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18화 - 이브 (18/72)



〈 18화 〉18화 - 이브

12월 23일.

신재혁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유진과의 일대일 채팅방에 접속했다. 작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뭐해?
-게이트 조사는 잘 되가고 있어?

신재혁이 엔터를 눌러 메시지를 전송하자,  초도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읽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띠링,띠링-

 번에 우수수 울리는 알람음. 인터넷 중독자답게 굉장히 빠른 답장이 돌아왔다.

-네. 별일 없이  되고 있네요
-용돈벌이 개꿀 ㅎㅎ
-근데 도대체 펜타곤 서버에 백도어는 어떻게 심은 거에요? ㅋㅋㅋ

신재혁이 피식 웃으며 답장을 작성했다.

-다 방법이 있지 ㅋㅋ

몇 개월 전, 미스터 B에게서 대장장이를 소개받는 조건으로 받은 의뢰였다. 전세계 게이트의 위치를 조사하는 것. 하지만 신재혁은 수련하느라 바빠 그 일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 의뢰를 이유진에게 맡긴 것이었다.

SNS와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는 간단한 작업 정도는 이유진도 충분히 크롤링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행할 수 있었다. 보안이 빡신 정보기관의 경우, 신재혁이 옛날에 만들어 놓은 백도어를 공유해줘 이유진이 몰래 서버에 침입할 수 있었다.

‘너무 편하데…. 이게 바로 다단계의 위력인가?’

게이트를 발견할 때마다 이유진도 건당 최소 십만 원씩 돈을 받았지만, 신재혁은 미스터 B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재주는 이유진이 부리지만 돈은 신재혁이 받는 꿀 같은 상황이었다. 놀고먹는데 통장에 돈이 쌓이는 신기한 상황에서 신재혁이 행복감에 몸서리쳤다.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그나저나  전에 각성했다고 했지?

-네 ㅎ
-E급이라 헌터 일은 안 하지만요.

그렇다. 이유진은  개월 전, 참과 거짓을 가리는 능력을 각성했다. 그녀는 이 능력을 ‘진실의 저울’이라 불렀다. 사람의 진술에서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

언뜻보면 굉장히 강력해 보이지만,  능력이 고작 E급인 이유는 능력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술한 당사자가 ‘믿는’ 진리치를 알아내는 것이라, 당사자가 세뇌나 최면에 걸려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있으면 능력이 잘못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우주의 비밀처럼 대답자도 모르는 정보 역시 참거짓의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법원이나 국정원 같은 기관에서 스카우트하려고 달려들 법한 능력이었다. 신재혁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협회에 각성자 능력 신고를  때, 그녀가 능력을‘비공개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각성자 협회에서 각성자 테스트를 받고 능력을 신고할 때, 네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는, 그냥 ‘공개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파티를 꾸릴  동료들이 각성자의 능력을 알 수 있고, 일반 대중들도 헌터 협회에서 쉽게 능력을 열람할 수 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능력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경우, ‘비공개 신청’을 할 수 있다. 다른 각성자나 대중에게 능력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헌터 협회 고위 관계자만 능력을 열람할 수 있다. 헌터 협회는 범국가적 단체이므로, 특정 국가의 정보국이나 사법부에서 마음대로 열람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세 번째로, 협회 관계자에게조차 능력을 알리기 싫은 경우 할 수 있는 ‘미공개 신청’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협회가 권장하지 않으며, 능력을 걸렸을 패널티가 있다. 미공개 신청은 능력의 효과를 밝히지 않고, 단지 능력의 개수만 밝히는 것이다. 대신 이후 협회에게 능력의 정체를 들켰을 때, 약한 패널티와 함께 능력이 강제로 공개 신청 취급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멍청한 경우는 능력을 신고하지 않고 각성 능력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것이다.  경우, 이후 능력이 발각되었을 때, 협회와 국가에서 각성자가 불순한 의도로 능력을 숨겼다고 간주하고 강력한 제재를 먹인다. 실제로 이 죄목으로 게이트에 강제 징발당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비공개 신청을 해서 다행이지. 유능한 조수를 뺏길 뻔했잖아…. 내 주변에 각성자도 얘밖에 없다고.’

-혹시 내일 시간 있어?

-얼마 전에 종강해서 요즘은 남는게 시간이죵 ㅋㅋ

-좋아. 내일 오후에 만날래?

-??? 웬일로요?
-저야 좋죠!!!!!

-그래, 그럼 그 카페에서 보자

-(파란 강아지 캐릭터가 OK 하는 이모티콘)

***


 번째 게이트 사태 후, 제2회 정상 회담이 열렸다. 1회 때 참가한 사람이 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중국이 그러했다. 중국 군대의 강력함을 자랑하던 국가 주석 대신 새로운 대표자가 참가했다.

