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화 - 입문
게이트 사태(Gate Outbreak) 발발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은 게이트가 저주임과 동시에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일부 국가들이 붕괴했다. 사회가 무너지고, 세계 경제가 침체됐다.
하지만 한쪽이 무너진 만큼, 떠오른 분야도 있었다.
마치 소설같이 세계는 몬스터 덕분에 에너지 혁명을 이루었다. 물론 소설처럼 몬스터의 몸에 마석 따위의 비상식적인 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체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유황으로 구성된 몬스터의 시체를 정제하면, 화석 연료와 같은 에너지 자원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의 시체는 버려야할 것이 아닌, 주워야 할 것이 되었다.
에너지뿐만이 아닌 다른 사업 역시 황금기를 맞이했다. 악마의 유전 형질과 생체 조직을 연구하는 다양한 바이오 산업이 활성화됐다. 장비 산업과 포션 산업이 대표적이었다. 특허권을 주장하며 각종 길드가 출범했다.
바이오 길드의 연구원들이 재생력이 뛰어난 몬스터의 DNA를 연구해 만든 약은 포션이란 이름으로 비싼 값에 팔렸다. 대장장이 길드에서 날카롭고 단단하게 가공한 보스의 신체 부위는 강력한 무기와 방어구가 되었다.
이 상품들은 ‘헌터’라는 새로운 수요층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더 강력한 도구와 힘을 쥔 헌터는 이제 적이 건너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건너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초기 탐사대의 분투와 희생 끝에, 인류는 게이트의 종류가 3가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류는 그 타입을 각각 리젠형, 오버플로우형, 던전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리젠형은 가장 희소한 게이트 타입이며, 동시에 가장가치가 높은 게이트다.
보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게이트 속의 악마가 계속 보충되기 때문에, 헌터들의 수련용으로 사용된다. 또, 게이트가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정확히는 소멸 조건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 내부에서 지하자원을 안정적으로 채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국가에 리젠형 게이트가 많을수록 저등급 헌터를 육성하기 쉬웠고, 안정적인 자원 수급이 가능했다. 정치인, 군인, 헌터를 막론하지 않고 모두에게 환영받는 타입이었다.
다만 리젠율이 인원수에 비례하여 급격하게 높아지기에 게이트 내의 인원을 조절하는 데 주의해야 했고, 언제든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중국의 S급 헌터 장우이의 활약과 베이징 대참사로 악명 높은 베이징 게이트 역시 언데드 몬스터를 뽑아내는 리젠형 게이트다.
오버플로우형은 가장 일반적이며, 주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생성되어 몬스터를 쏟아낸다. 가장 끔찍하고, 위험한 유형이다.
이 게이트는 현세에 모든 몬스터를 쏟아낸 즉시 바로 소멸하는 특징이 있다. 말그대로 일방적인 침공이었다. 보통 임프를 가장 많이 쏟아내며, 게이트 등급에 맞는 중형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를 토해낸 후 닫힌다.
마지막으로 던전형 게이트는 헌터 길드의 핵심 산업이 되는 유형이다.
마치 게임의 던전처럼 게이트 내의 각종 졸병 몬스터를 물리치고 보스를 쓰러뜨리면 게이트가 소멸된다. 시스템적으로 입장 정원에 제한이 있으며, 정원 수의 사람이 모두 입장하면 보스가 출현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까지 게이트에서 나갈 수 없다.
***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도착하셨네요.”
“네, 하하….”
군인이 명단에서 신재혁의 이름을 찾아 체크 표시를 했다. 게이트 탐사조의 출석부였다. 미스터 B를 통해 위조한 D급 헌터 라이센스로 며칠 전 게이트 탐사조에 지원을 한 것이었다.
E급이나 F급은 출입 가능한 게이트에 너무 제한이 갔고, C급 부터는 길드의 눈에 띌 수 있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D급 헌터의 신분이 가장 유용했다. 신재혁은 헌터 신분증을 갑옷 위에 두른 힙백에 집어넣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일찍 다녀 주세요. 저기 막사로 가시면 됩니다.”
신재혁이 자기 장비를 들고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게이트 입장을 위한 브리핑이 시작될 것이다. 헌터용 택시를 처음 이용하는 바람에 살짝 애를 먹어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됐다. 빠른 걸음걸이에 맞춰 갑옷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신재혁은 지금 위치한 곳은 게이트 주위의 군 야영지였다. 검은 구체 주위로 기관포들이 설치되어 게이트 속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적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 경계선 밖에는 임시 막사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몹시 초라한 야영지였으나, 이곳의 게이트가 흔하고 약한 E급 게이트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풍경이었다. 이 게이트가 클리어되고 나면 바로 철거되어 다른 저등급 게이트 주변에 설치될 임시 건물들이었다.
