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5화 - 조우 (5/72)



〈 5화 〉5화 - 조우

일요일 아침.

상록수가 아침햇빛을 반사하며 푸르름을 과시한다. 무르익은 한여름의 생기를 멀리멀리 뿜어내듯이. 나무는 마치 손수건을 여러 층으로 겹쳐놓은 것처럼 보였는데, 윗층은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생기 넘치는 연두빛을 한껏 뽐냈고, 아랫층은 무대의 주인공을 더욱 빛내기 위한 백댄서처럼 그림자 이래에서 잠잠한 검녹색 배경이 되었다.

그러다 미풍이라도 살랑거리면, 어떻게든 햇빛을 받아야겠다는 듯이 빛이 새어들어오는 자리를 찾아 좌우로,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파트너의 동작에 화답하는 무용수처럼 연노란 윗잎도 이리저리 흔들렸는데, 나무 전체를 보면 서로 다른 빛깔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뒤섞이는 것처럼 보였다.

신재혁은 입을 벌리고 그러한 빛의 조화를 멍하니 바라보며 감탄했다.

“와- 씹, 그래픽 존나 좋네…. 우리 집 티비보다  진짜 같잖아.”

그 얼빠진 소리를 들었는지 커플 한 쌍이 쿡쿡 웃으며 그를 스쳐지나갔다. 탄성을 터뜨리던 신재혁은 그 웃음소리에 그 나무가 0과 1로 이루어진 폴리곤 덩어리가 아니라 실제 나무임을 자각했다.

‘아 시발, 당연히 진짜가 맞지. 이 게임 중독자 새끼….’

현실보다 컴퓨터 속 세상에 더 익숙한 나머지, 잠시 현실을 게임 화면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 멍청함이 본인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벌개져서는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걷는 속도를 높였다.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자, 양손에 들린 과일 선물세트가 앞뒤로 흔들리며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훅, 훅…. 운동을 하기는 해야 되나. 더럽게 힘드네.”

부족한 체력에 헐떡거리며 걷던 신재혁은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커다란 성당 옆에 조그만 보육원 건물이 보였다. 그가 자란 천주교보육원이었다.

대문 창살 사이로 나이 많은 수녀가 마당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얼굴에는 주름이자글했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듯, 수녀가 빗자루질을 멈추고는 문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 주름진 얼굴에 옅은 반가움이 번지더니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시스터 그레이스.”
“샬롬! 오랜만이구나. 좀 자주 와서 얼굴 비추지. 아이들도  좋아하는데.”

하느님을 찬양하는 말에 신재혁의 눈썹이 티나지 않게 움찔했다. 전생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교도 신을 숭배하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하하, 일 때문에 바빠서….”
“그래, 직장엔별일 없지? 참, 저번에 네가 보내준 돈은 보육원 건물 수리하는데 보탰다. 고맙구나.”

시스터 그레이스. 그녀는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보육원을 운영한 사람으로 신재혁에게는 이번 생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이다. 신재혁은 그녀에게 종종 의뢰로 번 돈을 송금해 보육원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시스터 그레이스는 그 돈이 불법적인 일을 처리하고  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녀는 신재혁이 중학생일  베르도(미스터 B의 가명이다.) 씨의 정보보안 업체에 취직했고 급료를 조금씩 모아 자기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하, 네. 참, 이거 과일. 선물이에요.”
“아, 고맙다. 이런것까지…. 보육원 냉장고에 넣어 놓으려무나. 애들 만나서 인사도 하고. 나는 마당을 마저 쓸고 들어갈테니, 이야기는  후에 하자.”

