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11화 - 군대 (11/72)



〈 11화 〉11화 - 군대

고민을 이어가는  성기사와  명의 경찰은 처음의 방에 도달했다. 방에는 이미 전투가 끝나 방이 시체로 가득했다. 사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부상자는 있었지만, 대부분 무사히 괴물을 물리친 듯했다.

창문 밖을 바라보는 김재민 주위에 특히 임프 시체가 많았다. 단순히 많다는 표현은 그 참상을 묘사하기에 부적절했다. 그래, 관용적인 표현대로, 악마의 시체가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산처럼 쌓인 임프 시체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피가 낮은 곳에 고여 녹조 낀 호수처럼 보였다.

‘진짜 괴물이군….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신재혁은 질린 눈으로 김재민을 쳐다봤다. 고른 숨소리가 신재혁의 귀에 들렸다. 김재민은 이 정도 운동은 숨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에게선 마나가 느껴지지 않으니, 각성도 안 한 일반인이 이 정도 학살 현장을 일으켰다는 의미였다. 김정수 말대로 상태창에 업적 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김재민이 각성했을 때 업적에 <악마학살자> 같은 업적 한 줄이 추가될 법하다.

목숨의 위협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상태창이니 스킬이니 하는 단어가 들렸다. 역시, 이쪽에도 특별한 힘을 각성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신재혁은 김재민 곁으로 가 서서 수고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두드렸다. 김재민은 대꾸하지 않고 손을 들어 정문을 가리켰다. 한쪽 귀가 피로 새빨간 임프 하나가 정문을 통과해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보이나? 임프들이 도망치고 있다.”

김정수가  소리를 듣고 환호했다.

“다행이군요! 저 지긋지긋한 괴물들, 정말 꼴도 보기 싫습니다….”
“아니, 기뻐할 일이 아니다. 이대로 두면 도망친 패잔병들이 더 많은 수의 원군을 끌고 다시 침공할 게 틀림없다. 다른 곳으로 악마의 눈을 돌려야 한다.”

김재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박했다. 신재혁은 이 의심병 말기 환자가 어째서 굳이 힘든 일을 자처하는지 생각했다. 얼마 걸리지 않아 신재혁은 답을 도출할  있었다.

뻔했다. 그의 행동 목적은 어머니의 안전. 어머니가 경찰서에 있는 이상, 경찰서를 위험에 처하게 두어선 안 된다는 계산일 것이다. 신재혁으로서도 김재민의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성기사로서 그는 무고한 시민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됐다….

“좋아. 그러면 경찰서를 지킬 병력을 두고, 각성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수 인원을 꾸려 따라가자. 경찰차를 타고 가면 먼저 도망친 괴물들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지. 만약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사이렌 소리로 어그로는  수 있을 테고.”

김재민이 반대했다.

“아니, 경찰차는 몸체가 너무 커서 쉽게 포위당할 거다. 그리고 한 번 휩쓸리면 살아남지 못해. 차라리 오토바이를 타고 가지.”
“오토바이도 탈 줄 아냐?  모르는데.”
“나도 모른다.”

신재혁이 황당하게 그를 돌아봤다.

“말은 타본  있으니, 오토바이도 금방 배우겠지.”

 사람의 말을 듣던 김정수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남은 인원을 이끌어야 하니 경찰서에 남아 있겠습니다. 일단 경찰 중에서 각성한 사람을 추려 따라갈 사람을 뽑겠습니다.”

신재혁과 김정수가 김재민의 의견에 찬동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모아 계획을 정리하고 자원할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인원을 모아 1층으로 내려갔다. 김재민은 자기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다.

1층은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경찰관 한 명이 팔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웅크려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발길질 당하고 있었다. 인파 외곽에서 정말숙 아줌마가 사람들을 뜯어말리고 있었다. 놀란 김정수가 펄쩍 뛰며 경찰서 안에서 이뤄지는 범죄현장을 막아섰다.

“잠깐!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전부 당장 그만두세요!”
“저 개호로 새끼는 그냥 뒤져도 돼!”
“그래, 죽어도 싼 새끼!”

