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59화 - 스카이스크래퍼 (1)
뉴욕은 빛나고, 화려하고, 부유한 이들의 도시로 회자되곤 한다. 금융 재벌의 도시, 젊음의 도시, 다양한 인종의 요람.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극이라도 주인공들을 빛내기 위해 무대 뒤에서 사는 이도 있는 법이다. 헨리 클라크가 그러했다.
헨리 클라크는 막노동자였다. 하루 벌고 하루 풀칠하는 공사장 인부. 몸은 힘들고 벌이는 적다. 매일 고층 공사 현장 위에서 안전벨트 하나에만 위태롭게 의지하여 용접하거나 페인트칠하는 위험한 직종.
누구나 꺼릴 법한 일자리에도 그는 결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어떤 갑부 못지않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겐 삶의모든 괴로움을 잊게 하는 삶의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나, 자신의 아내.
라나는 남편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누구보다도 고향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뉴욕의 높은 건물을 쌓아 올리는 남편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라나도 헨리의 자랑이었고.
그녀는 친절한 여인이었다. 출근한 남편이 도시락 챙기기를 까먹기라도 하면, 직접 공사장을 방문해 도시락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헨리는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를 자랑하기 위해 간혹 고의로 도시락 가져오기를 까먹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라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공사장에 찾아오는 것으로 제 기쁨이 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유독 날이 덥던 여름이었다. 헨리 클라크는 언제나처럼 공사장 고층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철근을 용접하고 있었다. 어느덧 해는 머리 위로 떠올라, 아내가 도시락을 들고 찾아올 타이밍이었다. 임신 중이었음에도, 역시 사랑스러운 아내는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었다.
유독 눈이 좋기로 유명해 인부들 사이에선 호크아이란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헨리는 이십 층 높이에서도 지상에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감돌았다.
그 미소는 허공에 뚫린 기이한 검은 구멍을 발견하며 굳었다.
비현실적인 크기로 부푼 검은 구체에서 괴상한 생명체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영화라도 찍나? 괴생명체가 지나가던 행인 하나를 찢어 죽이며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기 전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도로는 한순간에 패닉으로 가득찼다.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공사장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상을 알아차린바, 그는 지상의 사람들에게 도망치라 비명 질렀다. 그러나 20층의 소리는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헨리 클라크의 우월한시력에 남편이 자기를 향해 말하는 줄 알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아내의 모습과, 시시각각 공사장에 가까워지는 괴생명체의 모습이 동시에 잡혔다.
지상의 인부들은 아직도 괴생물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상에 위험을 경고해야 했다.
헨리가 철근을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낙하한 철골은 큰 소리를 내며 땅에 충돌했고, 그 영향으로 모두의 시선이 헨리 클라크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헨리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제야 난데없는 습격을 눈치챌 수 있었다.
눈치챘다고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공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사장 주위는 방음벽으로 높이 가둬져 있었고, 출입구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출입구는 막 초록색 물결로 휩싸였다.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독 안에 든 쥐처럼 공사장에 갇힌 인부들이 하나씩 소악마 무리에게 붙잡혀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헨리는 초조해졌다. 안 돼. 아내가 위험하다. 아내에게 향하는 악마들을 막기 위해 철골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오십 미터가량의 높이에서 지상의 표적을 정확히 맞추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각도가 비틀어져도 노렸던 곳과는 큰 차이로 떨어진 곳에 박혔고, 라나와 가까운 곳에 떨어뜨리자니 그녀가 맞을까 우려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악마들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이대로만 버틴다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불행히도 철골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임프 하나의 관심을 끌었다. 철골 너머, 그 시야 끝에 웬 여자가 하나 숨어 있었다. 살의 충동을 참지 못하는 하급 악마는 시야에 인간이 들어오자마자 눈이 돌아가 인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헨리에게도 보였다. 그의 심정은 이제 초조를 넘어 절박해졌다. 모두 제 목숨 건지려 미친 듯이 도망치는 마당이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이는 없었고, 철골을 떨어뜨려 기적적으로 놈을 맞추기도 불가능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지키고 싶었지만 그녀는 1층, 자신은 20층에 있었다. 1층까지 뛰어내려가기에는 너무 늦다….
어떻게 해야 하나?
20층에서 순식간에 지상으로 도달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대로 뛰어내리는 것.
하지만 자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20층 높이에서 떨어져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기나 아내, 둘 중 한 명의 목숨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 헨리는 멈칫거렸다. 그도 사람인지라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비명 지르는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떠밀리듯 행동했다. 철골을 쥔 헨리가 안전장치를 풀고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악마는 라나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공포를 지우려 헨리가 비명 지르듯 기합을 질렀다.
쓸데없이 우월한 시야에 악마의 손톱이 라나의 뱃속을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진바, 낙하 중 헨리가 던진 철근은 정확히 악마의 초록색 골통을 깨부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임신 3개월 차의 아내는 복부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이미 숨을 거둔 채였다.
정신적 충격에 온몸의 뼈가 박살 난 고통조차 잊혔다.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꿈이 아닐까? 이것이 꿈이라면 아주 지독한 악몽일 것이다….
운명이 그를 비웃는 양 눈앞에 초현실적인 창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나치게 생생했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각성하셨습니다.
모든 부상과 이상 효과를 치유합니다.
그대의 앞길에 무한한 축복을….
