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57화 - 오병이어 (57/72)



〈 57화 〉57화 - 오병이어

“이쪽 루트구나.”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간, 신재혁이 코스코프 사의 담벼락을 넘으며 중얼거렸다.

코스코프 사의 단지는 뉴욕 자치구 중 하나인 퀸스 북쪽, 시내와는 떨어져 인적 드문 공터에 자리잡고 있었다. 몹시 넓은 부지치고 경계를 감시하는 경비 인력이 상당히 적어 침입하기 어렵지 않았다.

“…왜 이렇게 쉽지?”

물론 이단심문관으로 활동하며 이교도 소굴에 잠입했던 경험이나 해결사 일의 경험이 잠입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주긴 했다.그래도 온라인 보안이 그렇게 철저했던 것을 떠올리면 의아함을 감출  없었다. 해킹을 대비한 보안에 비해 오프라인의 보안은 장난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으니.

‘역시 기술 유출보다는 다른 정보 유출에 신경 썼다는 의미인가?’

낙원교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회사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도대체 뭘까. 그것을 알기 위해 자신이 한국에서 뉴욕까지 날아온것이었다. 공적으로는 미스터 B의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낙원교와 코스코프 사의 약점 및 유착 관계를 찾아내는 것, 사적으로는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포션 생산량의 비밀을 밝혀내 사천왕과 관련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

‘어느덧 문명 경험치는 88% 정도. 사천왕 소환 계획이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는 않아. 제발 이 사건이 사천왕과는 관련 없는 일이면 좋겠군….’

신재혁이 살금살금 코스코프 사 부지 내로 걸음을 옮겼다. 전생에 그와 싸웠던   명의 동료 중엔 암살자도 있었고, 신재혁은 그의 은밀한 발놀림과 잠행술을 훔쳐 배울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연습한바, 이제 그의 몸놀림은 숙련된 암살자의 그것이었다. 신재혁이 발을 움직였고, 어둠이 그를 숨겼다.



***


코스코프사는 회계나 홍보 등의 일반 사무 업무를 처리하는 큰 빌딩과 그 옆에 딸린 작업장으로 구성된 형태였다. 보통 포션 생산장은 인건비가 싸고 악마 시체 유통이 간편한 곳에 따로 짓는 경우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 특이한 구조였다. 비유하자면 서울 삼성 본사 건물 옆에 반도체 공장이 붙어있는 셈.

‘어느 쪽부터 털어 보는  좋을까.’

미리 계획을 생각해왔기에 고민은 짧았다. 우선 작업장에서 물적 증거부터 확보하기로 했다. 포션을 직접 생산하는 곳이니 증거도 더 많으리라. 그리고 경비 배치를 고려했을  작업장부터 갔다가 회사 건물을 탐색하는 쪽이 일을 마치고 빠져나가기에 편했다.


움직이던 도중, 작업장 근처에서 신재혁이 돌연 인기척을 느꼈다.

‘경비!’

급히 몸을 숙이고 장애물 뒤에 숨었다. 순찰 돌던 경비가 작업장 부근 경비실에서 대기하던 경비와 교대하고 있었다. 신재혁이 귀를 기울여 두 명의 대화를 엿들었다. 빈약한 영어 실력이었지만 번역기 앱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해석할 수 있었다.

“수고하고. 저는 이제 축구 보러 갑니다~.”
“축구? 참, 오늘 경기 있었지! 각성자 축구는 못 참지..! 에이씨, 그냥 오늘 순찰은 째고 나도 여기서 축구나 봐야겠다.“
“월급 루팡 선언을 당당하게 하시네. 근데 여기서 축구를 어떻게 봐? 회사 네트워크는 보안상 외부 인터넷 사용 불가잖아.”
“데이터로 보면 되지. 스마트폰 몰래 들여왔거든!”
“오! 보안 검사 어떻게 피했어? 나도 좀 써먹자.”
“삼십 달러로.”


