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화 – 고립
“뭐..?”
“게이트가 사라졌어?”
“무슨 일이야!”
상정 외의 사태에 헌터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아우성쳤다. 아무리 헌터라한들, 그들은 고작해야 E급이나 D급 헌터에 불과했다.
다급히 시스템을 확인한 그들은 곧이어 게이트가 닫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원 30명 중 30명 입장이라고? 그럴 리가!”
“출발할 때만 해도 분명 29명이었을 텐데, 다시 세봐! 분명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겠지.”
군인이 머릿수를 재확인했으나, 여전히 게이트 내부의 사람은 29명뿐이었다.
“뭐지? 시스템 오류? 하지만 시스템에 버그가 발견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는데….”
“젠장, 아무튼 게이트가 비활성화되었다는 건…. 역시 던전 보스가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인가.”
헌터들의 불안한 심정을 대변하듯, 좌중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곤란한데. 아직 우리는 이곳의 지리도, 적의 숫자와 정체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심지어 보스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아직 보스를 지키는 징글징글한 임프도 있을 텐데….”
어째서 정원수가 30명으로 인식되나 고민하던 신재혁은 어떤 가능성에 생각이 미치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설마?’
그 시선끝에는 어제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단발 여성, 김지민이 있었다.
그녀 역시 상황을 파악하고 신재혁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만 되면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인가?’
전생에 그의 동료...였던 흑마법사에게 들은, 수정란 상태부터 영혼이 깃든다는 이론을 떠올리고는 신재혁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김지민과 이재연의 대화를 원치 않게 들은 다른 헌터 몇 명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그녀를 말없이 노려보더니, 대머리 지휘관, 하정재에게 다가가 소곤거리며 고자질을 했다. 하정재는 보고를 듣고 얼굴을 한껏 찡그리곤 그녀를 호출했다.
멀리서 호통 소리가 들렸고, 그 호통이 끝나자 초췌해진 얼굴로 하정재 지휘관이 돌아왔다. 그리고 헌터들에게 일의 전말을 설명했다.
“뭐?이 씨발년이!”
“너 때문이었냐-?”
직후 당연한 수순으로 헌터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고, 이 소란이 진정되기까지는 거의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
“우리는 좆됐어…. 여기서 다 죽을 거야….”
기관총을 들고 터덜터덜 걷던 헌터 한 명이 중얼거렸다. 아주 힘 빠진 목소리였다. 목소리만큼이나힘 없는 발걸음이 나뭇잎을 밟으며 사부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른 헌터들도 암묵적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말없이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헌터였으나, 적을 직접 처리하는 섬멸조나 보스를 처치하는 공략조가 아니라, 게이트 내부를 탐사하는 탐색조에 불과했다. 당연히 섬멸조나 공략조보다는 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각성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이 인원만으로 섬멸조와 공략조의 임무를 모두 수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닥쳐, 병신아. 고작 E급 게이트인데, 설마 29명이서 보스 하나를 못 잡겠어? 아니, 30명이지? 누구누구 덕분에.”
자꾸 옆에서 누가 궁시렁거리자, 짜증이 난 헌터 하나가 비아냥거리며 후열의 김지민을 째려봤다.
그 시선에 움찔하고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김지민 옆에는 그녀의 친구인 이재연이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얼굴이 창백하고 행동거지에 힘이 없는 게, 컨디션이 영 안 좋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식은땀이 흐르는 것도 같았다.
“괜찮으세요?”
“네에-정신적으로 조금 피고온하긴 한데, 괘앤찮아요오오….”
‘하긴,친구의 트롤링으로 자신을 포함해서 탐색조 전원이 전멸할 위기에 처했으니….’
신재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탐색조는 현재 게이트에 갇힌 상태였다. 게이트에서 빠져나가려면, 게이트의 핵 역할을 수행하는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려 게이트를 클리어해야만 한다.
물론, 보스를 지키는 잡몹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에 탐색조는 주위를 경계하며밀림 저편에 보이는 사원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웅장해 보이는 유적의 모습에 헌터들이 전진하는 와중에도 저마다 소곤거리며 감상을 내뱉었다.
“분명, 저 사원 최심부에 보스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겠지…. 딱봐도 보스룸 분위기 아니냐.”
일행이 사원 입구에 들어서기까지는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탐색조는 이끼가 낀 거대한 돌기둥을 지나쳐 고대의 사원 내부로 들어섰다.
“여기까지 오는데 몬스터의 코빼기도 안 보이다니. 이 게이트는 뭔가 이상한데.”
“단순히 E급 게이트라 몬스터 개체 수가 적은 거 아냐?”
“아니. F급 게이트라도 최하급 몬스터인 임프는 수십 마리씩 쏟아지기도 한다고.”
게이트 경험이 있는 헌터들이 의문스럽게 중얼거렸다. 신재혁도 그 헌터들의 의문에 동의했다.
