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3화 - 용사 (13/72)



〈 13화 〉13화 - 용사

“시발 다 빨리 타! 후퇴한다, 후퇴한다!”

간부들이 병사를 트럭에 태웠다. 그들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몰살당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병장도 다급히 군용 트럭에 올랐다. 전부대가 왔던 길을 따라 후퇴하기 시작했다. 점점 검은 구체와 거리가 멀어졌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거인은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였다.

현세에 완전히 강림한 악마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아귀를  번 쥐었다 폈다 했다. 빛나는 눈과 입이 히죽 휘어졌다. 악마 같은 웃음이었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전투 함성을 내질렀다.


[F̶̫̗̼̤̩͈̤̀ǫ̴̢̛͚̪̥̠͈͓̫̹͖̲̅̋̈͌̔̄̂̒̓̈̓̋ŕ̶̭̱̫̠̬͚͇͙̩͓̫ ̸̢̙̲̙͙͙̞̥͎̥̥̜͓͇͑͛͌̑̾̃̾͋͂̑̇̂̓̾͜͠y̷̢͍͕̞͔͕̗̪̦̘͓͍͊͆͌ͅơ̶͚̙͍͔̤̘͚̰̈́̽̀̆́͑͗̓u̸̢̗͉̙̫̫̫͓̣̙̺͍͛ṙ̸̡̛̪̝̮̻̱͌̆̾̓͗͑͌͒͒̓̊̏͝ ̸͈̼̘̣̥̪͙̖͕͇̗̖̻͑̃͠͝ḿ̶̖͇̗̬̘͔͙͕̻̝̖̦͛͂͋̑̂̅́͑̄̓a̸̛̼͈̞̥͙͖͕̯͋̃͐̈́̎̃̀͗j̵̧̨̝͓̱̤̮̟̟͖̤̙̙͙̈́̍͘ȩ̴̘̟̖̾͐̎̐̿̎̋͒͘͝ś̴̛̤̗͚̺̦͔̦̤͖̠̓̅͑̍̆̌̓͌t̴̡͕͓͉̫̉́̐͑͗͘y̵̢̡̛̹̯̤͍̥̳̪̼̎̿̽̊̉̾͝,̵̲͈̼̯̒͋̿̈́͂̏͠ ̸̖͍̈́k̸̨̨̝̻͉͍͔̰͍̳͍̜̰̥̣̈́͋͆̑͂̈̚ì̸̡̛̯̟̓̐̽̿̽̋̏͛n̵̡̢̙̝̪̰̠͚̞͕̣͆̅͒̈́͗̈́̊̔͜͝g̴̨̛̱̮͙̰͍͈̫͌͌̉̈̿̒̏̈́̚̕ ̸̗̼̟͕̑̔̅̓̏̚o̶̤̖̫̟͋͆̈̑̆̕f̴̡̨̨̧̝̮̲̳̳̗̺̪͙̼̣̾̓̋̃̉̊́̋̌͝͠͝ ̸̢̱̣̩͕̼̜̱͎̃̒̌̽̐͊͑̕t̷͙͈̻͓̪̦̱̂͆h̸͙̻̬̗̼́̒̔͝ȩ̷̪̘̐̉̈́̂̂̾̈́̔̿̏̿͘ ̵͎̮̺̀̄̈́̃̄̎͝ḧ̷̡̡̯̼̣̠̫͉̪̪̹̾͌̈́̚ͅę̵̘̪͎̱̣̎̆͑̉͒͋̄̍͠ľ̴̡͖͉͚̘͍̾̐̇̒͑͑̏̉͝l̵͔͔͔̱̠̯͒͒̋̆̽̉̀̎̕͠͠-̴̡̼̮̖͍͕̫̠̜̮͚̰̫̫͆̕ͅ!̷̟͓͠!̵̧̣͔̬̰̺̲̮͇͕͖̭̩̈́͑]

콰아앙-!

