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35화 – 이삭Isaac (35/72)



〈 35화 〉35화 – 이삭Isaac

상태창, 시스템, 그리고 각성.

그것은 인류에게 미지의 능력이었다.
과학으로 설명할  없는정체불명의 법칙.

하지만 그 능력은 분명 축복이었다. 태생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인간이 몬스터를 사냥하게 만들어주는,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의 은혜.

진화론자는 상태창이 자연발생적인 인류의 진화라고 주장했고, 공상가는 미래의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라고 선조들에게 보낸 초미래기술이라 주장했으며, 낙원교 같은 사이비 종교쟁이들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 말했다.

물론 이 무의미한 논쟁에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상태창은 굉장히 불친절하고 무반응했다. 게임처럼 스탯이나 스킬을 표시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레벨업 시 원하는 능력을 골라 성장시킬 수도 없었으며, 업적이나 문명 무력 수치 같은 항목은 의미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인류는 상태창의 비밀을 연구했다. 연금술 같은 허황된 목표일지라도, 성공했을 때 예상되는 과실이 너무 달콤했기에.

다행히 연구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사람들은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우선 각성자는 각성하는 즉시 마나와 각성 스킬을 획득하며 전반적인 육체 능력이 향상된다. 신체 능력이나 지적 능력 등등을 포괄한 개인의 능력치가 ‘레벨’로 환산되어 표시되기에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외에도 수련을 통해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각성의 순간이 오묘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각성은 각성자의 모든 악영향을 치유한다. 죽기 직전의 부상이나 영구적인 신체결손 같은 물리적인 상해뿐 아니라, 세뇌나 저주 따위의 상태 이상까지도.

이 사실이 밝혀지자 비각성자들의 각성에 대한 열망은 더욱 불이 붙었다. 특수한 능력을 얻는 것에 더불어 모든 병마마저 벗어던질 수 있다니!

각성은 신분 상승의 열쇠이자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각성자가 되고자 했고, 어떻게 해야 각성할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SNS에 수많은 각성자들의 회고와 증언이 잇따랐다.

대부분의 각성은 극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강렬하고 간절한 갈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최악의 상황에서 신을 찾을 때, 구원을 부르짖을 때 기적처럼 상태창이 부여된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많았다.

 추측성 가설이 SNS에 떠돌자 투신자살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스스로를 극한 상태로 내몰기 위해 죽음의 목전을 경험하려 한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각성을 해 살아남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망설이던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버린 것이었다. 헌터 협회와 각국 정부에서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나서야 그런 사람들이 사라졌다.

간절하다고 해서 누구나 각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진실을 몸소 깨닫고 나서야 대중에게서 비로소 ‘각성 열풍’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했다. 각성의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얼마나 간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일까?

그것은 여전히   없었다.

***


“아, 아버지 지금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이 늦은 시간에.”
“닥치고 운전이나 해!”

노인이 운전대를 잡은 중년에게 윽박질렀다. 신문을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부자父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노인은 수정기업의 회장인 송수정이고중년은 그의 둘째 아들이자 부회장인 송수권이었으니.

송수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송수권에게 명령했다.

“여기서 좌회전!”

부우웅-

고급스러운 세단의 헤드라이트가 인천의 밤공기를 뚫으며 도로를 달렸다. 오밤중에 운전기사나 수행원 하나 대동하지 않은 재벌의 드라이빙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송수권조차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잠자리에 들려던 자신을 호출해 운전기사로 써먹다니? 하지만 하늘 같은 아버지의 명을 거절할 수도 없는지라, 송수권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순순히 차를 몰았다.


“저 앞에 차 세워.”

끼익-

송수정의 지시에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자동차가정차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문학산文鶴山등산로 앞이었다. 차 문을 쾅-소리 나게 닫은 송수정은 평소의 점잖은 늙은이답지 않게 다급하고 경망스러운 몸짓으로 헐레벌떡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갑자기  등산을….”

이 늙은이가 드디어 노망이 났나-하는 표정으로 송수권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최근에 그가 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던가? 수정해운의  상무랑 비밀스러운 일을 꾸민다는 낌새는 보고받았지만, 또 비자금이나 만드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넘어갔었다. 그 외에는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그런데 이게 무슨 달밤의 체조인가. 드디어 스트레스에 미쳐버리고  것일까?


“아버지, 같이 가요!”



