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4화 – 대면
면회일 오후 5시, 신재혁은 왠일로 옷을 깔끔히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공무 집행중인 경찰이라고 믿을 수 있는 옷차림이었다. 그는 며칠 전 미스터 B에게 받은 위조 서류를 들고 서울 남부 교도소로 향했다. 버스가 지속적인 진동음을 내뱉으며 목적지로 털털 굴러갔다.
교도소 내부는 한적했다. 보이는 사람이라곤 경비원, 경찰, 청소부나 행정 직원들이 전부. 일반인에게 허락된 접견시간은 오후 4시까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신재혁은 경찰 신분을 준비했기 때문에 접견시간이 넘었음에도 면회가 가능했다.
굳이 경찰을 사칭한 이유는 또 있다. 일반인이 희대의 살인마에게 접견 신청을 했다면 사건 관계자인가-하고 교도소 직원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겠지만, 조사관은 그 의심에서 자유로웠다. 행정 업무를 맡는 직원들과 교도관들도 별다른 의심 없이 ‘또 무슨무슨 부서에서 조사하러 왔구나’ 같은 영양가 없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직원이 행정 처리를 하는 사이, 그는 자신의 계획을 점검했다. 그의 목표는 두 가지. 첫 번째, 의뢰를 위해 곽태우의 살해 동기와 배후를 알아내는 것. 두 번째, 그가 자신과 같은 전생자인지 확인하고 전생의 비밀과 에덴의 정보를 듣는 것.
사실 곽태우가 전생자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에게 에덴 공용어로 말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그가 협조적일까’라는 것이다.
그가 상류층을 젓가락으로 쑤시고 다니는 싸이코라는 것을 고려하면 설령 그가 전생자더라도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므로 곽태우가 전생자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 에덴어를 이용한 검증은 최후의 수단으로 아껴두자.’
행정 절차와 몸수색을 마친 후, 그는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걸어 어떤 방 앞에 도착했다. 접견실이었다.
‘그래…. 이 문 반대편에 나처럼 전생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단 말이지?’
각오를 다진 신재혁이 문을 열었다.
* * *
방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신재혁은 유리창 너머 자신을 관찰하며 놀라움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까까머리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과연, 고수는고수를 알아본다는 건가?’
희대의 살인마라는 악명에 어울리지 않게 곽태우는 눈을 크게 뜬 채 신재혁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재혁도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곽태우를 관찰했다.
푸른 죄수복으로 숨길 수 없는 건장한 체격, 소매에 꽉 끼는 두꺼운 팔근육, 굵은 턱선, 진한 눈썹. 잘생긴 상남자의 인상이었다.
‘저 정도로 절제된 자세라니…. 영상으로 추측한 바대로 상당히 높은 경지의 달인인데.’
양쪽 무릎 위에 얹은 손은 언뜻 보면 무신경하게 보였으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급소를 방어할 수 있는 위치였다. 발끝은 땅을 강하게 붙들고 있고, 발꿈치는 위로 들려있으니, 이는 상대의 기습에 대응해 앞으로 돌진하기 유리한 자세다.
아마 자신이 총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순식간에 엄폐물 뒤로 숨기에 적합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리라. 신재혁은 이것이 절대 우연에 의한 자세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죄수를 골똘히 바라보는 조사관을 배려하기 위해 교도관이 조용히 접견실 문을 닫고 나갔다. 쿵-하고 문이 닫히자 서로를 유심히 관찰하는 두 사내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신재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곽태우씨. 과연 범상치 않은 분이시군요.”
“너는, 누구지?”
“저는 조사관 신재혁이라고 합니다.”
신재혁…. 곽태우는 그 이름을 음미하듯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혹은 까먹지 않으려는 듯이. 신재혁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희는 서로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
“게임을 하나 하죠. 진실 게임. 서로 하나씩 묻고 답하는 겁니다. 답하기 싫은 질문은 한 개까지 침묵할 수 있는 것으로.”
“좋다.”
곽태우가 시원스럽게 답했다. 신재혁은 그가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다른 사람들에겐 답변을 거부했을 텐데, 이렇게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신재혁은 일단 조사관이 할 법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곽태우로부터 괜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곽태우씨, 당신의 살인 사건에 배후가 있습니까?”
“없다.”
곽태우의 즉답.
