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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10화 - 수성守城 (2) (10/72)



〈 10화 〉10화 - 수성守城 (2)

악마의 습격이 끝났다고 믿지 않던 사람들도 한동안 바리케이드에서 압력이 느껴지지 않자 안심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은밀한 행동은 바리케이드 앞의 시체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서 내부 사람들이 악마의 계획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우연에 불과했다.

“어..? 위에서 악마가 떨어지는데?”

1층 창문 중 하나를 지키고 있던 한 여성이 창문을 가린 널빤지 틈 사이로 바깥 풍경을 관찰하다, 창문 위에서 떨어지는 악마를 목격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얼굴을 벽에 가까이 붙여 건물 위쪽을 바라보았다.

악마들이 시체로 쌓은 언덕을 타고 2층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조용한 범죄현장을 목격한 여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미친! 2층이에요! 2층으로 악마들이 넘어온다!”
“뭣! 2층, 다들 2층으로!”

사람들이 그 음모를 듣고 기겁하며 2층으로 우루루 달려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조차 아까워 헉헉거리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 외침을 듣지는 못했지만, 계단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김재민이 먼저 달리던 사람들을 제치고 2층으로 달렸다.

2층에 도착한 김재민은 가장 가까운 방문을 벌컥 열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칸 옆  창문을 통해 첫 번째 악마가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경찰서 입구 바로 위에 있는 방이었다.

“옆옆 방으로!”

두 칸 옆의 방문을 열었을 때, 악마들은 이미 네 갈래로 갈라진 발을 경찰서 내부로 딛은 후였다. 김재민이 달려가  첫 번째 악마의 머리를 잡고, 두개골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단검이 머리뼈를 젤리처럼 가르며 뇌를 헤집었다. 압도적인 근력이 그 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첫 번째로 침략에 성공한 임프가 혀를 빼물며 즉사했다.

그 사이 두 번째,  번째 임프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이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김재민이 두 마리를 처리하는 사이  마리 악마가 추가로 침입할 터였다….

“씨발, 벌써 들어왔어!”
“빨리 죽여-엇!”

다행히 백업이 도착했다. 김재민을 뒤따라 2층으로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경찰 갑옷을 믿고 있는지, 사람들은 용감하게 처음 보는 괴물을 향해 돌진했다. 1층에서 이미 괴물을 질리도록 죽이고 죽인바, 사람들은 그 조그만 괴물 하나하나는 그리 무섭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정의로운 몽둥이찜질이 쪼그만 몸뚱아리를 두들겼다. 양손으로 잡고 내리찍는 묵직한 한방 한방에 괴물들의 가냘픈 뼈가 부서져 나갔다.

“씹새끼드-을, 뒤져어-!”
“이 새끼 넘어졌다! 다굴해!”

뒤늦게 신재혁과 김정수 경찰관이 도착했다. 신재혁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상당히 잘 싸우고 있었다. 굉장히 잘. 대부분의 악마를 김재민이 처리하고, 살아남은 악마를 사람들이 상대했다.

뒤따라 2층으로 올라오던 악마들도 그 전력차를  수 있었다. 악마들은 한 명의강력한 수문장 때문에 정면으로의 돌파는 힘들다고 판단하고, 침입 경로를 분산했다. 일부는 계속 정면으로 들어가며 시선을 끌고, 나머지는 정면을 피해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옆방 창문으로.

다행히 악마들이 향한 방향은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가까운 쪽이었기에, 그 시도는 뒤늦게 2층으로 올라오던 사람들에게 쉽게 발각되었다.

“이쪽 방에도 온다!”

복도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목소리가 신재혁이 있는 방에까지 들렸다. 가장 공세가 거센 정면의 방은 김재민을 포함한 지금의 인원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신재혁은 김정수 및 다른 경찰들과 함께 옆방으로 뛰었다.

그 문제의 방에 도달하니 과연 악마 서너 마리가 이미  안에 포진해있었고,  뒤로  많은 악마가 들어오려 창문을 넘고 있었다.

‘우선  넘어오려는 악마부터 처리한다!’

신재혁은 신성력으로 강화된 각력으로 땅을 박찼다. 이미 실내로 들어온 정면의 악마들은 무시한 채, 창문으로 돌진했다. 방패를 들어 어깨 옆을 가리고,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체중을 실어 밀쳤다. 성기사 교본에 실릴 만큼 이상적인 방패 밀기! 그 충격에 유리창이 부서지며 올라오던 악마 대여섯 마리가 밀려 떨어져 아스팔트 바닥에 피떡을 만들었다.

신재혁의 비어있는 뒤를 향해 임프  마리가 뛰어들었다. 풍부한 실전 경험으로  기습을 당연히 예상한 신재혁이 등쪽으로 창을 휘둘렀다. 공중의 임프들이 크게 휘두른 창대에 맞고 굴러떨어졌다. 뒤따라온 김정수와 경찰 몇 명이 남은 임프에게 덮쳐들었다. 임프들은 곧 경찰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헉, 헉, 경감님 이제 얼마나 남았죠?”

