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37화 – 벨리알 (1) (37/72)



〈 37화 〉37화 – 벨리알 (1)


여덟 개의 다리가 동굴 바닥에 구멍을 뚫으며 신재혁을 노렸다. 옆구리를 찌르려는 다리 하나를 메이스로 쳐내며 신재혁이 침음을 삼켰다.

‘어떡하지? 유효타를 먹일 공격수단이 없어!’

유일한 무기인 메이스는 벨리알을 상대하기 적합하지 않았다. 무리 지어 덮쳐오는 임프나 인간형 적을 상대하기 좋지, 벨리알처럼 거대한 적은 때려봤자 비대한 살덩어리에 충격이 전부 흡수될 것이다.

게다가 현재 최고 원거리 공격수단인 뇌창마저 타격을 주지 못하는상황. 너무할 정도로 상황이 암담했다.

‘직접 쓰러뜨리는 건 포기하고 시간만 끌어야 하나..!’

 분이나 버텨야 지원이 올까. 하필 게이트가 산에 있어서 도심 곳곳의 감지 시스템이 이상 사태를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더구나 시간대도 한밤중이라 출동은 더욱 늦을 터. 신재혁은 하루 종일이라도 벨리알을 붙잡아둘 각오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잘도 피하는구나!

사냥감이 공격을 너무  피하자 약이 오른 벨리알이 공격 패턴을 바꿨다. 거미가 위로 훌쩍 뛰어 동굴 천장에 거꾸로 달라붙었다. 아래를 향한 엉덩이에서 그물 모양의 시체실이 뿜어지며 신재혁을 붙잡으려 했다.

“우왁!”

신재혁이 급히 몸을 던졌다. 돌바닥에 피부가 쓸려 따끔거렸다.

으하하- 이것도 피해 봐라!

바닥을 뒹구는 먹잇감을 비웃으며 벨리알이 그물을 연거푸 발사했다.

신재혁이 메이스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돌바닥이 부서지며 솟구친 암석 덩어리가 몸을 가렸다. 날아온 그물들이 돌 방패에 부딪혀 헛되이 튕겨 나갔다.


벨리알이 동굴 종유석을 딛으며 입체기동으로 어지럽게 움직였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물을 발사해 신재혁을 노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날카로운 발끝이 종유석을 스치고 지나가면 돌이 칼로  듯 깔끔하게 잘리며 지상으로 낙하했다. 종유석 송곳이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신재혁은몸이 가려지도록 돌 방패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그물을 피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큼지막한 돌덩이까지 피하려니 쉴 틈도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벨리알은 난이도를 더 올렸다. 그물은 더 정교한 모양을 띠었고, 쏟아지는 종유석 세례는  촘촘해졌으며, 이제는 두 손도 뾰족한 종유석을 마구 던져대며 공격에 합세했다. 발산된 마기가 대기를 거칠게 흔들자 천장이 쩍쩍 갈라지며 돌 우박이 낙하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치명적인 저격과 움직임을 제약할 그물은 피하고, 최대한 뭉툭한 돌덩어리를 맞아가며 신재혁이 동굴 안으로 도망쳤다. 아슬아슬하지만 노련한 몸놀림으로 성기사가 악마를 유인했다.

비슷한 양상이 30분 동안 반복됐다.

= 이 쥐새끼가….

신재혁을 뒤쫓던 벨리알도 잔뜩 짜증이 났다. 조그만 성기사는 자꾸 잡힐 듯 말듯 그의 손끝을 벗어났다. 지금이다-싶은 확실한 타이밍마다 뇌창이 관절부에 꽂혀 움직임을 방해했다.

저놈은 대담하게도 제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게이트에서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큰 공격을 날릴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기껏 공들인 먹잇감을잃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상처 없이 저놈을 잡을 방법이 없을까…. 아, 그래.

묘수를 떠올린 악마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냥 밖에 놈들이나 먹어치워야겠군.

벨리알은  이상 신재혁을 쫓아가지 않았다. 대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현세로 인도할 게이트를 향해서.

‘이렇게 순순히 물러난다고?’

순간 안도감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신재혁이 비틀거렸다. 살 수 있다.

그리고 직후에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살아남아서 안심했다고? 사람을지켜야할 성기사가, 타인의 목숨을 미끼로 살아남아 안도를 해?
아니, 아니다. 자신이 살지 못하면 누가 에덴의 안위를 확인하겠는가….
이미 멸망했을지도 모르는 인류를 위해 현재 살아있는 시민들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냐? 그게 엘로아흐의 가르침이더냐?