크게 부풀어오른 폐가 한순간에 수축하며 입에서 열풍이 터져나왔다. 거인의 성량에 합당한 끔찍한 소음이 군대를 휩쓸자 병사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거인의 입에서 용암이 침처럼 튀며 주위의 차량과 도로를 녹였다. 급격하게 돌풍이 일자 전장을 녹화하던 방송국 헬기도 휘청거리다 급히 자리를 피했다.

“끄으악!”

 병장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꽉 감았다. 뜨거운 공기가 입과 코 속으로 파고들어 괴로웠다. 기도가 바짝 익을 것만 같았다.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김 병장이 심각하게 탈영을 고민했다. 여기 있으면 그대로 죽을  같았다. 그리고 목숨줄이 그이느니 빨간줄이 그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씨발 탈영할까? 탈영할까? 탈영 각인가?’

불행히도 악마는 그 선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현세에 알린 악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스팔트에 박힌 오른발을 떼어 위대한 지옥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눈이 깊게 쌓인 도로 위를 걸으면 그러하듯이 땅에 닿은 오른발이 아스팔트를 녹이며 푹 파고들었다.

악마는 곧이어 왼발을 움직였다. 다음엔 오른발을, 그리고 다시 왼발을. 용암으로 이루어진 발자국을 남기며 불타는 악마가 군대를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거인의 행동은 느릿했지만, 매우, 정말이지 긴 보폭은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잡기에 충분했다.

악마의 움직임에 따라 불꽃이 체액처럼 튀며 건물과도로를 파괴했다. 하나하나가 각성자의 파이어볼보다 훨씬 강력했다. 거인의 전진을 잠깐이라도 저지하기 위해 전차들이 후퇴하며 포를 쐈다. 몇몇은 무릎을, 다른 몇몇은 거인의 얼굴을 노렸다. 어느 쪽이든 무의미한 발악으로 돌아갔다. 아니,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의도와 다르게  포화는 적의 힘이 되었다.

결국 거인은 도망치는 군대의 말미를 따라잡고 말았다. 거인이 후퇴하는 차량이 밀집된 곳에 발을 내리찍었다.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족치려는 속셈이었다. 군인을 실은 운전병들이 다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길가의 트럭은 대형을 이탈해 어떻게든 골목 안으로피신했다. 중앙의 트럭은우왕좌왕하다 서로 부딪히며 뒤엉켰다.  위를 거인의 발바닥이 덮쳤다.


[Ḅ̷̓̅̐͂̽͐͆u̴̧̩̮̣̩̜̬͇̭͌̅͆͐̉͆̈́͒̈́͒ŗ̵͙̙͓̝͙̟̮̲͚̆̿͊̋͆̒̽͘͜͝͝ṇ̸̡̛̛͙̗̟̜̮̺̣̩̖̣̥͉̔͊͗̊̿͊̀̿̽͝ͅ!̴̬̹̜͓̺͙͕͍͈̬̩̾͌̌̈́̇̉̒̑͐͝]


콰-아아앙!

불타는 발에 닿은 철제 트럭이 순식간에 용암으로 녹아내리며 폭발했다. 그 폭발과 녹아내린 도로는 주변 다른 차량의 발을 묶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차량은 거인이 노리기 쉬운 표적이 되었다. 거인이 거듭해서 발을 굴렀다. 어린아이 같은 장난스러운 발놀림  번 한 번마다 수십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후위 차량들이 목숨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전방의 차량들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었다. 거기엔 동료를 구하겠다는 긍지도, 명예도 없었다. 단지 저 불합리한 재앙에서 도망치기 위한 겁먹은 피식자만이 있었다.

악마가  모습을 보았다. 악마는 지금 자기 손아귀에  잡힌 사냥감을 마무리하기보다는 도망치는 사냥감을 잡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이대로 전방의 쥐새끼들을 쫓아가면  틈을 타 지금 잡아 놓은 사냥감들이 도망갈 것이다. 그리하여 거인은 한 가지 꾀를 냈다.