김정수가 헐떡거리며 물었다. 신재혁은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면서 가장 많은 악마를 죽인 실력자였기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경찰들은 그를 따르며 의지하고 있었다.

신재혁은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직 적병의 수가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 시체 언덕이 3층까지 닿을 만한 수는 아니었다. 1층은 대다수 악마가 침입을 포기했기 때문에 1층에 남아있는 사람들로 충분히 잘 막을 수 있을  같았다. 따라서 2층으로 침입하는 악마만 막아내면 된다.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어. 2층만 막으면 된다! 조금만 힘내!”

한때 성기사장이었던 리더십을 발휘하며 신재혁이 경찰을 다독이며 이끌었다. 악마가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파수꾼 하나를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창문을 막을 수 있는 방패와 경찰 하나만을 남기고 그들은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이전 방에서와 같은과정이 반복되었다. 또 경찰 하나만을  채 무리는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

창문방이 하나씩 막힐수록, 악마의 침입 경로가 한정되면서 더 많은 수가 몰려들었기 때문에 막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창문을틀어막기 위해 경찰을 방마다 하나씩 배치하고  터에 일행의 수도 계속 줄어들어 방을 막기  어려웠다.

훌륭한 방검복 덕분에 일행은 사상자 하나 없이 무사히 마지막 방에 도착했다. 창문이 막히지 않은 마지막 방이었기에 남아있는 모든 임프가 이곳으로 몰렸을 터. 악마의 저항이 이때까지의 방 중에서 가장 거셀 것임이 틀림없었다.

“힘내, 마지막 방이다! 셋 세고 방에 들어간다. 하나, 둘…. 세엣-!”

쾅! 신재혁이 방문을 걷어차고 방문 안으로 돌입했다. 전신 방패로 정면을 가리고, 랜스차징하는 기사처럼 옆구리에 창을 끼고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 뒤를 따라 김정수와 경찰 둘이 방 안으로 돌격했다.

신재혁이 경찰 방패에 있는 반투명한 부분을 통해 정면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때문에 다음 순간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 옆에, 방 안에 임프가 한 놈도 없었기 때문이다.

“뭣-? 없다고? 그럴 리가..!”

신재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재빨리 고개를 틀어 뒤를 보았다. 그제야 모든 정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문에서 돌입하는 경찰들. 그리고 문 옆 벽에 딱 달라붙어 숨어있는 임프 무리.

신재혁은 고함을 질러 ‘함정이다-! 방 밖으로 빠져나가-!’라고 경고하려고 했다.  말보다 먼저 김정수의 입에서 경고가 터져나왔다.

“위! 위쪽!”

신재혁이 퍼뜩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 은밀하게 붙어있던 임프 무리가 신재혁에게 우루루 쏟아져 내렸다. 떨어지는 녹색 살결 너머, 천장에 손가락 크기의 작은 구멍이 여럿 보였다. 임프들이 발톱과 꼬리 끝을 박아넣고 천장에 매달려 대기하던 흔적이었다.이상을 눈치챈 적이  옆의 1차 매복을 눈치챘을 때 덮치기 위한 함정. 가장 강력한 적대자를 제압하기 위해 교활한 악마들이 생각해낸 이중함정이었다.

신재혁은 찰나에 그 습격을 눈치챘다. 전생이라면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면에서 그 얄팍한 기습을 부술 수 있었겠지만, 현재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위로 들려고 했지만, 돌진하느라 무게중심이 몸 앞쪽으로 쏠린 탓에 자세가 어정쩡했다.

‘시발, 좆됐다.’

이쯤 되면 힘을 숨기고 할 것도 없었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니. 하지만 신성 주문을 일으키기엔 아리아를 읊을 시간이 부족했다. 신재혁은 차라리 살을 주고 뼈를 취하자는 심산으로 방어를 포기하고 전력으로 창을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고쳤다.

달려가던 몸뚱이를 급정지시키기 위해 발을 거칠게 바닥에 내려찍으며 힘을 꽉 주었다. 가속도를 감내하는 무릎이 삐걱거렸다. 신성력이 무릎 연골을 감싸며 충격을 완화했다.  방은 악마에게 맞을지언정, 이 상태로 회전하며 창을 크게 휘두르면 피격 직후에 즉시 반격이 가능했다. 한 대만 버티고 공격 직후를 노리자는 생각이었다.

 생각은 실천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뒤쪽에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신재혁이 여태껏 마나를 감지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마나를 숨긴 상대의 경지와 기량이 신재혁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찰나에 신재혁은 자기가 오늘 하루만 도대체 몇 번이나 경악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불타-오르라!”