신재혁은 약 십 분간 자리에서 가만히 대화를 훔쳐 들었다. 별 것 아닌 잡담이 많았고 현지 특유의 구어체 때문에 몇몇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시껄렁한 대화가 계속됐다. 더 이곳에 있을 필요성을  느낀 신재혁이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좆같은 보안 정책.  이리 쓸데없이 예민한 거야? 여태껏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가끔 중요하신 분들 오잖아. ‘성하 방문일’에. 신원이 노출될까  어지간히 신경 쓰는 눈치더만. 얼굴 찍힌 CCTV 영상이 외부에 털릴 거 걱정해서 회사 네트워크를 막아놨다는 말도 있던데.”
“아, 그 사람들 때문이었어? 해킹 쫄리면 CCTV 영상을 지우면 되지, 왜 이렇게 힘들게 군대?”
“몰라. 내가 보안과장이랑 사장의 대화를 훔쳐 들은 바로는 기적의 순간은 한번도 빠짐없이 보관해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던데. 그래서 CCTV 파일도 전부 광신도인 사장 새끼가 직접 관리한다더라.”
“내 직장이지만, 진짜 븅신 같은 회사네… 에라이, 그놈들 영원히 안 오면 좋겠는데. 성하 방문일 전후로는 안 그래도 애미 없는 보안 정책이 애비까지 없어지잖아.”
“하하. 걱정마. 당분간은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보안 과장이배부른 돼지처럼 얌전하잖아.”
“푸하하하! 하긴, 그때마다 일주일전부터 존나 히스테리 부렸지. 망할 새끼.”

특이한 단어가 귀에 잡혔다. 성하(Holiness) 방문일?  대화만으로 무슨 의미인지  도리는 없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 대충유추해보았다.

‘낙원교 고위 인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건가? 무슨 이유로?’

당장에 떠오르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였다. 포션 생산 현황을 확인하러, 사장과 친분을 다지러 등등…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여튼비밀스러운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확실해졌다.

‘더, 조금만  힌트가 필요해….’

경비의 입에서 추가적인 증언이 나올까 몇 분간 잠자코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중요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이야기가 상당히 신경 쓰이는데. 계속 기다려? …아니, 일단 본업이 우선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기는 아까워.’

신재혁이 목적을 상기하며 아쉬움을 덮었다. 신재혁은 성하 방문일이란 키워드를 머릿속에 새겨놓았다. 나중에 더 알아보도록 하자. 상사의 뒷담을 까는  명을 뒤로하고 신재혁은 작업장 내부로 들어섰다.

작업소 안에 침입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외부와 달리 실내에는 경비원 하나 없었다. 하기야 사방이 CCTV니 보안 장치로널렸는데, 굳이 경비가  필요도 없는 것이다. 신재혁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사람 상대하기보단 이쪽이 훨 편하지….”

장비를 꺼내 보안을 해제하며 신재혁이 내부를 살폈다. 작업장 내부는 조사한 바와 동일한 구조였다. 재료인 악마 사체를 쌓아둔 창고, 피를 뽑아내는 추출실, 추출한 피에서 독성을 제거하는 소독실, 화학약품을 섞어 포션으로 만드는 가공실, 운반 도중 포션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하는 제품 포장실, 새로운 조합법을 연구하는 연구실 등등이 연결된 구조. 포션 생산 길드의 전형적인 작업소였다.

“도면에 따르면 이쪽이 창고인가?”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지도를 보며 창고로 향했다. 과연 누가 봐도 창고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있었다. 산처럼 쌓인 악마 시체가 그를 반겼다. 신재혁이 피가 흥건한 시체를 이것저것 들춰보며 창고에서 수상한 점을 찾으려 했다.

‘꽤 더럽네. 정리도 잘 안 되어 있고. 이건 죽은  얼마 안 된 시체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제시한 청결 수준을 지키지 않는 등의 가벼운 불법 행위는 있었지만  정도야 평범한 수준이었다. 이런 증거물로는 미스터 B가 만족하지 못할 터. 미스터 B는 낙원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원했다. 신재혁은 더 안쪽으로 향했다.

품속의 단검이 진동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우우웅-

“파마의 룬이..!”

악마가 근처에 있으면 반응하는 파마의 단검이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특정 방향으로 향할수록 진동의 세기가 점점 커졌다. 창고  방향은 아니었다. 반대쪽, 그러니까 추출실 쪽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추출실 근처에 살아있는 악마가 있다! 혹시 몰라 호신용으로 가져온 단검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신재혁이 긴장한  나침반 역할하는 단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시체 사이를 피해,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추출기와 벽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진 장소가 있었다. 허접하게 설치된 가림막을 젖히니 후덥지근한 악취가 그를 덮쳤다. 그러면서 고전적인 수법으로 숨겨진 비밀 장소가 드러났다.