염동력자 장우이. 베이징 사태의 영웅. 최강의 각성자 중 하나. 단신으로 중난하이를 정면 돌파해 중국 국가 주석 자리를 무력 쟁탈한 각성자였다.

게이트 안에서는 밖과 통신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게이트 밖의 중국 수뇌부는 게이트 안쪽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그들은 베이징 게이트에 언데드형악마가 출몰한다는 사실, 언데드는 군대가 상대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사실, 입장한 사람 수가 많을수록 적이 유리해지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베이징 게이트에 입장한 군인들과 통신이 끊겼을 때, 밖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게이트  지휘관들의 명령만으로도 충분히 게이트를 클리어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승전보를 기다렸다.

2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은 초조함을 느꼈다. 상황을 파악하고자 게이트 속으로 군대를 더 파견했지만,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4시간이 흘렀을 때, 게이트 밖으로 무엇인가가 나왔다. 사람은 아니었다. 수십만의 임프와 좀비 떼가 베이징으로 풀려나왔다.

장우이는 게이트 역류 한 시간 만에  모든 악마를 학살한 초인이다. 염력으로 악마를 터뜨리고 사람을 구하는 히어로의 영상은 SNS에 퍼져 중국인의 무수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지막악마의 머리를 터뜨렸을 때, 히어로는 5자리 숫자의청년을 사지로 밀어 넣은 무능한 지도부를 심판하고자 움직였다.

그러니까, 중국 국가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를 향해.

엄청난 규모의 중국 군대조차 분노한 초인 한 명의 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염력의 방어막 앞에서 모든 포화는 무력하게 사그라들었다.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그가 당당하게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1시간 후,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중국 국가 주석은 그 기자회견에서 장우이에게 자신의 모든 지위와 업무를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전주석의 호언장담으로 각국 수뇌부의 눈이 베이징에 쏠려 있었기에, 정상 회담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장우이가 한 일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도. 그들은 강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을 목격했다.

장우이는 군대 중심의 세계 질서를 개편하고자 했다. 군대와 각성자가 협력해 인류의 적을 물리쳐야한다는 연설을 일장 늘어놓았다. 극단적인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헌터 통제론에서 친화론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물론 모두가 장우이의 연설에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친화론의 이익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강력한 초인과 거대한 국가를 적대할  벌어질 일이 두려웠기때문이기도 했다.

1개월 후, 범국가적 단체인 헌터 협회가 공식적으로 출범됐다.

헌터 협회의 1대 협회장은 S급 헌터, 장우이였다.


***

카페에 신재혁과 마주보고 앉은 이유진이 빨대를 쪽 빨았다. 입안에 달싹지근한 핫초코가 감돌며 입안에 열기를 전했다. 싱글싱글 웃으며 이유진이 말을건넸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데이트 신청을 한 거에요, 선배? 심지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이트 신청이라니….”

신재혁이 얼굴을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이교도 신의 아들을 축복하는 사특한 기념일 하루 전이었다. 엘로아흐의 신앙심 깊은 성기사로서 신재혁은 그런 끔찍한 날을 기념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 히키코모리가 그냥 얼굴만 보자고 외출할 리는 없을테고… .아니, 그보다  몸은 뭐에요?  달 전엔가 만났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신재혁이 놀라워하는 시선에 우쭐거렸다.

“운동 좀 했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국가 대표도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실히 허세는 국가 대표급이네요.”

‘진짠데….’

“뭐, 아무튼.”

신재혁이 패딩 주머니에서 주먹 크기의 상자  개를 꺼냈다. 하나는 그녀에게 건네줬다.

“뭐에요 이게?”
“선물. 나 대신 일 잘해준 거 고마워서.”

하루 일찍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에(신재혁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들뜬 이유진이 기쁜 표정으로 재빨리 선물 포장을 뜯어냈다. 포장을 뜯자 손바닥보다 살짝 작은 동그란 마력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나의 확산을통해 게이트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게이트 탐지기였다. 신재혁이 게이트 탐사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김에 이유진의것까지 구매한 것이었다.

“와!이거 우리 학교 교수님이 만드신 거잖아요. 박정광 교수님. 그런데 이거 되게 비싸다던데?”
“유능한 조수를 위한 선물인데 이 정도 쯤이야…. 아무튼, 내가 이거를 샀는데 내것도 좀 충전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아, 선배는 각성을 못했다 그랬죠? 그런데 게이트 탐지기는 왜?”
“혹시 몰라서 안전을 위해 들고 다니려고. 그런데 난 마나가 없으니까, 너한테 부탁할게.”

