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3화 - 곤경 (53/72)



〈 53화 〉53화 - 곤경

‘이런 시발.’

신재혁은 곤경에 처했다.

딱히 무언가를 공항에 두고 온 것은 아니었다.  신분이 들통난 것도 아니었고. 그는 무사히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비행기는 순조로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왜 그래? 안색이 나쁜데 친구? 무슨 문제라도 있어?”
‘시발. 네가 문제다 문제.’

옆에서 ‘문제’가 뺀질거리며 물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사내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미친 친화력으로 자꾸 친한척 말을 걸며 귀찮게 굴었다. 사교성 제로의 히키코모리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타입의 인간 군상.

신재혁이 상대를 흘겨보았다. 흑발과 창백한 피부,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이국적인 외모를 부각시켰다. 쓸데없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을 보면 한국계 외국인 같았다.

“여기 마실래? 아니면 스튜어디스 불러줄까?”
'제발 그냥 닥쳐 줘….'

물론 대놓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상대의 말은 자기를 향한 이유 모를 호의를 담고 있어서
모질게 대꾸하기도 껄끄러웠다.

신재혁이 애써 상대를 무시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비언어적인 대화 거부 의사도 알아채지 못하고 상대는 계속 찝쩍댔다. 속사포같은 질문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창밖을 자주 보네. 신기해? 비행기 타는  처음? 아니면 비행형 몬스터가 튀어나올까 봐 긴장이라도 한 거야? 걱정 마. 그런 일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고, 국제법상으로도 비행기마다 원거리 요격이 가능한 마법 계열 헌터가 호위로 탑승하게 되어있으니까.”

그가 일등석 앞자리를 가리켰다. 과연 태평하게 땅콩을 까먹으며 신문을 읽고 있는 외국인이 있었다. 신재혁의 기감이 상대의 마나를 감지했다. B급 정도 되는 기운.

마나를 느낀 신재혁이 무심코 스킬을 사용했다. 통찰안. 숙련도를 올리려고 헌터를 마주칠 때마다 통찰안을 쓰다보니 마나만 감지해도 자연스럽게 통찰안을 사용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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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빌헬름 션

《레벨》 351

《위업》
<명사수> - 머리 위의 사과를 맞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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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국인은 빌헬름 션이고 전격 마법 계열 B급최상위 헌터야. 솜씨도 그럭저럭 믿을 만하지. 헌터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명사수>란 위업을 가졌는데, 스킬인 번개 화살의 정확도가 올라가게 보정 해주는 효과라고. 거주지는 뉴욕 퀸스, 집에는 2살 연하의 아내와 딸이….”

그가 신상정보를 줄줄이 읊었다. 전적이나 게이트 이전의 직업 등 상세한 설명이 계속 쏟아져나왔다.  딴에는 화제를 이어가고 둘 사이의 어색한 벽을 허물려는 속셈이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경계심 섞인 목소리로 신재혁이 상대를 추궁했다.

“당신은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개인정보를 다 꿰고 있는 듯해 보이는 말투에 경계심이 높아졌다. 혹시 자기 정체를 알고 접근한  아닐까? 신원불명의상대가 너무 수상했다. 각성자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에게선 어떤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다.

의심스런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뻔뻔하게 변명했다.

“내 목숨을 약해빠진 헌터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 조사를 해 본 것뿐이야.”

참, 그가 태연하게 악수를 건넸다.

"내 소개를 잊었네. 내 이름은 메피스토. 프리랜서 정보상이야. 일 때문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처지인데, 이번엔 뉴욕에 일주일쯤 머무를 생각이지."

악수를 받기 전까진 손을 거두지 않을 기세였기에 떨떠름하게 손을 맞잡았다.

"신재혁입니다. 이름이 독특하시군요."
"당연히 가명이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유명하잖아. 몰라? 독일 고전 문학인데 한 번쯤 읽어보는 걸 추천할게. 상당히 명작이라고. 신의 비열하고 치사한 작태를 아주 잘 묘사했던데…."

