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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6화 - 게이트 (6/72)



〈 6화 〉6화 - 게이트

과일집에서 선물용 과일세트를 하나  신재혁이 돼지국밥집 앞에 이르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다. 그래도 늦은 점심시간이라 유리문 스티커 사이로 보이는 식당 내부에 손님이 꽤 있었다.

문을 등지고 앉아있는 건장한 청년과  반대편에 앉아 청년의 손을 꼭 잡고있는 정말숙씨가 보였다. 정말숙씨가 청년의 어깨너머 들어오는 그를 보고는 아는 척을 했다.

“재혁 학생!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자주 오다니! 평소에는  달에  번 오던 사람이.”
“안녕하세요.”

정말숙씨가 자기 뒤를 향해 인사하는 것을 보고는 청년이 뒤를 돌아봤다.

날카로운 분위기의 사내였다. 두 눈꺼풀 사이로 평범하지 않은 눈동자가 있었다.깊은 회한과 피로가 비치는 꼴이 마치 60살 먹은 노인을 보는 듯했다. 만약 신재혁이 정말숙씨와  청년의 얼굴을 가린 채, 눈동자만 보고 어느 쪽이 더 나이가 많은지 찾아야 한다면, 분명 청년의 눈동자를 골랐을 것이다.

생각을 짐작할 수 없는 눈동자가 신재혁을 경계하며 그의 행색을 위아래로 흩었다.

“실종됐다던 아주머니 아들이 돌아왔다는 듣고 와 봤어요. 이거 과일 세트인데, 선물이에요. 저기 올려둘게요.”
“아이고,  이런 걸 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런데 우리 아들이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았어?”
“아아, 담당 경찰관이랑 친분이 있어서…. 어쩌다 우연히 들었어요. 납치범누군지 찾느라 바쁘시던데요.”
“아!  경관님이, 우리 재민이를 위해서….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곱구나.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녀가 탄성을 내지르며 감사함에 울먹였다. 10년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설움과 감동이 한꺼번에 복받쳤나 보다. 그때까지 침묵하던 아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너, 감시자인가?”
“네?”

뜬금없는 질문에 신재혁이 반문했다.

“과연, 순순히 인정하다니.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아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이제 와서 발뺌할 셈이냐?”

신재혁의 반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청년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거친 면으로 만든 반바지의 옷감이 스치며 뱀이 혀를 날름거리듯 스르륵하는 소리를 냈다. 마르지만 탄탄한 팔뚝 근육이 꿈틀거리며 신재혁을 압박했다.

그 기세를 보아하니,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정말  대  모양이었다. 시비가 붙었다고 생각했는지, 가게 안 손님들의 시선이 몰렸다.

‘실압근(실전압축근육)…. 상당한데.’

신재혁은심히 당황했다. 10년 동안 노예처럼 일했다길래 국방부에 신검 받으러 가면 직원들이 보자마자 공익 판정을 내릴 비실비실한 말라깽이를 상상했는데, 공익은커녕 당장이라도 특전사로 끌려갈 법한 인재가 있었다.

신재혁이 전생에 아무리 싸움에 이골이 난 성기사였더라도 현 몸상태로는 그에게 한방만 맞아도 녹다운일 터. 죽고 죽이는 싸움이면 몰라도,  덩치를 상처 없이 제압할 자신은 없었다.

그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정말숙씨를 쳐다봤다. 정말숙씨도 황당한  울음기 섞인 소리로 웃으며 아들을 말렸다.

“재민아, 이 형은 평소에 종종 들리는 친한 손님이야. 재혁군, 알고 있겠지만 여기는 내 아들인 김재민. 보다시피 아직 서투른 점이 많으니 우리 아들이랑 친하게 지내줘요.”

김재민은 자기 어머니와 신재혁을 몇 번 번갈아 돌아보더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신재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해해서 미안하군.  무례를 사과하지.”
“아뇨 괜찮습니다만….”

보통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감시자라고 생각하나?
신재혁은 그런 의문을 담아 정말숙씨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눈치챈 정말숙씨가 미안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10년의 어선살이의 부작용일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제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게만 해달라고 부처님 불상 앞에 엎드려 빌고 빌었건만, 마침내 집에 돌아온 아들은  가지 질병과 함께 귀환했다.

신체적으로는 청각 장애를, 정신적으로는 편집성 성격장애,  의심병을.