물론안전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는 내일 게이트에 입장할 생각이었다. 자기 몸이 멸치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단련이 진행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게이트 너머 세상을 탐험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같은 사특한 날에는 차라리 게이트에 입장해서 찌뿌둥한 몸을 푸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

‘에덴의 안위를 확인하고, 악마를 죽인다. 처음부터  생각뿐이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이유진은 그 설명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요즘은 일반인도 들고 다닌다죠.”

이유진이 선물 받은 마력 나침반을 자기 백팩에 열쇠고리처럼 달았다. 푸른 기운이 손에서 흘러나오며나침반 안으로 들어가자, 충전된 나침반이 활성화되며 패널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이번엔 신재혁이 건넨 나침반을 손에 쥐고 나침반에 마력을 불어넣으려던 찰나, 이유진이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동작을 멈췄다.

“흐응~”

이유진이 양손으로 턱을 괴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신재혁을 빤히 쳐다봤다. 신재혁도 이유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야, 왜 이래. 부담스럽게.’

“왜, 왜 그러는데?”
“후후, 제 질문 몇 셋, 아니 네 개만 대답해주면 해 드릴게요.”

이유진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마력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마력광이었다. 그녀가 각성 능력, 진실의 저울을 발동한 것이었다.

“야….  물어보려고. 각성자가 일반인한테 능력 함부로 써도 되는 거야?”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리고 선배랑 제가 능력 하나 사용  할 만큼 먼 사이였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 에휴, 맘대로 해라.”

만족스럽게 웃은 이유진이 질문을 던졌다.

“선배, 내일 시간 있어요?”

신재혁이 내일 아침에 예정된 게이트 입장 일정을 떠올리곤 대답했다.

“응…. 좀 바쁜데. 왜?”

이유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여자에요? 여자랑 만나는 거에요?”
“아, 아니. 여자도 있을 수야 있겠지만, 그냥 일 때문에….”
‘왜 내가 이런 변명을 하고 있는 거지?’

신재혁이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신재혁의 대답이 참이라고 판단한 그녀가 표정을 풀며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좋아요.”

그녀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턱에 손을 올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초 후, 그녀는 탄성을 내지르며 물었다.

“선배 주위에 나침반 충전을 부탁할 각성자가 저뿐인가요?”

신재혁이 자신의 얄팍한 인간관계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각성자라. 관악 경찰서에서 알게 된 김정수 경찰관, 아니면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버린 김재민. 물론 둘 다 연락하고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어 그렇네…. 뭐야 나 인맥이 이것밖에  됐나.”

신재혁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반면 우울한 신재혁과 대비되게 이유진의 얼굴은 환해졌다.

“그럼 앞으로 주기적으로 저랑 만나야겠네요?”
“그렇…지?”

그녀의 눈에서 파란 불이꺼졌다. 그녀가 손뼉을 짝 치고는 생글생글 웃었다.

“좋아요! 여기, 나침반.”

그녀가 마력을 충전한 나침반을 신재혁에게 넘겼다. 신재혁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의도였던 것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나. 만남의 목적을 달성한 신재혁은 화제를 전환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요즘 별일 없어? 뭐 특이한 정보라던가.”
“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고. 아! 학교에서 헌터학부를 만든다던데. 내년 입시? 아니 올해인가. 아무튼 이번 입시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모양이에요. 최대한 발 빠르게 움직여서 시류에 탑승하겠다는 취지겠죠.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술이라도 가르쳐주는 거 아닐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체육, 동물생태학 쪽이랑 연계한다는 거 같던데. 던전 안의 생태계 교육, 서바이벌 교육 이런 걸 하겠죠.”

신재혁이 남아있는 커피를 다 빨아 마셨다. 그리고 음료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달 만에 만난 회포를 한 번에 풀자니 긴 이야기가 될  같았다.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었다. 이유진의 배가 꼬르륵 울려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둘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이유진이 그냥 집에 가려는 신재혁에게 저녁을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며 졸랐다. 신재혁은 기꺼이 조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두 남녀는 레스토랑에 갔다.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저녁 식사는 맛있었고, 가게는 안락했다. 둘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늦어져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자 기온이 내려가 몹시 쌀쌀해졌다. 찬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리며 온기를 앗아갔다.

신재혁이 손수 이유진의 자켓 옷깃을 여며줬다. 날이 차서 그런지 그녀의  뺨이 붉게 상기됐다. 신재혁이 그녀에게 머플러를 둘러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무튼 고마워. 나침반 말이야. 방전되면 다시 찾아올게.”
“네, 선배. 언제든지 찾아와요! …혹시라도 내일 시간 비면 연락하구요!”

이유진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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