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33화 - 케르베로스 (1) (33/72)



〈 33화 〉33화 - 케르베로스 (1)

스타브 클럽(Starve Club).

인천의 오래된 상점가에 있는 한 클럽이었다. 밖은 이미 깜깜해 클럽이 활기를 띠고 춤추는 사람으로 가득 찰 시간이었는데도 클럽 내부는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그곳이 조폭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장소라는 것을 아는 주민들이 클럽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사파 조폭들이 상주하는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마침내 방문자가 등장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가방을 등에 멘 남자. 신재혁이었다.

신재혁이 스마트폰을 조작해 중요 증거 파일을 차은경에게 전송했다. 조직원 정보와 불법 밀수에 관련된 파일들이었다. 연구소와 마인 연구에 대한 것은 보내지 않았다. 경찰이 얽히기엔 사건이 지나치게 위험했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악한 연구가 유포될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재혁 자신이 관련자를 모조리 죽일 생각이었다.

“‘청소부’를 불렀으니 시체는 알아서  처리했겠지….”

미스터 B의 조직이자 중개 웹사이트인 ‘게헨나’에서는 해결사들을 위해 이것저것 쓸모가 많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해결사의 업무가 끝난 후 이유를 묻지 않고 작업장의 증거를 인멸해주는 ‘청소 서비스’도 그중 하나였다.

신재혁은 게헨나에서 자신의 회원 등급이 VIP 등급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VIP 등급은 하루 동안 제한 없이 몇 번이고 청소부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닥이 빨갛게 변한 가방에서 메이스를 꺼냈다. 머리에 피가 단단히 굳어 청소하려면 꽤 수고를 들여야  것 같았다.

신재혁이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아무도 지키지 않는 클럽 입구로 입장했다.


“…정말로 아무도 없군.”

붉고 푸른 조명으로 얼룩덜룩한 실내는 고요했다. 류창근 회장은 이 시간대에 혼자 술을 마신다 했던가. 허 부장을 심문해 알아낸 정보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조금  안쪽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이 춤을 출 수 있는 넓은 광장은 류창근의 입맛대로 개조된 상태였다. 화분과 유리잔들, 간부들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석조 테이블 여러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클럽 깊숙한 곳에 바텐더를 위한 긴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안쪽엔 직원 한 명이 덜덜 떨면서 술을 따르고 있었고, 고급스러운 유리잔을 쥔 사내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덩치가 곰처럼 크고 건드리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 왼쪽뺨에 난 길쭉한 칼자국. 허 부장이 가르쳐준 흑사파 두목의 인상착의와 동일했다. 걷어 올린 와이셔츠 소매 아래에서 흑사 문신이 핏줄에 박동에 따라 움찔거렸다.


그가 기척을 느끼고 신재혁을 슬쩍 바라봤다.

“왔나. 기다리고 있었다.”

신재혁이 의아함에 눈을 찡그렸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일까? 친절하게도 상대가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막내한테 보고를 받았지. 혼자 연구소 인력을 전부 죽였다고? 내가 알기로 적룡파엔 그런 인재가 없는데….”

그가 술잔의 곡선진 배를 매만지며 포도  알을 집어먹었다. 입속에서 과즙이 터지는 것을 느끼며 류창근이 입을 오물거렸다.

‘이런, 기절시킨 녀석을 깜빡했군.’

신재혁이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생각해보니 그에게선 마기가 느껴지지 않아 기절만 시켰었다. 관계자인 걸 알았다면 그때 기절시키지 않고 죽이는 거였는데.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그 녀석은 마인도, 연구원도 아닌 모양이었고.

신재혁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류창근이 말을 이었다.

“적룡파가 외국돈 받아먹는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이었나 보군. 그쪽에서 고용한 용병이냐? …아니, 상관없겠지. 이젠 조직 대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문제니.”

“왜 도망치지 않았지?”

그 물음에 드디어 류창근이 몸을 돌려 신재혁을 빤히 바라봤다. 험상궂은 면상이 신재혁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확실히 이쪽 바닥은 잘 모르는군. 왜 도망치지 않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나. 이 바닥은 가오에 살고 가오에 죽는다. 그 누가 도망치는 늑대를 우두머리로 섬기겠는가? 꼬리를 만 들개는, 다른 들개떼의 먹잇감이 될 뿐.”

상대의 투지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상대가 기습을 걸어올 것 같았다. 그가 벌인 일 때문에 상당히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다. 신재혁이 조용히 가방을 벗어 멀리 치웠다. 싸움에 거추장스러울 것 같았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상당히 많은 자금을 투자한 프로젝트를 네가 망치는 바람에 반대파들이 알았다간 내 입지가 위험할 판이거든…. 네놈을 잡아 적룡파로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수밖에!”

상처 입은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는 류창근에게 신재혁이 소리쳤다.

