옅은 커튼을 뚫고 어두운 방 안으로 스며드는 미약한 광선이 바닥과 천장에 반사되며 부스러졌다. 빛 알갱이들은 고요한 어둠을 뚫고 곳곳으로 산란되며 실내를 희미하게 밝혔다.

그리하여 벽과 벽이 만난 방 한구석에서 후드티를 입은 청년의 윤곽이 조심스레 드러났다. 양쪽 벽면에 딱 달라붙은 1인용 책상 앞에서 빛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우스 휠을 거칠게 돌리는 청년의 모습.

인터넷  해 봤다는 사람이라면 그 화면이 어떤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 하나를 비추고 있음을   있을 것이다. 창세기란 제목으로 시작해 웬 정체 모를 신이 세상을 창조한 과정을 서술한 게시글.

언뜻 보면 기독교의 성경과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청년이 앙상한 검지를 빠르게 움직여 스크롤을 휙 내리더니, 이내 화면은 게시글 가장 아래쪽에 달린 댓글로 가득 찼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게시글의 글쓴이, ‘마스터팔라딘’을 조롱하고 있었다.

“시발 진짠데...”

후드티의 청년, 신재혁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험한 취급을 각오했던 일이라지만, 매일 이런 모욕을 듣는다는 것은 충분히 기분이 나쁜 일이었다.

청년의 기분을 반영하듯, 입에서 고온다습한 한숨이 터져나오면서 서늘한 새벽공기와 뒤엉켰다. 상체를 뒤로 기댔다. 그 움직임에 맞춰 의자 등받이가 기울어지며 등허리에서 탄성감이 느껴졌다.

신재혁은 고개를 젖혀 퀭한 눈으로 천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산처럼 쌓아둔 약이  떨어졌는데 약국에 가기는 귀찮아서 그냥 약을 하루 걸렀더니 간만에 우울증과 불면증이 도져서 어젯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덕분에 새벽부터 머리가멍하고 더럽게 피곤했다. 괜히 댓글을 보고 기분까지 잡쳤으니, 가히 최악의 하루라 말할 수 있다.

신재혁은 좀 더 편한 자세를 찾아 깍지  손바닥으로 뒷머리를 받쳤다. 묵직한 하중을 받치기 위해 겨드랑이 아래 근육이 팽팽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반쯤 감긴 눈이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이 천장의 실금 사이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한참을 그러다 결국 신재혁은 그가 늘 관찰하는 천장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를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전생의 생각이.

전생에 신재혁은 성기사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이능이 존재하지 않아 평화로운 지구와 달리 전생의 중세 판타지 월드, 에덴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다. 악신 로힘을 받들며 물질계를 침공한 마왕군, 그리고 악마의 침공에 저항하기 위해 제국을 필두로 뭉친 인류연합.

신재혁의 전생, 론지노는 빛의 신이자 조물주이신 주 엘로아흐를 섬기는 성기사였다. 왼손에 메이스, 오른손에 창을 들고 마계 전선 최전방에서 악마의 골통을 박살내는 악마 학살자. 교황청에서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며 역대 최강의 성기사인 그에게 성인의 지위와 마스터 팔라딘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론지노는 11명의 동료들과 지옥문을넘어 적의 본진으로 쳐들어가 수많은 고위 악마를 쓰러뜨린 강대한 성기사였으나 그 역시 인간. 지옥에서 사천왕과 일기토를 벌이다 최후의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성력의 동결 때문에 사천왕에게 패배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환생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지구란세계에서 연고도 없는 신재혁이란 고아의 몸으로.

‘정말 악마의 수작이었나? 하지만 그 현상은 분명... 아니 더 생각하지 말자.’

신재혁은 고개를 좌우로 털어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췄다. 그 의심은 분명 자신의 신을 향한 모독이었으므로. 애초에 환생 이래 근 24년간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 고민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싼들 이제 와서  답을 구할  있을 리가 없다.

