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9화 – 현장 실습
턱. 부우웅-
인천항 앞, 택시에서 내린 인영이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 형태는 온통 검은색 일변도의 옷차림인지라 어두운 밤공기에 쉽게 녹아들었다.
등에 맨 가방끈을 매만지던 흑의인黑衣人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슬며시 철조망 근처로 다가갔다.
철사 그물 너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후!”
놀라운 각력으로 2m 높이의 철조망을 휙 뛰어넘어 고양이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검은 모자가 살짝 들려 침입자의 얼굴이 보였다.
신재혁이었다.
“보안이 너무 허술한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으로 향하는 그를 가로막는 것은 철조망 하나뿐이었고, 주위엔 그 흔한 CCTV조차 없었다. 보안을 해제하기 위해 가방에 여러 장비까지 챙겨왔는데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정도로 허술하니 조폭들도 밀수가 가능한 거겠지.’
아직 흑사파의 거래까지는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그전에 거래 현장과 지형지물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신재혁이 스마트폰으로 엑셀 파일을 열어 오늘의 거래 위치를 확인했다.
“4H 터미널인가. 좋아.”
타다닥.
옅은 발걸음 소리가 항구를 가로질렀다. 신성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은은한 빛 때문에 감시자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4H 컨테이너 터미널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업무 시간 종료 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크레인 아래에 컨테이너 쌓인 상자들. 어지럽게 놓인 상자들 너머에 정박장이 보였다.
정박장 앞바다에는 시동 꺼진 화물선 하나가 두둥실 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게 밀수선인 듯했다. 밀수선치고는 뱃머리에 박힌 수정해운이라는 로고가 큼지막해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찰칵 찍었다. 차은경에게 전달할 증거를 남기기위해서였다.
컨테이너 하나 뒤에 몸을 숨기고 갑판 위쪽을 살폈다.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화물은 이미 전부 내린 것 같았다. 이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컨테이너들이 아마 배의 화물이었으리라.
“아직인가….”
거래 당사자 양측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에 딱 맞춰 올 셈인 걸까. 신재혁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컨테이너 중에 거래품이 있을 텐데….”
오늘의 거래 물품은 ‘통나무’와 ‘보충제’였다.
‘보충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낼 찬스였다.
조용한 발걸음이 컨테이너 사이를 오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결코 느리지 않았다.
‘거래자들도 자기 화물을 가져가려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필요할 텐데.’
그 표식만 발견하면 흑사파의 비밀스러운 거래물품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도 일이 아니었다.
컨테이너벽면을 살피며 움직이던 몸이 마지막 컨테이너 더미에 멈췄다.
“이게 마지막인데….”
다른 무리와 외따로 떨어진 두 개의 컨테이너 박스.
그 주위를 빙글 돌며 살피던 그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앗!”
컨테이너 정면, 양쪽 문손잡이 사이에 뱀 모양 표식이 인쇄되어 있었다.
흑사파를 상징하는 검은 뱀.
“-!”
찾았다. 신재혁은 신속히 문손잡이를 위로 올려 옆으로 젖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덥고 습한 공기가 틈새로 훅 밀려나왔다.
그리고 안에 들어있는,
“씹새끼들이….”
고요하게 불타는 눈이 컨테이너 안의 ‘통나무’ 더미를 바라봤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통나무’는 신재혁의 허리 높이까지 컨테이너 안을 채우고 있었다. 가히 수십 구는 돼 보였다.
퍼렇게 물든 몸뚱아리들. 팔, 다리, 몸통 구분하지 않고 온몸에 푸른 멍과 시반屍斑이 가득했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겼는지, 옮기기 전에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성기사의 두 눈이 잔혹한 참상을 바라봤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혀가 잘리고,
눈알이 터지고,
허리가 뒤틀리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흰 척추가 드러나고,
팔다리가 기이하게 꺾인,
그런,
절규하는 시체들의 산.
성기사가 조용히 컨테이너 문을 닫았다.
꾹닫은 입매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쿵하고 문이 닫히자 분노와 함께 의문이 피어올랐다.
흑사파의 행동은 명백히 선을 넘고 있었다. 아무리 조폭이라 한들, 생명을 이렇게까지 경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장기밀매가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시체를 함부로 취급할 리가 없었다. 상품이 상하지 않게 고이 포장해 놓겠지. 상품이 상하면 가격이 떨어질 테니 말이다.
전생에 론지노는 신앙교리성 소속 이단심문관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가끔 악신 숭배자들이 벌여놓은 사악한 의식의 현장을 보곤 했는데, 그때 제물로 바쳐진 시신들의 상태가 오히려 컨테이너 속의 시체들과 비슷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슴에 묻어두고 다음 컨테이너로 향했다. 마지막 컨테이너였다. 이 안에 ‘보충제’가 들어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신재혁의 양손이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빗장을 살짝 들고 옆으로 밀어 잠금을 해제했다.
