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30화 - 실험실
연구실 복도는 어두웠다. 돈을 아끼려고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연구실로 재사용하는지 페인트가 벗겨진 벽은 갈라진 곳 투성이였고 곰팡이가 무성했다.
형광등은 정상적으로 켜진 것보다 꺼진 것이 더 많았다. 가끔 수명이 간당간당한 전구 몇 개가 빠르게 명멸하며 눈을 어지럽혔다.
눈을 찌푸리며 신재혁이 어두운 복도 중앙을 걸었다.
“이런 음침한 곳에서 도대체 뭘 연구한다는 거지?”
분명 흑사파에게 중요한 곳이라는 감이 들었는데, 의외로 건물 내에 사람이 없었다. 아직 경비나 연구원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컨테이너에 숨어있을 때 목격한 열 명 정도의 일꾼과 늙은 연구원 한 명이 이 연구소 인원의 전부인 것일까? 실제로 그럴지도 몰랐다.
‘보안도 너무 허술해.’
대부분의 문이 잠금장치도 없이 열려있었고 천장 구석에 달린 CCTV도 모형에 불과했다.
단순히 돈을 아끼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최근에 만들어진 시설인 걸까?
“아니, 그보다는 이곳을 최대한 은폐하려는 느낌….”
증인이든, 물질적인 증거물이든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결벽적인 의도가 느껴졌다. 조직 외의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원들에게마저 은폐하듯이. 흑사파 회장과 간부 몇 명, 이곳에서 일하는 따까리들이 연구소의 비밀을 아는 전부이리라.
비밀스러운 실험의 흔적이 없나 살피며 나아가던 신재혁은 드디어 수상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는 잠겨있네.”
처음으로 잠금장치가 달린 문을 발견했다. 아이디 카드를 긁어야 열리는 구조였다.
“젠장, 아까 기절시킨 뚱뚱이 몸을 뒤져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 방으로 또 돌아갔다간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에 조직원을 마주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대신 신재혁은 가방에서 어떤 기계장치를 꺼냈다. 원래는 항구의 보안장치를 해제하려고챙긴 물건이었다.
“이걸 여기서 쓰네…. 인생의 오묘함이란.”
신재혁이 헛소리를 뱉으며 전선을 도어락에 연결했다.
띠리릭- 하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신재혁이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문 안으로 진입했다.
문안쪽은 불이 꺼져 어두컴컴했다.손으로 벽면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딸칵. 전구가 환하게 빛나며 방안을 밝혔다.
“..!”
그곳은 수술실이었다. 다른 방과는 달리 자주 이용되는 장소 같았다. 수술실 안의 도구들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형광등도 전부 새것이었다.
방 중앙엔 사람 하나가 누울 정도 크기의 수술대가 있었다. 위쪽엔 수술대 조명이, 의자엔 팔, 다리, 허리, 목을 묶을 수 있는 두꺼운 벨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벨트는 너덜너덜했는데, 누군가 수술 중에 몸을들썩이며 난동을 피운 것처럼 잔뜩 뜯어지고 헤져 있었다.
바닥이 마르지 않은 피로 범벅인 걸 보니, 마지막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정도 굳기면, 30분 정도 됐나.
그런데 이 정도 양이라니…. 도대체 무슨 수술이 있었던 거지?’
바닥 전체를 덮을 듯이 핏물이 흥건했다. 지나치게 많았다. 한 명에게서 나왔다면 치사량에 근접할 것이다.
이곳에서 어떤 실험을 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사람을 살리는 수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신재혁이 수술실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단서가 없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
수술 기록처럼 확실한 단서는 없었지만, 무엇인가를 찾았다.
수술대 뒤에 가려져 있던 큼지막한 쓰레기통. 그 안에 들어있는 살덩어리들. 간, 위, 창자, 심장….
“윽….”
사람의 장기? 아니, 그것뿐이 아니었다. 신재혁이 메스를 이용해 쓰레기통 안을 들춰보았다.
사람의 장기에 깔려 보이지 않은 아래에 다른 것이 있었다.초록색 피로 범벅인 살덩어리. 입을 벌린 채로 죽어있는 악마 시체였다. 컨테이너에서 본 시체 중 하나였다. 밖에서 갈라져 훤히 드러난 복부의 내부가 텅 비어있었다.
보기에 역겨웠다. 신재혁이 쓰레기통 뚜껑을 덮었다. 피와 시체의 악취가 틈바구니로 새어나왔다. 비릿한 혈향이 으스스한 기류와 섞이며 폐 속을 가득 채웠다. 덩달아 좋지 않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정황 증거가 가리키는 진실이 너무불길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모든 증거가 하나의 가능성을 가리켰다.
─흑사파는 악마 시체와 인간 시체로 연구를 하고 있다.
“악마와 인간으로 연구라니,”
그건 마치 흑마법사 같지 않은가.