거인이 고개를 숙여 땅바닥에 자기 검지와 중지를  꽂았다.주위에 있던 생존자들이 기겁하며 두텁고 뜨거운 손가락에서 멀어졌다. 악마는 돌바닥에 꽂힌 손가락을 그대로  움직여 선을 그었다. 뒤엉킨 트럭과 전차, 생존한 군인들을 가두도록 원형으로. 그리하여 용암이 흐르는 도랑이 완성되었다.

악마는 자기가 만든 울타리를 보며 흡족히 웃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군대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김 병장은 다시 자기네를 쫓아오는 거인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이라도 탈출하면 안 쫓아오지 않을까? 그런데 달리는 자동차에서 어떻게 떨어져? 게다가 자동차보다 빨리 거인한테서 멀어질 수 있나?

거인이 금방이라도 트럭을 덮칠 듯이 손아귀를 펼치며 손을 쭉 벋었다. 떠나는 연인을 잡으려는 것처럼애처로운 몸짓이었지만 그 누구도 거인의 몸짓에서 낭만과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질척한 증오와 집착, 그리고 광기가 불타는 눈구멍 속에서 일렁거렸다.

거인은 기어코 도망치는 군대 끝에 닿았다. 거인은  몸을 던져 벌레들을 덮치려는 듯,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숙였다. 안그래도 거대한 얼굴이 더 크게 보였다. 이제  따라잡혔다고 생각하고  병장의 눈이 절망에 물드는 순간, 거인의 다리 사이로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경찰차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천장 위에  있는 미친놈도.

***


“겨우 따라잡았다.”

시속 100km의 바람이 신재혁의 얼굴을 떄렸다. 그는 달리는 경찰차 천장 위에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아까와 달리 오른손의 창과 왼손의 방패를 바꿔 들었는데, 왼손에 든 창은 운전석 창문으로 집어넣어 핸들을 미세하게 조작하고 방패로는 무게 중심을 조절해 천장 위에서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숙련된 서커스 단원조차 불가능한 묘기를 펼치며 신재혁은 거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고위악마가 틀림없었다. 불행히도 신재혁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임프들은 고위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던 것이다.

‘방송국 헬기는 없고, 군인들은…. 위험!’

악마가 도망치는 군대를 덮치려 무릎을 굽히고 있었다. 저대로 가다간 부대가 전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저 도약을 저지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신재혁이 현재 자신의 상태에서  수 있는 신성 주문을 생각했다. 수많은 주문을 알고 있었으나, 신성력 사용이 제한된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문들로는 고위 악마를 물리치기 역부족이었다.

신재혁은 절망적인 상상을 떨쳐내기 위해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적어도 악마를 귀찮게 함으로써 군대가 도망칠 시간을  수는 있으리라.  후에는 자기를 쫓는 악마를 피해 지옥문 속으로 도망치면 된다….

‘이렇게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는데 돌아보지 않는 건가? 하긴, 귀가 불타고 있는데 소리를 들을  있을 리가 없나.’

다행히 군대를 쫓느라 정신이 팔린 악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이 실수하지 않는 한, 첫 번째 기습은 반드시 명중할 것이다. 달리는  위에서 성기사가 아리아를 읊었다.

“빛이여-”

성기사가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주문 중 하나. 신성 무기 강화 주문이었다. 신성력이 신재혁의 창을 감싸며 은은하게 빛났다. 신재혁은 더욱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자기가  번에 쓸 수 있는 한계치까지. 빛이 폭발적으로 강해지며 철 막대기를 휘감았다.원래 길이 보다 8척은 길어진 성창이 휘황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흐읍-!”

신재혁이 성창을 든 왼 어깨를 뒤로 젖혀 악마를 겨냥했다. 말을 타고 랜스차징하는 중세 기사처럼 질주하는 철마 위에서 성기사가 창을 장전했다. 노리는 곳은 구부러진 무릎 아래, 피부를 감싼 불이 유독 약한 부위. 가장 취약하리라 판단되는 왼쪽 오금이었다.

