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41화 - 휴식
첫번째 월드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
문명 무력 수치 레벨업
Lv.0 > Lv. 1
문명 보상을 제공합니다.
-신성력
===」
***
신재혁이 눈을 떴다. 집이 아니었다. 병실이었다. VIP 전용의 화려한 독실. 병원복 소매 아래에 연결된 링거 바늘로 영양액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 내가 왜, 병원에.”
“앗, 선배! 움직이면 안 돼요!”
부드러운 손길이몸을 일으키는 신재혁을 만류했다. 신재혁이 손의 인도에 따라 몸을 눕히며 상대를 확인했다.
“이유진?”
신재혁을 눕히는 손의 주인은 이유진이었다.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내가 왜 병원에 있는 거지?
신재혁이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정신을 집중하자 약 기운에 몽롱한 머릿속이 정리되며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아, 그래. 분명 자신은 벨리알을 쓰러뜨린 후, 집으로복귀하는 중이었다. 환상통이 너무 심해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윽-!’
그 사실을 깨달으니 또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빌어먹을 환상통. 전생의 너덜너덜한 육체와 달리 싱싱한 20대 청년의 몸은 재생 후의 환상통에 익숙하지 않았다. 곁에 이유진이 있었기에 튀어나오려는 신음과 욕지거리를 애써 참았다.
“시민들이 휘청휘청 걸어가다 픽 쓰러지는 선배를 보고 신고했대요. 상처는 없고, 그냥 과로인지 피로인지 탈진해서 기절한 거래요. 하루 안에 퇴원이 가능한가봐요.”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눈치 빠른 이유진이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너는 여길 어떻게..?”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최근 통화 기록에 내가 있어서 연락했다는데. 오빠가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그 소식의 충격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하필 마지막 통화가 신재혁의 부탁으로 추적한 번호가 인천 문학산에 있다고 가르쳐 준 것이어서 더 겁났다. 통화 몇 시간 후, 문학산 근처 시내에서 게이트가 열렸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신재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새벽에 전화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뛰어왔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상처 없이 무사했다. 이유진이 자기 폰을 만지작거리다 신재혁에게 건네줬다. 신재혁이 화면을 확인했다. 몇 시간 사이 빼곡히 업로드된 기사들.
「경악… 인천에 연달아 열린 게이트, 하룻밤 사이 무슨 일이?」
「갑자기 도심에 출현한 S급 보스, 어디서 어떻게? 아웃브레이크 감지 체계에 구멍….」
「전력 손실 심각! A급 헌터 5명 사망.이제 한국의 A급 수는 18명.」
「10분 넘게 떨어진 빛기둥… 새로운 S급 헌터 등장?」
‘..!’
신재혁이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마지막 기사를 클릭했다. 자기 얘기인 것 같았다. 설마 신상이 들통난 걸까?
「10분 넘게 떨어진 빛기둥… 새로운 S급 헌터 등장?」
「A급 빙결술사, 고(故) 여동연 헌터의 분전을 촬영하던 카메라맨 오○○ 씨의 영상에는…
영상에서 고층 건물 옥상에 누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정확한 신원은 파악하지 못하고… 세계 최초로 한국이 2명의 S급 헌터를 보유할 것으로 들뜬 국민들…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표하지 않았지만, SNS에서는 ‘정부에서 숨긴 요원이다’,‘정부의 비밀무기다’라는 주장과 ‘새로이 각성한 S급 헌터다’ 같은 주장이 퍼지고…」
자동으로 영상이 재생되었다. 땅에서 찍은 영상인지라 화질이 좋지 않았다. 옥상에 흐릿하게 어떤 인영이 보였다. 신재혁 자신이었다. 신성력의 빛무리 때문에 윤곽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을 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운이 좋았네. 다행이다.’
“그나저나 왜인천에 갔던 거예요? 한밤중에 나한테 부탁했던 위치 추적은 뭐고?”