***
수술실에서 빠져나온 신재혁은 이전보다 더 신속한 발놀림으로 연구소 내부를 탐색했다. 보안장치도 없겠다, 경비도 없겠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방 곳곳을 누볐다. 움직이는 속도가 그의 초조한 심정을대변했다.
이곳에는 무언가 수상쩍고 불길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이 확실했다. 어쩌면 흑마법사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정말 흑마법사라면,한시라도 빨리 죽여야 했다. 신재혁은 흑마법사가 모두 잠재적인 배신자라고 믿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방에는 대부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성기사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방마저도 집요하게 구석구석을 뒤졌다. 비정상적인 집착이 느껴지리만큼. 그는 경험으로부터 방치된 흑마법사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쓸데 없이 넓네…. 엇..!”
마침내 신재혁이 도어락이 달린 문을 발견했다. 수술실 문에 달려있던 것과 같은 종료의 도어락이었다. 수술실 문을 열었던 방법으로 잠금을 해제했다.
문 너머는 유난히 공기가 불쾌한 좁은 복도였다. 호텔 방처럼, 아니 그보다는 교도소 감방처럼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문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신재혁이 첫 번째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얼굴 높이에 유리창이 달려있었고 창 아래에 서류철이, 더 아래에는 한쪽으로만 열리는 구조의 네모난 개구멍이 있었다. 문고리 위에 잠금장치가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봐온 전자식이 아니라 물리적인 열쇠가 필요한 재래식 구조였다.
신재혁이 유리창 건너편을 살폈다. 자그만 단칸방이었다. 불을 일부러 꺼놨는지, 전구 수명이 다했는지 방안은 깜깜했다. 눈을 가늘게 뜨니 복도 불빛으로 희미하게나마 안을 살필 수 있었다.
감옥 독방을 연상시키는 좁고 음침한 방. 문 앞의 식판에는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어 파리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한쪽 구석에는 요강이 있었는데, 며칠간 치우지 않은것처럼 노폐물이 가득했다.
‘뭐지?’
그리고 반대쪽 구석에 무언가 검은 형태가 있었다. 사람 크기의 실루엣이었다. 두 벽면이 만난 모서리에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가 벽에 기대 있었다. 사람이라면 어깨로 추정되는 부분이 아주 느릿하게 상하 운동을 하는 모습이 마치 잠에 빠진 짐승처럼도 보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지….”
신재혁이 조용히첫 번째 문에서 멀어졌다. 괜히 건드렸다간 안 좋은 사건이 터질 것 같았다. 소란이 일어날 위험을 감수하느니 얌전히 다른 단서를 찾아보는 편이 좋았다. 그는 얌전히 다음 문으로 다가갔다.
두 번째 문창문을 들여다봤다. 첫 번째 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첫째 방과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빈방이네….’
딱히 건질 것이 없었기에 그는 곧장 세 번째 문 앞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방의 형태는 앞과 동일했으나 복도의 조명이 문 바로 위에 있는 덕분에 깜깜한 내부가 희미하게 비쳤다.
방 중앙에 어떤 인영人影이 있었다. 무언가에 올라타 몸을 들썩이는 형태. 잘 보이지 않았다.
신재혁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방문에 바싹 붙었다.
실수로 무릎이 문에 부딪히며 쾅-하고 큰소리를 냈다.
‘이런.’
소리를 들은 문 안의 형태가 몸을 번쩍 일으켰다.
“사람..?”
벌거벗은 남자였다. 그의 몸은 며칠 동안 씻지 않은 것처럼 더러웠고, 눈은 혼탁했다. 배와 가슴에 꿰멘 흉터 자국이 있었다. 엎드려있던 남자가 일어나자 아래에 깔려있던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악마의 시체였다. 그것은 불독처럼 생겼지만, 다리가 여덟 개 달려있었다. 문쪽으로 향한 엉덩이에서 희고 찐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액체의 정체를 짐작한 신재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사타구니 사이로 향했다. 하늘을 범할 듯이 뻣뻣하게 선 육봉에서 끈적한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아,시발 내 눈.”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문 안의 남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문을 향해 뛰어오더니-
쾅!
신원불명의 남자가 머리를 문에 박치기하자 큰 소음이 울렸다. 얼마나 세계 박았는지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아플 법도 했는데 그는 고통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주먹으로 문을 내리쳤다. 문 밖의 자신을 잡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쾅! 쾅! 쾅!
그는 문을 부수려는 듯했지만, 방문은 지나치게 튼튼해 미동도 없었다.
‘깜짝이야.’
신재혁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건너편에서 미쳐 날뛰는 존재가 무섭진 않았지만 영 부담스러웠다. 성욕에 미친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열락을 바라는 눈에 기이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신재혁에게익숙한 기운이었다….
