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14화 - 상전벽해 (14/72)



〈 14화 〉14화 - 상전벽해

눈을 떴다.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끄악!”

머리가 깨질것처럼 지끈거린다. 팔에서 뭔가 뽑혀 나온다. 밤에 술을 마셨던가? 아니, 이 고통은 숙취가 아니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아픈 듯한 느낌…. 뭐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잠시만요! 신재혁 환자님, 거기 얌전히 누워 계세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내 팔을 붙잡아 다시 침대에 눕힌다.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겨 몸을 뒤로 누였다. 잠깐, 간호사?

“병원?”
“네, 네 병원입니다. 갑자기 병원에서 눈을 떠서 혼란스러우시죠?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간호사가 뽑혀 나온 링거 바늘을 다시  팔에 붙이며 말을 걸었다. 병원…. 그래 병원. 여기는 병실이다.

병실 문 밖에서 간호사와 의사들이 요란스럽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바쁜 것 같았다. 그제야 기억의 파편이 차츰차츰 맞춰지며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입안이 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단어를 완성했다.

“악마, 불타는 거인이….”
“네, 네  떠올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무서운 기억이었겠죠. 괜히 물어서 상처를 헤집은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착각한 간호사가 내게 사과했다.

“환자분께서는 그 거리에서 구조되셨어요. 처음 발견되셨을  피범벅이어서 죽은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습과 달리 심각한 외상은 없었네요. 그런데 찰과상이랑 뇌진탕 기가 있어서 꼬박 사흘 동안 정신을 잃고 계셨어요.”

겨우 그 정도 상처 뿐이라고? 분명 온몸의 뼈가 박살났을 텐데…. 누가 치료해 준거지? 아니, 그보다 악마는? 갈라지는 목소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악마, 악마는 어떻게 됐지?”
“진정하세요…. 악마는소멸됐어요. 아, 마침 저기 뉴스에 나오네요.”

설마, 지구에 고위악마를 쓰러뜨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다급히 고개를 돌려 병상 위의 화면을 바라봤다. 뉴스 앵커가 뭐라 뭐라 웅얼거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리모컨을가져와 음량을 높였다.

“…첫 번째로 지옥문을 닫는다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SNS로 불타는 거인을 쓰러뜨린 영상이 퍼지며 ‘빛의 용사’라는 별명이 붙고 전세계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영상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배경에서 익숙한 괴물이 등장했다. 지옥문 부근의 전자기기는 죄다 망가졌을텐데, 운 좋게 저 카메라는 망가지지 않은 것 같았다. 건물 속에 숨어서 몰래 찍은 듯, 촬영자의 숨소리가 거칠었고 카메라가 조금씩 흔들렸다.

화면의 남자가 검을 위로 들자 검에서 빛기둥과 용오름이 형성되며 어마어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무대가 완성되었다. 뒤를 돌아본 불타는 거인이 그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금방이라도  주먹이 남자를 덮치려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사내가 검을 내리치며 빛기둥으로 깔끔하게 거인을 지워버렸다.

“미친….”
‘저 정도 무력은 에덴의 12영웅…. 아니 그 이상이다.’

신재혁이 그 위업에 경악하는 가운데 간호사가 감탄했다.

“저 광경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진짜… 신화적이네요.”

저 신비롭고도 장엄한 장면을 묘사하기 적절한 단어를 고르려는 듯 말 사이에 공백이 있었다.

“저 사람, 누구죠?”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설명했다.

“최초의 각성자 중 하나, 빛의 용사, 김재민이요.”

희망에 찬 미소였다.

***

간단한 몇 가지 검사 후, 소지품을 챙긴 신재혁이 정신없이 바쁜 병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악마한테 한 대 얻어맞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은 부서졌는데, 다행히 지갑은 멀쩡해 병원비를 지불할  있었다.