“왜 그런 실험을 한 거지? 목적이 뭐냐? 네 배후는 누구고!”

“궁금한 게 많군. 질문은 승자의 권리. 네가 이기면 전부 대답해 주마.”

그가 바닥이  술잔을 내려놨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바텐더에게 건넸다.

“VIP에게 연락해. 일이 좀 틀어진 것 같다고.”

바텐더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자판을 두드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교육을 받은 직원이었다.

“보, 보냈습니다….”

류창근은 말없이 남아있는 포도를 씹어먹었다.

“회, 회장님, 저는 이제 가봐도 될까요?”
“네가 만들어주는 술맛, 참 좋았는데. 아쉽군….”

“예..?”

그의 머리 위로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처음엔 주먹만하던 그 그림자는 점점 거대해졌다. 공포에 사로잡힌 바텐더가 제 위쪽에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려-

콰직!

거대한 개의 머리가 바텐더의 머리를 물었다. 아래로 숙인 목이 펴지자 날카로운 이빨사이에  몸이 공중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딸려올라왔다. 으드득 으드득, 사람을  턱 안에서  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섬뜩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바텐더의 몸이 감전된 사람처럼 움찔거렸다.

콰드득! 목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줄줄 흐르던 몸의 움직임이 멎고 허공에 축 늘어졌다. 개 머리가 마침내 턱을 열자 이빨 자국으로 너덜너덜한 몸뚱아리가 피웅덩이로 털썩 떨어졌다.

“..!”

신재혁은  개 머리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확인하려 긴 목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개 머리가 달린 목은 류창근의 어깨 뒤, 오른쪽 날개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심지어 머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반대편 날개뼈에도 마찬가지로 거대한 머리가 돋아나와 있었다.

‘저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르베로스….’


두 개의 악마 머리 사이에서 사람 머리가 입술을 핥았다.

“음, 네 피는 네가 탄 술맛만큼 향긋하구나.”
“네 녀석-”

신재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부하를 잡아먹은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양쪽에서 그를 경계하는  견두犬頭가 너무 위협적이었다.

류창근은 자신을 경계하는 모습에 피식 웃더니 맨손으로 와이셔츠를  찢었다. 그 아래에 있는 무수한 흉터와 수술자국이 범상치 않은 내력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은, 맥동하는 검은 심장. 악마의 심장에서 넘쳐 흐르는 마기가 전신의 근육으로 공급되는 모습이 피부 아래로도 뚜렷이 보였다.


“파키스탄에 나타난 A급 게이트의 보스인 케르베로스다. 암시장에서 시체를 구매하느라 내 비자금도 거덜났고 내 몸의 장기도 거의 다 케르베로스의 장기로 교체되었지만, 보다시피 웬만한 각성자 안 부러운 힘을 얻었지.”

류창근이 지옥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에서는 검붉은 귀화가 타오르고 있었고 그르렁대는 입김 사이로 불안개와 독안개가 섞여 나왔다.

‘왼쪽 머리는 독, 오른쪽 머리는 불인가. 위험하군…. 하지만 거리를 벌려서 뇌창만으로 어떻게든-’



류창근이 테이블 뒤쪽에서 침입자를 위해 준비해  무기를 꺼냈다. 총이었다. 소총 두 정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그가 전투의 시작을 고했다.

“기다려줘서 고맙군. 그럼 시작해볼까.”
‘시발!’

투두두두두두-
투타타타타타-

양손에  소총이 불을 뿜었다. 진열장에 전시된 술병과 유리잔이 와장창 깨지며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신재혁이 황급히 아리아를 암송했다.

“주는미쁘사나를굳게하시니, 이영혼을악한자에서지키소서!”

천상의 보호막이 전개되며 신재혁의 몸을 보호했다. 신성한 기운이 맴도는 막에 총알이 부딛히자 표면에 원형 파문이 일더니 총알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총알 하나하나의 충격량을 막아낼때마다 신재혁의 영혼에서 신성력이 쑥쑥 빠져나갔다.

‘이대론  되겠어. 신성력 소모가 심해!’

보호막을 올린 채로는 시전자 자신도 움직일 수 없었기에 신재혁이 보호막을 해제했다. 총알  발이 그의 몸에 박혔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재빨리 커다란 탁자를 넘어뜨려 그 뒤에 숨었다. 두꺼운 탁자면이 방패처럼 총알을 막아냈다.

‘크윽! 총알은 처음 맞아보는데 꽤 아프네.’

총알구멍이  복부로 치유의 기운을집중하자  안쪽에서부터 살이 차오르며 총알이 상처 안에서 빠져나왔다. 새살이 돋아 상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어떡하지?’

접근전은 위험할 것 같아 원거리에서 뇌창을 던져 그를 상대하려 했는데, 상대가 총을 꺼내드니 오히려 불리해진 것은 자신이었다. 뇌창을 던지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마자 장대비 같은 총알 세례가 자신을 벌집으로 만들리라. 어떻게든 총을 무력화하고 그에게 접근해야 했다.