유리에 비치는 부담스러운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래로 내린 시선에 서류철이 보였다. 쉽게 꺼내 볼 수 있게 문 앞에 테이프로 접착해놓은 서류철이었다.신재혁은 그 안에 있는 파일을 꺼내 읽었다. 연구 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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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번호] 035.
[실험 일자] 03.11.
[실험 대상] 008번
[품종] 임프
[부위] 폐, 간, 심장, 위장, 고환(으로 추정되는 부위. 임프에겐 생식기가 없는데 어째서 고환은 존재하는 것이지? 추가 연구 필요.)
[특징]신체 능력은 미약. 특수 능력 없음. 지능 상당히 하락. 과도한 성욕이 발현됨.
…
===
휘갈긴 글씨체가 신재혁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 투성이였다.
‘실험? 품종? 도대체-’
콰앙!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실험체들이 갇혀있는 방문이 아니었다. 신재혁이 이곳에 들어온 문이었다.
문을 걷어차며 조폭 한 명이 나타났다. 방 안의 남자가 일으킨 큰 소음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아뿔싸!’
“똥팔아! 재료 정리하랬더니, 또 여기 숨어선 딸치고 있었냐아-아?”
고개를 돌리는 조폭과 신재혁의 눈이 딱 마주쳤다. 서류뭉치를 뒤적이는 자세 그대로 신재혁이 얼어붙었다.
‘시발!’
신재혁이 다급히 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입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침입자다아아아아아아아-!!!”
우렁찬 목청이 연구소 복도에 퍼졌다. 거대한 경고성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뒤늦게 도착한 메이스가 그의 성대를 후려쳤다.
“켁, 켁-!”
목에 망치 같은 메이스를 얻어맞은 조폭이 놀라며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신재혁은 더 놀란 상태였다.
‘어떻게 멀쩡하지? 목뼈를 부러뜨릴 생각으로 쳤는데. 순간적으로 뭔가 물렁한 손맛이-’
“이런 씨이발, 아프잖아….”
그가 피가 흐르는 목을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평범한 근력이 아닌데. 형씨, 각성자구나? 제법 솜씨가 좋아 보이는데, 어디서 보냈지? 적룡파인가? 적룡파에서 여기는 어떻게 안 거지?”
신재혁은굳이 대답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상대는 영악하게 동료들이 합류할 때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전에 그를 쓰러뜨리고빠져나가야 했다.
신성력으로 강화된 육체가 좁은 복도를 박차며 달렸다. 한껏 고조된 전투감각에 상대가 바지춤에서 사시미를 꺼내드는 것이 걸렸다.
“이런 좁은 곳에서 메이스라니! 멍청하긴-”
메이스는 넓은 곳에서 다수의 적을 분쇄할 때 유리한 무기. 이런 좁은 복도에서 휘두르다간 벽에 박힌 메이스를 뽑느라 동작이 느려질 것이었다.
반면 적이 들고 있는 것은 날이 짧은 사시미. 좁은 공간에서 휘두르기도, 찌르기도 손쉬운 무기였다.
신재혁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조폭이 비열하게 미소지으며 칼을 찔러왔다. 복부를 겨냥한 공격이었다. 신재혁이 달려오는 속도대로 배에 꽂아 넣을 생각이었으리라.
그 계획은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푸우욱-!
스트라이크!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에 조폭이 웃음 지었다. 칼이 창자를 끊어내는 감각. 착각했을 리가 없다. 그는 몇 번이고 이 감각을 느껴보았다. 창자끊기에 성공한 것이 확실했다. 이제 놈은 배를 부여잡으면서 주저앉겠-
“후, 흐! 후-?”
콰앙-!
주먹이 승리감에 취해 방심한 조폭의 턱을 때렸다. 눈 흰자위를 뒤집어 까며 조폭이 실 끊긴 인형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신재혁은 신음도 없이 복부에서 사시미를 뽑아냈다. 신성력이 상처 부위로 집중되자 금세 피가 멎고 새살이 돋아났다. 감쪽같이 부상이 치료되었다.
“좆밥 새끼.”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주고 뼈를 취하기.
신재혁이 즐겨 사용하는 전술이었다. 그는 살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직자와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신성력이 이 무식한 전술을 가능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상대의 뼈만 취할 수 있었다.
쓰러진 놈에게 관심을 거두고 망설임 없이 문을 뛰쳐나갔다.
테이블로 가득한 넓은 방. 저 앞, 좌우에 문이 하나씩. 어디로 가야 하지? 누군가 들어오면 반대쪽 문으로 도망가야 하나?
그때 문이 열렸다.
좌우의 문이 동시에.
“여기다! 침입자다!”
“필두야-! 괜찮냐아-?”
“이 새끼! 우리 동생을 어떻게 했지?”
“막내 똥팔이가 보이지 않는 것도 네 녀석 짓이냐-?”
양쪽 문에서 흑사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젠장….’
일이 꼬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