저 멀리 앞서간 송수정이 시야를 벗어나려 하자 송수권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둘은 헉헉대며 빠른 걸음으로 등산로를 올라갔다. 80대 늙은이와 40대 중년이 취미에도 없는 운동을 하자니 힘에 부쳤다.

산에는 밤에만 볼  있는 아름다운풍경이 있건만, 두 남자는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풍경을 지나쳤다.
 중턱쯤에서 나뭇가지에 묶인 붉은 리본을 발견한 송수정이 옳거니-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나무 사이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아버지. 여긴 등산로가 아닌데요? 함부로 출입해도 되나요?”
“내 사유지니 상관없다! 따라오기나 해.”

송수정은 아들의 소심한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하더니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송수정이 앞서 허리까지 오는 들풀을 헤치며 걸었고, 아버지의 뒤를 송수권이 따라갔다. 대로에서 벗어나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은 너무 어두웠기에 그들은 스마트폰 조명 하나에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들은 점점 인적을 찾을 수 없는 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심야의 숲은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음산한 기운을 띠었다.

부자는 곧 작은 공터에 도착했다. 건설 장비로 바닥을 밀어버린  바닥이 평평한 터였다. 송수권이 무언가를 보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허, 허억! 아버지 이건!”



공터 중앙에 주위의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체가 있었다.  세계 누구나 아는 재앙의 근원.

게이트.

어째서 게이트가 아버지의 사유지에 있는 것일까? 협회에 신고하지 않고 숨기는 미등록 게이트란 게 있다는 소문은 들어본  있지만,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위험천만한 폭탄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한심하긴… 안 위험하니 냉큼 들어와.”

그가 제 아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사업가 핏줄이란 게 저리 겁 많고 유약해서야. 그렇기에 송수정은 곧 자신이 저지를 행동에 대해 확신을 얻을  있었다.

‘그래. 저런 쓰레기가 내 회사를 차지하느니.’

그는 구제 불능의 아들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경계했다.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송수정이 먼저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아무 방비도없이게이트에 입장하는 노인의 모습에 송수권이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산을 내려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자기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있겠지-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고 미지의 어둠에 몸을 맡겼다.

‘맞아…. 아버지가 아무 이유 없이 사유지에 미등록 게이트를 내버려  리가 없지. 회사의 비밀 창고라던가, 아버지의 개인 금고일지도….’


눈을 감고 검은 구체 속으로 입장한 그는 게이트 안에서 눈을 열었다. 게이트 내부의 풍경이 망막에 비쳤다.

그곳은 어둡고 넓은 공동이었다.

게이트로 들고 오는 전자기기는 망가지기 때문에 전기등은 없었지만, 동굴 벽에 뜨문뜨문 설치된 횃불이 내부를 밝혔다. 붉게 타오르는 조명들은 공동 중앙의 거대한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뭐지..? 세탁한 돈다발? 암거래용 미술품? 밀수한 헌터 장비?’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



시체의 산.

송장을 쌓아 올린 시체 신전이 그곳에 있었다. 벌거벗은 몸뚱아리로만 쌓은 죽음의 언덕. 차갑게 식은 육체의 푸른 시반屍斑과 붉은 피가 대비되며 기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돌바닥엔 시체산을 둥글게 감싸는 불길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버려져 있는 닭 사체 몇 구가 마법진이  피로 그린 것임을 암시했다. 마법진 중앙에는 박 상무가 넓적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 우물 모양의 제단을 설치하고 있었다.

‘박 상무?!’

수정해운의 박 상무가 어째서 여기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가 아버지의 사유지에 있는 게이트를 알고 찾아온 거지? 설마 박 상무 혼자 이런 참상을..? 아니, 그럴 리가…. 송수권은 생각을 이어나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직감이 더는 생각해서는  된다며 경종을 울렸다.

“박 상무! 준비 다 됐지?”
“예, 옙. 회장님.”

참혹한 현장에도 불구하고 송수정은 놀라는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박 상무에게 다가갔다.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상무가 든 ‘준비물’을 건네받았다.

송수권은 넋 나간 사람처럼 제단 앞까지 비틀비틀 걸어가 거대한 무덤을 올려봤다.

수백 구, 아니 수천 구의 시체일까. 언덕 꼭대기가천장에 닿을 것처럼 높았다. 마치 신을 모독하기위해 하늘에 닿고자 하는 바벨탑처럼.