신재혁이 남은 신성력을 끌어모아 왼팔을 강화했다. 왼 어깨와 가슴근육이 동시에 수축하며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궤적을 그리겠다 판단한 순간 창을 놓았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경찰차 위에서 쏘아진 성창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거인의 오금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성기사의 손을 벗어난 성창이 빛조각을 흩뿌리며 반짝이는 궤적을 그렸다.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투사체는 깔끔하게 제 목적지에 안착했다. 투콰앙! 거인의 무릎 안쪽까지 파고든 성창은 신성력을 폭발시키며 악마의 다리 근육을 헤집었다.

[Ą̷̳̩̟͓̖͊̓͐͊͋͂́́̿̄͑̔̕̚͘a̵̺̍̊͐͐͂̐̕a̷̢̮͙̜̙̤̯̗̘̻͙̮̍̃̓̈̈́̎̈̐̀͑ą̵̙̹̦͗̅̓͠a̸̛͕̦̙̜̝̿͊̏̾̂̉̌̒r̶̫̤̲̞̤͈̔̃̿͂͐͛̚r̶̬̻̩̜̦̦͒̉̈́̐͜ͅg̶̢̨̛͚̪̖̰̻̬̀̄̆̀g̸̮̼̭̃̈́̓̈͘g̶͖͚̣̱̪͂̌̾̑̓g̷̨̡̩͕̮͈̼̈́͑̏͐̒͝͠g̸̣̰̩͇͔̩̹̘͖͕̞͙͘͜͜ͅġ̴̡̨͉̬̹̰̬̻̮̘̙̤͉̾͗̏̎̅̀͂̂̒́͗̂̑̓g̷̘̾͂̇͂̈̅͘͠ĝ̸͎̺̤͆̇̎̽́͂͘͝g̴̼̈̎̓͋̆̅̔̓͗͂̈́͘͜h̷͔͈͓̍͆͂̕h̶̛͙̞̤̘̭͔̣̳͎̤̠̫̯̲̰̐͋-̸̡̘̯͚̗͍̬̗̯̘͓̤̣̲͛͊̾̆̈́͆̽̐̿̀̚!̷̙̱͐̈̓͊̌̆̎͗̾̎!̸̨̡̨̹̼̖̙͌̌̀́̎̑̄̕]

악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현세에 강림한 뒤 처음으로 입은 피해이자 처음으로 겪는 고통이었다. 빠르게 주위의 화염을 흡수해 너덜너덜해진 무릎을 임시로 수복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벌레를 찾아 악마의 고개가 돌아갔다.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급히 유턴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악마는 그것이 자기를 공격한 범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도망치는 군대를 뒤로하고 그 벌레를 쫓아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거인의 절뚝이는 걸음걸이조차 소인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빨랐다.

벌레가 자기 공격 범위의 끝자락에 닿자, 한시라도 빨리 벌레를 처리하고자 악마가 몸을 날렸다. 거대한 몸집이 공중에 잠깐 떴다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졌다. 경찰차를 잡기 위해 팔을 쭉 뻗은 채였다. 마치 바닥을 향해 스파이크를 하는 배구선수처럼 보였다.

“이런 씨발!”

신재혁이 사이드미러로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하더니 기겁하며 문을 열고 경찰차에서 뛰어내렸다.    불타는 손바닥이 경찰차를 때리자 차체가 모기처럼 찌뿌러지며 폭발했다. 화염이거인의 손바닥에 흡수되며 무릎의 상처를 조금 치유했다.

신재혁은 겨우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지만, 일어서지 못하고 땅바닥을 굴렀다. 거인의 땅바닥 다이빙으로 인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일대가 흔들리고 바닥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씨발, 무식한 파이어펀치 새끼….”

겨우 균형을 잡고 몸을 일으키자, 바닥에 누워 자기를 노려보는 악마의 불타는 눈구덩과 시선이 마주쳤다.

‘좆됐다. 이제 어떻게 튀지?’

물론 악마는 자신의 적이 다른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바닥의 먼지를 쓸 듯이 불타는 팔로 바닥을 휩쓸었다. 아스팔트와 나무와 우체통과 주차된 차를 뭉개며 팔이 다가왔다. 도망치기에는 팔이 너무 빨랐고, 위로 점프해 피하기에는 거인의 팔뚝이 지나치게 두껍고 뜨거웠다.