악마란, 인간에게 끝 모를 증오심과 살의를 품고 있는 존재다.악마가 게이트에 입장한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면, 분명 그 즉시 습격해왔을 터다.
그러나 숲은 그들이 게이트에 입장해 보스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에 도착할 때까지 쭉 고요했다. 풀벌레 소리 하나조차 없는 이 숨 막히는 정적은 명백히 이상했다.
마치 최상위 포식자 하나에게 숲속의 생명체가 전부 잡아먹히기라도 한 듯이.
‘조심하자….’
명백한 경계심을 품은 채 신재혁은 조심스럽게 사원 내부로 진입했다.
***
일행은 곧 넓은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너진 돌무더기와 거대한 돌기둥이 가득한 기묘한 공간이었다.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용도를 알수 없는 돌기둥은 바오밥나무처럼 하늘을 떠받치는 듯 커다랬다.
돌기둥은 길이만큼이나 몹시 굵기도 했는데, 기둥 하나를 감싸 안으려면 무려 성인 4명이 양팔을 쭉 뻗어야 할 정도였다. 어떤 기둥은 허리가 부서져 다른 기둥들보다 높이가 낮기도 했다.
헌터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건 기둥만이 아니었다. 광장의 반대편 끝에는 제단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고, 제단 뒤에는 반쯤 부서진 비석이, 광장 중앙에는 그 비석으로 향하는 벽돌길이 있었다.
벽돌길의 양옆, 거대한 돌기둥 사이사이에는 이끼와 덩쿨로 뒤덮인 오래된 석상들이 작은 병마용처럼 수십 대 나열되어 있었다.
석상들은 검, 창, 활 등 제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침입자를 겁주려는 듯 모두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에선 공통적이었다.
“소대장님, 저 제단에 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일단 저곳까지 전진한다.”
명령을 내리기 직전, 헌터 하나가 끼어들었다.
“잠깐, 대장님. 저 석상들이 수상합니다.”
“석상이?”
“보통 만화 같은 거 보면, 저런석상들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공격해오던데….”
“참나, 헌터 일 원 투 데이도 아니고…. 딱 봐도 몇백년은돼 보이는 동상인데, 박물관에나 있을 저런 게 어떻게 움직이냐?”
하정재 지휘관이 말을 끊었다.
“아니. 일리가 있군…. 게이트에 고립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실수 하나가 전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가능성을 고려해 우선 하나씩 석상을 부수면서 이동한다.”
신재혁은 그가 꽤 현명한 지휘관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대 유적은 탐험가와 도굴꾼이 눈치채지 못할 각종 함정을 설치해두기 마련이라, 언제나 조심스럽게 수색해야 하는 법이었다….
지시를 전달받은 헌터들이 석상을 하나씩 파괴했다. 후열의 헌터들이 마나를 아끼기 위해 쉬는 동안 근력이 강한 헌터들이 망치와 철퇴로 석상을 때려 부쉈다.
“역시 아무 일도 없잖아? 괜히 쫄았네….”
그동안 신재혁은 남들 몰래 반대편의 제단에 접근했다. 비석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몸을 숙인 채로 비석 위의 넝쿨을 걷어내고 먼지를 털었다.
‘..! 역시!’
오래된 비석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에덴 공용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향의 문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게이트는 분명 에덴의 곳곳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신재혁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상기된 표정으로 그가 비문을 훑기 시작했다. 비문은 바람과 물로 인해 마모된 부분이 많았지만, 부분적으로는 해석할 수 있었다.
“지옥…. 악마,수호병…. 제국력 760년…. 제국력 760년?”
제국력 760년이라니. 분명 자신이 살던 시기가 제국력 500년대였을 텐데! 도대체 자신이 전생한 지 얼마나 지났던 것일까.
아니, 일단 인류가 760년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신재혁은 벌렁거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비석을 떠듬떠듬 해석해갔다.
“봉인…. 절반..? 파괴되면…. 그리고 또 수호병. 작동.”
신재혁의 눈이 석상을 파괴하고 있는 헌터들에게 향했다.
설마.
***
“소대장님! 이제 절반 정도 작업이 완료된 것 같습니다.”
“특이사항은 없고?”
“없습니다.”
대머리 소대장이 작업현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절반 정도의 석상이 파괴되었으나, 남아있는 돌병사들과 그 손에 들린 돌무기는 여전히 위압적이었다. 저 석상이 살아나 휘두른 돌몽둥이가 얼마나 강력하고 끔찍할지 상상했다.
석상의 일이 아니어도, 그는 현상황이 몹시 불안했다.
아직 교전이 한 번도 없다니.
게이트에서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폭풍전야인가….”
“잘못 들었습니다?”
