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42화 - 방문
지이잉-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집을 읽던 신재혁이 돌아봤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병실에 들어왔다. 머리를 뒤로 틀어 올려 아름다운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신재혁은 한눈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홍하린….”
홍하린. 보육원 시절 그의 유일한 동갑친구였다. 마지막으로 본 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기억 속 그녀 그대로였다. 냉기를 풀풀 흘리는 도도한 냉미녀. 정갈한 정장 차림이 그녀의 아우라를 한층 더 날카롭게 벼려냈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만나는 건 나라도 좀 어색한데.”
의외로 그녀가 허물없이 인사를 건넸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라면, 조금 더 사무적이고 관심 없다는 듯 제 안부만 확인하고 곧장 병실을 빠져나갔을 텐데. 나이 먹으면서 철이라도 들었나.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신재혁으로서도 좋다면 좋은 상황이었다. 그도 친구와 오랜만의 재회가 기꺼웠으니.
신재혁이 먼저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 네가VIP 입원실로 해줬다며? 비쌌을 텐데.”
“고마워할 것 없어. 내 지갑에서 빠진 게 아니라, 직장 카드로 긁은 거니까.”
그녀가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심각한 이야기를 고했다. 황당해진 신재혁이 되물었다.
“뭐? 공무원이라더니, 카드를 마음대로 써도 문제없는 거야?”
그녀는 대답 대신 명함을 건넸다. 신재혁이 그것을 읽었다.
국가정보원, 각성관리부 부장 홍하린.
“국정원?!”
신재혁이그 익숙한 이름에 깜짝 놀랐다. 해결사 의뢰를 하면서 종종 접한 이름이었다. 필요에 따라 서버를 해킹한 적도 많았고. 그래서 그녀가 소속을 밝혔을 때 설마 데이터베이스 들락거린 게 들켰나-싶어 괜히 뜨끔했다.
'홍하린이 국정원이라니…. 안 어울리는, 아니. 은근 잘 어울리나?'
냉철한 판단력과 우수한 두뇌. 의외로 이미지가 매치가 잘 됐다. 그런데 심지어 부장이라니! 요원 일이 이미지만이 아니라 적성에도 상당히 잘 맞는 듯했다.
어쩌다 국정원에 입사했는지 신재혁이 물어보려던 찰나, 그녀가 먼저 훅 들어왔다.
“너, 미등록 각성자지?”
신재혁이 재차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한 덕에 당혹감이 드러나지는않았다.
“무슨 소리야? 미등록 각성자라니.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녀는 해명을 들은 채도 않으며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만 툭툭 두드렸다.
“이거 너지?”
홍하린이 영상을 보여줬다. 몇 시간 전에 본 영상. 옥상에서 신성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발뺌해도 소용없어. 이미 다 알고 온 거니.”
그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피 때문에 바닥이 빨갛게 물든 가방이었다. 벨리알과의 전투 도중 잃어버린 자신의 가방.
‘이런, 젠장.’
정말로 다 알고 온 듯했다. 가방 안에 자기 지갑과 폰이 있을 테니 우길 수도 없었다. 명백한 체크메이트.
‘제기랄, 이미 옥상 CCTV도 다 확보했겠군….’
신재혁은 빠르게 체념했다. 변명하는 대신, 신원을 숨기는 과정중 어디서 실수를했는지 알아내려 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았지?”
정체가 들통난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가 건물 옥상에서 벨리알을 쓰러뜨리고 귀가하는 중 기절할 때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자신을 찾아 VIP 병실에 넣은 것일까.
“이전부터 너는 각성관리부의 요주의 감시대상이었거든.”
“…내가?”
“관악구에 한국의 첫 S급 보스, 코드네임 ‘수르트’가 나타났을 때, 퇴각하는 군대를 덮치려던 보스가 갑자기 뒤돌아 ‘자신을 상처입힌’ 경찰차를 쫓았다는 증언이 있었지. 경찰차는 관악 경찰서 소속 차량이었고, 그곳은 전파방해가 닿지 않아서 블랙박스가 무사했지.”
아차! 실책이었다. 당시엔 고위 악마의 소환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생각 없이 움직여버렸다. 경찰서 근처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에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찍혔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국정원은 충분히 블랙박스 영상을 수집할 수 있었을 테고. 자기 정보가 뉴스에 풀리지 않은 것을 보면 국정원 측에서 정보를 통제했겠지.