원래 입던 옷은 피범벅에 잔뜩 찢어져서, 근처 옷가게에서 옷을 대충 사 입어야 했다. 재난 상황에서도 가게들이 문을  것이 신기해서 가게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서울은 첫째 날에 다른 지방은 늦어도 둘째 날에 게이트가 모두 닫혀 지금은 평소처럼 가게를 연다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한바탕 국무총리 박주관 예찬론을 늘어놓았다.신재혁은 그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신재혁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 도로는 잔뜩 부서지고 녹아내린 잔해로 엉망이라 차가 다니지 않았다. 집에들어서자마자 신재혁은 비밀문을 열고 통로로 허겁지겁 뛰어들어갔다.

‘제발!’

피규어 전시실 문을 벌컥 열었다. 유리 진열장  수많은 건담 프라모델과 미소녀 피규어가전시되어있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거인이 뛰어다니며 발생한 지진 때문에 혹시라도 넘어져 망가지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숨을 돌린 신재혁이작업실로 향했다.

메인 컴퓨터를 부팅하는 사이, 서랍에서 신형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USIM 칩을 바꿔 꼈다. 전원을 켜보니 문제없이 잘 작동했다.

“좋아.”

우선 지인들에게 급히 생존신고 문자부터 돌렸다. 자기가 미리 경고한 덕에 다른 사람들은 무사하리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삼  간 자기 소식을 못 들었으니 걱정했을 것이다. 연락은 금세 돌아왔는데, 다행히 유성하와 보육원 사람들, 이유진 그리고 차은경 모두 무사했다.

삼 일간 자기와 연락이 통하지 않아 모두 많이 걱정한 듯했다. 악마와 싸웠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스마트폰이 망가져 새로 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변명했다. 지인의 안부를 확인한 신재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미스터 B야 알아서  몸 간수했을 테고, 경찰서에 있던 사람들은 안전할 테고. 김재민은 왠지 모르겠지만 아주 강력한 각성자가 된 것 같고….’

인맥이 좁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는 편했다. 연락할 사람이 적었다. 더 연락할 사람이 없나 생각하다 이름 하나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 녀석? 성하 누나가 연락 돌린다고 했으니  새끼는 괜찮겠지. 나랑 연락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신재혁이 그 이름을 깔끔하게 머리에서 지웠다. 전원이 켜진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을 켰다.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제 자기가 기절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할 차례다.

「박주관 국무총리, 입법부와 행정부의 만장일치로 임시 대통력직 보위」
「청와대, 서울 시청, 서울 남부 교도소 반파…. 시체조차 구분하기 힘들어」
「각성자란 무엇인가? 게이트 사태의 희망, 괴물을 물리치는 신인류」
「빛의 용사, 김재민. 그의 정체는?」

***


평소와 다름없던 어떤 여름날,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조 없이 검은 구멍이 발생하더니, 그 안에서 초록색 악마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은 그 구체를 게이트라 불렀다.

게이트가 열리면서 어떤 이유로 주위 전자기기가 망가져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 늦어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몰살당했다. 괴물들은 도망치는 사람들, 주변 건물에 숨어있던 사람들을 찾아 모두 죽였다.

생존자들이 전자기기가 망가지지 않는 범위까지 도망친 후에야 신고가 가능했기에 군의 출동도 늦어졌다. 출동이 늦어진 이유로는 괴물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경찰과 군이 믿지 않은 것도  몫을 했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천국처럼 보였다. 대표적으로 기자들이나 군 장성들이 그러했다. 같은 인간이 아닌 새로운 위협이 닥면한 현재의 상황에서, 무력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돈으로도 물리칠 수 없는 악마를 군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군대란, 국가의 최고 무력 단체였다.  단체의 우두머리들은 자연스럽게 권력을 손에 쥐었다.

특히  장성 출신의 신임 국무총리 박주관에게 이 새로운 세계는 자신을 위한 유토피아였다. 한때 욕을 얻어먹고 정치적 취약점이 되었던 군부 출신이란 타이틀은 새로운 세계에서 막대한 메리트가 되었다. 선후배, 그리고 선후임 관계로 다른 고위 간부들과 끈끈하게 연결된 관계는 정치적으로 이용할  있는 권력이 되었다.