“인생씨발빛이여-!”

신재혁이 좆됐음을 깨닫고 신성력을 쥐어짜내 경찰 방패와 전신을 강화했다. 자신이 살  있을지 죽을지는 이제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전신 방패 뒤에 쪼그려 몸을 숨기고 신에게 기도했다.

곧이어 경찰 방패가 중심부부터 움푹 파이며 찌그러지더니,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거대한힘이 그를 강타했다. 말 그대로 달리는 기차에 얻어맞은 듯한 파괴력이 전신을 덮쳤다.

‘어억-’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신재혁의 몸이 총알처럼 뒤로 튕겨졌다. 몸이 땅에도 닿지 못하고 공중을 일직선으로 날아가다 건물 외벽에 세게 부딪혔다.

“컥!”

몸뚱아리가 바닥에 떨어져 널부러졌다. 방패로 가리지 못한 등을 위주로 강화해 즉사는 면했지만, 온몸의 뼈가부러지고 장기가 파열돼 심각한 상태였다. 다 부서진 경찰 갑옷 아래로 핏물이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신재혁은 필사적으로 신성력을 운용해 육체를 회복하고자 했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시야는 붉고 정신은 흐릿해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벌레를 처리한 악마가 몸을 일으켜 먹잇감을 쫓기 위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시야가 자꾸 좁아지고 있었다. 건물 외벽에 기대 몸을 일으키려 노력했지만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래. 여기까지인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본 같은 목소리였다. 신재혁이 필사적으로 의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의지에 따르지 않고 자꾸만 좁아지는 눈꺼풀 사이에 녹색으로 물든 나이키 운동화가 비쳤다. 그 형상을 마지막으로 신재혁이 의식을 잃었다.

***


녹색 나이키 운동화의 주인이 어두운 골목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며 입을 열었다.

“기절했나? 이능이 없었을 이 세계에 신성력을 지닌 놈이 감히 어머니 주위에 있길래 나를 노린 감시자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나쁜 놈은 아니었군. 단순히 엘로아흐의 사랑을 받는 영혼인 건가. 여전히 수상한 점은 많지만….”

신재혁이아는 사람이었다. 김재민. 그가 신재혁을 향해 손을 뻗더니 그 손앞으로 빛이 모였다. 신성력이었다.

“엘로아흐여, 당신의 손길로 종을돌보소서….”

치유 주문의 아리아였다. 상당한 숙련자인지, 축약된 아리아임에도 불구하고 신재혁의 치명적인 상처가 눈에 띄게 빠르게 아물어갔다.

“내가 없는 동안 어머니를 신경  준 보답이다. 대가로는 충분하겠지.”

그 모습에서 눈을 떼 거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쩔뚝대며 필사적으로 군대를 쫓아가는 불의 거인. 시야 한구석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점멸했다.

“상태창.”

다른 각성자들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보스 메시지가 떠올랐다.

「 ===

두려워하라!

지옥에 흐르는 용암 강의 주인, 불타는 대지의 영주가 현세에 강림했으니.

선봉장으로서 마땅히 인간의 대지를 짓밟고 지옥의 깃발을 꽂아 왕에게 영광을 돌리리라.

그의 이름은 브함-사르닥이요, 첫 번째 왕의 변경백이라.

=== 」

“하. 보스 메시지? 이젠 이런 것도 만들었나. 그보다 용암 강이라…. 요전번의  강을 말하는 건가. 꽤 거물이었군.”

그가 군대의 포격을 흡수하며 다리의 상처를 회복하는 거인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이나 군대가 악마를 처리했다면 내가 움직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필 현대의 무기체계와는 최악의 상성을 가진 악마가 나와서는. 귀찮아졌어.”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저 악마 하나에 의해 대한민국이 멸망하겠지.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악마를 저대로 두면 결국 어머니가 위험에 처할 테고. 김재민이 혼잣말을 하며 파괴된 거리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 세계에 돌아오고 나서는 어머니를 모시며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계획이 무너져 버렸군.”