'허, 참. 면전에 대고 가명이라니. 이게 무슨….'

이 정도로 뻔뻔하면 더 화도 나지 않는다. 어이가 없어 경계심이 한풀 꺾인 신재혁이 허탈하게 물었다.

“하아. 그래서 왜 자꾸 말을 거는 겁니까?”
“가는 동안 심심하기도 하고, 그쪽이랑은 좀 친해지고 싶어서 말이지.”
“어째서?”
"네 조사를 해봤는데 꽤 실력 있는 B급 헌터라며? 아, 오해하진 말고. 나름 정보상인데, 내 옆자리에 탈 사람이 누군지는 조사해 봐야 하지 않겠어? 옆자리 승객이 나를 노리는 암살자일지 내가 어떻게 알고. …아무튼 옆자리에 A급 승급 가능성이 매우 높은 헌터가 앉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참에 친분을 쌓아놓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샘솟더란 말이지."

메피스토가 속물 같은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목적을 안 신재혁의 경계심이 확연히 옅어졌다. 전생에도 마스터 팔라딘의 위명을 듣고 찾아오는 상인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손에 뭔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갔지만.’

"그래서 너는 왜 뉴욕에 가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내게 얘기해 줘. 어쩌면 내가 도움을   있을지도 모르잖아?”
“대충 관광차….”
“관광 좋지! 거기 가봤어? 타임스퀘어라던가, 자유의 여신상이라던가. 센트럴 파크도 나쁘진 않은데 그쪽 도로는 S급 보스인 데스웜이 죄다 부숴서 차도 못 다닐 지경이고  것도 없을 거야.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쪽도 절대 가지 말고! 그 근처는 무시무시한 헌터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으니까….”

친하게 구는 이유를 알았음에도 불편한 것은 다름없었기에 신재혁은 랩처럼 쏟아지는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설렁설렁 대꾸했다.

신재혁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닐뿐더러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이와 말을 섞기 꺼려졌다. 더구나 상대가 초면에 가명이나 대는 수상한 이라면 더욱.

'애초에 21세기에 정보상이라니. 딱 봐도 엮였다간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직종….'

다음부턴 반드시 옆자리 표도 예매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신재혁이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비행기 날개가 구름을 가르며 평화롭게 푸른 하늘을 날았다.

***

'곤란한데.’

메피스토, 그러니까 메피스토라는 정보상으로 변장한 미스터 B는 속으로 혀를 찼다. 혀는 매끄럽게 움직이며 뉴욕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쏟아냈으나 머릿속은 다른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 어색하군, 어색해.’

신재혁과의 거리감이 도저히 좁혀지지를 않았다.

기껏 변장까지 하고 몸소 무대 위로 오른 마당이다.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했다. 절대 실패해서는  된다. 신재혁과 곽태우의 접촉은 대참사로 이어질 공산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곽태우가 신재혁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있던데,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곽태우는 신재혁을 향한 이유 모를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었다. 둘 사이의 비화는 제 관심 밖이었다. 문제는 미스터 B가 신재혁, 곽태우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상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곽태우에게 신재혁의 위치를 가르쳐  이유였고.

‘신재혁의 숙소를 곽태우에게 가르쳐줬으니 아마 밤에  때 습격할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한국도 아닌 외딴 땅에서 신재혁은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한다. 곽태우의 추적을 따돌리고 뉴욕을 빠져나가려면 반드시 도움이 있어야겠지. 하지만 신재혁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미스터 B?

‘그럴 리가 없다.’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신재혁 입장에선 신분까지 위조한 제 위치가 특정될 경로는 미스터 B뿐이란 결론에 도달할 터. 자신이 아는 녀석이라면 멍청하게 정보 유출 용의자인 ‘미스터 B’에게 도움을 청할 리가 없었다.

