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화 – 젓가락 살인마 (3/72)



〈 3화 〉3화 – 젓가락 살인마

“그럼 다음 의뢰인데...이건 너희 나라 국가정보원 의뢰야.”
“국정원?”

의외의 단체가 튀어나오자 신재혁이 의문을 표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보단체라면 충분히 실력 좋은 해커가 많을 텐데?

“정확히는수정기업 회장 송수정의 의뢰를 국정원이 받았는데, 국정원도 해결을 못해서 게헨나 쪽으로 넘긴 거지. 젓가락 살인마라고 들어봤지? 그 친구 뒷조사가 의뢰거든.”

젓가락 살인마!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이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유명 정치인과 기업가를 살해한 연쇄 살인마로, 상남자 같은 외모와 싸움깨나 할  같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피해자의 코에 젓가락을 찔러 두개골을 뚫는 엽기적인 살해법으로 유명해진 살인마다. 신재혁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사람 하나 뒷조사하는 건 국정원도 충분히 할  있는 일 아닌가요? 그리고 아저씨 부하들도?”

그 당연한 의문에 미스터 B가 답했다.

“당연히 뒷조사는 했지. 국정원도. 우리도. 그런데 문제는 그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청년이라는 거야. 비행기까지 타면서 일면식도 없을 사람들을 푹찍해놓고 협박이라던가 요구사항도 없잖아.”
“뉴스에서는 심리학 교수들이 그냥 싸이코패스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고졸백수의 열등감이다-하면서 충동범죄라고 분석하던데요?”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믿기지 않지만 CIA나 FBI 같은 정보단체도 그렇게 결론내린 모양이더라. 걔가 잡힌  한 달은 됐는데 배후에게서 아무런 신호가 없으니까. 그런데 상식적으로 일반인이그런 전문적인 솜씨로, 그것도 호위를 받는 고위 인사들을 수차례 살해할 수 있다는게 말이 되냐? 그래서 그를 훈련시키고 지령을 내린 배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몇몇 있단 말이지. 나처럼. 그리고 수정기업 회장님처럼.”

하기야, 수정기업 회장의 첫째 아들이 젓가락 살인마의 최초의 피해자니 그런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만약 배후에 비밀 조직이 있다면 그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야 그치들 의도대로 몸을 사리던,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할 텐데 조직의 꼬리조차  보이니까 겁 많은 회장님이 국정원에 의뢰를 넣은 모양이야.”
“그래서 보수는?”
“국정원을 거쳐 들어온 의뢰라 보수가 좀 깎였어. 일단 착수금 오천에 확실한 결론을 얻으면 성과금 1억, 거기다 배후에 관한 단서도 찾을 경우 플러스 이억. 물론 우리나 국정원 측에서 조사한 자료는 공유해주고.”

신재혁으로서는 히키코모리 생활을 이어가도록  달 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일이면 충분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의뢰였다. 의뢰에 실패해도 오천만 원이라니, 충분히 이득 아닌가.

“네 의욕을 돋우기 위해  의뢰는 특별히 수수료를 면제해 줄게. 그리고 다음에 받을 의뢰  건도. 나로서도  건은 꽤 신경을 쓰고 있어서 말이야. 뒷세계에 내가 모르는 비밀 세력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 정체를 알아야 사업에 지장이 가지 않을테니. 뭐, 내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고.”

미스터 B가 그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는 말에 혹한 신재혁이 결심을 굳혔다.

“그 의뢰, 받아들일게요.”


* * *


“젓가락 살인마 곽태우는 체포된 이후 요구사항은커녕 살해 동기조차 밝히지 않고 경찰 조사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교수님 말씀은  범죄가 모두 열등감 때문에 단독으로 벌인 계획 살인이라는 것이죠?”
“저도 믿기지 않지만, 예, 그렇습니다. 우선 전문가들이 실시한 검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치밀한 범죄 계획과 달리 지능 검사에서 의외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또 심리 검사 결과, 범인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분노에  상태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에 무직이라는 상태에서 기인한 열등감이 엘리트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표출되었을 가능성이...”

* * *

의뢰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 신재혁은 사람이  수 있는 꼴이 아닌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넘치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쓰레기를 치우며. 신재혁은 청소기를 돌리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소파에 기대앉아 뉴스를 시청했다.
채널을 돌려봐도 모든 방송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젓가락 살인마의 판결 결과로 연일 시끄러웠다. 뉴스는 지겹게 들어온 내용을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신재혁은 티비를 향해 리모컨을 겨냥하고는 총을 쏘듯 전원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티비에서 불이 꺼졌다.