이유진이 신재혁을 다그쳤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꾸짖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걱정이 물씬 묻어나는, 울음기 섞인 목소리였다.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밤새 내내 비상 뉴스가 유례없는 S급 보스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군도, 전투기도, A급헌터도 이기지 못한 위험한 보스가 등장했다고. 혹시 자기가 가르쳐 준 문학산이라는 위치와 이 사건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냥 의뢰받은 일 때문에 간 거야. 걱정 마. 내가 다 해결했으니까.“
신재혁이 이유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참사의 비밀과 죄를 끌어안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했다….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듯 눈을 몇 번 비비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 그보다 인천에 나타난 보스, 엄청 위험했다던데. 선배가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전장에 있던 헌터들의 증언으로 시스템이 알린 보스 메시지가 이미 SNS상에 유포된 상태였다. 이유진도 그 위험천만한 글귀를 읽었다.
“세상에, 사천왕이라니…. 여태껏 알려진 보스 메시지에 나온 것 중 가장 높은 직위잖아요! 관악구에 나타났던 무시무시한 불꽃 거인도 고작 변경백이랬는데, 사천왕이라니! 그런 대단한 녀석이 왜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나타난 건지….”
일각에서는그 보스가 지성이 있으며, 한국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이트는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체계적인 명령체계를 따르는 군사적 침공이라고 믿는 침략론자들이었다. 음모론 수준의 주장이었지만.
세간에서 게이트를 설명하는 가장 보편적인 이론은 ‘평행세계와 지구 차원이 간섭되면서 외계의 괴물들이 지구로 흘러들어왔다’하는 식의 과학적인 가설이었다. 보스 메시지는 괴물의 정체를 인류가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 주는 기능이고. 물론 상태창의 정체가 무엇인지는아무도 밝힐 수 없었다.
신재혁은 이유진이 툭 던진 의문을곱씹어 보았다.
‘유진이 말도 일리가 있네.왜 하필 한국을 소환지로 선택한 거지? 중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많은 곳으로-’
“흐으음….”
상대의 기색이 심각해지자 둘 사이의 분위기도 덩달아 어색해졌다. 짙게 깔린 침묵을 이유진은 견딜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환기하려 이유진이 농담을 던졌다.
“이번엔 벨리알이 나왔으니, 이러다 나중에는 막 루시퍼니,사탄이니 하는 보스도 나오는 거 아니에요?”
‘소환될-뭐?’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지금 자기가 뭘 들은 거지? 지구에서 들려선 안 되는 단어인데.
루시퍼, 사탄.
사천왕과 초대 마왕의 이름.
‘그 이름을 어떻게 이유진이?’
두 개의단어가 신재혁을 경악에 빠뜨렸다. 정신적 나이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인인 신재혁이 그토록 당황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황과 흥분, 공포와 혼란이 담긴 하나의 질문이 충동적으로 터져 나왔다.
“-네가 어떻게 그 이름을아는 거야?! 악마의 이름을!”
“응?”
이유진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식 아닌가? 순간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다 신재혁이 농담이라도 하는 줄 알고 가볍게 웃었다.
“아하. 지금, 공부만 하는 서울대생이라고 놀리는 거죠? 오타쿠인 내가 그런 것도 모를 줄 알고? 루시퍼! 사탄! 서브컬쳐에 자주 나오는 악마잖아요! 오타쿠 취향으로 모에화 되기도하고. 다른 기독교 악마들이랑 같이.”
***
이유진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후에도 신재혁은 혼란을 정리하지 못했다. 의심과 당황이 연막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머릿속을 혼탁하게 어지럽혔다.
“내가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지?”
그래, 그랬다. 벨리알, 벨페고르, 마몬, 루시퍼, 바알제불, 사탄. 자신이 알고 있는 에덴의 유명한 악마들은 모조리 지구에서도 유명한 존재였다. 인류의 최다수가 믿는 종교, 기독교의악마들.
이 악마들은각종 창작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적이었다. 때때로는 조력자로도. 신재혁도 그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수없이 보고 읽어왔다.