가까이서 보니 그 참상이 눈에 더  들어왔다. 고통에 비틀린 얼굴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문자 그대로-

“커, 커억!”

송수권이 피를 토하며 가슴을 내려봤다. 단검이 제 등을 뚫고 심장 밖을 삐죽 튀어나온것이 보였다. 송수권이 힘들게 고개를돌려 그 단검의 주인을 쳐다봤다.

“아버지, 어, 째서.”

피로 물든 송수정의 손이 칼자루를 잡고 있었다. 아들을 찌른 냉혈한이 스스로에게 되뇌듯 혼잣말했다.

“너는이렇게나마 내 인생에서 쓸모가 되어주는구나.”

돌제단 위로 엎어진 송수권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사자에겐 귀가 없는 법이니.

송수정은 엎어진 아들의 목을 단검으로 베어 핏물이 돌제단 아래로 스며들게 했다. 송수권이 흘린 피로 인해 마법진의 끊어진 부분이 연결되었다.

아브라함Abraham이 자신의 주께 이삭Isaac을 공양했다.

“제 가장 소중한 것을 제 손으로 바치오니….”

송수정이 정신을 집중하며 사악한 문장을 읊기 시작했다. 악마가 그에게 알려  소환주문이었다. 마나를 가지지 못한 일반인이라도 의식을 일으킬 수 있는 주문이라 했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노인 주위로 어두운 기운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시전자를 중심으로 회오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멈-춰어어어-!”

그때 누군가 게이트안으로 난입했다! 피로 칠갑이 된 옷과 메이스를 든 신재혁이었다.

이유진이 해킹한 휴대전화의 위치 정보를 통해 VIP란 인물을 전력으로 쫓아온 것. 돌연 문학산에서 신호가 끊긴 중간부터는 다급히 흔적을 추적하느라 온몸에 풀떼기와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신재혁의 눈이 재빨리 상황을 스캔했다.

거대한 시체탑.
제물대 위의 시체.
중얼거리는 노인.
소용돌이치는 마기.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소환의식을 실행하는 중일 터!

'다행히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나!‘

“당신 뭐야? 여긴 사유지야! 당장 나가지 못해!”

 상무가 침입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온몸에 피 칠갑을  괴인이 무섭긴 했지만, 회장이 의식을 완성할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그래야 자신도 송 회장을 따라 악마가 될  있을 테니.

박 상무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송수정은 난입자의 정체를 직감했다. 흑사파 회장인 류창근이 경고한 방해자. 서둘러야 한다! 사악한 주문을 외우는 그의 혀마디가 더 빠르게 주문을 속삭였다.

신재혁이 주먹으로 상무의 얼굴을 때려 종이 인형처럼 날리고는 달려왔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지상과 지하의 균형을유지하기 위해 합당한 제물을 천칭에 올리나이다-”

뇌창을 던져 주문을 방해하려 했으나 번개는 시전자를 휘감는 마기 폭풍에 찢겨 흩어질 뿐이었다. 시체탑을 폭풍처럼 휘감는 회오리는 숫제 드릴처럼 바닥을 긁고 갉았다. 문장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마기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사악한 기운에 반응한 닭 피가 붉게 타올랐고, 마법진의  줄 한 줄이완성되어갔다.

신재혁이 달려가는 동안 거의 다 활성화된 마법진이 불길한 붉은빛을 발산했다. 피처럼 새빨갛고 화염처럼 뜨거운 색깔. 주문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당장 막아야-

───하지만 늦었다.


“당신의 충실한 종복이 부르오니, 강림하소서! 첫 번째 왕국의 지도자시여-!”

송수정이 주문의 마지막 문장을 입에 담았다. 희비가 교차했다. 성기사의 얼굴은 잔뜩 굳었고, 노인의 얼굴은 환희에 물들었다.

쿠우우우웅-!


폭풍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뛰어오던 신재혁은 돌풍에 얻어맞아 뒤로 날아갔다. 날아가는 중에도 신재혁은폭풍의 눈에서 시선을  수가 없었다. 태풍의 중심에서 불길한 진동이 느껴졌다.

태아의 심장박동처럼 낮고 몸 전체를 전율시키는 울림.


파멸은 소리 없이 기어온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가장 치명적인 비수를 숨긴 암살자처럼. 인천 문학산에 숨겨진어떤게이트에서 태동의 의식이 성사되었다.


그렇게 절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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