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화 – 열세 번째
“거기, 괜찮으세요?”
쓰러진 상태의 이재연에게 다가간 신재혁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하지만 더 다가가기는 위험할 것 같았다. 사방에서 석상들이 푸른 안광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으으….”
시체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이재연 헌터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힘없이 몸을 뒤척였다. 일어서려는 것 같았다. 저대로 일어섰다간 석상들의 공격 범위에 들고 말 것이다. 신재혁이 기겁해서는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일어서지 마세요. 거기 가만히 계세요. 조금만 움직여도 석상의 시야에 포착될 겁니다.”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녀가 움직임을 멈췄다. 조금 뒤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알, 사알려, 살려주세요…. 제에발요….”
엎어져 얼굴을 바닥에 박은 채로 꼼짝달싹도 못하는 그녀가 애처롭게 빌었다. 목소리가 어색하게 늘어졌다. 부상을 입은 걸까. 신재혁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거기 그대로 가만히 계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신재혁이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그녀가 몸을 일으켜 골렘의 마력집광포를 맞는 비극적인 미래는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를 어떻게저 상태에서 구출할지가 문제였다.
‘생각해라. 어떻게 그녀를 구할 수 있지? 석상의 눈을 가려? 무엇으로? 눈을 가리는 순간, 석상이 돌아볼 가능성은? 문제가 되는 석상을 부숴야 하나?’
주변의 석상들이 그녀의 사방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녀는 꼼짝없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 신세였다.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였다. 성기사가 스스로를 닦달했다.
‘계속 생각해. 생각을 멈추지 마!’
신재혁이 자기 오른편의 석상 하나를 흘낏 곁눈질했다.
‘그래. 저 석상만 어떻게든 하면, 정면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운 좋게도 신재혁과 이재연 사이의 범위는 석상 하나에의해서만 감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감시하는 오른쪽 골렘만 없애면 어떻게든 그녀를 저 그물에서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방위는 석상 여러 대가 감시하고 있어 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이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신재혁은 혹시 소지품 중에 다른 골렘들에게 들키지 않고, 저 석상 하나만 처리할 수 있는 물건이 없을지 살펴봤다.
‘갑옷, 창, 권총, 등산용 힙백, 물통, 마력 나침반, 방패…. 방패? 방패라….’
마계철석으로 만든 내구도 좋은 방패였다. 그 방패가 몇 초라도 마력집광포를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방패로 오른쪽 석상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그 잠깐의 틈 동안그녀를 빼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방패가 석상의 마력집광포를 견디지 못한다면, 신재혁은 자신의 방패와 이재연과 함께 증발할 것이다. 이 방법은 너무 리스크가 컸다.
그래.차라리!
결정을 내린 신재혁이 창을 쥐었다. 골렘의 시야 밖, 원거리에서 창으로 석상의 머리만 부술 생각이었다.
신재혁은 E급 헌터들의 방망이질과 총이 골렘을 부수는 것을 기억했다. 내구도 자체는 약한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창으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을 터였다. 다른 동료 골렘이부서질 때, 다른 골렘들이 반응조차 안 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골렘만 부순다고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석상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창을 찔러야했다.
물론 신재혁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수십 년간 창을 휘두른 창의 달인이었다.
“후우….”
신재혁이 창 손잡이 끝을 역수로 잡았다. 창끝이 최대한 멀리 닿게 하기 위해서였다. 창을 거꾸로 쥔 팔을 머리 높이 들어 석상의 목을 조준했다.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단번에 부숴야 했다.
‘엘로아흐시여….’
신재혁이 침을 한번 꿀꺽 삼켰고, 호흡을 멈췄다. 신성력이 그의 몸을 타고 흐르며 육체를 강화했다. 이재연이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흡-!”
신재혁의 팔이 제비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잔상을 그렸다. 신속하고 정교한 움직임과 일체가 된 창이 쏜살같이 석상의 목으로 내리꽂혔다.
퍽-!
“좋아!”