신재혁이 고뇌하는 사이에 악마는 이미 저 멀리 멀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달려가 막지 않으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수많은 질문이 신재혁의 양심을 찌르고 압박했다.

딜레마 상황에서 갈등하는 신재혁이 호흡이 가팔라졌다. 막아야 하나? 하지만 막으면 나는 반드시 죽는다. 가만히 있을까? 그럼 시민들이 수백이고 수천이고 죽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양심과 이성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어느쪽도 상대에게 뜻을 굽히지 않으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질문과 질문이 격돌할 때마다 정신력이 깎여나갔다. 정신이 피폐해지자 어김없이 환청이 들렸다. 죄악감을 자극하는 스승의 목소리가 칙칙하게 속삭였다.


성기사의 덕목이란, 불굴. 그리고 희생.
너는 자격이 없다.
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말겠지.


신재혁이 무의식적으로 땅을 박찼다. 발이 움직이기도 전에 머리는 이미 유성하와 이유진을 떠올리고 있었다. 육체를 최대치로 강화해 전력으로 벨리알의 뒤를 쫓았다. 그는 벌써 게이트 지척까지 다다랐다. 멈춰 세워야 한다! 벨리알의 관심을 옮기기 위해서 기합을 버럭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 기합은 절규처럼 들렸다. 유성하, 그리고 이유진. 상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신재혁은 차라리 자기가 죽기로 결심했다.


가까워지는 기합 소리를 듣고 벨리알이  뒤돌아봤다. 계획대로 이루어진 상황에 기뻐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너는 한 치도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구나!

벨리알이 함정으로 달려드는 쥐새끼를 낚아채고자 손을 부웅 내저었다. 전력으로 질주하던 신재혁은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대신 다른 수를 택했다.

“주는 미쁘사 나를 굳게 하시니, 이 영혼을 악한 자에서 지키소서!”

천상의 보호막이 둥글게 전개되며 시전자를 보호했다. 벨리알이 보호막을 움켜잡았다. 손바닥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풍겼지만 벨리알은 고통스러운 기색도 없이 악력을 더 줬다. 감당할 수 없는 마기에 보호막이 점점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천상의 보호막이..!’

기어코 보호막은 산산조각나며 깨졌다.

= 으하하! 드디어 잡았다-!

신재혁을 잡은 손에서 튀어나온 이빨이 인간의 여린 살점을 콱 깨물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실시간으로 온몸이 뜯어먹히는 느낌. 수백 마리의 피라냐가몸을 해체하는 감각에 고통스러운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근섬유와 힘줄을 갉아대니 힘이 빠져서 메이스를 놓칠 것만 같았다.

신재혁이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줬다. 마지막 무기를 잃어버리면 최후의 기회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결코 떨어뜨려선 안 된다..!

성기사의 몸을 맛본 벨리알이 황홀감에 부르르 떨었다.

대단해! 인간 주제에 이런 깊고 농후한 맛이라니..!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절망의 맛이 아니었다. 와인처럼 오랫동안 숙성된 제대로된 공포와 절망의 맛이었다. 벨리알이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성기사의 눈빛을 읽었다.

저 반항스런 눈빛! 하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일말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교활한 벨리알은 그 안에 담긴 어둠을 엿볼  있었다. 최소 수십 년은 쌓이고 묵혔을 법한 어두운 감정들.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해묵은 감정이 완전히 개화해 조화롭게 만개할 순간이 무척 기대됬다. 고결한 성기사의 마음이 완전히 꺾여버렸을 때 무슨 맛을 낼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벨리알은 식탐의 악마였지만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잠시 참을 줄도 알았다.

= 너는 에피타이저로 먹기엔 너무 아쉽구나. 메인디쉬를 끝내고 디저트로 삼아주지. 부디 그때까지 충분히 절망해다오!

신재혁을 붙잡은 벨리알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야속하게도 게이트는 일절의 저항 없이 악마를 현세로 이동시켰다.

***

벨리알이 민첩하게 산을 타고 내려갔다. 어지간한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였다.

= 하하하하하! 마침내 물질계에!

달리는 와중에도 몸통의 입들이 나무와 풀과 돌을 아그작아그작 씹어먹었다. 물질이 소화될 때마다 벨리알의 마기가 조금씩 짙어졌다.

"아직도 출동을 안 하다니..!"