신재혁은 상체를 세워 팔꿈치를 책상에 괴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덮어 마른 세수를 했다. 컴퓨터 바탕화면이 내뿜는 푸른빛이 그 손등에 반사되었다.

그는 전생의 세계를 떠올릴 때마다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뇌리를 맴도는 악마의 어두운 목소리가 자꾸 불길한 질문을 툭툭 던지며 그를 괴롭혔다. 자신이 죽은 후 악마와의 전쟁은 어떻게 됐을까, 정말 인류는 멸망한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어째서  세계에 환생한 것일까, 따위의 질문들을.

24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무리 떠올리지 않으려 한들 전생의 자아는 끊임없이 성기사로서 자신의 의무를 일깨웠다. 종종 들리는 악마의 환청은 때로는 그의 성기사 스승의 목소리로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모든 것은 엘로아흐의 뜻대로, 인류를 지켜라! 악마를 쳐죽여라! 하나도 남김없이, 네 손으로 직접 죽여라...

전생의 인류를 향한 걱정, 자신의 최후에 대한 의문, 환생이란 편리한 변명으로 악마에게서 도피했다는 죄책감 등으로 성기사의 우울은 갓난아이 때부터 계속되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우울감이. 하지만 그는 성서의 교리에 따라,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환생이 주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가능성 때문에 자살하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몸이  스트레스를 술이나 담배, 약으로 해소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조금이라도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컴퓨터 속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먼치킨 주인공이 사악한 적을 물리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웹소설,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따위의 장착물에.

덕분에 잔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린 성기사의 우울증은 확연히 호전되었다. 다만 이차원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무릇 그렇듯이, 사람과의 교류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 인간관계 역시 자연스레 좁아졌다.

론지노는 일평생 악마를 죽이고 죽이던 성기사였다. 악마를 죽이는 것의 인생의 목적이었다. 그런 고결한 성기사를 모두가 존경했다. 하지만 모두에게서 존경받던 성기사는 더 이상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들락거리며 하루하루를 목적 없이 흘려보내는 흔하디 흔한 고졸 백수만이 있을 뿐. 과학 문명을 꽃피운, 악마도 신도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지구에서 신재혁은 삶의 목표를 잃었다.

그리하여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신을 잃은 성기사는 집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 * *


정신적 나이로는 50대가 넘은 남성이 새벽 감성에 젖어 혼자 궁상을 떠는 사이, 붉은 해는 지평선 위로 완연히 떠올라 서울의 고층 빌딩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초여름의 아침햇살이 실내를 밝히자 감정을 추스른 신재혁은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과를 진행해야 할 시간이었다.

한때 성기사였던 그의 아침은 늘 같은 일로 시작한다. 몸을 정결히 씻은 후, 자신이 외우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 인터넷에 업로드한다. 그가 유이하게 할  아는 지구어인 한글과 영어로. 혹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전생자가 지구 어딘가에서 그 글을 보고 접촉해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품고.

물론 연락은커녕 조롱만이 돌아왔고 10년의 노력은 또라이 컨셉러, 사이비 교주, 커뮤니티 네임드 분탕 같은 멸칭으로 폄하됐다. 그도 전생자만 알아볼  있도록 가능하면 에덴어로 업로드하고 싶었으나,안타깝게도 지구의 컴퓨터 자판과 문자 체계는 에덴의 문자를 지원하지 않았다.

‘시발, 지구는  이리 쓸데없이 언어가 다양한 거야. 에덴처럼 공용어 하나만 있으면 편할 텐데. 좆같은 영어, 좆같은 기초교육과정...’

신재혁은 자기보다 (정신적으로) 새파랗게 어린 영어 교사한테 혼나던 기억을 떠올리며 대한민국의 기초교육과정과 교육부를 욕했다. 잠을 못 잔 탓에 오늘차 온라인 성서강연회는 새벽에 이미 처리했으므로, 신재혁은 어떤 스케줄이 남았나 생각했다.  엘로아흐께 기도를 올리기, 그리고신성 주문을 연습하기. 우선 그의신에게 기도하기 위해 신재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모았다.