신재혁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10년 넘게 봐온, 낡은 보육원 건물 안으로들어갔다. 닫히는 문 뒤로 빗자루가 땅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재혁이 안으로 들어서자 몇몇 아이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와아아아!!! 찐따 형이다!!!”진짜다!!!! 찐따오빠!!!!“형 선물줘 선물!!!!!!“또 맛있는  사왔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놀이방에서 뛰쳐나와 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찐따형, 또는 찐따오빠. 보육원 꼬맹이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이다. 그가 중,고등학생 때 보육원에서 친구 없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육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는 연예인들 못지 않았는데, 그가 보육원에  때 이따금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나 용돈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짜아아식들이. 사람한테 찐따형이 뭐냐, 찐따형이. 옛다, 너희가 좋아하는 과일 선물이다.”
“오오….!!”바나나인가!“바나나보단 오렌지지!”민트초코는 없나요?“

양손에  과일 상자를 보고 탄성을 짓는 아이들. 그는 그를 둘러싼 아이들을 뚫고 식당에 들어갔다. 아는 아주머니들이 보여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냉장고에 들고 온 과일을 정리했다.

다시 놀이방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자 아침청소를 마친 시스터 그레이스가 따뜻한 녹차를 내왔다. 둘은 응접실 탁자에 마주보고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왔니?”
“뭐, 그냥 오랜만에 얼굴 보고 안부도 물을 겸…. 묻고 싶은 것도 있고요.”
“묻고 싶은 거?”

신재혁이 차를 홀짝였다. 싸구려 녹차향이 혀끝에 맴돌았다. 신재혁이 나무 탁자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희 동네에 10년 전에 실종됐던 초등학생이 갑자기 돌아왔는데, 듣자하니 정체 모를 범죄 조직한테 납치당한거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육원엔 그런 사건이 없었나 걱정돼서.”

신재혁이 오랜만에 보육원에 방문한 이유를 꺼냈다. 차은경이 조사를 부탁한 사건이었다.

만약 납치범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면, 기왕이면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노렸을 것이라는 신재혁의 판단이었다. 그러는 편이 부모에게 보호받는 아이를 납치하는 것보다 납치 과정에서나,  후처리에서나  편했을 테니.

“10년 만에! 참 감사한 일이구나. 이게  주님의 은혜로다….”

시스터가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수십년의 수녀 생활로 마음이 호수처럼 고요한 그녀가 이렇게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아는  우리 동네에 그런 일은 없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분간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러두마. 알려줘서 고맙다.”

신재혁은 피해자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의문이 따랐다.

굳이 고아를 두고 부모 있는 아이를 노렸다고? 그렇다면 그 범죄 조직은 노동력을 위한 아이가 아니라, 특정한 ‘그’ 소년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의미일까?

자세한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당장은 눈 앞의 상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재혁은 수녀님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었다. 주로 시스터가 물으면 신재혁이 답하는 꼴이었다.

왜 이리 말랐니, 밥은 잘 먹고있니, 운동은 하니, 직장은 어떻니, 상사는 좋은 사람이니, 게임은 적당히 하니, 친구는 사귀었니, 요즘 성경은 계속 읽고 있니,  안 읽는 거니. 부모가 자식에게 할 법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신재혁은 자기 진짜 일을 숨기기 위해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겨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창문 밖을 쳐다보니 사람들이 성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침 예배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시스터 그레이스가 어떤 사실을 떠올렸다.

“참, 성하가 왔는데 한번 보고 가려무나. 본당에서 아침 예배가 끝났으니 지금쯤 고해실에 있겠구나.”

‘성하.’

물론 바티칸의 교황 성하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 유성하, 보육원 시절 그의 누나다. 유독 밝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 보육원 문 앞에 포대기로 감싼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당시에 수습 수녀였던 그레이스 수녀가 추위에 울고 있는 그녀를 처음 발견하고 성하星下라는 이름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그레이스 수녀를  따르며 성경 말씀에 관심을 가진 그녀는 신재혁의 후원으로 4년제 신학교에 들어가 시스터가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큰 성당에서 수습 교육을 받는다는 말은 들었는데, 공교롭게 이 성당으로 발령이 난 모양이다. 어쩌면 본인의 희망 사항으로 온 것일지도 모르고.

