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9화 - 수성守城 (1) (9/72)



〈 9화 〉9화 - 수성守城 (1)

“선배?”
“그래, 조수. 긴급 상황이야. 검은 구체, 인터넷에서 봤지?”
“CCTV로 봤어요. 관악구에 조그만 초록 괴물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덮치는 영상을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죠?”

신재혁이 빠르게, 하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짐작했겠지만, 저 검은 구체는 지옥문이고, 거기서 초록 임프라는 초록색 악마가 계속 튀어나오고 있어. 구체가 생기면서 국소적 EMP 역할을 했는지, 근처에 있는 전자기기는 박살나더군. 덕분에 내 스마트폰도 죽어버렸지. 지금은 간신히 도망쳐서 관악경찰서에서 전화하는 중이야. 경찰서 부근은 안전하더군. 적어도 아직은….”
“세상에, 역시 그 영상은 사실이었어….”
“관악산 위쪽, 그러니까 대학 쪽은 무사해?”

이유진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그녀는 곧 보안을 뚫고 서울대학교 통합관제센터 관리 서버에 접속할  있었다. 재빨리 스크롤을 내리며 다운된 시스템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교내에 망가진 CCTV나 전기가 끊어진 건물은 없는 것 같았다. 즉, 학교 내부에 지옥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네, 방금 확인해보니 학교 안의 전기 시스템은 멀쩡하네요.”
“좋아…. 불행 중 다행이군. 그래도 혹시 임프들이 거기까지 쳐들어갈지 모르니까  교실 같은데 입구 막고 기다려. 군대가 출동해서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집에 가지 말고 학교에 남아 있어.”
“알겠어요. 일단 편의점에서 식량부터 모아 놓아야겠네요. 저 과방에 계속 있을 테니, 중요한 정보 알게 되면 연락해줘요.”
“그래. 다른 사람들한테도 최대한 널리 퍼뜨려줘.”

딸깍. 전화가 끊어졌다. 신재혁이 등받이 상체를 기대며 한숨을 돌렸다. 다행히 모든 지인에게 연락이 통했다. 이제야 터질 듯이 불안했던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 같았다.

정문을 보니, 직원들이 문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쌓으며 입구를 막고 있었다.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몰라 어리둥절한 방문객들도 직원의 등쌀에 떠밀려 그 일을 돕고 있었다. 몇몇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안색이 새파래지며 그 일을 힘껏 돕기 시작했다. 아마 인터넷에서 임프가 사람을 죽이고 있는 영상을 본 모양이다.

잠시 후, 경찰서 텔레비전에서도 긴급속보가 흘러나왔다.

“긴급 재난 안내입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 검은 구체가 발생하여 그 안에서 괴생명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시민들께서는  밖으로 나오지 마시고, 실내에서 문을 잠근 채 군대가 상황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발생했다고 알려진 검은 구체의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바퀴벌레 떼처럼 아스팔트 바닥을 뒤덮는 초록색 파도의 영상. 그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이 육편으로 찢겨 사방으로 비산했다. 미적거리면서 앉아있던 사람들도 그제야 사태를 인지하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들 미친 듯이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창문을 막기 시작했다.

신재혁이  광경을 보며 인류의 대처가 빠르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구인들은 삼십분 정도 만에 악마의 침공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에덴에서는 첫 침공 때 근처의 국가로 소식이 전해지지 못해 인류가 큰 피해를 입었더랬다. 그리하여 인지하지 못한 악마의 기습에 세계수가 불타고 엘프의 왕국 에르젠하임이 멸망해 생존자들은 난민이 되었다고….

경찰서에 어느 정도 방비가 갖춰지자 상념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고질적인 우울증이었다.

‘악마가 지구까지…. 엘로아흐여, 정녕 에덴은 멸망하고 만 것입니까….’

아니다. 지금은 혼자 구석에서 빌빌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신재혁은 다시 정신을 다잡고는 상황을 점검했다.

지금 경찰서는 안전한가? 그렇다. 경찰서 정문과 창문을 막았으니, 임프의 근력으로는 뚫기 힘들 것이다.
임프들이 떼로 몰려와 입구를 뚫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지옥문에서 임프가 수없이 튀어나오고는 있지만, 이 멀리까지 임프가 도달한다면, 그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임프들이 개미 떼처럼 당도해 경찰서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겠나? 그 전에 군대가 출동할 것이다. 임프의 육신은 어린아이처럼 약하므로,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가 악마 떼를 충분히 학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김재민이 장비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호신용 조끼, 방검장갑, 방패, 진압복, 방석모, 진압봉 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가 장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몇몇을 챙겨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정말숙 아줌마한테 갔다. 자기 어머니가 악마의 습격에서 안전하도록 무장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신재혁은 옷 위에 진압복을 입고 경찰 방패, 방석모와 방검장갑을 챙겼다.