“그것만이 아니야. 작년,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E급 게이트 몰살 사건. 거기도 네가 있었잖아? 국정원에서 정보를 통제한 덕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누가 그 게이트를 클리어한 건지 알고 있어.”
홍하린 자신이 직접 정보를 통제하러 간 사건이었다. 한 명의 실수로 공격대 하나가 전멸당할 뻔한 대사건. 기자들에게 알려졌다간 친親헌터 정책을 펼치는 박주관 대통령의 지지율에 꽤나 타격이 있을 법했기에 부장인 그녀가 몸소 현장에 방문했었다.
그리고 우연히 보고서를 보다 그녀가 익히 아는, 옛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관악구 사건의 의심에 확증을 심어준 일.
“…그럼 왜 진작에 찾아오지 않고 나를 방치해 뒀지?”
미등록 각성자란 위험한 존재다. 들켰을 때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각성 사실을 숨기는 이들은 잠재적인 범죄자나 다름없다.
이 위험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국가와 헌터 협회에선 몇 개월에 한 번 전국민에게 각성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신고하지 않던 각성 사실을 발각된 미등록 각성자는 법적으로 협회 산하의 게이트 공략조에 2년간 강제로 복무해야 한다.
미국에서 ‘징용 법안’이최초로 발의될 당시에는 인권유린이라 욕을 먹기도 했지만, 한 명의 미등록 각성자가 민간인 수십을 학살한 범죄 사건이 터지자 협회가 잽싸게 언론 플레이를 펼쳐 날림으로 법안을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헌터 협회의 표준으로 채택된 이후 다른 협회 가입국도 차츰 대세를 따라 징용 법안을 가결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미등록 각성자가 범죄자의 이음동의어라는 사실은 보편적인 상식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무려 S급 보스에게 타격을 준 미등록 각성자였다. 국정원에서관악구의 일을 알았다면 어째서 진작에 접촉하지 않은 것일까.
“세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첫 번째로, 네 목적을 파악해야 했어. 섣불리 접촉했다가 국정원에 척을 지기라도 하면….솔직히 우리에게 S급 헌터를 막을 힘은 없지.”
다행히 무슨 범죄를 꾸미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홍하린이 덧붙였다.
납득할 만한 이야기였다. S급으로 추정되는 고위 각성자가 날뛰면 피해는 물론이고 막을 수단이 없겠지. 물론 한국에는 S급인 김재민이 있긴 하지만, 그가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순순히 협조해 줄지는 미지수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박주관 대통령의 비밀 지시가 있었어. A급 이상의 미등록 각성자는 체포하지 말고, 국정원에서 회유해 보라고. 대통령은 지금 헌터 협회 한국 본부장인 황희종과 각성자 명령권을 두고 다투는 중인지라 고등급 각성자를 체포하고 싶지 않아 하셔. 강한 헌터가 징병될 수록 황희종의 힘만 키워주는 꼴이니.”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나….’
두 번째 이유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야기였다. 하긴, 이런 중요한 사항에 정치가 연루되어 있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면 세 번째 이유는 뭐지?’
신재혁이 홍하린의 입에서 나올 말에 집중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네가 알 필요 없고.”
홍하린이 뒷말을 삼켰다. 신재혁을 체포하면 안 된다고 자신이 극구 반대했다는 사실을, 굳이 그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홍하린 자신조차 어째서 그를 그렇게 열심히 변호했는지 알 수 없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생긴 소꿉친구의 얼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홍하린이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래. 내가 저 녀석을 신경 쓸 리가 없지. 내가 반대한 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 성하 언니 때문이니까….’
홍하린의 마음도 모르고 신재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했다. 세 번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고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그러면 어째서 지금 이런 사실을 밝히고 접촉해 온 거야?”
물론 그것에도 이유가 있었다. 아주 중요한 이유가.
“이번 인천 참사를 통해 네가 S급 각성자라는 게 사실상 확정나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중요한 소식을 건네기 전의 습관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너를 만나보겠다 하셨거든.”
***
고급스러운 리무진 안에서 신재혁이 홍하린에게서 돌려받은 자기 가방을 확인했다. 스마트폰, 지갑, 모자, 해킹 도구, 메이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소지품이 다 들어있었다.
뻣뻣한 새 옷의 질감이 약간 불편해 몸을 꿈틀거렸다. 원래 옷은 벨리알과의 교전에서 걸레짝이 된 지라 홍하린이 새로 사준 옷이었다. 신재혁이 앞 좌석의 홍하린을 흘낏 보며 병원에서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거 입어.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데, 병원복은 좀 아니잖니? 그 걸레를 입을 수도 없고.’
