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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36화 – 첫째 (36/72)



〈 36화 〉36화 – 첫째

콰르르르릉-!

“큭!”

갑작스레 공동에 지진이 일며 지반이 흔들렸다. 균형을 잃고 신재혁이 비틀거렸다.

땅울림은 점점 강력해졌다. 동굴 전체가 거세게 들썩거리며 쩍쩍 금이 가더니, 제단 밑의 바닥이 콰직, 두 쪽으로 갈라졌다. 빛 한  찾아볼 수 없는 새까만 싱크홀이 발생했다. 쓰레기장으로 낙하하는 쓰레기같이 시체 더미가 끝 모를 깊은 구멍으로 추락했다.


구멍의 깊이는  수 없었지만, 신재혁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구멍은 ‘가장 낮은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이미 소환을 막기엔 늦었다는 것을.

추측을 긍정하듯 구멍 아래에서 유황 냄새가 풍겨오며 사악한 겁화가 치솟았다. 세상천지를 태우려는 불벼락이 낙하하는 시체 더미를 야금야금불살라 먹었다.

제물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지옥의 불길은 만족해하며 거칠게 흔들리더니,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가공할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냐…. 이 기운은..!”

신재혁의 기감에 어떤 거대한 존재가 포착됐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위쪽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위 악마라 취급하기엔 지나치게 크고 위험한 기운이었다. 마치 걸어다니는 핵폭탄처럼….

구멍 속에서 가래 끓는 듯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훌-륭하다, 나의 종아-! 네가 나를 위하여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이제야 내가 알겠노라!

역겨운 목소리가 공동 안에 천둥쳤다.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자 온몸에 거미가 기어 다니는 감각이 느껴지며 소름이 끼쳤다.

두려운 음성에 송수정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발칙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했다.

“부디 계약의 이행을!”

그러하자 지옥에서 올라오는 공포의 목소리께서 이르시기를.


지옥의 번째 사천왕이요, 칠대죄 중 식탐의 상징인 나 ‘벨리알’의 이름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독자獨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지옥의 군세가 이 행상의 땅을 덮었을 때, 네 씨가  나라 전체를 차지하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지하 만민이 복을 받고  위대한 업적을 영원히 칭송하리니,

이는 네가 계약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사악한 축복이 송수정의 머리를 기름 부었다.

“오, 오오!”

환희에  얼굴로 노인이  손을 꼭 부여잡았다. 마침내 자신의 비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감격한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말로써 발현된 악마의 은혜가 전신의 세포로 깃들자, 체세포가 퇴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부글거렸다. 육체의 나이가젊어지며 조직과 기관이 악마의 것으로 거듭나가고 있었다. 심장은 박동에 맞춰 마기를 뿜어냈고, 근육과 뼈가 강철과 같이 견고해졌다.

“고마우셔라… 고마우셔라..!”


= 후흐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흡족하게 웃는 지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점점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 마침내! 마치이이임내애애애-!!!

거대한 팔이 갈라진 틈 사이에서 솟구쳤다. 여섯 쪽으로 갈라진 손이 바닥을 짚더니, 땅을 내려밀어 제 몸을 틈 사이에서 일으켰다. 신재혁이지옥에서 올라온 비대한 형상을 올려봤다.

여덟 개의 다리와 집채만 한 거미 몸통. 전설 속의 켄타우로스처럼 거미 몸 위에 달린 사람의 상체. 여섯 알의 거미 눈. 그리고 무엇보다 섬뜩한, 육체 곳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빨.

상어처럼 날카로운 여러 겹의 톱니이빨이 만천하를 모조리 먹어치우겠다는 듯이 딱딱 맞부딪혔다.

= 아, 이 달콤한 중간계의 향기.


악마가 입맛을 다셨다. 희열에 호응하는 압도적인 기운이 터져 나오며 환호성을 질렀다.


‘씨, 발. 움직일 수가.’

신재혁은 얼어붙은 채 손가락 하나까딱할 수가 없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가볍게 뿜어진 마기가 가르쳐줬다. 저 악마는 너무 위험하다. 괜히 털끝 하나라도 움직였다가 악마의 관심을 끌기라도 하면…. 자신이 패배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음?

문득 스스로를 벨리알이라 칭한 악마가 의문을 표했다. 벨리알이 자신을 발견한 줄 알고 신재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내 무구는 어디 있지? 본신의 힘은 왜 이렇게 약하고.