방어구는 든든하게 챙겼으나, 무기로 적당한 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진압봉, 경찰봉, 호신용경봉 등 봉 무기 종류는 많았으나, 이런 타격무기로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임프 떼를 상대하기 힘들다. 한 번에 정확히  마리를 죽일 수 있는 살상용 무기가 필요하다.

김재민이 챙겨  경찰 장비 중에는 권총도 있었으나,한 손에 방패를 들었기 때문에 두 손으로 권총을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사격을 하기엔 그의 허약한 근력이 반동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고아라 군대에 가지 않은 그는 사격 경험이 전무해 명중률도 현저히 낮을 터.

‘창, 창이 있으면 좋을 텐데.’

김재민은 주무장이  만한 장비를 찾아 경찰서 내부를 기웃거렸다. 창을 대체할  있는 물건이 없을지 살폈다. 사람들이 제각기 뛰어다니며 제 살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신재혁의 눈길이 창문 커튼에 머물렀다. 커튼을 매달기 위한 철봉. 길이가 길어 꽤 쓸만해 보였다.

신재혁은 그 봉을 떼어냈다. 속이 비어 가볍고, 철로 만들어 임시 무기로 사용하기 좋을  같았다. 신재혁은 봉 끝을 갈아 뾰족하게 만들었다. 모양새는 예쁘지 않지만,  쓸만한 창이 탄생했다.

신재혁은 오른손으로 창을 잡고 횡으로 휘둘러보았다. 나쁘지 않은 그립감. 자신의 체력으로도 충분히 휘두를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대충 내 준비는 끝났군. 가능하면 쓸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경찰서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대충 대비가 된 듯했다. 경찰들과 젊은 남성들은 경찰 장비를 착용한 채 바리케이드 너머를 노려보고 있었고, 장비가 없는 사람들도 제각기 가위든, 커터칼이든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날붙이를 하나씩 들고 뒤에 모여있었다. 김정수 경찰관은 의외로 침착하게 동료와 후배에게 지시를 내리며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아까는 어리버리 타더니, 의외로 유능하네. 위기 상황에서 침착해지는 성격인걸까. 훌륭하군.’

“어, 어, 저기 와요!”
“뭣?”

바리케이드 틈 사이로 유리문 밖을 노려보던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다른 경찰들과 신재혁이 비명을 듣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씨발! 경찰차! 경찰차가 괴물 떼를 몰아오고 있어요!”

과연, 경찰차 한 대가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경찰서 정문을 넘어오고 있었다. 아까 줄줄이 출동한 경찰차 중 한 대였다. 대부분 임프의 습격에 목숨을 잃고,  한 대만이 살아남아 탈출한 모양이었다. 그 범퍼에 초록 피와 살점이 가득 묻어있는 모습으로 보아, 복귀가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따라왔는지, 임프 떼가 경찰차 뒤를 따라 경찰서로 몰려들고 있었다. 신재혁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젠장, 이러면 바리케이드가 뚫릴지도 모르겠는데….’

“경찰이란 새끼가 시민한테 괴물을 끌고 와?”
“씨이발, 죽을 거면 지들 혼자 죽지, 우리까지!”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제각기 경찰차를 욕했다. 그때 달리는 경찰차 운전석에서 경찰 하나가 뛰어내려 경찰서 입구로 정신없이 뛰어왔다.

“저 사람 어떡하지? 여기로 뛰어오는데?”
“문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미친놈아! 그러다 괴물들 들어오면 우리까지 죽어! 열지 마!”
“그래, 저 새끼는 우리한테 괴물끌고  놈이라고! 죽게 냅둬!”
“그렇다고 살릴  있는 사람을 죽게 방치하자고? 니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고성과 함성이 오갔다. 생명의 위기 앞에서 사람들이 분열하고 있었다. 신재혁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아직 저 경찰과 임프 무리 사이 거리는  멀다. 바리케이드를 살짝 치워 경찰을 들여보낸 후 다시 입구를 막기엔 충분할 것이다.

신재혁이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바리케이드 옆으로 살짝 밀어! 입구가 열리게!  정도 거리면 경찰이 들어온 후에 다시 막을 수 있다!”
“그래, 경감님 말 들어! 다들  하면 민다. 하나, 둘 셋!”

김정수 경찰관이 신재혁의 말에 동조하며 부하와 동료 경찰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는 구호와 함께 테이블과 의자 무더기가 살짝 옆으로 밀려나 입구가 드러났다.  틈 사이로 도망치던 경찰관이 쏙 들어왔다.