신재혁은 입구에서 만난 군인이 가리킨 막사로 들어갔다. 브리핑룸이었다. 이동식 화이트보드와 플라스틱 의자로 만든 임시 브리핑룸. 자기보다 먼저 온 헌터들이 스무 명가량 모여있었다. 크리스마스인데도 의외로 많은 헌터들이 게이트 탐사를 위해 모였다.
‘하긴, 비교적 안전한 저등급 게이트에 섬멸조나 공략조만큼 위험하지도 않은 탐색조 지원이니…. 인기가 많을 법도하겠지.’
막사에 모인 헌터들은 일부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일부는 좌석 뒤편에 서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간 갑옷의 무게로 의자가 부서질 것 같았기에, 신재혁은 뒤편에 서서 군인이 브리핑을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군인이 인원수를 체크하는 동안, 신재혁은 주변인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신재혁 옆에서 키득거리는 두 여성이 보였다. 둘은 서로 친구 사이인 듯했다. 장발의 여성이 단발의 여성에게 작게 투덜거렸다.
“야, 너 때문에 나까지 자리에 못 앉잖아.”
“에이, 그러지 말고…. 헌터라 체력도 좋은데, 서 있는 게 뭐 어때서.”
단발녀가 장발녀를 째려봤다.
“그런 체력 좋은 년이 새벽까지 섹스를 하다 엉덩이가 아파서 자리에 못 앉는 게 말이 되냐? 이 한심한 가시나야. 오늘이 중요한 날인 것도 알면서…. 에휴.”
“남친도 헌터라 체력이 너무 좋은 걸 어떡해. 게다가 어제는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엄청 기분 좋았다고….”
그녀 둘은 작게 말한다고 했으나, 청력을 포함해 신체 능력 전반이 강화된 각성자의 귀는 소근거리는 말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주변의 몇몇 헌터들도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거나 눈살을 찌푸렸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어날지 모르는데, 컨디션 관리도 못하다니….’
신재혁은 그 여자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방 앞의 대머리 군인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가 이번 작전의 지휘관인 하정재 소대장 같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한번 슥 닦더니, 옆에 선 헌터 협회 직원에게 신호를 줬다. 협회직원은 헛기침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더니, 곧 브리핑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오늘 작전을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 조사로 신재혁이대충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했다. 이번 게이트는 E급 던전형 게이트로, 시스템에 따르면 출입 정원이 30명인 게이트였다.
“아시다시피, 보스 출현 조건이 30명이기 때문에 헌터 22명과 군인 7명, 총합 29명이 입장할 겁니다. 정찰조에 따르면 게이트 내부는 열대 밀림입니다. 숲 중앙에 고대 유적이 있는데, 유적 밖에서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적 내부가 게이트 공략의 목표 같습니다. 이번 작전에서 탐색조인 여러분의 목표는, 섬멸조가 입장하기 전, 유적 내부 지형지물의 탐색과 적의 종류 및 개체 수를파악하는 것입니다.”
던전형 게이트의 공략은 주로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발이 빠르거나 은신 능력이 있는 헌터들로 구성된 정찰조가 최초로 게이트에 입장해 게이트 내부의 환경을 파악한다. 그러면 그 정보를 토대로 준비한 탐색조가 게이트 속 지형을 매핑하고 적을 파악한다. 셋째로 범위 공격이 가능한 헌터로 이루어진 섬멸조가 입장해 보스를 지키는 부하를 모두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강력한 공략조가 입장해 보스를 쓰러뜨린다.
헌터는 국가적으로 귀한 인력이기에 생환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이런 절차가 수립된 것이다. 특히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형 게이트의 특성상 사망률이 높기에, 안전을 중시하는 네 단계가 특히 중요시됐다.
협회 직원이 자리에 앉자 하정재 지휘관이 말을이어받았다.
“여기는 날씨가 춥지만, 게이트 저편은 햇살이 쨍쨍하고 상당히 습하니 겉옷은 벗고 시원한 차림으로 입장하십시오.”
하정재 지휘관이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뭐, E급 게이트라 별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혹시라도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본관에게 보고하십시오. 그럼, 우선 무기고에서 총기를 받고 게이트에입장하겠습니다.”
다른 천막으로 이동한 그들은 총과 탄약을 보급받았다. 신재혁은 전열의 탱커였기 때문에 굳이 총을 받지 않았다. 이미 양손에 창과 방패를 든 상황에서 소총이나 기관총은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줄 뿐이었다(메이스는 아직 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 집에 두고 왔다).