따라서 신재혁이 의심하지 않고 도움을 받아들일 다른 신분이 필요했다. 그것이 정보상 ‘메피스토’였고.

‘궁지에 몰린 신재혁이 메피스토에게 연락하면 나는 메피스토로서 신재혁을 곽태우에게서 도망치도록 도우면 된다.’

완벽한 계획.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보다 경계심이 짙군.'

이 모든 계획의 전제는 메피스토의 신분으로 신재혁과 친해지는 것이었는데, 신재혁은 사교성이너무 떨어졌다. 친해지기는커녕 연락처조차 못 건넬 판.

빌헬름이라는 호위 헌터의 신상을 읊으며 유능함을 뽐내려던 속셈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도리어 경계심만 높였을 뿐, 긍정적인 눈도장은 찍지 못했다.

‘도움을 주려면 적어도 연락처는 알아야 할 텐데.’

미스터 B가 비행기 옆자리에 탄 목적은 신재혁과 연락처를 교환할 만큼 친근한 사이가 되는 것.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명함을 쥐어 주면 수상히 여기면서 쓰레기통에 버리겠지. 명함을 건네줄 명분이 필요했다. 신재혁이 의심하지 않을 명분.

그리고 명분이 존재하려면 사건이 필요한 법이다.

'비  뒤에 땅이 굳기 마련….'

신재혁에게 말을 거는 와중에 그가 정신을 집중했다. 신재혁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극히 은밀한 파동이 비행기에서 뿜어지기 시작했다….

***


 ̷͓̳̯̺̪͇̙̣̪̖̳̟͙̐͜ͅF̶̬̂̉́̈́̌͋̓͐͌̈́͐̓̅̄͠l̴̡̢̨̘͕͖̺̼̹̽͌è̸͍̘̥̻̻̪̳̺̀͛̌̾̓̂̆̽̇̿͜e̸̙̦̰̬͚̼̣̰̼̪͎̤̺͊̓͜ë̴͔́̇̿́̊͘ę̴͕̦̝͌͗̀̉͊͊̋̾͌̓̅͘̕͝͝è̸̩̳̰͈͕̟͐̾̎̎͛̿̕ͅȩ̴̳̳̲̩͉̳̜͕̀́̃͐ͅę̸̢͎͇̫̣̻̫̂̂͆̇͑̎́̊̃̇è̷̛͓̺̙̬̞̭̞̄͗͊̏̍̈́̊̊̆͊̄̀̚ę̸̯͍̬͍̱̫̩̜̲̈̓́͛̀̐͆è̵͈̖̗̃̊͗̏̔͊́͒̇͗̀͊̚̕ḙ̵̂̎͊̀̔͠ę̶̢͙͈̤̳̩̗̺̉̈́̈́͋̀͊̓̽͒̚ͅͅ-̵̢̨̨̥̺̠̗̻̦̤̼̲̘̮̖̀̅̂̉̊̔̑̈̌͆̚!̵̹̲̲͕̺̜̭͊̒̈͒͆͜!̶͙̯͖͙̩̠̣̗̼̯̙̏̓̌̍̈́̽̃̅͊͒̈́̃͘͠!̷̢̙̣̈́̽̋͝”

익룡이 성층권을 비행하고있었다. 파충류 몸체와 박쥐 날개, 날카로운 부리가 부조화하게 연결된 생명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배경에 따라  색깔이 변하며 익룡을 배경에 동화시켰다.

아주집중해유심히 관찰하여야만 찾아낼 수 있을 미세한 파문만을 하늘에 남기며 브루클린 게이트에서 탈출한 악마가 비행했다. 군의 레이더는 악마의 은신 능력을 포착하지 못했고, 열화상 카메라도 파충류의 차가운 몸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아무도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유유히 군대의 포위를 뚫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 악마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고도를 올렸다. 악마는 어떻게든 게이트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동족을 학살한 공포의 존재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위해서.