악에 받친 군중이 소리 질렀다. 김정수가 폭행당하던 경찰을 돌아보았다. 그는 멍들고 코피로 뒤덮인 얼굴을 보고 군중의 분노를 이해했다. 그 사람이었다. 경찰차를 몰고 도망쳐 경찰서로 임프 떼를 끌고 온 사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김정수의 후배. 멍들고 붓기 오른 얼굴로 눈물을 질질 흘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살고 싶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저 얼굴을 보니 왜 우리가 저 새끼를 두들겨 패는지 알겠지? 알았으면 비켜!”

머리가 하얗게  노인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경찰에게 삿대질을 하며 지팡이를 빙글빙글 휘둘렀다. 아무리 김정수라도 자기를 막아서면 쓰러진 놈과 함께 지팡이로 두들겨 패겠다는 듯이.

“아이고,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 그래도 사상자는 없지 않습니까? 아까 보니까 이 친구도 괴물 습격 때 열심히 싸우던데 이 정도로 용서해 주시죠….”

경찰들이 성난 군중을 진정시켰다. 김재민, 신재혁, 그리고 다른 경찰들의 놀라운 활약으로 사상자가 없다는 점, 경찰이 말리기 전에 저 씹새끼를 두들겨 팼다는 점, 그리고 그 씹새끼가 바닥에서 질질 짜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 분노를 잠재웠다. 김정수가 후배를 달랬다.

“괜찮다, 성호야.  잘못이 아니다…. 출동했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 줘.”

코를 훌쩍이며 경찰, 박성호가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출동 신고를 받았을 때, 멧돼지 떼가 출몰한 거라고 생각하고 출동했는데, 신고지 근처에 도착하니 갑자기 초록 괴물들이 파도처럼 자동차랑 선배님들을 덮쳐서. 다른 분들은 다 휩쓸리고 저 혼자만 어떻게든 차에 타서…. 도망쳐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머리가 새하얀 상태로 여기까지 어떻게든 도망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괴물들이 끝까지 따라올 줄은 정말몰랐어요.”

청년이 펑펑 울며 자기 죄를 고백했다. 트라우마가 심하게 남을 듯했다. 동기 경찰들이 그를 감싸 안으며 괜찮다, 괜찮다 하고 달래주었다. 김정수는 상황을 정리하고자 시민들 앞에 섰다.

“여러분, 지금 저희가 첫 번째 파도를 물리쳤지만, 도망친 괴물들이 언제 증원을 해 올지 모릅니다. 다행히 괴물들이 사이렌 소리로 잘 유인되는 모양이니, 저기 신재혁이랑 김재민이란 친구가 몇 명을 추려 차를 타고 괴물들을 다른 곳으로, 경찰서에서 최대한 떨어지게 유인하려고 합니다. 아주 위험한 계획이 될 테니 지원자를 받겠습니다. 자기가 이번 전투에서 특별한 힘을 각성했다는 사람만 지원해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서에 남아서 제 지시에 따라 행동해 주십시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김정수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고, 다시 악마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사람들은 대체로 계획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스스로 각성자라고 밝힌 용감한 시민  명이 손을 들고 이 계획에 자원했다.

“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얼추 계획에 참여할 인원이 선정된 가운데, 누군가 TV를 가리키며 얼빠진 목소리로 토했다. 뉴스 채널이었다. 긴급 기자회견에서 신임 국무총리 박주관이 국민들을 향해 선언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군대가 발 빠르게 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과 가족과 재산은 안전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외출을 삼가시고 군인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뒤이어 지역별로 무슨무슨 부대가 어디어디로 출동하고 있다는 상세한 정보가 표시되었다. 신재혁은 관악구 쪽으로는 어떤 부대가 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주둔한 제52보병사단, 별칭 화살부대.

누군가 인터넷을 보고는 다급히 리모컨 버튼을 눌러 채널을 돌렸다. 갑자기 뉴스 화면이 전환되자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욕을 토해냈지만 전환된 화면을 보고 곧장 침묵했다. 익숙한 도로가 화면에 비쳤다. 관악구 봉천동 거리였다.

전진하는 전차와 군용 트럭들. 벌써 봉천동까지 오다니? 신재혁의 예상보다 재빠른 진군이었다. 군장성 출신인 박주관의 힘일까? 아니면 자기가 남긴 메시지를 확인한 미스터 B의 조치일까? 어느 쪽이든 신재혁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방송국 헬리콥터가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그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여기자가 세찬 바람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상황을 중계했다.