역시! 기대했던 답에 신재혁은 순간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곽태우의 살인은 모두 단독 범행이다. 그를 전문적인 암살자로 길러낸 비밀 암살조직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그가 희대의 천재거나 전생자일 확률이 올라갔다.
물론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지만, 수십 년간 일군 신재혁의 노련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직감은 곽태우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리켰다. 이번엔 곽태우가 물었다.
“너는 차은경이란 이름을 알고 있나?”
신재혁은 자신이 준비한 예상 질문 목록에서 한참 벗어난 질문에 당황했다.
차은경. 그의 좁은 인간관계에 수록된 몇 안되는 이름 중 하나였다. 그녀는 신재혁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경찰이다. 친분이라고 하기엔 해킹을 하던 모습을 들켜 일방적으로 약점을 잡힌 신세지만.
하지만 어째서 그 이름이 곽태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일까?
신재혁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범죄자인 곽태우가 형사과 팀장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녀가 곽태우를 체포한 것일까? 최근 그녀의 소식은 못 들어서 잘 모르겠는데. 어쩌면 곽태우의 체포 과정에서 그녀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수사에 도움을 줘 곽태우가 원한을 품은 것일지도. 만일 그렇다면 조사관인 내가 그녀를 모른다고 하면 내가 조사관이 맞는지 의심하겠지. 게다가 그는 나를 보자마자 분명 내 경지를 가늠했다. 그로서는 나같이 범상치 않은 실력자가 조사관에 불과하다고 하면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그래, 이 질문은 내가 조사관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블러프가 틀림없다.’
설령 자신의 추론이 틀렸더라도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준다고 상황이 변하는것은 아니다. 당장 몇 주 후가 그의 사형일이므로.
신재혁은 대답해도 문제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진짜 관계가 아닌 조사관이라는 위장 신분에 맞는 대답으로.
“네. 그녀는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2팀장입니다.”
원하는 대답이 아닌 듯, 그의 눈이 찌푸려졌다. 언뜻 놀라움과 씁쓸함이 눈에 스쳐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단순한 착각인 걸까.
‘그래, 첫 질문은 어떻게든 잘 넘긴 모양이군. 질문이 많아질수록 내가 조사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제 차례입니다. 당신의 살해 동기는 무엇입니까?”
“침묵하겠다.”
“…좋습니다.”
역시 침묵하는가. 하지만 배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답변에서 신재혁은 이미 그의 범행 동기는 뉴스에서 설명한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차은경과 너는 무슨 사이지?”
신재혁은 차은경을 향한 곽태우의 관심에 재차 당황했다. 첫 번째 질문은 단순한 신분 확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곽태우는 실제로 ‘차은경’이라는 개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동료 경찰관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곽태우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신재혁을 노려보는 그의 눈이 불타는 듯 이글거렸다.
‘어째선지 반응이 사납군. 설마 거짓말을 눈치채고 경고를 준 건가?’
배후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 신재혁은 슬슬 자신의 두 번째이자 핵심적인 목표를 달성하고자 질문의 초점을 옮겼다.
“범행 영상을 보니 솜씨가 상당하시던데,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배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익혔을 뿐.”
이번에도 진실을 말하는 듯, 그의 대답에는 일말의 주저가 없었다.
“반대로 물어보지. 너는? 조사관 따위에 머물 솜씨가 아닌데.”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실력을 설명하려면 전생의 비밀을 먼저 밝혀야 한다. 상대가 정체를 숨긴 전생자든, 전생자가 아니든 어느쪽이더라도 그에게는 손해였다. 거짓말을 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앞의 질문에서 그의 반응을 생각했을 때, 눈치를 챌 확률이 높다. 사실 속에 숨긴 거짓말에도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좋았다.
이제 두 사람은 모두 한 번씩의 기회를 사용했다. 지금부터는 서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신재혁으로서는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기 원하지 않았기에 직접적인 단어를 통해 그의 반응을 떠보기로 했다.
“당신은 ‘에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덴은 전생의 세상의 이름. 하지만 지구인에게는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란 단어로 알려진 말이다. 이해될 단어다. 앞선 질문과 달리 곽태우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을 멈칫거렸다.
“에덴 동산이라면 알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낙원. 너, 그런 건 왜 궁금해하는 거지?”
“요즘 낙원교라고 사이비 종교단체가 유행하길래…. 혹시 거기서 지령이라도 받았나 했죠.”
신재혁이 임기응변을 발휘해 곽태우의 의문에 순발력 있게 변명했다.