‘이건-!’

고전적인 수법답게 내부의 모습도 사뭇 이해할  있는 것이었다. 수상한 연구소, 혹은 비밀 작업장이라 부를만한 장소. 좀비물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였다. 물론 이곳은 현실이었고, 실험체가 사람 대신 악마라는 점이 달랐지만.

“살아있는 악마..!”

쇠사슬로 묶인 실험체 악마들이 가득했다. 놀랍게도 모두 살아있었다.

가까운 곳에는 거대한 익룡 모양의 악마가 구속당해 있었는데, 온몸에 튜브가 주렁주렁 달린 채 혈액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날개가 모두 잘려 반항의 낌새는커녕 겨우 숨만 붙어있는 처지였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평범하지가 않았는데 인사불성이 되어선 피가 빨리는 모습이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허- 이게 무슨.”

물론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악마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성기사의 덕목에 없었으니. 악마는 모조리 때려잡고 사지를 찢어도 부족하다.
다만 신재혁은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이득을 취하려는 인간에 대한 질림과 묘한 감탄을 느꼈다. 이단심문관 시절에 흑마법사의 은거지를 덮치면 실험실이야 숱하게   있었으나, 이렇게 살아있는 악마를 착취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을 속여먹는 악마가 반대로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사체 구매 비용 절감이나 탈세를 노린 건가? 거참, 황당하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한 마리라도 풀려났다간 회사 전체가 쑥대밭이 되겠는데…. 여기 사장은 위기감이란 걸 못 느끼나?”

살아있는 몬스터를 사고파는 것이 괜히 불법이 아니었다. 탈출했을 때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컸으니. 도시 곳곳의 감지 장치는 게이트가 열렸을 때의 급격한 마나 유동만 감지할 수 있지, 개체 하나하나의 출현을 감지하지는 못한다. B급 몹 하나만 탈출해도 거리에 헐크가 활보하는 셈….

민간인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몹들이 이렇게 많다니. 신재혁은 전부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잠입한 걸 들키면 기껏 모은 증거물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재혁은 악마라면 치를 떠는 성기사지만, 참아야 할 때를 알았다.

차라리 이놈들에겐 이대로 살아있는 것이 더 끔찍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설득하며 깔끔히 마음을 접은 신재혁은 불법 작업장 곳곳을촬영하면서 더욱 확실한 증거물을 찾아 헤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업무일지!”

월간 작업 현황을 모두 정리해 둔 업무 일지 뭉치. 즉시 생산량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기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란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적은데?”

만들어지는 양과 출고되는 양이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류에서 만들었다는 분량을 1 포션이라 치면 신재혁이 조사로 알아낸 시중 판매량과 낙원교 공급량은 5 포션 정도.

생산량보다 무려 다섯 배나 되는 공급량이라니! 포션이 허공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은 네 개의 출처는 어딘지 찾아내기 위해 업무 일지를 더 자세히 읽어보았다.

‘추출한 피의 양이, 여깄군. 소독으로 걸러내는 양이 한 60% 정도 된다고하니까….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여과율을 낮추고, 화학 약물 첨가량을 늘리고. 각종 가능성을 고려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대조해봐도 심히 부족했다. 최종 공급량의 오 분의 일 정도 분량. 그리고 다섯배란 단순히 악마 몇 마리 쥐어짠다고 채울 수 있는 수량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기적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도대체 어떻게?”

맞지 않는 숫자의 비밀을 밝히고자 애써봤지만, 이곳에서 더 찾을  있는 증거는 없었다. 그의 기감에 걸리는 것도 없었고, 파마의 단검이 추가적으로 반응하지도 않았다. 일단 여기서  것은 먼지  톨까지 다 본 것 같았다. 신재혁은 성급히 실망하지 않았다.

‘괜찮아. 작업장이 다가 아니니. 본사 건물을 털어 보면 분명 뭐라도 나오겠지.’

그리 생각한 신재혁은 증거물 촬영 작업을 마무리한 후 본사 건물로 이동했다.