벨리알을 막아서는 헌터가 아무도 없었다. 산에 숨겨진 미등록 게이트인데다가 모두 자고 있을 시간이라 누구도 게이트의 이상현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인천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신재혁이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신음을 흘렸다.

아무런 방해 없이 등산로 입구까지 내려온 벨리알은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만찬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리 높은 고층 건물들과 인천 도심이 보였다. 저곳에서 짙은 향기가 풍겨왔다.

= 인간의 냄새! 저쪽이로구나!

벨리알이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곳으로 휙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도약력으로 하늘을 날았다. 하늘에서 내려보는 심야의 도심은 정말이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닥칠 재앙도 알지 못한 채.

콰아아아아아앙!!!

육중한 무게가 아스팔트 위로 착지하자 차도가 쩌저적 갈라지며 도롯가에 주차된 자동차들이 들썩거렸다. 비로소 자동차들이 일제히 도난 경고음을 울리며 잠자는 시민들에게 이상 현상이 발생했음을 경고했다.

= 맛있어 보이는군!

몸통에서 커다란 입이 쫙 벌어지더니 승용차 하나를 덥석 삼켰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식탐의 악마답게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지나치게 짧았다. 몇 만에 소화가 완료되자 벨리알의 몸집이 조금 커졌다.

= 크크크. 신기한 맛이군. 인간만큼 맛있는 편은 아니지만, 힘을 회복하기에 나쁘진 않아.

벨리알이 연이어 자동차를 꿀떡꿀떡 집어삼켰다. 살집이 계속 불어났다.


"으아악! 몬스터다!"

텅 빈 거리를 지나고 있던 트럭 운전사가 도로 앞은 가로막은 괴물을 목격하고 대경질색했다. 그는 다급히 트럭을 유턴시켜 무시무시한 몬스터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 오, 음식을 남기면  되지. 안 되고말고.

벨리알이 신재혁을 쥐지 않은 손으로 덤프트럭 뒤칸을 붙잡았다. 화물 트럭이 전진하지 못하고 헛바퀴만 돌았다. 벨리알이 팔을 당기자  톤짜리 트럭이 그대로 끌려왔다. 수십 개의 입이 운전사와 함께 트럭을 갉아 먹었다.


벨리알이 온몸에 달린입으로 사물을 먹어치울 때마다 살집이  늘어났고, 늘어난 살덩이에서 더 많은 입이 생겼다.저주스러운 사이클은 멈출 줄도모르고 탐욕스럽게  몸을 부풀렸다.

= 하하하, 천천히 힘이 돌아오고 있구나!

이렇게 먹을 것이 많다니! 벨리알은 행복했다. 척박한 지옥의 토지와 달리 물질계는 너무나 풍요로웠다. 인간 식으로 비유하자면, 석 달은 굶주린 거지가 뷔페 자유이용권을 얻은 기분이었다. 힘의 약화를 감수하고 물질계로 넘어온 보람이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인간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현관  풍경이 생소했다. 도로가 갈라지고 차들이 찌그러진 풍경. 그리고 거대한 괴생명체.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심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이 팍 깬 시민들이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벨리알이 도망치는 군중들에게 거미줄 그물을 마구 쐈다.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도망자들이 붙잡혔다.

빗나간 몇 개의 그물은 자동차를 때렸다. 폭음이 요란하게 터지며 불길이 치솟았다. 아파트 창문에 전등불이 번지듯이 켜졌다. 어두운 도시가 밝아지며 재난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에에엥─ 에에엥─ 에에엥─

도시의 소란은 벨리알에게 발톱만큼의 긴장감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먹이가 제게 걸어들어올 거라는 사실이 그를 들뜨게 했다. 그는 홀로 일국을 능히 무너뜨릴  있는 강자였다.

벨리알은 자신이 포획한 싱싱한 먹이를 한 움큼 쥐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엄마아아아, 엄마 어디있어어어-"
"사람 살려! 제발 살려주세욕븝켝쟉죽"
콰득, 콰드득!

육즙이 터지며 싱그러운 혈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귀엽게 오독오독 씹히는 뼛조각이 사랑스러웠다.

아, 아름다운 세상이여.

신재혁은 그 모든 참상을 곁에서 지켜봤다. 벨리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신성 폭발의 주문을 사용해도 자기를 단단히 붙잡은 손가락은 꿈쩍도 안 했다. 신성력으로 몸을회복해봤자 이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힘줄을 끊고 근육을 파먹었다.