에덴을 아느냐는 질문에 대한 곽태우의 답변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확실히 반응이 느렸다. 모르는 척일까? 가능성이 있다. 신재혁은 이 질문만으로는 그가 전생자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금 그 것도 질문이었으니, 다시 제 차례입니다.”
지금부터는 신중해야 한다. 이제 남은 기회가 몇 번 없다. 면회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침묵권을 사용했기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길 수 없다. 거짓말을 해도 곽태우라면 조금 전처럼 위화감을 눈치챌 것이다.
“당신은 마왕의 이름을 아십니까?”
“마왕? 마왕이라니... 네 놈.”
“대답하시죠.”
신재혁이 재촉했다. 그가 에덴인이라면...
”그야 당연히, 마라 파피야스 아닌가?”
신재혁이 침음을 삼켰다. 그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예상 답변 중 하나였지만, 신재혁이 바라던 답은 아니었다.
신재혁은 며칠 전에 본 곽태우의 인적 사항을 떠올렸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의 부모는 신앙심 깊은 불교 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곽태우를 절에 데리고 다녔으니, 그 역시 부모님을 따라 불교 신자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부모의 영향인가. 하긴 불교 신자에게 마왕의 이름을 물으면 열에 열 명은 파순의 이름을 대겠지...’
지옥의 군주가 사탄이라는 사실은 에덴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로써 곽태우가 에덴인의 전생일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젠장, 역시 허탕인가...’
혼란한 신재혁의 심정과 상관없이 곽태우가 물었다.
“6.25전쟁일이 언제지?”
아주 뜬금없고, 굉장히 멍청한 질문이었지만, 신재혁은 의문을 느끼지 않았다. 허탈감이 그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어 다른 곳에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신재혁이 무성의하게 툭 내뱉었다.
“6월 25일입니다. 당신 사형 이틀 후죠. 며칠 안 남았네요.”
“...과연. 아슬아슬했나.”
곽태우가 뭐라 중얼거렸으나 실망한 심정의 신재혁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신재혁이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에덴 공용어로.
“「너는 에덴에서 전생한 자인가?」”
신재혁은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의 정체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땀샘의 작용, 목소리의 떨림, 눈가의 찌푸려짐, 손끝의 흔들림. 그의 정신이 곽태우의 신체 반응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곽태우의 망설임을 포착하기 위해.
‘제발, 반응해라..!’
하지만 반응은 허탈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왔다. 신재혁의 기대보다 훨씬 빨리.
“외국어?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는 한국어와 영어밖에 모른다.”
시원찮은 대답이었다. 신재혁은 평범한 답변에 적지 않게 실망했다.
에덴 공용어를 아는 자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가 에덴의 언어를 안다면, 적어도 놀라움에 움찔하는 반사적인 신체 반응이라도 들려주었을 터인데. 풍선처럼 부푼 기대감에서 피시식하고 바람이 빠져나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앞선 질문에서 그가 전생자임을 숨기고 있다고 짐작했으나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힘없는 목소리에서 자연스럽게 실망이 묻어나왔다.
“네, 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면회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지, 교도관이 그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고 밖에서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신재혁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며 옷차림을 정돈했다.
“잠깐. 질문은 네가 시작했으니, 내 질문으로 끝이 나야지.”
뒤돌아 나가려던 신재혁을 중후한 목소리가 붙잡았다. 신재혁은 잠시 한숨을 쉬고 동작을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는 신재혁의 등으로 최후의 질문이 날아왔다.
“너, 믿는 신이 있나?”
무슨 의미일까. 아니, 이젠 상관이 없나.
신재혁이 걸음을 떼며 빈정거렸다.
“그래. 너는 모르는 신이겠지만.”
이윽고 문이 꽝하고 닫히며 육중한 철제음이 방안에 맴돌았다.
* * *
철문이 닫히자 곽태우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며 평온한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신재혁, 신재혁, 신재혁….”
곽태우는 유리창 너머 면회실을 나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 발꿈치가 문틈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증오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그 잊히지 않는, 아니 잊을 수 없는 뒤통수를 향해 선고하고 싶었던 뒷말을 삼켰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너는 반드시 죽인다.’
***
교도소 밖으로 나온 신재혁이 얕게 한숨을 쉬었다.