“….여기는 관악구 봉천동 상공입니다. 군부대가 정체불명의 검은 구를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구에서는 여전히 작은 괴물들이 물밀 듯이 빠져나오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 지금 막 화살부대가 괴물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기자가 긴장을 숨기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마이크로 증폭된 목넘김이 경찰서 안에서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괴물의 파도가 군대를 휩쓸기 위해 돌격했다. 그리고 동시에 화면 속의 군대도 발포를 시작했다. 기관총과 포탑이 불을 뿜었다.

“군대가, 군대가 괴물들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군대의 화력에 괴물들이 말 그대로 찢겨나가고 있습니다! 지성이 낮은지, 수를 믿고 있는 것인지 괴물들이 자꾸 돌격하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대가 괴물을 정면으로 깨부수고 있습니다.”

적에게는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전무했기에, 군대는 현대전의 기본인 참호도 파지 않고 적을 학살했다. 구석기 시대 원시인과 전쟁하는 것처럼 압도적인 양상이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임프무리가 한 줌의 핏물으로 변하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군대가 경계 태세를 갖춘  검은 구체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마주치는 임프 무리를 족족 밟아 죽이면서. 사람들이 인류의 승리에 환호성을 지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신재혁은 전율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허탈하면서 기쁜 모순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 끔찍하고 진저리나는 악마들이 저리 쉽게. 전생에저런 무기가 있었더라면, 하다못해 정보 전달이라도 빨랐더라면….

군대는 이윽고 첫 번째 구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구체 아래는 동족의 발에 밟혀 죽은 임프시체가 짓이겨져 있었고, 구멍은 꾸준히 악마의 군세를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번에 쏟아내는 악마의 수는 처음보다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마치 지옥의 병사 수가 부족해진 것처럼.

신재혁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일주일 밤낮 내내 군세를 쏟아내던 에덴의 지옥문을 떠올리며 의아해했다.

‘이상한데…. 이렇게 빨리 악마의 수가 부족해졌다고? 설마 에덴의 인류가 악마를 대부분 물리친 것일까? 악마는 에덴을 포기하고 다른 땅을, 지구를 찾아 침공한 것이고…. 아니,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다.’

어느새 군대는 부근의 잡졸을 모두 쏴죽이고 지옥문을 포위했다. 자리를 잡은 군인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저주받은 구멍을 점사했다. 포탄이 터지며 아스팔트 조각이 튀었다. 전차가 쏘아낸 포탄이 지옥문 안으로  들어가더니, 몇 초 후 화염과 열풍이 구체 밖으로 터져나왔다.

바퀴벌레를 어떻게든 박멸해버리기 위해 장롱 아래로 살충제를 과하게 뿌려대듯이 게이트 안으로 포화가 쏟아져 내렸다. 강력한 폭음이 구멍을 먼저 빠져나오면 그 뒤를 쫓아 지옥을 빠져나온 화염 폭풍이 성대하게 몰아쳤다. 화재를 진압하려 물줄기를 쏴대는 소방관처럼 화염 폭풍을 잠재우겠다는 듯이 군인들이K2 소총을 갈겨댔다. 소나기보다 촘촘한 탄막이 구멍 안으로 쏙쏙 들어가며 보이지 않는 적을 쏴 죽였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검은 구체는 어떤 사소한 반항도 하지 않고 블랙홀처럼 일방적인 폭력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화력을 퍼부은 지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마침내 검은 구체가 반응을 보였다.

더 많고 더 강력한 적을 쏟아내리라는 신재혁의 예상과 달리, 검은 구체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피격면적이 자꾸 줄어들자 아군을 향한 오인사격을 방지하기 위해 군대가 포격을 멈췄다.

10m, 7m, 3m…. 지옥문이 자꾸 작아졌다. 본래  구체가 점거하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의 공기가 이리떼처럼 달려들며 소용돌이쳤다. 어느덧 주먹 크기의 공으로 쪼그라들었고, 그 공조차 이내 좁쌀으로 변하더니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졌다. 갑작스런 소멸의 후유증으로 폭력적인 회오리가 일대를 휩쓸더니 곧 얕은 산들바람으로 화해 소멸했다.

“어..?”

얼빠진 신재혁의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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