눈앞에서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가 평등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느닷없이 신재혁이 고함을 내질렀다. 고통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사람들이 비명 소리를 듣고 도망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암담한 상황에서조차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조그만 놈이 목청도 좋구나… 지나치게 시끄러워.

벨리알이 꽥꽥거리는 성기사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운비명에 인간들의 기척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성기사를 침묵시킬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손가락이 신재혁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활짝 벌린 입안에 손톱을 집어넣어 혀를 붙잡고.

쭈악, 뜯어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뜯겨서는   살점이 혓바닥에 딸려 나왔다. 입안이 핏물이 왈칵왈칵 차올랐다. 신재혁이 비명을 질렀다. 전과 같은 경고의 비명이 아닌 순수한 고통의 비명이었다.

벨리알은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누가 벌레의 비명을 구분할  있겠는가? 그는 성기사가 여전히 동족을 위해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했다.

= 이게 아니던가…. 그럼 이건가?

벨리알이 손톱으로 신재혁의 목을 긁었다. 손톱 모양에 따라 고랑이 새겨지며 살점이 파였다. 고랑은 성대를 지나갔다.

"-!!!"

손톱이 성대를 파내자 비로소 신재혁이 조용해졌다. 폐에서 빠져나온 바람은 소리를 만들지 못했다. 성대가 있던 자리에서 피거품만이 부글거렸다.

마침내 조용해 졌군!

손에 묻은 피를 쪽 빨아먹으며 벨리알이 생각했다. 이 녀석을 손에 들고 싸우자니 한 손으로밖에 인간을 사냥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면 놈이 몸을 회복해도망치고  것이다. 자신의 사냥이 끝날 때까지 이놈을 붙잡아 둘 곳이 필요했다.

벨리알이 고층 빌딩을 올려봤다. 수정 기업의 본사 건물. 사역마를 이용해 탐색한 옥상 구조를 떠올렸다. 다른 이의 손길이 닿기도 힘들고, 자력으로 빠져나가기도 힘든 곳. 썩 괜찮은 감옥이었다.

포로의 처우를 결정한 악마가 거미 다리를 외벽에 박고 빌딩을 수직으로 타고 올라갔다. 10층, 20층, 30층…. 고도가 높아질수록 도심의 혼란이  눈에 들어왔다.

= 아, 음식이 이렇게 많구나. 나를 위해 준비된!

건물 옥상에 도착한 벨리알이 제멋대로 지껄였다.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신재혁이 움찔거렸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 얌전히 있어야지. 착한 아이야.

벨리알이 신재혁의 양팔을 붙잡아 당겼다. 어깨가 탈골되면서 지독한 통증이 엄습했다.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피부가 찢어져, 진피 아래끊어지는 근육 가닥이 드러났다. 벨리알은 멈추지 않았다.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힘줄이며 근섬유가 자꾸 한 가닥씩 분리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팔이 뚝 뽑혔다.


“──────!!!”

신재혁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너무 아팠다. 비명을 지르지 않고는, 성대를 혹사하지 않고는, 통증을 견딜 자신이없었다. 하지만 그럴  없었다.

약자에겐 입이 없다.
약자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벨리알은 무자비하게 신재혁의 두 다리마저 뽑아버렸다. 목구멍에서 빠져나가는 소리 없는 바람이 보다 거칠어졌다. 잡아뗀 팔이 놓친 메이스가 옥상 바닥에 뒹굴었다. 벨리알이 과자 먹듯이 팔다리를 삼키며 몸통과 머리밖에 남지 않은 신재혁을 비웃었다.

 도시를 전부 먹어치운 후, 너를 마지막으로 음미해 주마!

악마가 히죽 웃었다. 악마가 팔을 들어 올렸다. 악마는 피뢰침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여기서 기다려-라!
“──────!!!!!!!!!!!”

벨리알이 신재혁의 몸통을 확 내리쳤다. 긴 피뢰침이 신재혁의 가슴을  관통했다. 꼬챙이에 꿴 고기처럼 신재혁이 공중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없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이 상태라면 도망은커녕 당분간은 제 몸을 회복하지도 못하겠지. 가장 기대되는 진미를 안전한 장소에 보관한 벨리알이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손이 모두 비었다.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후, 흐하, 흐하하 하하하하하하, 사냥의 시간이다아아아-!!

벨리알이 옥상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저 아래, 자신을 위해 차려진 만찬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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