‘곽태우는 분명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어.하지만 아쉽게도 에덴이나 전생과는 무관한 비밀인 것 같네…. 의뢰는 완수했지만 역시 전생에 대한 정보는 쉽게 구할 수 없구나.’
탁탁탁, 하고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 들어본 적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기 너! 신재혁 맞지! 아니, 이 히키코모리가 웬일로 외출을? 그것도 교도소로?”
곽태우는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차은경이었다. 공교로운 조우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조금 전까지 곽태우와 그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교도소를 나오는 길에 화제의 주인과 마주칠 줄이야. 상상치 못한 조우에 신재혁이 당황하며 몸을움츠렸다.
“아…. 그냥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뭐? 내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볼까? 나 형사과 팀장인거 알지?”
‘안돼! 그랬다간 위조 신분을 들킬지도 몰라.’
신재혁은 그냥 사실에 거짓을 섞어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아아- 알았어요. 솔직하게 말한다고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인마. 어디서 감히 내 앞에서….”
“사실 국정원에서 젓가락 살인마 조사를 의뢰받아서 면회하고 왔어요.”
차은경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국정원? 야, 너 진짜 실력 좋나 보구나. 그래도 아직 선은 지키는거 같아서 다행이네. 아무리 네가 내 정보원이라도 선 넘는 의뢰를 받는 순간…. 알지?”
심각한 범죄에 연루된 순간 얄짤 없이체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차은경.
“하하….”
신재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차은경은 신재혁이 생계를 위해 해커를 한다는 것을 묵인해주고 있다. 대신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수사에 협조하도록 협박하여 정보원으로 쓰지만.
신재혁은 화제를 변경하려다 곽태우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혹시 곽태우랑 아는 사이에요?”
“젓가락 살인마? 아니. 본적도 없는데. 왜?”
의외의 대답이었다. 차은경이 곽태우를 체포하는데 일조를 했으리라 예상했는데.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면 어째서 곽태우가 그녀에게 흥미를 가진 것일까?
“그 사람이 형사님을 언급하면서 아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저는 형사님이 젓가락 살인마를 체포했나보다 생각했죠.”
“아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애초에 나는 며칠 전부터 인신매매 단체 조사하느라 바쁘다고.”
“인신매매요? 우리나라에?”
‘에덴과 달리 한국은 노예 제도도 없고 치안도 좋은 편일 텐데.’
그녀가 골치아프다는 듯이 답했다.
“10년 전에 실종됐던 초등학생이 돌아왔는데 증언으로는 모르는 사람들한테 납치당해서 원양어선에 끌려갔다더라고…. 외국 어선에서 노예같이 일하다 체력이 좀 붙으니 새벽에 항구까지 수영해서 몰래 모은 돈으로 뱃값을 치뤄 한국까지 탈출한 모양이야. 경찰서에 어머니가 찾아왔는데 서로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펑펑 울던지, 보는 내가 다 감동적이더라.”
“그래서 아이들 납치해서 외국에 팔아넘기는 범죄조직을 잡으려고 다들 혈안이 됐는데, 나도 조사차 교도소에 들린거지.”
그녀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듯 신재혁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런말을 해주는 이유는 역시 협조하란 거겠죠?”
“역시! 말귀를 빨리 알아들어서 좋아.”
문득 어떤 생각이 번쩍였다.
“근데 10년전? 혹시 그 애 엄마 성함이 정말숙 아니에요?”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혹시 아는 사건?”
신재혁은 그 우연에 놀랐다. 그리고 진심으로 환호했다.
“정말요! 다행이다…. 단골 식당 직원분인데 늘 사연이 안타깝다고 생각해서.”
그 소식 하나에 기분이 좋아진 신재혁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웬일로 그녀에게 자기 사생활까지 일부 노출하며.
“호, 이건 또 묘한 인연이네. 이렇게 된 이상 너도 최선을 다해 범인을 찾아야겠지?”
“알았어요, 알았어. 기대는 하지 마세요. 10년 전이면 거의 정보도 없을 거 같은데.”
그나저나 굉장히 묘한 인연이다. 자신은 살인마를 조사하고, 살인마는 일면식도 없을 경찰에게 흥미를 품고, 경찰은 납치범을 쫓고, 납치됐던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과 아는 사이고.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요즘 따라 이상한 일이 많네. 마치 무슨 거대한 일의 전조인 것처럼….’
그 이상한 직감에 신재혁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에이, 설마. 아무 일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