‘…내가 안 따라간다고하면?’
‘네가 중학생 때부터 해결사 일하는 것도 이미 알고있어. 실력이 좋아서 너를 구속할 수 있는 법적 증거는 없지만, 이 사실을 성하 언니나 그레이스 수녀님께 말하면 어떻게 될까….’
‘젠장.’
영악한 녀석…. 제 밥줄을 인질로 잡다니. 역시 그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똑똑하고, 피도 눈물도 없다.
신재혁이 뚱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차창 너머 멀리 북악산이 보였다. 산 아래있을 청와대가 리무진의 목적지였다.
“그보다 대통령이라니. 무슨 일로 부르는 걸까….”
고민한들 알 도리가 없었다. 이내 신재혁은 스마트폰을 꺼내 나무위키를 켰다. 검색창에 ‘박주관’ 석 자를 입력하자마자 그의 내력이 촤르륵 떠올랐다. 청와대까지 가는 동안 만나러 가는 이의 사전 조사나 해볼 생각이었다.
***
박주관 대통령.
한국의 독재자, 위대한 애국자.
세간에서 바라보는 박주관의 평가다. 한국의 행정권과 입법권, 그리고 군사권을 장악한 권력가. 사실상 대한민국을 그의 손아귀에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유 민주주의가 기본 이념인 현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독재자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인터넷만 봐도 정치에 거품 물고 달려드는 놈들 천지인데.
단순한 이야기다. 그는 인기가 좋았다.
혼란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국민은 결단력 있고 유능한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박주관은 그러한 인물이었다.
군 장교 시절부터 단련된 정치적 감각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유용했다. 이미 군부와 긴밀한 관계인 그가 정부를 장악하고 의원들을 포섭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에 군대와 정부가 움직인다.
사회에선 그런 이를 독재자라 부른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독재자에 대한 발작 스위치가 많은 나라였다. 과거에 그런 대통령이 있었을 뿐 아니라, 북쪽에는여전히 독재자가 버젓이 살아있다. 한국인에게 독재자란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씹새끼다.
박주관도 당연히 자신의 집권기가 길어지면 반대하는 시위나 폭동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았다. 또 그런 반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만이 할 수 있기에, 국민이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적.
그 카드로 박주관은 집권 초기에 급진적인 정책을 꺼내 들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략이었다.
헌터의 연예인화.
박주관은 각성자 등급화의 시초를 제공한 남자였다. 그의 아이디어에 감명을 받아 헌터 협회는 등급화 제도를 세계적으로 실시했다. 협회에서, 그리고 긴급 재난 예방을 위한 UN 세계 정상 회담에서 박주관의 정치적 입지가 상승했다. 그는 정책을 통해 각성자와 각성자의 친지들의 지지를 얻었다.
S급 헌터 용병론.
한국은 세계에서 7명뿐인 S급 보유국 중 하나였다. 박주관은 자국의 고위 헌터를 타국에 용병 형식으로 파견했다. 상대국은 사상자가 없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한국은 외화를 벌 수 있으니 상부상조. 박주관이 어떻게 S급인 김재민을 꼬셨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김재민을 설득한 것은 온전히 박주관의 능력이었다.
국방 우선책.
박주관은 외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대부분 국방력을 강화에 투자했다. 무기를 사들이고 장병 수를 늘리고 방위 사업에 투자하고. 경제가 무너지는데 군대에만 꼬라박다니 정신병자냐,군부에 로비하는 거냐 같은 추측성 비난이 무성했다. 하지만 그는 우직하게 국방비를 늘렸다. 헌터 수와 군사력이 부족한 지방 도시에서 그 결정을 환영했다.
이러한 결정들을 두고 사람들은 늘 그렇듯이 편을 갈라 정책이 옳았니, 틀렸니 따졌다.
누군가는 그가 전대 대통령이 죽게 내버려 둔 싸이코 독재자이며, 단순히 권력에 맛들린 더러운 정치가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박주관 덕분에 마침내 한국이 해외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인정받는 강대국의 반열에 들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박주관이 게이트 때문에 아들과 아내를 전부 잃어국방 사업에 나라의 명운을 도박하는 복수귀라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는 여러 정당이서로 물어뜯으면서 힘 낭비를 하느니, 차라리 한 명이 제시한 길을 똑바로 따라가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한국 국민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했다. 그가 꽤, 아니 상당히 유능하다는 것을.
그는 필요악必要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