다행히 악마는 신재혁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는 혐오스러운 얼굴을 친히 인간의 눈높이까지 숙여  소환자의 면전에 속삭였다.

= 소환이 불완전했구나-?

혐오스러운 거미 대가리를 눈앞에 들이밀자 기겁한 송수정이 이실직고했다.

“죄, 죄송합니다. 방해자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의식을 실행하는 바람에 제물이 약간 모자랐습니다….”
= 방해자?

방해자라는 말에 벨리알이 송수정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신재혁이 있었다.

‘좆됐다.’

호오, 이 기운은….

벨리알이 입가를 경련하며 웃었다. 조그만 몸통 안에 들어있는 미약한 기운에서 방해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 너, 작은 자야. 그 역겨운 기운! 엘로아흐의 개로구나!

악마를 겨누는 메이스에서 신성한 빛이 뿜어졌다. 그림자처럼 마음을 집어삼키려는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빛을 발했다.

“사천왕을 자칭하는 너는 누구냐? 사천왕의 이름은 마몬, 벨페고르, 루시퍼, 바알제불일진대! 정체를 밝혀라, 지옥의 존재야!”

신재혁이 침을 삼켰다.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남을 방법을 떠올릴 시간을 벌기 위한 발악이었다. 다행히 그 질문은 벨리알의 호기심을 이끌어냈다.

= 마몬이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백 년 전에 죽은 악마의 이름을 지구인이 어떻게 아는 거지?
“…죽었다고?”
= 멍청하게도 용사란 인간을 몸소 죽이러 출전했다가 되려 자기가 목숨을 잃었지. 덕분에 내가 공석이 된 사천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홀로 사천왕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간이 있었다고? 자기도 모르게 신재혁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믿기지 않았다. 악마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상대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벨리알은 제 관심을 끈 특이한 지구인을 관찰했다. 필멸자치고 꽤 고절한 신성력. 필히 신앙심 깊은 성기사이리라.

= 네 신성력은 놈을 떠올리게 하는군…. 필멸자 주제에 유례없이 강한 힘을 손에 넣어서는, 기어이 전대 마왕과 함께 동귀어진하고 말았지.

벨리알이 지옥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백 년 전의 대사건을 회상했다. 고작 인간 하나가 마왕성에 침범해 마왕을 암살하다니. 당시 마왕은 지옥의 탄생부터 힘으로써 그들을 지배한, 틀림없는 지옥의 최강자였기에 악마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뭐, 라고..!"

사천왕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달아 충격적인 증언이 신재혁의 머리를 강타했다. 경악스러운 소식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악마는 인간의 경악을 두려움으로 해석했다. 입에 침이 고였다.

= 너는 조금 이따가 놀아주마. 우선,

벨리알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송수정을 붙잡았다. 난데없이 붙잡힌 송수정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다.

“왜, 왜 이러십니까!”
= 너의 불완전한 소환으로 인해 내 힘이 제약되었으니, 마땅히 너로써 힘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나?

불길한 어조에 송수정이 더 거세게몸을 꿈틀거렸다.

“당신께서 제게 악마의 육체와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 그래! 진정한 악마인 나의 일부가 되어서 말이지. 내 육체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악마가 되어 영원히 살아가는 길  하나 아니겠느냐?
“아, 안돼! 안돼! 나는-”

악마의 턱이 뱀처럼 크게 벌어지며 송수정 회장의 몸을 통째로 꿀떡 삼켰다. 불룩해진 악마의 목으로 고기가 위장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 아아아아아-! 맞아,  이런 맛을 원했어..! 이 얼마나 부드럽고 과즙 넘치는 육질인가! 지옥에 사는 쓰레기들과는 천지차이로군!


“히이이이익!”

악마가 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회장이 잡아먹히는 것을 목격한 박 상무가 네발로 기며 게이트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불행히도 그 호들갑이 악마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녀석도있었지. 너도 나의 힘이 되어라-

벨리알이 꽁무니에서 시체를 가늘게압축해 만든 실을 뿜었다. 시체실은 채찍처럼 박 상무의 발을 휘감더니 그를 벨리알에게로 끌어당겼다.

“아, 아아, 아!”