성공이다! 창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깔끔했다. 창이 거칠게 석상의 목을 관통하자, 목에 콰드득 균열이 가더니 부서져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석상의 목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신재혁은 재빠르게 자세를 낮췄다. 혹시 모를 다른 골렘의 공격에 주의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골렘들은 신재혁의 예상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휴우- 예측이 맞아서 다행이야.’
신재혁은 마음속으로 엘로아흐께 짧게 기도를 올렸다. 이젠 석상들의 포위망 한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이재연을 구출할 수 있었다.
신재혁이 조심스럽게 이재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네 발자국 거리였다. 신재혁은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도와주우우우-”
“이제 괜찮아요. 구해드릴-”
두 발자국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허리 부근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신재혁이 고개를 내려 진동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가 대장간에서 제작한, 파마의 룬을 새긴 단검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파마의 룬은,
악마가 근처에 있으면 반응한다.
-신재혁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어느새 고개를 든 이재연의 얼굴이 보였다.
장난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히죽 웃고 있었다.
“이런¾ÆÁ, 들켰군?”
이재연의 몸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신재혁을 덮쳤다. 반투명한 살덩이가 암세포처럼 증식했다. 비대해진 몸에서 팔들이 솟아나오며 신재혁을 잡으려 했다.
“큭-!”
‘뭐지, 저건!’
신재혁은 자신을 덮쳐오는 기괴한 팔들을 피하면서도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적의 정체가 뭐지? 어째서 이재연이?
심지어 저 악마는 저렇게 몸집이 커지고 있었는데도, 석상들은 아무도 시야각에 들어온 악마를 공격하지 않았다.
‘설마 몸이 반투명해서 인식을못하는 건가? 아니. 자동형 골렘이 물리적인 시각으로 침입자를 판단하면 오작동이 많을 텐데, 마법사들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윽-’
뱀처럼 긴 팔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신재혁의 투구를 벗겨냈다. 신재혁은 다급히 보법을 밟으며 뒤로 후퇴했다. 석상의 공격 범위까지 신경 쓰며 후퇴해야 했기에, 상대에게 반격하기는커녕 적의 공격을 피하기도 급급했다. 결국 반투명한 손 한 개가 신재혁의 갑옷을 붙잡았다.
신재혁의 혀가 반사적으로 아리아를 읊었다.
“빛이여-!”
신재혁의 갑주에 신성한 빛이 흘렀다. 대리석 위에 떨어뜨린 산성처럼 반응은 격렬했다.
K̵̢̨͙̰̼̩̙͚͙̘͍̈́̅̓̄̐̇̌͒̃̿̋͘̚͜͝ͅí̵̹̬̟̖̣̩͕̉̏ͅͅe̷̟̩͇͕̬̺̗̳͚̘̊̆̏͆͒̋̉̈́̕͘͝ẹ̸̢̲̠̫̘͓̱̗̗̋ȩ̷̧̖̩̥̮̪͖͔̟̺̰̻͆̈́́͗̂̓͐̎e̸̤̽̉́̌̌̑̈́̈̑͑̑̽g̶̢͚̦͛̈́̆̓̽̈́̎̂̂͝͝h̸͉̮͇͖̱̳̥̾̋̅̒̓́̕h̵̡̜̭̺̝̣̓̍̈̈̽̔̀̍̑̈́̄͠͠h̷͕̥̣̼̭͑̎͛̔̎̊͒͂̎́͜͝h̵̨̡̰͖̪̤̰̲̮͚̼̹͕͍̔͌̔h̶̡̠̲̻̙͙̝̞̬̰̮̺̺͛̉h̵͇̤̹̼̖̤̤̠̹͂̅̆̽͜͜-̶̧̻̣̮̗̻̬̺̺͕̬̲̖̼̟̽̓͌̄̅̿͒͛̒͆̕͘̚!̵̨̧͓͙͈͓̜͈͍̗̬̼̽̀̐́̐͂͋͜͠
악마가 화상 입은 듯이 갑옷에서 손을 팍 떼어냈다. 신재혁을 붙잡은 촉수 표피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며 살점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신재혁은 숨을 고르고 태세를 정비했다. 왼손의 방패로 전신을 가리고, 창 든 오른손을 앞으로 쭉 빼 악마를 가리키며 신재혁이 외쳤다.