“전능하신 엘로아흐여, 영원한 빛으로 날 보호하소서. 거룩하신 지혜로 날 이끄시고 내 가는  어둠에 싸여 있어도 신성한 빛으로 내 영혼을 이끄소서... 아멘.”

신재혁은 눈을 감은 채로 온라인 게임 홍보 영상에서  인상적인 기도문을 읊조렸다. 당연하게도  기도에 화답하는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론 기도문이 너무 장난스럽다던가, 기도에 진심이 담기지 않아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성기사로서 신재혁은 신을 대함에 있어서 언제나 진지하고 경건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 상태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관조했다. 그는 전생에 자신이 일구어낸 막대한 신성력이 여전히 영혼의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신성력이 없었다면, 그는 단지 자신이 전생자라고 믿는 망상병 환자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기도가 끝났으니 이제 신성 주문을 연습할 차례였다. 신재혁은 정화 주문을 완성하고자 성직자들의 영창, 아리아를 읊었다. 약식 이리아였다. 충분히 숙련된 성직자들은 아리아를 일부만 읊어 주가 허락하신 기적을 일으킬  있었다.

“당신의 빛으로 세속의 더러움을 정화하소서...”

정화는 본래 언데드나 악마 같은 사악한 존재 정화하고 부가적으로 주위를 깨끗하게 만드는 주문이다. 약식 정화는 신재혁의 목적대로 부가 효과, 즉 주위를 청소하는 효과만을 일으킬 것이었다. 하지만 주문은 완성되지 못했다. 영혼에 있는 신성력이 응답을 거부했기에.

‘오늘도 안 되네.’

전생의 신성력 동결이 현생까지 영향을 준 것일까? 아니면 지구에 신이 존재하지 않아서일까? 이 세계에서 신성력이 그의 부름에 답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성력을 자극하고자 매일 기도를 올리고, 신성 주문을 연습하고, 인터넷으로 포교 활동을 해왔지만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신성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  줌의 신성력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24년간 실패한 일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신재혁은 덤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더러운 집구석이 눈 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라면 국물이 굳어 더러운 식탁, 의자 위에 쌓인 먼지, 꽉 차다 못해 빨래가 흘러넘치는 빨래통, 바닥을 뒹구는 비닐봉지. 청소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벌어진 참상들.

‘청소 귀찮은데... 내일은 정화 주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청소는 내일하고 밥이나 먹자.’

짧은 고민 끝에 신재혁은 또다시 오늘의 청소를 내일의 자신에게 미뤘다. 어제의 자신, 일주일 전의 자신, 그리고 한  전의 자신이 그랬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신재혁은 아침밥을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가 그를 반겼다. 냉장고 위와 양옆의 선반도 열어봤으나 통조림 하나조차 없이 깨끗했다. 신재혁은 어제 자신이 마지막 남은 고추참치 통조림과 햇반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 맞다.”

그는 허기를 참으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자재를 대량구
매했다. 몇  동안 집에만 있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을. 물론 당장 식료품을 구매한다고 그의 허기가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택배는 며칠 걸릴테고... 너무 배고픈데, 나가서 밥 먹을까.’

히키코모리는 잠시 고민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는 귀찮았으나, 하룻밤을 지새운 탓인지 배가 너무 고팠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배에서 올라오는 공허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으나 신재혁은 바람이나 쐴 겸, 단골 식당 아주머니의 안부나 살필 겸 간만에 외출을 결심했다.

“그나마 집 앞에 식당이 있어서 다행이지... ”

신재혁은 느릿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실내복과 같은 종류, 같은 색상의 후드티와 면바지.
두 달 만의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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