박 상무가 괴성을 지르면서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동굴 바닥을 긁는 손톱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하지만 처절한 반항이 무색하게 결국  상무도 벨리알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벨리알이 미물의 발악에 즐거워하며 킬킬 웃었다.

= 절망감은 가장 감미로운 향신료지! 그런 의미에서 넌, 참 맛있겠구나….

상무를 쥔 손바닥에서 송곳니가 돋아나며 긴 혀가 튀어나왔다. 축축한 혓바닥이 상무의 몸통을 휘감고 얼굴을 핥았다.

“안 돼애애애액켁큮칵!!”
콰득, 콰직, 와지직.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이빨들이 사정없이 육체를 으깼다. 혓바닥이 제 손에 묻은 피와 살점을 빨았다. 한 방울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성기사의 눈앞에서 사람 둘을 먹어치운 벨리알이 늘어난 힘을 가늠하고자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더니 분통을 터뜨렸다.

= 빌어먹을 시스템!  명 가지고는 힘의 제약을 풀기엔 턱도 없다는 말이냐!

‘시스템의 제약? 무슨 의미지? 큭, 그보다 몸이….’

사천왕의 분노가 대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공기 중에 섞인 날카로운 살기에 신재혁의 피부가 찌릿찌릿 저렸다. 긴장감에 경직된 근육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 그래도- 밖에 있는 놈들을 잡아먹다 보면 힘도 전부 회복되겠지?

벨리알이 게이트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렇게 맛있는 인간을 폭식할 생각에 기분이 절로 행복해졌다.

‘안 돼! 사천왕이 게이트 밖으로 풀려나면 이 도시가..!’

신재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벨리알은 현재 힘이 제약당한 상태며, 사람을 먹을수록 힘이 회복된다고 했다. 그가 도시에 풀려났다간 지금도 충분히 괴물 같은 사천왕의 힘이 더욱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결코 벨리알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가게 두어선 안 된다!


“주여! 당신의 빛을, 나의 손으로!”


기습적으로 터진 외침에 깜빡 잊고 있던 성기사를 떠올린 벨리알이 게이트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 엘로아흐의 사냥개야. 고작 너 하나로 지옥의  번째 군단장을 막아서겠단 말이냐?

악마가 필멸자의 재롱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 그래, 어울려 주마. 네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을 때, 네가 어떤 맛을 낼지 실로 궁금하구-나아-!

송곳 같은 거미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바닥을 짚으며 신재혁에게 쇄도했다.

쾅, 콰쾅, 쾅!

날카롭게 내려찍는 악마의다리 사이로 신재혁이 요리조리 굴렀다. 벨리알은 때로는 다리 한 개, 때로는 다리 두 개로, 때로는 빠른 속도로, 때로는 타이밍을 어긋나게 하면서 교활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벨리알은 공격에 몰두하느라 방어에 신경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훤히 드러난 배를 향해 신재혁이 뇌창을 쏘았다.

‘맞혔다!’

= 크크크, 간지럽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으로 벨리알이 몸에 꽂힌 번개 이쑤시개를 뽑아냈다.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기의 유동과 함께 살점이 자라 오르더니, 상처가 순식간에 봉합되었다. 악마의 재생력이 공격의 파괴력을 웃돈 것.

이게 설마 네 전부라 말할 건 아니겠지?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다오!

지금까지의 장난은 몸풀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공세가 더욱 거칠어졌다. 다리의 움직임에 더 교활한 속임수가 섞였다.

‘제기랄! 창과 갑옷만 있었어도..!’

항구에 잠입할 때 정체를 들킬 수 있는 증거를 만들지 않고자 눈에 띄는 장비를 챙기지 않은 선택이 도리어 악수惡手가 되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맞서도 승리를 장담할  없는데, 고작 메이스 한 자루로 사천왕에 맞서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밖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벨리알이 소환되면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마기를 게이트 밖에서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마 게이트가 터진 줄 알고 헌터들이 떼로 몰려올 것이다.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신재혁이 반격을 포기하고 동굴 안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벨리알이 게이트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깊숙이 유인할 생각이었다.

= 흐음? 후후후….

악마는 고양이를 닮았다.

고양이는 잔인한 사냥꾼이다. 쥐를 잡아먹기 전 고양이는 제 사냥감을 가지고 논다. 벨리알이 기꺼이 도망치는 사냥감을 쫓았다.

= 더 도망쳐보아라!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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