***

고해실 앞에는 이미 두 사람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고해실에서 눈가가 붉게 물든 아줌마가 나갔고, 이어서 다음 사람이 들어갔다. 이제 신재혁의 앞에는 한 사람이 남았다.

신재혁은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사람이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마지막인 듯 했다. 다시 한 사람이 나오고 한 사람이 들어갔다. 시간이 더 지나자, 이내 마지막 사람마저 나왔다. 신재혁의 차례였다.

그는 발소리를 죽인  고해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성하를 놀래켜 줄 요량이었다.

고해실 안은 좁지만 동시에 아담했다. 내담자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고해자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의자 앞쪽 벽에는 조그만 나무 빗살창이 달려있었는데, 상담사와 내담자 사이를 가려주기도, 때로는 연결해주기도 했다. 신재혁이 고해실에 들어갔을 때는  창이 열려있었다.

창문 건너편의 방에는 신재혁이 익히 아는 수녀가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긴 흑발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밋밋한 수녀복은 그녀의 미를 감추기는커녕, 그 아름다움에서 성스러운 기운마저 풍기게 했다. 좁은 창 사이로 스며든 일요일의 아침 햇살이 그녀를 비추며 성스러움을 더했다.

신재혁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가 눈을 뜨고 앞에 앉아있는 신재혁을 보고서 놀라기를 기대하면서. 그때 수녀의 입이 먼저 열렸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재혁아?”
“엇.”

뭐야, 어떻게 내가   알았지. 신재혁이 앉은 의자가 움찔거리며 바닥을 약하게 긁었다. 신재혁은 0그녀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제야 눈썹 사이가 살짝 벌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의 눈꼬리가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아 맞다. 눈나 실눈이었지….’

“오랜만이네, 재혁아.”
“뭐야, 기도하는 척하고 있던 모양이네. 놀래켜 주려고 했더니 내가 거꾸로 당했네.”
“후후…. 나는  머리 꼭대기에 있단다.  생각을 모를 리가 없잖니.”

그녀가 허리에 양손을 얹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승리감을 뽐냈다. 그 율동에 맞춰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장난스럽고 천진난만한, 동시에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그녀의입가에 흘렀다. 그 별똥별처럼 순수한 웃음을 바라보다 약간 얼굴을 붉힌 신재혁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2년 만이구나. 신학교 졸업식 이후 처음 보던가?”
“응. 중앙 대교구 쪽으로 가서 교육받는다는 건 들었는데, 여기로 발령난 줄은 몰랐네.”
“아무래도 내가 자라온 장소니까. 시스터 그레이스도 돕고 싶었고, 보고 싶은 얼굴도 많았고 …. 예를 들어, 너라던가?”

신재혁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애써 얼굴 근육을 관리하며 표정이 망가지지 않게 애썼다. 삐져나오려는 웃음기에 금방이라도 헤픈 표정을 지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런 사춘기 남자애 같은 반응이라니! 이 마스터 팔라딘이! 전생 나이까지 합치면 족히 60은 넘는 내가….’

아니면 30년의 세월을 악마와 전투만으로 보냈기에 오히려 풋풋한 소년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신재혁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유성하의 말이 상념을 부수며 귀에 들어왔다.

“참, 요즘도 악마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거 찾아보지는 않지? 미친 듯이 성경책을 뒤진다던가.”
“….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성경이면 치를 떠는 거 알면서.”
“후후, 그랬지.”

언젠가 신재혁이 판타지 소설을 읽다 우연히 지구에도 엘프, 드워프, 서클 마법 같은 에덴의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신재혁은 지구에 있는 에덴의 흔적을 찾고자 인터넷과 역사책, 오래된 신문기사 같은 자료를 미친 듯이 뒤졌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에덴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조사한자료 중에는 기독교나 개신교의 성경도 있었다. 엘로아흐의 성서와 지구의 성경이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없었던가? 지금 와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면, 특별한 단서를 얻지는 못했던 것 같다.