투두둣.

별안간 매서운 총소리가 멈췄다.

‘재장전하는 건가?’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총 든 적을 상대하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 없었다. 탄창을 갈아 끼우는 데 몇 초가 걸리는지, 탄창 하나에 얼마나 많은 총알이 들어가는지 정보가 부족했다. 정보의 부재는 망설임을 낳았다.

하지만 총격전에 익숙한 류창근은 이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았다.

탁자 뒤편으로 무언가 날아왔다. 주먹 크기만 한 둥그런 물체. 서늘한 직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신재혁은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굴렀다.

콰아아아아앙-!

수류탄이 터지며 탁자가 박살이 났다. 드디어 엄폐물 뒤에서 튀어나온 적을 보고 류창근이 방아쇠를 당겼다.

“잡았다, 이 쥐새끼야!”

메이스 머리 부분으로  머리를 가려 보호한 채로 신재혁이 엄폐물을 찾아 달렸다. 총알 몇 발이 몸에 추가로 박혔고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 총알이 뒤쪽의 의자와 화분을 박살냈다.


겨우 기둥 뒤로 피해 벌집 신세는 면했지만, 이대로는 답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도망만 다닐 수는 없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총알과 폭탄은 넉넉하게 준비해 왔을 테니 소모전을 펼칠 수도 없었다. 결국 그의 손에서 총을 없애는 방법만이 살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엘로아흐여. 당신의 빛을, 나의 손으로!”

뇌창을 소환한 신재혁이 기둥 옆으로 튀어나와 삼두參頭 마인에게 벼락을 쏘았다. 총알이 섬뜩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기에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 달인의 투창은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긴박하게 만들어진 궤도는 지나치게 정확하고, 정직했다. 상대가 뻔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하, 소용없다! 그 기술은 이미 부하에게 들었지. 네가 팔 휘두르는 속도보다 내 발이 더 빠르니!”

진각을 밟으며 류창근이 몸을 옆으로 날렸다. A급 보스와 일체가 된 마인의 육체가 땅을 박차자, 지면이 부서지며 대리석 조각이 공중을 날았다. 회심의 일격이 헛되이 빈공간을 가르고 벽에 박혔다.

성공적으로 공격을 피했음에도 류창근은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가 어지럽게 스텝을 밟자 총열도 흔들리며 불규칙적인 열선의 궤도를 만들었다.

‘안 되겠다.’

신재혁이 다시 보호막을 올렸다. 초당 스무 번씩 실드를 두들기는 공격에 신성력이 잘근잘근 빠져나갔다. 당장은 안전해졌지만 이대로라면 10분도 버티지 못할  같았다.

“으하하하! 초조해 보이는구나! 과연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위기 상황에선  번의 재치가 상황을 역전시키는 법이었다…. 살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신재혁의 두뇌가 번뜩였다.

‘저거라면!’

당신의 빛을, 나의 손으로. 신재혁이 뇌창을 소환했다.

“그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류창근이 잠시 사격을 멈추고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았다. 그러면서도 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탄창을 새로이 갈았다. 잠시 공격이 멈춘  틈을 신재혁이 유용하게 이용했다.

보호막이 내려가고 번개가 발사됐다. 류창근은 여유롭게  공격을 피했다.

“멍청한 놈, 이젠 끝이다-”
“어리석긴, 노리는 건 네가 아니었다!”

쾅! 신재혁이 던진 번개는 일직선으로 날아가 천장의 화재감지기 옆에 박혔다. 뇌창에서 튀는 스파크를 감지한 화재감지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고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뿜어졌다.

“화재경보? 그런다고 경찰이 네 목숨을 구해줄  같느냐-!”

신재혁이 아리아를 읊었다.

“물이 자신의 주인을 만나자 얼굴을 수줍게 붉히도다-”

신성 주문, 축복(Blessing).

신재혁이 엘로아흐에게 기도해 스프링클러를 축복했다. 신앙 깊은 성인이 스프링클러를 축복하자 영적인 기운이 배수구에 깃들었다. 그러자 천장에서 쏟아지는 물이 적포도주처럼 자색 빛을 띠는 성수로 변했다.

“뭣- 크아아악!”

온몸을 타고 흐르는 성수의 빗줄기에 류창근이 정신을 못차렸다. 산성처럼 살을 녹이는 물줄기를 막고자 몸을 털고, 피부를 긁고, 팔로 얼굴을 가려도 성수는 기어코 악마의 살을 게걸스럽게 정화했다.

성수가 팔을 타고 흐르며 힘줄을 녹이니 총을 쥔 악력이 점점 약해졌다. 마침내 허우적거리는 두 팔이 총을 놓쳤다. 신재혁의 눈이 빛났다.

‘지금이다!’

그가 자리를 박차고  개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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