팔에 가볍게 힘을 주자 스르륵, 천천히 문이 열렸다.
“뭐-”
컨테이너 속에는 뚜껑 없는 나무 상자로 가득했다.
상자 안에는 시체가 한 구씩 들어있었다.
‘보충제’의 정체는 바로 그 시체였다.
하지만 평범한 시체는 아니었다.
“초록색 피..?”
‘보충제’는, 악마의 시체를 가리키는 은어였다.
‘악마 시체라고? 이것도? 이것도?’
신재혁이 컨테이너 안에 가득한 나무 상자 속을 일일이 확인했다. 하나같이 형태가 기괴한악마 시체가 들어있었다.
그때였다.
부우우우우우웅-
“!”
컨테이너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엔진음이었다.
황급히 컨테이너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멀리서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등 뒤에 컨테이너 하나를 실을 수 있는 화물 트럭. 싸늘한 밤공기를 뚫으며 달려오는 트럭조명이 어두운 장내를 환하게 비쳤다.
“큭!”
신재혁이 다급히 몸을 숨길 수 있는 위치를 탐색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컨테이너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하필 그가 확인한 두 컨테이너가 다른 컨테이너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탓이었다.
숨을 수 있는 엄폐물까지 뛰어가기엔 트럭 조명에 비쳐 들킬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양손이 문 안쪽의 손잡이를 쥐었다.
컨테이너 안에서, 문을 잡아당겼다.
쿵-
닫히는 문 틈새로 빛이 사라졌다.
성기사는 어둠 속에 갇혔다.
***
덜커덩, 덜커덩.
신재혁이 숨은 컨테이너를 싣고 트럭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운전자는 컨테이너 내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컨테이너 속에 누군가 들어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모양이었다.
신재혁이 신에게 읊조렸다.
“광명을.”
손끝에신성력이 뭉치며 작은 광구光球가 생겨났다. 빛나는 공은 신재혁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컨테이너 내부를 비쳤다.
트럭이 이동하는 동안은 안전하겠다고 판단한 신재혁이 컨테이너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장부의 몸통에 소머리가 달린 시체, 사마귀 같은 팔의 시체, 몸에 열 개의 거미 다리가 있는 시체….
다양한 종류의 악마 사체가 각각 나무 상자 안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운반 도중 상품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듯이 고정 벨트를 장착한 상태였다.
“총기 거래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째서 악마 시체를?”
흑사파는 악마 시체를 수입하고 있었다. 아주 다양하게.
하지만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악마 시체의 용도로 알려진 것은 에너지 자원과 무기 가공, 포션 제작 정도였다. 어느 쪽이든 조폭 조직이 한다기엔 부적절해 보였다.
심지어 이 시체들은 무기 가공이나 포션 제작에 사용되기에 부적절한 재료였다. 무기로가공되는 시체는 단단한 갑각을 가졌거나, 뼈, 발톱 등의 부위가 아주 단단한 시체들이었다. 포션 제작은 강력한 재생력을 가진 악마의 사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컨테이너 속의 악마들은 그 조건을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악마 시체를 ‘보충제’라 불렀지.”
원래 은어란 게 밀수품의 정체를 모르도록 붙인다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악마와 보충제의 연관성은 떠올릴 수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증거물을 촬영하며 신재혁이 중얼거렸다.
“설마 시체를 먹기라도 하는 건가. 에이 설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글을 떠올렸다. 적의 신체부위를 먹는 것으로 상대의 강함을 얻는다는 미신을 믿는 어떤 원시 부족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대 문명에 사는 사람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할까.
부우우우웅- 덜컹, 덜컹.
신재혁이 고민하는 와중에도 트럭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덜커덩- 탈탈탈탈.
갑자기 트럭이 속도를 줄였다.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 쏠리는 것을 느낀 신재혁이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켰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지도가 인천 시내 구석지, 건물이 드문드문한 장소를 표시했다. 현위치는 ‘블랙 스네이크 바이오-메디컬 연구소’라는 이름의 건물이었다. 악마 생체 연구가 워낙 업계의 핫이슈다 보니, 요즘은 이런 이름의 싸구려 연구소가 정말 많았다.
끼이이익-
마침내 트럭이 멈춰 섰다.
신재혁은 컨테이너 내부를 밝히고 있던 신성 주문 ‘라이트’를 해제했다.
컨테이너 내부는 다시 어두컴컴해졌다.
컨테이너 문의 빗장이 열리는 듯 문 쪽이 삐걱거렸다.
신재혁은 재빨리 컨테이너 깊숙이, 커다란 시체 상자 뒤에 숨었다. 사람 하나 통째로 잡아먹는 일은 케이크먹기보다 쉬울 정도로 배가 산처럼 큰 악마 시체였다.