신재혁은 보일러에 비밀 코드를 입력해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컴퓨터를  늘 사용하는 메일로 미스터 B가 보낸 파일을 다운받았다. 의뢰서 파일과 국정원에서 조사한 자료들. 프린터를 이용해 서류를 뽑은 신재민은 콜라를 홀짝이며 서류를 넘겨보았다.

‘흠... 진짜 깨끗하네. 이름, 곽태우. 가족 관계는 없고. 정상적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했고. 대학은 고아라 돈을 벌기 위해 포기했나. 동창생의 증언도 있는  보면 가짜 신분은 아닌데? 뉴스에 밝힌 사실과 비슷하네. 딱히 의심할 만한 사항은 없는 거 같은데?’

프린트하지 않은 파일을 이것저것 뒤져보던 신재혁은 파일 중에 동영상을 모아 놓은 폴더를 발견했다. 실제 범행 현장이 녹화된 CCTV 영상이었다. 신재혁은 그중 화질이 괜찮은 영상 하나를 골라 전체화면으로 재생하고 스피커 음성을 높였다. 커다란 모니터를 채운 영상이 당시 범행 상황을 재현했다.

영상은 어느 한산한 바를 비추고 있었다. 유리잔을 닦는 바텐더 앞에서 양복을 멋들어지게차려입은 금발의 사내가 혼자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는 광경.   앞에 우락부락한 경호원이 둘 있었는데,  사실로 사내가 상당한 상류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면을 쓴 건장한 사내가 몸수색 후 경호원 사이를 통과해 바 안으로 들어왔다. 곽태우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금발 양복남 옆에 앉더니,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쉽게도 바의 음악 소리 때문에 그들이 나누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곽태우가 뭐라뭐라 알아들을  없는 말을 건네자, 사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곽태우가 손을 들더니 그 소매 안에서 튀어나온 젓가락을 사내의 콧구멍에 쑤셔박았다.

영상을 보던 신재혁은  가지 이유로 놀랐다.  번째는, 콧구멍에 기다란 젓가락이 끝까지 들어갈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곽태우가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

영상이 계속되었다. 사내의 콧구멍 아래로 피가 뿜어나오는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본 바텐더가 비명을 지르자 두 경호원이 한 박자 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총을 겨눴다. 경호원과 곽태우 사이에 금발 사내가 끼어있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다.
손님들은 전부 썰물처럼 문밖으로 뛰쳐나가고 혼비백산한 바텐더가 전화기를 찾아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망치는 손님들 때문에 경호원들이 곽태우에게 접근하지 못한 사이, 곽태우는 빠르게 뒷문으로 도망쳤다.
영상이 끝나자 자연스럽게다음 영상이 재생되었다. 앞의 영상과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뒷문으로 도망친 곽태우와 그를 쫒차가는 경호원들. 경호원들이 그를 쫓으며 총을 쏘았으나 몸을 날려 엄폐물 뒤로 회피하고는 기회를 틈타 준비된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도망치는 모습. 거기서 영상은 끝이 났다. 신재혁은 다른 영상들도 재생해보았고 모두 비슷한 상황을 재현했다.

신재혁은 예상보다 훨씬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평범한 지구인이  정도 암살 실력이라고? 확실히 말이 안 되는데...’

전생이라면 최상급 암살자나 소드마스터 정도의 실력자나 보일 수 있는 기예가 아닌가? 한평생을 암살과 검에 목숨 바친 광인들. 저 정도 경지라면 나뭇가지나 볼펜 한 자루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곽태우의 신체 능력으로는 힘들텐데?’

곽태우의 신체검사와 정기검진 서류를 살펴본 신재혁이 침음을 내뱉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 사건은 수상한 정황이 많았다. 외국을 다니면서까지 . 뛰어난 기술과 괴리되는 평범한 인생.

‘설마 소드마스터급의 재능이라 그렇게 사람을 썰고 다닌건가?’

그런 생각을 하더니 자기도 어이가 없었는지 푸흐흐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다 웃음을 멈추고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잠깐. 설마 진짜 그건가?’

뉴스 말대로 정신병자의 계획범죄인데, 단순히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저렇게 깔끔하게 살해한 것 아닐까? 소드마스터와 암살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았던 신재혁에겐  가설이 의외로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불현듯 충격적인 가설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설마! 그도 나와 같은 전생자라면?’