이들의 존재는 에덴과 지구에 어떻게든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
그런데 어떻게이때까지 코앞의 증거를 인지조차 못 했던 것이지?
심지어 자신은 보육원 시절 에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성경을 정독한 적도 있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부읽은 후에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라고 생각했는데….
지이잉-
돌연 병실 문 열리는 소리가 어지러운 생각 사이로 파고들었다.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재혁아! 괜찮아?”
“성하 누나? 어떻게….”
지금은 성당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예상치 못한 방문자의 등장이었다.
“하린이한테 소식 듣고 급하게 왔어…. 몸은 괜찮은 거 맞지?”
홍하린? 신재혁과 동갑인 보육원 시절 소꿉친구였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신재혁이 당황했다.
“홍하린? 갑자기 걔는 왜?”
“네가 쓰러져서 여기 입원했다고 전화 오더라. 자기는 바빠서 조금 이따 병문안 온대.”
그녀가 신재혁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나는 크게 다친 줄 알고.”
그녀가 신재혁을 끌어안고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포근한 손길이 뒷머리를 어루만지자의식이 몽롱해져 갔다. 따뜻한 품속이 무엇보다 확실한 안심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의 고민을 전부 잊어버릴 만큼….
“그러고 보니 각성했다며? 의사가 몸속에 마나가 관찰된다던데.”
각성! 그제야 신재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새벽의 일이 떠올랐다. 심상세계에서 의식을 차린 직후엔 벨리알을 쓰러뜨리느라 정신이 없어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분명 상태창이 떠올랐던 것 같았다. 자신의 팔다리가 재생된 것도, 신성력을 되찾은 것도 전부 각성의 효능이었을까.
“아, 맞아….”
상태창,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간의 하잘것없는 두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칙 체계가 약속된 세 음절을 인식하고 시야에 상태창을 표시했다.
「 ===
《이름》 신재혁
《레벨》 784
《위업》
<달인>
<사천왕 살해자>
<신혈>
<아가페>
<운명이 주시하는 자>
<혼원>
<■■>
《문명 무력 수치》
Lv. 1/5 (10.21%)
=== 」
‘..!’
기묘한 상태창이었다. 레벨 784라니. 이제 막 각성했다기엔 전무후무한 수치.각성 직후의 레벨은 나이 플러스 마이너스 10 정도의 범위가 보통이었다. 고등급 헌터조차 그 법칙의 예외가 아니었다.
열심히 악마들을 때려잡는 S급 헌터들도 현재 알려진 레벨은 5~600대. 국가기밀이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신재혁보다는 낮았다. 전생의 경지가 레벨 산정에 영향을 준 것이틀림없었다.
게다가 위업 칸도 지나치게 빼곡했다. 평범한 헌터는 하나 갖기도 힘들다는 위업. 신재혁은 그것을 7개나 가지고 있었다.
달인, 사천왕 살해자, 신혈, 아가페, 운명이 주시하는 자, 혼원, 그리고 블라인드 처리된 마지막 업적. 상태창은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던 불평대로 지나치게 불친절했다. 몇몇 위업은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갔지만 몇 개는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어..?’
문득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았다. 언젠가부터 존재한 기묘한 지식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오.”
“와, 재혁아. 너 눈동자가 파랗게..?”
체내의 마나가 눈으로 쏠리며 동공에 푸른 빛이 타올랐다. 그의 각성 능력이었다. 통찰안. 세상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작동되었다.
상태창이 조금 덜 불친절한 정보를 표시했다.
「===
《위업》
<달인>
- 동작에 합리를 담으며 무가 되며, 무에 예술을 담으면 달인이 된다.
(적용 무구 – 창,방패, 메이스)
<사천왕 살해자>
- 코끼리를 쓰러뜨린 개미.
<신혈>
- 성스러운 일부를 품은 자.
<아가페>
- 신이 그대를 내려볼 때, 그대 역시 신을 올려보다.