***

본사 건물 역시 보안 장치가 있었으나 신재혁은 가볍게 내부로 침입했다. 작업장과 마찬가지로 경비 인력이 일절 없었다.

“쉽네, 쉬워.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이 건물에 있는 컴퓨터니 서류를 다 뒤질 시간은 없었다. 비행기  여독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 피곤했기에 가능하면 빨리 호텔 객실로 돌아가서 편히 쉬고 싶었다.

신재혁이 엿들었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경비 놈들, 사장실에 CCTV 영상을 보관하고 있댔지."

그런 연유로 신재혁은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가장 중요한 파일은 모두 그곳에 있을 것이다. 미스터 B가 원하는 낙원교의 약점, 그리고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포션의 비밀까지도.


사장실을 찾기는 쉬웠다. 눈에 띄는 명판이 문에 떡하니 붙어있었으니. 내부는 사업가 특유의 허영심을 표출하기 위한 사치품으로 군데군데 장식되어있었다. 물론 신재혁은 그런 인테리어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곧장 책상 위의 PC를 켰다. 준비해온 USB를 꽂으니 비밀번호가 저절로 해제됐다.

‘보안은 전부 무력화됐고. 이제 뒤지기만 하면 된다.’

능숙한 솜씨로 신재혁이 하드웨어를 뒤졌다. 사장의 컴퓨터답게 중요 파일이 많았다. 재무회계표, 출고 차트 등. 그중 하나를열었다. 한눈에 보기 쉽도록 기간 대비 출고량을 시각화한 차트. 삐죽삐죽한 꺾은선 그래프 중간중간이 기이할 정도로 불쑥 치솟은 형태였다.

“5일, 19일, 갑자기 출고량이 5배로..?”

작업장에서 확인한 것과 맥락이 일치하는 양상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하다가  주 간격으로 돌연 출고량이폭증하는 것.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럴 때 쓸만한 방법이 있었다. 사장 컴퓨터의 캘린더 앱을 켜봤다.

달력에 사업 일정이며 스케줄이 빼곡히 메모되 있었다. 비서가 꼼꼼한 성격임에 감사하며 신재혁이 출고량 급증일을 확인했다. 5일, 19일. 반짝이는 별표. 중요 일정 표시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이 확실했다. 순조로이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는 예감. 신재혁이 기쁘게 메모를 번역했다.

‘교황 성하 방문일, 아주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강당에 임원들이 모이도록..! 성하 방문일!’

신재혁은 서로 다른 실마리가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다. 복잡한 기계장치의 톱니가 제자리에 끼어 맞물리는 느낌. 경비들의 대화와도 아귀가 들어맞는 단서였다. 교황. 바티칸에 사는 교황을 지칭하는 것일 리는 없었다. 누구를 지칭하는지 뻔했다.

"-낙원교 교주가 직접 여기까지 행차했다고?"

어째서? 신재혁이 의아함을 담아 중얼거렸다. 의도를 이해해보려 해도 목적조차 알지 못하는 이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주의 방문이 출고량 급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의심하는 가운데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그래! CCTV 영상이 남아있댔지!'

강당의 영상을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낙원교 교황의 면상이라면 미스터 B도 충분히 흡족할 정보였다. 신재혁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클릭 네 번 만에 숨겨진 폴더가 드러났다. 과연 경비의 말대로 사장의 컴퓨터에 CCTV 영상 파일이 보관되어 있었다.

'강당…은 이 폴더고. 5일, 5일… 찾았다.'

더블 클릭. 영상이 흘러나왔다. 가슴 중앙에 역십자가 새겨진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노인이 강당 중앙에 있었다. 주변에 선 다른 사제들에 비해 옷 장식이 훨씬 화려했다.

“저 노인이 낙원교 교주..!”

신재혁이 영상 속 노인의 행동에 집중했다. 강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종교 행사 같았다. 임원으로 추정되는 양복쟁이들이 교주 뒤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교주 앞에는 수십 대의 항아리가 도열해 있었는데, 안에서 붉은액체가 출렁거렸다. 무엇인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코스코프 사에서 갓 생산한 따끈따끈한 포션….