그녀는 목이 타는  물을 잔 들이키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찬찬히 설명했다.
그의 아들은 양쪽 귀를 다쳐서 소리를 듣지 못하며 입모양을 통해 말을 알아듣노라고. 그래서 억양이나 어조 같은 반언어적 표현을 알아채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의미를 받아들이노라고. 그의 아들은 골수 깊은 의심병으로 인해 처음 보는 사람을 믿지 못하노라고.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교류를 통해 점차 나아질 것을 믿노라고.

말을 마친 아줌마는 신재혁에게 잠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신재혁이 주문한 국밥을 준비하는 사이 두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배려였다. 물론 신재혁이 그 눈가의 물기를 발견했음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신재혁은 그녀가 앉아있던 빈자리, 그러니까 김재민 반대편에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그, 안녕. 네가 24살이지? 내가 한  형이니까 말 놓을게.”
“…그러던가.”

‘말투가 어째…. 불쌍한 놈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차은경 경찰관 알지?”
“차은경…? 아, 그렇군. 내 실종 사건담당자였던가.”
“그래, 그 인간. 내가 그 사람한테 네 실종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그래.”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다는 의지가 음성에 뚝뚝 묻어났다.
신재혁은  반언어적인 자기주장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메모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

그 순간.
신재혁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고 멈칫했다. 그의 직감이 강렬하게 경종을 울리며 경고했다. 아주 불길하고 파멸적인 예지를. 지구에서는 처음 느끼지만, 전생에는 죽음의 위기에서 몇 번이고 느껴본 그 감각. 신재혁은  파멸의 전조를 포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직후, 평범한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거대한 힘의 파동이 그를 강타했다. 워터파크의 파도풀에서 파도를 맞고 휩쓸리는 사람들처럼, 그의 영육이 거대한 힘의 파도에 강타당해 휘청거렸다.

“억..!”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파동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파동을 느끼지 못한 일반인들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형광등이 고장난 것처럼 빠르게 명멸했기 때문이다.

“아, 여기 식당 조명  이래?”
“밖에 다른 가게도  깜빡거리는 거 보면 정전 같은데.”
“에라이, 씨팔. 박주관  병신 새끼가 국무총리로 뽑히고는 되는 일이 없어, 되는 일이.”
“얌마, 이걸 왜 박주관 탓을 하냐? 발전소에서 뭐 잘못 건드렸을 공무원 잘못이지.”
“뭐야,  스마트폰 갑자기 꺼졌네. 방전인가?”

그 이상한 현상에식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제각기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신재혁은 신경 쓸 틈조차 없었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렀다. 신재혁은 그 파동의 정체를 알고 있다.

에덴의 구성 요소, 엘로아흐의 축복, 마법이라는 신비의 근원.

마나.

‘누구지? 어떻게 지구에 이런 마나 파동을. 그 콧대 높은 드래곤들조차  정도 양의 마나를 일으키긴 불가능할텐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신재혁은 그 생각을 강제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후폭풍이 일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마나의 유동과 관련이 있는지, 광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가로수가 쓰러질 듯 휘청거리고 충격파와 함께 식당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귓가를 휘젓는 광폭한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신재혁은 공기 저항을 거슬러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이 바람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았는지 모르겠으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김재민의 등판이 흔들리는 시야 속에 보였다. 그의 시선은 유리문 밖을 향해 못박혀있었다. 신재혁도 그의 시선 끝을 쫓았다.

식당 앞, 도로 한복판의 허공에 검은 점이 있었다. 그 점은 아주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는데, 그 팽창에 의해 공기가 급격하게 밀려나며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검은 점은 계속 자라고 자라 8층 건물 높이까지 닿는 거대한 구가 되었다.

높고 높은 건물의 숲 틈 사이로 검은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잦아들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에서 조심스레 나온 사람들이 그 거대한 구체를 보고 주위로 모여들었다.

신재혁의 사고가 충격에 물들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가 필사적으로 진실을 거부하려 애썼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구체는 아스팔트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한 높이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이리저리 부딪힌 자동차들이 보였다.
그 구체 때문에 길을 막고 있어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가지 못하고 정지해 있었다. 아니, 시동이 꺼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일대는 경적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 구체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은 명암과 원근을 무시하는 구체였다. 호수처럼 평평한 표면. 하지만 빛을 흡수하기만 하고 반사하지 않아 새까맣게 보이는 흑체. 물리법칙의 거부자.

“엘로아흐 맙소사….”

신재혁은 저것을 알고 있다. 지구에 있는  누구보다도 더. 모를 리가 없다. 전생에 지겹게 봐온 것이니까.

지옥문(Hell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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