도로 중앙에 도달하자 김재민이 걸음을 멈추고 악마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어쩔 수 없지.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김재민이 가슴 높이까지 양손을 들었다. 어깨 간격으로 벌려진 채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간절히 바랐다.

‘오라.’

김재민을 주위로 강렬한 돌풍이 불었다. 바람은 김재민을 주위로 휘몰아치며 거대한 폭풍이 되었다. 폭풍은 하늘까지 닿아, 구름을 몰아왔다. 폭풍 주위로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뭉쳐 먹구름이 만들어지며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하늘이 어두워지자 사냥감을 쫓던 거인이 그 현상의 원인을 찾아 뒤를 돌아봤다. 작고 작은 인간 주위로 막대한 신성력이 모이고 있었다. 거인이 무심코 뒷걸음칠 정도로 막대한 신성력이.

김재민의  손 사이, 허공에서 빛이 뭉치더니 길쭉하게 늘어났다. 빛의 막대는 이내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김재민의 손이 성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빛이 조각조각 깨지며 늘씬한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기엔 담백하지만 고결한 기품이 흐르는 양손검.

고위 악마는 자신이 일순간 벌레에게 공포를 느낀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 그 수치는 자연스럽게 분노가 되었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하고 적과 자신의 격차를 망각하게 만들었다. 왼 무릎에서 올라오는 고통조차 잊고 거인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안긴 벌레를 불태우기 위해서. 거체가 땅을 흔들며 달렸다. 벌레들과 놀 때와는 달리 진심을 다해 최고 속도로 달렸다.

김재민이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일반적인 상단세보다 더 높이 세운 검끝이 먹구름의 중앙을 가리켰다. 김재민이 신성력을 운용했다. 검에 힘을 넣고, 넣고, 또 불어넣었다. 회오리치는 빛의 격류가 검을 감싸 오르며 계속 커졌다. 빛기둥은 성검의 검신을 타고 오르다 계속 거대해지며 회오리치는 먹구름 중앙에 닿았다.

거인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불타는 몸뚱아리가 점점 커지더니 김재민의 시야각 전체를 차지하며 하늘을 가렸다. 공포를 숨기기 위해 악마가 소리를 지르며 김재민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김재민의 세계는 고요했다. 그의 귀는 어떠한 소리도 담지 못했기에 그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폭풍의 포효도, 악마의 절규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흑백의 세계에서 성검을  용사가 악마 앞에 오연히 서 있었다.

천천히 떨어지는 빗방울이 팔목에 닿아 더 작은 물방울로 부서졌다. 김재민은  감각을 느꼈다.극도로 집중한 세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어떤 위대한 악마조차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미터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주먹을 바라보며 김재민이 조용히 읊조렸다. 스스로에게 하는 진언, 자신의 역할을 확신하고자 하는 자기암시.

“용사란, 눈앞의 악을 베는 자.”

말을 끝내자마자 김재민이 검을 든 손을 내리쳤다. 거대한 빛기둥이 사형을 선고하듯이 거인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떨어졌다. 심판을 내리는 신의 빛기둥이 거인의 정수리에 닿자 거인의 전신이 머리부터 소멸되어갔다.혼자서 군대를 압도하던 악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악마의 신체가 녹아내렸다.

검끝이 내려가며 김재민의 자세가 상단세에서 중단세, 중단세에서 하단세로 변했다.  칼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깔끔하게 거인의 몸뚱아리가 사라졌다. 검이 바닥을 가리키는 마지막 순간,빗방울이 다시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초 전까지 악마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빗물이 떨어져 치익 치익 소리를 내는 용암 발자국만이 악마의 존재를 증명했다.

김재민이 뒤돌아 저 멀리에 보이는 지옥문을 바라보았다. 고위 악마를 죽인 순간, 지옥문이 수축하며 소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재민이 검 손잡이에서 손을 놓자 성검은 빛 알갱이로 화해 사라졌다.
공격의 여파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먹구름이 빗물을 흩뿌리며 전투의 끝을 알렸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전직 용사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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