영상 속의 교주가 뭐라 중얼거렸다. 손에 든 성경을 읽는 것 같았다. 교주의 말을 드는 양복쟁이들이 홀린 듯이 두 손을 맞잡았다. 교주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나는 황금빛 기운이 항아리를 휘감았다. 신재혁은 그것을 알았다.

'-신성 주문!'

틀림없이 신성 주문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성력으로 무엇을? 영상은 의문을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갔다. 교주가 주문의 행사를 마치자 임원들이 각자 축복받은 항아리를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내용물을 빈 항아리에 붓기 시작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 단지 포션을 다른 항아리에 옮겨 담는 것뿐이라면. 그러나 영상을 흘러갈수록 신재혁의 눈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

항아리에서 쏟아지는 포션이 마르지를 않았다.

알  없는 이능에 의해 복제된 포션이 콸콸 쏟아졌다. 축복받은 항아리 하나당 다섯 개의  항아리를 채웠다. 순식간에 포션이 다섯 배로 늘어났다. 보고도 믿을  없는 현상에 신재혁이 당혹스러워했다.

‘…포션이 복제가 된다고?’

신재혁이 알기로 신성력 각성 스킬 중 저런 스킬은 존재하지 않았다. 종류가 무수히 많은 마나를 이용한 스킬과 달리 신성력 스킬은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았고, 대부분 에덴의 신성 주문과 유사한 형태를 띠었다. 그리고 마스터 팔라딘이었던 신재혁은 저런 기적은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신성 주문이 아닌가? 이레귤러 스킬?’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교주의 행동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나 으레 초능력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끝내 기적의 트릭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


일단 의뢰는 완수했기에 신재혁은 호텔에 돌아왔다. 나오는 일은 들어갈 때보다 쉬웠다. 잠입할 때보다 밤의 장막은 깊어졌고, 매너리즘에 빠진 경비의 정신상태도 더 해이해졌으니.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신재혁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잠입 결과를 정리하고 미스터 B에게 보냈다. 불법 몬스터 생포 증거와 낙원교 교주가 찍힌 영상을 보내줬으니 의뢰는 완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VIP등급 연장과 소원권이란 보상도 얻어냈고, 어떻게 코스코프 사에서 생산량을 감당하는지도 알아냈으나 신재혁은 역시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다.

‘사이비 교주가 내가 모르는 신성 주문을 안다고..?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단지 특이한 스킬이거나 아티팩트겠지….’

신재혁이 애써 뒤숭숭한 마음을 달랬다. 비록 교주가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하룻밤만에 의뢰를 완수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그래도 최악의 가능성은 피해서 다행이야.’

기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교주에 대한 의혹은 잠깐 접어두고 신재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사천왕과 관계없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성기사의 직감이 아주 불길한 경고를 토해내서 뉴욕에서 반드시 무슨 큰일이 터질 줄 알았는데.

“다행히 별 일 없었구나. 내일 곧장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해서 돌아가자. 일단 지금은 쉬고…. 너무 피곤하네.”

또 사천왕에 맞서야 할까 봐 잠입 내내긴장한 상태였는데, 긴장이 한 번에 확 풀리니 피곤이 몰려왔다.

비척비척 걸어 호텔 객실 방문 앞에 도착한 신재혁이 문을 열다 말고 멈췄다. 객실 문에 웬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포스트잇?’

호텔 직원이 붙여놓은 것일까? 아니면 미스터 B의 연락? 아무래도 좋다. 신재혁은 단지 빨리 쉬고 싶었다. 너무나 피곤했던 신재혁은 무심코 포스트잇의 메모를 소리 내어 읽었다.

“…상태창?”

그리고 그것이 실책이었다.

세 종류 일이 일어난 것은 동시였다.

초현실적인 창이 눈앞에 떠오르며 신재혁의 시야를 가렸다.
 안에 숨어있던 이가말소리를 듣고 스위치를 눌렀다.
문 뒤, 성인 남성의 눈높이에 설치된 클레이모어가 격발됐다.

콰아아아아아앙-!!!!

나무문을 종잇장처럼 찢으며 터져 나온 쇠구슬이 신재혁을 덮쳤다.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인 시각이 봉인되고 피곤에 찌들어 긴장이 느슨해진 신재혁은 반응하지 못했다.

‘어-?’


퍼억-!

쇠구슬이 신재혁의 머리를 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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