익룡 악마는 나름 지옥 먹이사슬 상위에 위치한 존재였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그는 포식자였고, 피식자 입장이 익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냥감의 입장이 되었을  침착하게 반격하고 도망칠 최소한의 경험은 존재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전투는 대등한결투도, 사냥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방적인 도축의 현장이었다. 힘의 차이가 지나치게 거대할 경우에나 발생하는 양상. 그래. 마치 지옥의 왕들을 마주했을때처럼….


동족을 날파리처럼 쓸어버린 빛기둥과 폭풍우가 아직도 뇌리에 깊숙이 남아 공포로 굳은 날개를 강제로 움직였다.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살의조차 지울 만큼 단단히 겁에 질린 익룡은 계속해서 멀리, 더욱 멀리 도망쳤다.

풍경이 계속 변했다.

그리하여 몇 시간 후, 이제 안전하다고 판단될 만큼 거리를 벌려 심장도 본래 박동 속도를 되찾을 즘이었다. 익룡이 무엇인가를 느꼈다.

“-!”

은밀한 파동이 머리를 강타했다. 뇌 기관 일부가 안테나처럼 역할하며 규칙을 담고 진동하는 마기의 파동을 받아들였다. 악마는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할  있었다. 신생 악마의 유전자에 각인된 기능이었다.

일종의 페로몬과 같은 효과를 내는 명령체계가 익룡의 뇌를 조작했다. 생리적 반응이었고,그러므로강제적이었다. 본래 생명체는 제 몸을의지대로 다루지 못하는 법이니.

익룡은 자유의지가 박탈되는 것을 느꼈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익숙했다. 이 느낌은 수없이 겪어보았다. 하급자인 신생 악마로서는 절대 저항할 수 없는, 고대 악마로부터의 명령….

다행히 명령은 스스로에게도 기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간들이 타고 있는, 하늘을 나는 쇳덩어리를 공격하라는 것.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생물은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픈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악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생명의 위협에서 살아남은 익룡은 지독한 공복감을 느꼈다. 마침 명령은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Y̶̧̞̗̺̩͇̜̺͎̻̘͚͔̏͗̄̉̚̚͜ẹ̴͓͔̙̤͙̮͚͍͙̤͎̱̠̈̿̅̿̑̍̓͂̾̆͠͠s̷̢̢̫͕͙̬̙̗̤̜̩͕̅̓͊͐̓͜͝,̷͔̓͛ ̴̡͈̘̤̤̼͔͉͍͎̃̔̋͜M̴̛͓̦͉͔̏̐͑̀̾̽̍͋̍͂͗ÿ̵̡̛͔̫̱̬̤̼͎̱̗̰͕̩͛͊̈́̇͘͠ ̶̖̊̈͂̓̌̚L̷͚̗̻̳͉̯̥̈̂̀͆͊͊̐͝͝ȍ̷͔̬͔͝r̶̭̤̓̓̓̈̀̊̆̒̅̚̚̚͝͝ḑ̵̢͖͕͔̠̯̰͎͈̱̰̥̇̊̽̔̑̀-̷̺̼͍͚̺̙̝͓̝̼̝͕̎͝!̵̛͉͖̊͑̒͌!̵̭̱̳̌!̴̖̞̣̗̭̫͈̪̣̰̤͎̤͗̓̀̄̀́̀̿́̄̓̐̕͜ͅ!̸̢͕̘̩̭̭̬͍̘͔́̌̈́͑”̴͚̦̠̾

길게 포효한 익룡이 목적지를 재설정했다. 파동이 날아온 방향. 다행히 게이트와 멀어지는 방향이었고, 악마는 다시 게이트로 돌아가라는 명령만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승복할 수 있었다.

몹시 배가 고팠다. 하늘에 갇힌 인간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배를 채울 생각에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악마는 즐거워졌다. 그리고 공포와 다르게 즐거움은 살의와 공존 가능한 감정이다.

살의로 충만해진 악마가 허공을 찢으며 일직선으로 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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