소드마스터급 인물이 전생해 지구인이 된 것이라면 그 비정상적인 경지가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정확히 판단하려면 직접 만나봐야겠군...’

하지만 정체를 노출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신재혁은 얕은 신음을 흘리며 손익을 계산해 보았다.
아주 재수가 없을 경우, 해결사로서 그의 정체가 노출될  있다. 하지만 만약 곽태우도 자신처럼 에덴에서 죽어 지구인으로 환생한 사람이라면, 전생에 대한 비밀이나 움직이지 않는 신성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그가 자신이 죽은  사망한 전생자일 경우 그에게서 에덴의 인류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을 수도 있다.
신재혁으로서는 리스크가 크지만 리턴은 훨씬 큰 도박이었다.

잠시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신재혁이 전화기를 들었다.


* * *

“아저씨, 교도소 면회 한 번 가야겠는데, 서류 조작 좀 해주세요.”
“실제로 만나보게? 왜?”
“서류상으론 아무 문제도 없던데 영상을 보니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어서요. 실제로 만나서 물어봐야  것 같아요.”

황당한 소리에 미스터 B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쳤다.

“실제로 만나서 물어본다고 가르쳐주겠냐? 그러면 진작에 수사관한테 털어놨겠지.”
“제가 볼 때 그 녀석,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달 전 병원에서 받은 정기 검사 기록을 보니까 그때는 근육량이 평범했더군요. 몇 달 사이 갑자기 벌크업을 한 이유가 있겠죠.”

자신도 이것만으로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신재혁은 말끝을 흐리며 어설픈 변명을 내놓았다. 미스터 B가 종종 충동적인 선택을 하는 쾌락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부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호오, 과연. 하지만 네가 간다고 달라지는게 있을까?”
“...아무튼 위조 신분이랑 면회 신청 부탁해요.”



“에휴, 너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가서 정체 들키지나 말라고. 들켜도 내 얘기는 하지 말고. 3일만 기다려.”
“3일이나요? 평소엔 하루안에 끝내더니?”
“뭐, 내가 위장에 전문가긴 해도 평소보다 철저히 해야 하니까. 알다시피 사건이 워낙 특이해서 전세계 정보국의 눈이 집중된 사건이라고. 검열도 평소보다 빡셀텐데 만약 위조신분이란게 들키기라도 하면 흑막으로 몰릴 수도 있다고. 그럼 우린 끝장이야.”
“그건 또 그렇네요.”

합리적인 근거에 신재혁이 수긍했다.

“비용은... 아, 당장 계좌가 텅 비었다고 했지? 일단 착수금에서 비용 제하고 바로 계좌로 넣어줄게. 그리고 늘 그렇듯이 위조신분 이름은 본명으로?”
“네, 가명으로 했다가 어설픈 연기로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나으니깐요. 그리고 위조신분인 것을 들키더라도 가명인 줄 알았더니 사실 진짜 본명이었다는  생각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
“그냥 연기 실력을 늘리라니까?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배워봤자 히키코모리한테 연기가 얼마나 쓸모가 있겠어요.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참, 착수금은 절세용 계좌로 보내는 거 알죠?”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유쾌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소리로 웃음을터뜨렸다.

“크흐흐흐.”
“왜 그렇게 웃어요?”
“하하하. 아니, 어릴 때는 양심에 찔린다고그렇게 해킹도 조심스러워하고 탈세는 생각도 안하던 녀석이 이렇게 타락했다는 게 재밌어서.”
“그래서 불만이라도?”
“아니, 아주 좋지.”

신재혁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 웃음소리가 어쩐지 음침하고 참을 수 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타락했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다. 뭐가 저렇게 웃긴 것일까?

애초에 그는 행동 패턴을  수 없는,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다. 그가 단순히 충동적인 쾌락주의자라는 의미에서만이 아니었다. 신재혁은 10년을 넘는 시간동안 그와 친분이 있었지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는 아직 어째서 그 정도의 거물이 한국이란 촌나라의 고아원에 들렀는지, 설령 해커 양성 계획이 사실이라 해도 어째서 그 자신이 직접 행차했는지,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 과도한 친절을베푸는지 알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지만, 신재혁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미스터 B는 자신에게 이해할  없는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과연 그의 목적은 무엇일까... 신재혁은 풀  없는 수수께끼를 만난 여행자처럼 고민했다.

전화에서 신재혁의 응답이 들려오지 않자, 상대는 그것이 무언의 축객령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럼 3일 후에 연락하마’란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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