그 시체 뒤에 숨어선 눈 위쪽만 빼꼼 내민 채로 밖의 기척을 살폈다.
곧 문이 열리고 소매 걷은 일꾼 몇명이 들어왔다. 올라간 소매아래로 선명한 뱀 문신이 보였다. 흑사파 조직원들이었다.
컨테이너 밖에서 흰 가운의 노인이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연구원일까? 꽤 직위가 높아 보이는 인물이었다.
명령을 받은 일꾼들이 컨테이너에서 나무 상자를 내리기 시작했다. 문에서 가까운 시체부터 컨테이너 밖으로 빠져나갔다.
‘여기에 계속 있다간 들키겠는데…. 그냥 전부 때려눕힐까?’
무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재혁의 능력으론 말단 조폭 몇 명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재혁은 흑사파의 거점에 있었다. 이곳에 흑사파 조직원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저들을 상대하는 사이 한 명이라도 놓쳐서 비상신호를 보낸다면 아주 곤란해지리라.
‘어쩐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일꾼들의 손길은 실시간으로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즉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꿀꺽.
신재혁이 침을 삼켰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들키지 않고, 저 수상한 연구소 안으로 잠입할 방법이.
‘시발.’
신재혁이 가방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상자 속의 악마뱃속에 푹 찔러넣어 아래로 그었다. 복부가 절개되며 위장 안쪽의 거대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공간.
‘시발.’
신재혁은 그 속에 몸을 구겨 넣었다.
***
다행히 악마 시체 속에 숨는다는 회심의 한 수는 들키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들킨다면 기분이 정말 최악이었으리라.
물론 들키지 않았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시발시발시발시발.’
뱃속에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마치 자기가 아기 악마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
심지어 온몸에 악마 체액이 흠뻑 묻어 몹시 찝찝했다.
‘우웩, 입에 들어갔어. 씨이발, 개좆같네 진짜.’
신재혁은 처음으로 차은경의 부탁을 받은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흑사파의 수상한 연구소 한가운데에 있었으니까.
텅-
덜커덩거리며 굴러가던 수레가 멈췄다.
신재혁이 벌어진 배의 상처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고 밖의 상황을 살폈다.
시체 보관소 같은 곳이었다. 연구를 위한 재료를 보관하는 곳일까. 뚱뚱한 흑사파 조직원 한 명이 시체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 명뿐이군! 좋아. 조금만 더 다가와라. 조금만 더….’
뚱뚱이가 시체 상자를 수레에서 내리려는 듯 신재혁의 상자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
시체 뱃속에서 튀어나온 두 팔이 조폭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 -!!”
기습을 당한 조폭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숨통이 물리적으로 막혔기에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렸다. 통통한 손가락들이 팔목을 마구 긁어댔으나 목을 옥죈 억센 손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덩치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것이었다.
“끄으, 몸이 다 찌뿌둥하네.”
악마 뱃살을 들추고 위장에서 나온 신재혁이 기지개를 쫙 폈다. 긴장 상태에서 오랫동안 웅크린 채로 있었더니 근육이 욱신거렸다.
“하, 일단 이 드러운 거부터 어떻게든 해야지.”
손바닥을 펼 때마다 손가락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체액이 거미줄처럼 길게 늘어졌다. 옷에 잔뜩 묻은 체액이 굳으면 움직이기 불편할 것 같았다.
성기사가 읊조렸다.
“당신의 빛으로 세속의 더러움을 정화하소서….”
정화 주문이 발휘되자 은은한 빛무리가 일대를 감쌌다. 빛무리가 닿는 곳마다 묻어있는 오물이 스르륵 사라졌다.
“훨씬 낫네!”
방금의정화 때문에 재료보관소의 악마 시체도 좀 소멸한 것 같지만, 자기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신재혁은 우선 상자에서 떼어 낸 고정 벨트로 기절한 뚱뚱이를 묶고 상자 안에 숨겨두었다. 이러면 다른 조직원들이 찾기도힘들고, 뚱뚱이가 몇 시간 후에 깨어나도 한동안은 못 움직일 터였다.
그리고는 복장과 소지품을 점검했다. 옷, 모자, 가방. 가방 안에는 핸드폰, 파마의 단검, 보안 해제용 해킹 도구 몇 개, 그리고 메이스 하나.
가방에서 시커먼 메이스를 꺼냈다. 전투 상황을 대비해 들고 온 무기였다. 갑옷이나 창, 방패는 너무 눈에 띌뿐더러 크기도 커서 들고 오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상대는 고작해야 조폭 조직. 자신의 실력이면 메이스로도 충분했다.
매끄럽게 윤기가 흐르는 마계철제 메이스 손잡이를 쥐었다. 서늘한 한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랐다.
“자, 이제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좀 털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