<운명이 주시하는 자>
- 어린아이의 관심을 받는 인간은 두 부류뿐. 아직 미치지 않았거나, 이미 미쳐 있거나.
<혼원>
- 한 몸에 두 기운을 품다.
<불■>
- (미발현)
===」
‘스킬을 써도 위업의 효과는 설명해주지 않나? 숙련도가 낮은 건가? 아니면 애초에효과 자체가 없는 건가…. 게다가 미발현? 이건 뭐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투성이였지만, 대충 어떤 맥락에서 위업을 획득한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였다.다른 사람들은 위업의 효과는커녕 설명구조차 볼 수 없었으니. 레벨이 오르고 스킬의 숙련도가 오르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골똘히생각에 잠긴 신재혁에게 유성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음, 무슨 능력인지 가르쳐 줄 수 있어? 이런 걸 물으면 실례인가..?”
실례라니! 신재혁이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누난데 당연히 가르쳐주지. 그,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인 모양이야.”
“…정보?”
신재혁이 유성하에게 통찰안을 발휘해보았다. 상대의 상태창이 보였다. 유성하는자신을 탐색하는 미지의 능력에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
이름 : 유성하
레벨 : --(미각성)
위업 : --(미각성)
===」
유성하는 미각성자인지라 단출한 정보만이 표시되었다.
“아, 응. 누나는 미각성자라 그런지 이름밖에 안 나오네.”
“아…. 그렇구나.”
그제야 유성하가 후후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묘하게 안심한 듯한 눈치.
“대단한 능력이네. 상대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니.”
“음…. 그런가?”
이 능력이 전투에 도움이 될까? 신재혁이 잠시 고민해봤다.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적의 위업을 염탐하는 것으로 상대의 특기나 약점을 알아낼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옥의나이만큼이나 악마의 종류는 다양했기에 초대면에 리스크 없이 천금과도 같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반길만했다.
“뭐. 나쁘지 않네.”
신재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생의 귀여운 행동을 지켜보던 유성하가 손뼉을 짝 쳤다.
“아, 참! 깜빡할 뻔했네.”
그녀가 자기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건넸다.
‘뭐지?’
시집이었다. 여러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엮어 놓은 책. 목차를 훑어보니 주로 사랑이나 고백에 대한 주제가 많았다.
“웬 시집?”
“병문안 선물! 너 옛날부터 시 좋아했잖아. 하린이 올 때까지 심심할 텐데, 그동안 읽고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고마워. 진심으로.”
감동의 물결에 가슴이 따스해졌다. 감격을 표현하기 위해 신재혁이 고마움을 전했다. 단지 시집에만 국한된 감사가 아니었다. 오늘 새벽 찾아온 최악의 순간에 자신이 삶을 포기하지 않게 붙잡아준 한 마디 위로에 대한 감사 인사이기도 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그녀가 알 턱은 없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었다.’
유성하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신재혁을 꽉 끌어안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차…. 그럼 나도 슬슬 일하러 가볼게. 하린이 만나면 고맙다고 하고! 걔가 이 병실도 잡아줬다니까.”
그럼 바이바이-
손을 흔들며 유성하가 VIP 전용 병실을 나갔다.
자동문이 닫히는 사이로 사라지는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등을 침대에 털썩 기댔다. 여전히 미약한 통증에 근육이 찌릿찌릿했다. 이대로 집까지 가기엔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기 가방이 없었다. 전투 도중에 잃어버린 것일까. 그 안에 지갑이랑 스마트폰이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병원비는커녕 택시비도 결제하지 못한다. 의식을 잃기 직전엔 메이스도 지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었다.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일단 홍하린을 기다려야겠다.”
신재혁은 푹신한 매트리스에 몸을 온전히 맡기고 시집을 펼쳤다. 아름다운 글귀가 심신을 안정시켰다. 지금만큼은 모든 문제를 전부 잊어버리고 독서에 집중하고 싶었다. 드디어 사천왕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는데, 이 정도 선물을 즐길 자격은 충분하겠지….
오랜만에 성기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주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