헌터들은 마지막으로 자기 장비와 몸상태를 점검하고, 게이트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신재혁도 자기 힙백에 들어있는 물통과 비상식량, 마력 나침반을 재확인했다.
곧 탐색조의 헌터들은 게이트에 입장하기 위해 기관포가늘어선 방위선을 넘어 게이트 앞까지 전진했다.가까이에서본 검은 구체는 더욱 위압적이었다.
‘이 너머에, 에덴의 비밀이….’
“자, 그럼 전열부터 입장하겠습니다. 입장 직후의 습격에 주의하고 주위를 경계하십시오.”
신재혁은 다른 탱커들과 함께 방패로 몸을 가리고 천천히 검은 구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
신재혁의 몸은 저항감 없이 게이트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발과 하체에 이어 머리까지 구체 안에 잠기자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더니 어느 순간 신재혁은 초목이 울창한 밀림에 도착해있었다.
‘여기는…. 역시 지옥이 아니군.’
지옥이 아니었다. 신재혁의 예상대로였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정보를 조합한 그는 지구와 에덴의 게이트는 종류가 다르다는 가설을 세웠다.
지구의 게이트는 에덴에서의 지옥문과 형태는 동일하나 기능이 달랐다. 에덴에서의 게이트는 말 그대로 에덴과 지옥을 연결하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게이트를 넘어가면, 그곳에는 악마 외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불타는 대지와 죽은 벌판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하늘 높이 뻗은 열대 나무와 넝쿨이 무성했다. 흙바닥은 딱딱했고, 하늘은 던전 특유의 회색 안개로 덮여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정체불명의 안개가 햇빛은 통과시키는지, 강렬한 햇살이나뭇잎 사이를 침투해 눈을 찔러왔다.
이곳은 분명 정글이었다. 그리고 지옥에는 이런 푸른 숲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는 에덴처럼 보이는군…. 설마 대륙 남부의 밀림인가?’
“전방, 이상 무!”
“후방도 이상 없습니다!”
“시스템에서 15명 입장 확인했습니다.”
군인들이 제각기 상황을 보고하며 헌터들을 통솔했다. 전위는 모두 무사히 입장한 듯했다.
“좋아! 곧, 후위도 입장하겠습니다. 전위는 게이트를 둘러싸고 사주경계를 하십시오.”
하정재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자 헌터들이 훈련받은 대로 게이트를 둥글게 감싸기 시작했다. 신재혁도 그들을 따라 게이트를 포위하고 전방을 주시했다.
‘악마는 보이지 않는데. 일단 당장은 문제없을 것 같군.’
군인 하나가 게이트로 돌멩이를 던져 건너편에 입장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게이트 밖에서신호를 받았는지, 후위 헌터가 차례차례 입장하기 시작했다. 각성자 군인은 시스템을 보면서 사람이 한 명씩 입장할 때마다 시스템에 표시되는 인원수를 부르며 사람 수를 확인했다.
“스물 다섯, 스물 일곱..? 스물 여덟….”
“아이씨, 물웅덩이 밟았네. 왜 입장하자마자 이런 게 있는 거야?”
아까 브리핑룸에서 신재혁 옆에 서 있던두 명의 여자는 후위였던 모양이다. 장발의 여자, 이재연이(두 여자가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바닥의 물웅덩이를 밟아 신발에 물이 들어갔다며 막 투덜댔다.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은 제각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환경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스물 아홉…. 어, 어..?”
“왜 그러나, 하사? 뭔가 문제 있나? 하사!”
시스템 창을 보고 인원수를 체크하던 군인이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했다. 불안감을 느낀 하정재가 하급자를 닦달했다.
헌터들의 시선이 하사를 향해 쏠렸다. 살인적인 정적이 흘렀다.
신재혁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심각하게.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군인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단어를 발음했다.
“서른….”
그 말과 함께 마지막 헌터가 던전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의 두 다리가 흙바닥을 밟으며 검은 구체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안-돼-!”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곧 일어날 일을 눈치챈 것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스템은 단호히 제 할 일을 실행했다.
[입장 정원 30/30.]
[게이트를 임시비활성화합니다.]
[보스를 죽여 게이트를 클리어하십시오.]
광풍이 일며 나뭇잎이 휘날렸다.
일행이 손쓸 새도 없이 게이트는 순식간에 점으로 수축해 소멸했다.
그 장면을 멍하니 보던 군인이 핏기없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게이트, 비활성화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