게이트 사태가 발발했을 때, 박주관은 정치 자금을 후원해주는 비밀스러운 후원자부터 연락을 받았다. 즉시 관악구로 군대를 출동시키라는 지시였다. 직후 하급자로부터 게이트 사건을 보고받자 그는 망설임 없이 후배들에게 연락해 군대를 움직였다.

박주관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각한 월권행위였으나, 그때는 대통령 각하, 대통령비서실장 등 다른 고위 행정부 인사들과 연락이 통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국무총리인 박주관이 최고 명령권자였다.

VIP가 머무르는 청와대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에서 박주관은 어떤 낌새를 눈치챘지만 군을 보내지는 않았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물론 다른 음흉한 생각도 있었다. 그 선택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군대는 큰 피해 없이 압도적으로 괴물들을 학살했다. 박주관이 즉시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에, 괴물들이 시내로 멀리 퍼지지 않았고, 게이트가 열렸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상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관악구에 있던 게이트를 세계 최초로 닫아버리는 쾌거도 이루었다.

직후 불의 거인이 등장해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마저 각성자라 불리는 신인류가 히어로처럼 등장해 괴물을 물리쳤다. 그 불의 거인만이 유독 비정상적으로 강력했던 것이라, 전국의 모든 게이트는 군대의 활약으로 차례차례 닫혔다. 전 국민이 뉴스를 보며 그 승리에 환호했다.

박주관을 향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끝을 모르듯 치솟았다. 우왕좌왕하며 늦장을 부리다 괴물들이 시내로 스며들어  피해를 입은 다른 나라들의 사례가 박주관의 활약을 더 위대하고 훌륭하게 부풀렸다.

하필 청와대 근처에 지옥문이 열려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던 대통령과 다른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죽어버려 국가원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군부 세력, 정치인,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박주관은 임시국가원수가 되었다. 몇몇 기자들은 게이트 사태 당시 최고 명령권자에 속하던 박주관이 대통령을 구하지 않고 고의로 죽게 내버려 두었다고 비난하지만, 박주관을 지지하는 세력에 일부의 ‘의견’은 묻혔다.

세상에는 다른 기삿거리가 넘쳐났기에, 그 기자들조차  사건을 더 파고들지 않고 다른 기삿거리를 찾아 떠났다. 예컨대, 각성자라 불리우는 신인류를.

게이트 사태 직후, 몇몇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판타지’스러운 초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손에서 불을 뿜는다던지, 눈이 강화돼 아주 멀리까지 본다던지,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던지. 능력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소위 각성자란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적인 증상을 호소했다.

상태창.

각성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각성의 순간, RPG 게임 캐릭터처럼 상태창이 눈앞에서 활성화되며 어떻게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 머릿속에 지식이 흘러들었다고 한다. ‘상태창’이란 단어를 말하거나 생각하면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상태창이 열리면서  가지 정보를 표시했다.

실제 게임처럼 많은 정보를 자세히 수치화해주지는 않았다. 사실, 현실에 생긴 상태창은 굉장히 불친절했다. 이름, 레벨, 업적, 그리고 문명 레벨이라는 것만 표시해줬다. 레벨은 경험치바가 없어 언제 어떻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기준으로 각성자의 초기레벨이 결정되는지도 불명이었다. 업적은 대부분의 각성자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문명 레벨은 [0/5]라는 표시와 %로 표시되는 경험치 바를 통해 최대 레벨이 5고, 현재는 0레벨이라는 사실을 알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상태창은 심지어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조차 표시하지 않았다.

그런 불편함과 관계없이 각성자들은 하나같이 강력했다. 그들은 신체 능력만으로도 훈련받은 군인 몇 명을 상대할 만큼 강력했고, 제각기 보유한 특별한 이능력은 그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복수, 명예, 권력 등 다양한 이유로 그 힘을 괴물에게 쏟아냈다. 그들은 군대가 처치하지 못해 도시 안으로 스며든 악마들을 죽이며 사람들을 지켰다. 사람들은 인류를 수호하고 괴물을 죽이는 각성자들을 칭송하며 그들을 ‘헌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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