“네놈, 이재연 헌터를 어떻게 한 거냐-!”
이재연, 아니 저 기묘한 살덩어리가 악마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약 먹은 쥐처럼 신성력에 격렬하게 반응한 행동이 확신을 주었다.
문제는, ‘이재연 헌터가 원래부터 악마였는가-’하는 것이다.
‘설마…. 게이트 밖에,인간 사회에 이미 악마들이 숨어들었다는 것인가?’
만약 진실로 그러하다면, 어둠의 손길이 어디까지 닿았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깊숙이 기어들어가는 징그러운 지네의 형상이 생각을 헝클였다. 신재혁이 최악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신성력을 거두지 않은 채 고요히 상대를 경계하고 있자, 살덩어리는 빈틈을 찾으며 주춤거리다 갑자기 수축하기 시작했다.
살덩어리가 한곳으로 뭉치며 작게 압축되더니,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신재혁이 기억하고 있는 이재연 헌터의모습이 만들어졌다.
가래 끓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의 모습을 한 악마가 말했다.
“크¾륵, 너 벌â´É레야-! 저주×·¡¹Ö받을 엘ÆÁÖ °·ÂÇÑ ±로아흐의 개-ð¾î로구나-!”
신재혁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지성이 있는 악마라니. 최소 중급 악마라는 의미였다. 중급이라면 어떻게든 이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급 이상의 악마라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신재혁이 큰소리로 외쳤다.
“네 정체를 밝혀라, 지옥의 생명체야!”
“감히ÖÀ» Çϱ 그 조그만 입으§로 나에게이름을 é¾ú´Â묻는 것이냐- 이 È÷벌레야×·¡¹아아──!”
부르륵, 부르륵
퍼벅, 퍽! 펑!
악마의 분노에 호응하듯이, 그녀의 피부가 끓는 물의 수면처럼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피부 표면에서 살덩이가 거품처럼 부풀다 퍽 터지기를 반복했다.
“하지이만, ÇÏ수십 년 만의 첫Áö´대화이니, 내가 친-히-대답해÷´© 주리라-!”
‘좋아. 다행히 좀 멍청한 놈이군.’
방금의 질문은 일종의 테스트였다. 상대가 교활한 놈인지, 교활하지 않은지 판단하기 위한. 정체를 숨기고 대화를 거부하는 놈은 상대하기 까다로웠지만 자만하고 방심해 정체를 밝히는 단순한 녀석이라면 자기소개 속에서 약점을 찾을 수도 있었다.
“나아는 지옥의적법한 군주이신Ï¿¡¼½Ã½ºÅ- 진정한 마왕 폐하, 사ÁøÇÁ탄의 영광스러운 직속 기사다°íÀÖÁ안장이요, 그분께 ×·¡¹ÖÀ기만의 권능의 일부를` 하사받은 ÇÑ ±â´É유일-한 존재노라!”
악마의 말과 함께 그 몸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몸은 점점 색이 옅어지며 반투명해지더니, 이윽고 물웅덩이처럼 변했다.
“물웅덩이..!”
그 변화를 지켜보던 신재혁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히며 모든 질문을 관통했다.
이재연 헌터는 언제부터 이상현상을 보였는가?
물웅덩이를 밟았을 때부터.
이 게이트는 어째서 고작 E급 판정을 받았는가?
석상에 응집되어있는 마나는 게이트 밖에서 감지하기 못하기에.
이 유적은 무엇을 지키고 있던 것인가?
가공한 에너지를 가진 마력공급원을.
그 에너지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보스는 어디 있는가?
바로 그의 눈앞에.
“ÇÁ나의¾î이름은 리-템, 너 Á·Î±×·¡¹ 벌레가 하찮은 생애에서 들을 ©°¡¸¸ 마지막 이름이니라아-!”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손길이 신재혁을 노리며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