감히 이교의 성서를 정독하는일은 한 번이면 족했기에, 그 후로 성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때문에 시스터 그레이스의 잔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어, 그러게. 왜 내가. 어째서? 아니. 그만두자. 하면 안 되지….’

사실 전생이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배교 행위를 했다는 것에서 즉시 이단 심문관이 파견되고 종교재판이열렸을 것이다. 에덴에는 목숨이라도 부지하고자 악마에게 영혼을 판 마인이나 흑마법사 따위의 인류의 배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스카리옷, 그 씹새끼….’

반사적으로 한 흑마법사의 이름을 떠올린 신재혁이 이를 갈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여하튼 신재혁은 이제 더이상 지구에서 에덴의 흔적을 찾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에덴이 멸망하고 아주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세계가 지구 아닐까-하는 가설도 세워봤지만, 지구에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기각되었다.

신재혁이 딴생각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유성하가 신재혁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신재혁은  부드러운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뒤따라갔다.

두 사람은 성당 밖으로 나와 보육원 건물 뒤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갔다. 싱그러운 풀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초록색 풀잎이 호수처럼 잔잔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녹색 수면 사이로 각양각색의 아네모네 꽃이 둥둥 떠 있어 정원을 조화롭게 빛내고 있었다. 붉은색, 보라색, 흰색, 분홍색, 파랑색…. 이제 막 한여름에 진입하는 6월 말이라 그런지, 5월에 꽃피는 아네모네가 대부분 지고 드문드문 펴있었다.

정원 한가운데에 꽃잎이  떨어진 벚꽃 나무가 있었다. 신재혁의 기억에 있는 벚꽃 나무였다. 그 싱그러운 푸른 잎사귀가 드리운 그늘 아래, 낡은 목재 벤치 하나가 있었다. 둘은 그 벤치에 앉았다. 벤치 위에 얹은 신재혁의 오른손 위를 유성하의 말랑말랑한 왼손바닥이 살포시 덮었다.

“옛날 생각나네….”
“네가 악몽에 잠 못들 때마다 여기서 무릎 베게 해준거?”

신재혁으로서는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성하는 묘하게 어른스러웠다. 그 어른스러움은 신재혁이 밤마다 악몽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기에 충분했다. 불면증에 신재혁은 아침이면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는데, 그렇게 그가 괴로워할 때마다 유성하는 정원 벤치에서 신재혁을 자기 무릎 위에 누이며 머리를조용히 쓰다듬고는 했다. 그 편안한 손길과 속삭이는 목소리를 느끼고 있자면 머릿속이 멍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꿈나라로 빠져들고는 했다….

그 나이를 먹고도 어린아이한테 무릎 베게로 위로를 받다니. 물론 다른 사람이 보면 누나가 자기보다 어린 남동생을 돌봐주는 훈훈한 광경이었겠지만, 전생의 기억이존재하는 신재혁에게는 조금 쪽팔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린 유성하의 손길에 위로받고 안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그 친절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둘은 손을 포갠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안하고 안심되는 시간이었다. 유성하를 보고 있자면 정신이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으며 편안해진다…. 입가에 감도는 미소를 보면 전생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그의 연인, 활기찬 미소가 사랑스러웠던 엘프….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구나. 앞으로 자주 찾아오렴.”
“아, 응….”

신재혁의 얼굴이 흐물거리며 풀어졌다. 그는 방금 제 대답이 좀 바보 같지 않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녀의 반응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잠시 고민했다.

다행히 유성하는 그의 반응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성당에서 종이 댕댕 울리며 행복한 시간의 끝을 고했다.

“벌써?”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고해성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꽤 오래 지체되어, 둘의 해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이후 일정이 있었던 연유로 신재혁과 유성하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유성하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예배를 도와야했다.

신재혁도 이후 스케줄이 있었다. 정말숙 아줌마의 돼지국밥집에 방문해 아들의 귀환을 축하해주고 사건을 조사해 볼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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