“다시 문 막아!”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원상복귀시켰다. 성공적으로 도망친 경찰관이 경찰서 바닥에서 헐떡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줄 겨를이 없었다. 입구를 막은 직후 임프의 파도가 그 문을 덮쳤기 때문이다.

“밀어-! 문 열고 들어오지 못하게!”
“다들 힘 줘! 밀어-어어엇!!”

쾅쾅하며 임프의 몸뚱아리가 문에 부딪혔다. 사람들이 그 충돌력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의자와 책상의 더미를 밀었다. 선두의 임프는 문과 뒤의 임프  사이에 깔려 짓이겨졌다. 뭉개진 살덩어리에서 피와 체액이 유리문을 타고 흘렀다. 점점 더 많은 임프가 건물 앞에 도달해 문을 밀어대자,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유리문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시발, 버텨! 뚫리면  같이 죽는다!”

권총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괴물의 숫자를 줄여보고자 바리케이드 틈 사이로 총알을 박아 넣었다. 아까 도망치던 경찰도 그 대열에 합류해 미친 듯이 총을 쏴 갈겼다. 총알 한 방에 한 마리씩 임프가 죽어나갔으나, 습격에 참여한 임프 수가 너무 많아 바리케이드를 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미친 듯이 계속 총을 쏴 댔다. 물 밀  들어오는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김재민과 신재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신재혁은 균열 사이로 임시 창을 꾸준히 박아 넣었는데, 한 번 창이 균열 사이로 사라질 때마다 뾰족한 창끝에 피와 살덩어리가 묻어나왔다. 운용되는 미약한 신성력이 근육세포를 활성화하며 지쳐가는 체력을 보조했다.

신재혁은 틈틈이 창을 찔러 넣어 착실히 임프 수를 줄이면서, 창끝에 살덩어리가 달라붙어 창이 무거워질 때마다 한 번씩 창을 뒤로 휘둘러 지방 덩어리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가벼워진 창을 구멍 사이로 찔러 넣었다.

‘신성력을 써야 하나? 아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신성 주문은 쓰지 말고 겉으로 티가 안 나는 신체 강화만 사용하자….’

신재혁은 힘을 드러내야하나 고민했으나, 이내 최대한 힘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은 두려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성을 잃은 군중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예측할  없다.

김재민은 창문으로 들어오려는 임프들을 처리했는데, 특유의 체력으로 경찰서 1층 전역을 뛰어다니며 위태로운 곳을 커버했다.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는데, 경찰서 창고에서 압류한 물품을 뒤져 노획한 것 같았다.

창을 든 손을 내지르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힐긋 살피던 신재혁이 디펜스 게임을 떠올렸다. 디펜스 게임에서는 한  정한 후에는 위치를 바꿀 수 없는 유닛이 제자리에서 정해진 범위의 적을 섬멸한다. 그런 관점에서 김재민은 명백히 사기 캐릭이었다. 위치도 스스로 바꿀 수 있고, 공격 범위 제한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체력이 마르지 않는 사기 유닛.

‘디펜스 게임에 나오면 게임 재미없게 만드는 치트키라고 욕먹을 정도로 개연성 없는 무력이네….’

물론 같은 편인 상황에서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전력이었다. 그런 생각을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 임프의 수는 착실히 줄어갔다. 꾸준히 만들어지는 임프 시체는 바리케이드 앞에 쌓이면서 새로운 벽이 되어 주었다. 바리케이드 위쪽, 천장과의  사이로 삐져 들어오던 악마도 시체가 되어 그 조그만 출입구를 막아주었다. 사람들은 물량 공세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약한 희망을 느꼈다.

“좋아! 처음보다 명백히 압력이 약해졌어!”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조금만..!”

악마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인간을 죽이기는커녕, 결국 자기네들만 죽어 나자빠질 것이다.그들은 똑똑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교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악마 무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전략을 바꿨다. 각 개체가 너무나 비슷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었기에,  상황에서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뭐야…. 멈췄어?”
“어..?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않는데?”
“좋아! 드디어 포기했구나,  괴물 새끼들!”

사람들은 밀고 있던 바리케이드에서 압력이 느껴지지 않자 의문을 품었다. 일부는 습격이 끝났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재혁은 전생의 경험으로 이 잠깐의 멈칫거림이 절대 습격의 포기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아니다. 악마란 것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피에 미친 존재들…. 악마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순순히 물러갈 리가 없다. 무슨 속셈이지?’

직후 그들은 악마의 속셈을   있었다. 악마는  이상 앞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위로 향했다. 자기 동족의 시체로 계단을 쌓고 위로. 그러니까, 아무도 막고 있지 않은 2층 창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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