김정수의 손에 마나가 모이고 얽히며 화구가 생겨나더니, 떨어지는 임프 무리에게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장애물과 충돌한 불덩어리가 펑하고 터지면서 감히 자기를 가로막은 괘씸한 장애물을 불태웠다. 마력으로 구성된 화염이 다른 악마에게까지 옮겨붙으며 고기 태우는 냄새가 지글지글 풍겼다. 출발했을 때는 핏덩어리였던 무언가가 잿덩어리가 되어 땅바닥에 도착했다.

신재혁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 위로의 습격이 해결된 지금, 방 안에는 이제  뒤쪽 벽에 달라붙어 있다가 일행의 후방을 습격하기 위해 달려오는 임프 무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일행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은 신재혁이 축약된 아리아를 읊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삿된 것을 물리치는 광휘여-!”

신성 폭발 주문이 작렬하며 빛의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김정수와 경찰은 그 충격파를 맞고도 약간 휘청거릴 뿐이었으나, 그 충격파에 닿은 임프들은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신성 주문에 맞은 악마들은 시체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다.

몸 상태가 예전 같지가 않아 예상한 것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달려오던 임프들이 그 범위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아주 타격이 없지는 않았는지, 살아남은 악마들은 휘청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이상에 빠진 악마를 향해 남은 두 명의 경찰관이 뛰어가더니 곤봉을 휘둘러 모조리 때려죽였다. 신재혁은 재빨리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몰려오는 악마는 없었다. 드디어 습격이 마무리된 것이다.

일행은 숨을 고르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숨을 거세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면서 여경 하나가 말했다.

“와,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문 뒤랑 천장에 동시에 숨어 있는다고? 정수 선배, 방금 그거 어떻게 한거에요? 불덩이.”
“와, 25살까제 동정을 지키면 마법사가 된다는 소문이 진짜였네. 지린다.”
“뭐, 이 새끼야?”

다른 경찰이 농담을 건네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안전해졌다는 생각에서 나온 안도감이 생존자 사이에서 휘몰아쳤다. 경찰이 장난처럼 던진 질문은 신재혁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신재혁 앞에서 경지를 숨길 수 있는 자는, 자기보다 더 경지가 높은 사람뿐이다. 하지만 김정수가 그렇게 대단한 대마법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감지되는 미미한 마나량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제 갓 마법에 입문한 수준으로 보였다.

“그러고보니 경감님도 신기한 폭발 스킬을 썼죠?”
“스킬?”
“네. 경감님도 상태창이 보이지 않아요? 눈앞에 떠다니는 홀로그램. 방금 각성하면서 보이던데.”

김정수는 자기가 취미로 보는 웹소설 주인공처럼 각성을 했다느니, 각성을 통해 게임처럼 상태창이라는 것을  수 있게 되었다느니, 각성의 순간 체력이 전부 회복되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었다느니, 덕분에 빨라진 반사신경으로 자신의 스킬인 화염구를 떨어지던 괴물 무리에게 맞출 수 있다느니 하는 정보를 풀어놓았다.

“어, 응 그렇지. 나도 그래.”
‘각성에 상태창이라고? 개연성 좆박은 웹소설에나 나오는 작가 편의주의적인 설정이라니….’

신재혁이 당황을 숨기고 얼버무렸다. 다행히 경찰 방석모에 가려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훌륭한 오타쿠인김정수는 웹소설에서나 본 것 같은 상황이 현실에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각성을 통해 신성 주문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주문을 본래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기에,  사실을 숨기고는 김정수의 말에 맞장구쳤다. 김정수는 특별한 능력에 신이 나 후배들에게 재잘재잘 썰을 풀어냈다.

“와,  괴물들이 침을 뚝뚝 흘리면서 경감님한테 떨어지는데, 경감님 죽으면 우리 다 좆된다는 생각으로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랐더니 갑자기 몸에 힘이 넘치면서 기묘한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왔단 말이지….”
“근데 이 상태창이라는게 굉장히 불친절하네. 게임처럼 스킬창, 스탯창 같은 거는 없고 이름, 레벨,위업만 표시해주는데, 너무 대충대충 만든 것 같네. 심지어 위업은 텅텅 비어있네….”
“아, 밑에 문명 무력 수치 레벨 0? 이런 수치도 있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아래에 경험치 창같은 것도 있는데 소수점 단위로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네.”
“어? 근데 레벨 26? 원래 이랬던가…. 처음 각성했을 때만 해도 내 레벨이 25였던 거 같은데, 악마를 죽여서 레벨이 오른 건가? 하지만 그닥 차이는 안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 일방적인 수다는 후배 경찰이 그의 입을 틀어막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일행은 정면 방의 상황을파악하기 위해 방패 든 여경을 마지막 방에 남기고 김재민에게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신재혁은 이 기묘한 현상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상태창이라니…. 이런 작위적인 무언가가 현실에 자연스럽게 생겨날 리가. 분명 어떤 초월적 존재의 수작이다. 인류 전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누군가…. 지구의 신이라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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