“신경 쓸 거 없다. 그보다 최대한 빨리 석상을 전부 부수도록-”
우우웅-
기묘한 기동음이 들렸다. 오래된 스포츠카가 시동이 걸릴 때처럼 묵직하고 중후한 진동음이었다. 웅웅거리는 소음이 점점 커지면서 공터 전체에 울렸다. 수백 년 묵은 먼지와 돌가루가그 울림에 따라 허공에서 몸을 떨었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사람들의 눈이 움직였다.
소리는 석상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 어어?”
“뭐, 뭐야. 석상에서 빛이?”
노후화와 풍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갈라진 석상의 틈 사이로 별안간 푸른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옅지만, 아주 청명한 푸른 빛이었다. 그 빛을 알아본 헌터가 경악성을 토해냈다.
“마력광!”
“돌무기들 조심해! 석상이 깨어나고 있다!”
“전부 석상에서 멀리 떨어져서 진열을 갖춰!”
군인의 지휘에 따라 헌터들이 허겁지겁 중앙으로 모여들며 태세를 갖췄다. 재차 지휘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탐색조를 지휘했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수는 엇비슷하다!”
탱커들은 전열에서 방패를 들고 석상을 경계했고, 후열의 헌터와 군인들은 총을 장전하고 석상의 무리를 조준했다.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석상의 행동을 주시했다. 탱커 한 명이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사격 개시!”
“뒤져-엇!”
“쏴아아앗-!”
투두두두-!
타타탕-!!
타다다다다다닷-!!!
지시와 함께사격이 시작됐다. 방아쇠를 당기자 중기관총이 청명한 격발음을 토해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동이 중기관총을 든 헌터의 몸을 쾅쾅 때렸다.일반인이라면 견디지 못할 반동이었나, 각성자는 그것이 가능했다.
“좋아! 효과가 있다!”
집중적인 총탄 세례를 받은 석상 몇 대가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동료가 파괴되었음에도 여전히 석상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헌터들이 손쉽게 쓰러지는 적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뭐야, 별거 없잖아!”
“역시 E급 게이트다 이거구만.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어….”
안심한 헌터들이 계속해서 석상을 파괴해가는 사이, 석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차츰 선명한 색으로 변해갔다. 석상의 화가 난 표정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장내를 전부 덮을 정도로 광도가 커진 순간,
석상이 공격을 시작했다.
번쩍-!
마력으로 푸르게 충혈된 석상의 눈이 번뜩하더니, 레이저가 뿜어졌다. 양쪽 눈에서 튀어나온 푸른색 레이저는 전열의 탱커 한 명에게 닿았다.
“어?”
그 멍청한 ‘어?’ 소리가 그의 유언이 되었다.
“뭣-”
순식간에 그의 갑옷을 녹인 레이저는 그의 몸을 뚫고 후열의 헌터 한 명에까지 닿았다.
“끄아아! 으아아악!”
“꺄아아아악!”
“시발, 뭐야 이거!”
“산개해! 산개해-아악!”
그 사람은 다행히 운이좋은 편이었다. 손 하나밖에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십 대의 석상이 동시에 기동하며 죽음의 광선을 흩뿌리자, 순식간에 약 1/3 정도의 헌터가 녹아내리며 사망했다.
“후퇴! 후퇴! 이 방을 빠져나가! 사원 입구로 물러선다!”
“다들 후퇴해!”
운 좋게 살아남은 소대장이 탐색조에게 다급하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패닉 상태에 빠진 생존자들은 협회에서 교육받은 내용도 잊고 이미 오합지졸처럼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젠장, 고대 석상에서 왜 SF 무기가 나오는 거야!”
“애초에 E급 게이트에서 왜 이런 괴물들이..!”
살아남은 헌터들이 허겁지겁 들어온 곳을 거슬러 사원 입구로 달음박질쳤다. 달리면서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던 헌터가 큰 소리로 경고했다.
“조심해! 빛이 추격해온다!”
드드득.
돌 갈리는 소리와 함께 석상의 고개가 삐그덕 돌아가며 광선의 경로가 변화했다.
“빨리 나가! 빨리! 빨리! 제바알-”
“흐, 흐아-”
양쪽에서 덮쳐오는 빛무리를 피하지 못하고 헌터 몇 명이 또 잿덩이가 되었다. 빛을 막으려 손으로 얼굴을 가려도, 방패를 세워도 죽음의광선은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고 기어코 침입자를 척살했다.
“사원, 사원 밖으로!”
가까스로 광선을 피한 헌터들이 사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하여 겨우 학살현장에서 벗어난 이들은 처음 입장 인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우우웅-
침입자들이 헐레벌떡 달아났지만, 석상들은그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낮고 기묘한 구동음을 내는 석상들은 미동도 없이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마치 무언가를, 혹은 그 근방을 지키고 있는 수호병처럼.
대신 석상들은 충실하게 수호병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다.
그러니까, 유적 안에 존재하는 다음 희생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광장 안에 존재하는, 살아남은 쥐새끼를 찾아서.
***
“좆됐다….”
석상들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기둥 뒤에 숨어있던 신재혁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