===」
미증유의 힘에 의해 전신이 치명적인 상처에서 회복되며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죽음에 이를 부상이 한순간에 치유되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전혀.
기묘한 현상이 도리어 흐리멍텅한 정신을 일깨우며 지독한 현실감을 주었다. 청명해진 정신으로 헨리 클라크는 끔찍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아내는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제가 도시락을 일부러 깜빡하는 바람에, 죽음의 공포에 뛰어내리기를 망설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헨리 클라크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
인간의 정신이란 무척 신비하면서도 오묘하여, 사람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의식을 다른 것으로 덧칠하여 정신을 지키려 한다. 의식이 죄책감에서 도피하고자 다른 감정으로 물들었다. 분노.
분노가 초인의 눈을 가리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가장 소중한 이를 잃은 비탄이 죽음의 원흉을 향한 분노로 치환되었다. 그리고 헐크가 미쳐 날뛰었다.
그의 분노는 공사장의 악마를 다 쳐죽이고, 보스를 쳐죽여 게이트를 닫았을 때도 풀리지 않았다. 풀 수 없는 분을 풀고자 무수한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는 혈전에 몰두할 때만 잠시 분노와 죄책감을 잊을 수있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A급이 되어도, S급이 되어도 그는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때 뉴욕에서 가장 행복했던 남자는 이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떠난 이를 잊지 못하는 괴로움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는 뉴욕의 옛 모습을 지키는 것에 집착한다. 그녀와 자신의 마지막 연결고리, 그녀가 사랑했던 고향. 뉴욕.
강체술사의 초인적인 체력으로 휴식도 취할 필요가 없는바, 그는 365일 24시간 빠짐없이 도시를 지킨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힘들기에 스스로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형벌로 걸맞았다….
오늘 밤도 마천루에서 거리를 내려보던 파수꾼의 감각이 평온한 시간대에 부조화스런 소음을 인식했다. 매와 같은 눈이 소란의 원인을 날카로이 응시했다. 웬 각성자 두 명이 술래잡기를 벌이며 평화를 부수고 있었다.
할 일이 생겼다.
헨리 클라크가 익숙한 손길로 머리에 야차탈을 눌러썼다. 시야가 좁아지며 눈구멍 사이로 적의 모습만이 보였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난폭한 맥박에 따라 꿈틀거리는 혈관을 타고 산소와 마나가 전신에 공급되자 근육이 비현실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2미터 50센치에 달하는 거인이 생겨났다.
거인이 맹목적으로 되뇌었다.
“도시를 지켜야 해. 뉴욕을.”
그만을 위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설치된 활주로에서 도움닫기를 했다. 바닥을 부수며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속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스카이스크래퍼는 바닥을 힘껏 박찼다. 한순간 몸이 높이 솟구치더니, 원하는 방향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두 명의 범죄자가 포물선의 끝에 있었다.
‘적’을 향해 추락하면서 스카이스크래퍼, 헨리 클라크가 곱씹었다.
나는 도시의 평화를 부수는 이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결단코.
***
번개가 날아왔다. 이제 패턴에 익숙해진 곽태우가 피뢰창을 앞으로 들어 번개를 소멸시켰다. 호흡 사이로 파고들며 달리기를 방해하는 공격이 짜증났으나,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암흑기사는 적흑색 뇌전을 일으키며 공격하기를 즐겼다. 신재혁이 번개를 사용하는바, 곽태우는 신재혁이 암흑기사임에 확신을 얻었다.
‘각성 스킬이 신성 번개였나 보군. 타락하면서 색이 변한 거고.’
그 추론은 곽태우를 꽤 놀라게 했다. 없던 머리까지 만들어내는 미친 재생력이 스킬이 아니었다고? 신성력 각성자라면 신성력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자가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었지만, 대개는 자잘한 상처만을 치료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알기로는 저정도 회복력은 A급 신성력 각성자도 불가능할진대.
‘그러고 보니 인천 참사 때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S급이 새로이 출현했다는….'
정사正史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 정체가 실로 신재혁인가? …설마. 마인인 암흑기사가 어째서 사천왕과 반목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아직 마인이 아닌듯한데….
곽태우의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의문이 얽혔다. 거대한 흐름이 엮어낸 최후의 질문은 이러했다.
정말 신재혁이 S급인가?
상대의 정확한 무력수준에 대한 무지가 최후의 순간에 망설임을 낳았다. 내가 쫒아가 잡는다 해서 이길 수 있을까? 한 발자국 내딛기를 주저했다.
그 주저가 그를 살렸다.
하늘을 찢으며 대검이 떨어졌다.
“큭-?!”
습격 직전에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겨우 난입자의 존재를 눈치챈 곽태우가 급히 옆으로 굴렀다.
콰아아아아아앙-!!!!!
뼈로 만든 부검이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다 못해 터뜨리며 내리 찍혔다. 지진이라도 난듯한 폭음과 진동에 도로가 쩍쩍 갈라지며 머리통만 한 돌 파편이사방으로 튀었다. 후방의 굉음과 진동은 도망치던 신재혁에게도 느껴졌다.
'2차 습격! 무슨 일이지?'
신재혁도 난입자의 존재를 알아채고 당황스러워했다. 곽태우의 동료인가 싶어서였다. 한 명만으로도 이토록 곤혹스러운데 증원이 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다행스레 곽태우를 공격했으니 같은 편은 아닌 듯한데..! 증원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지?'
해답을 얻고자 신재혁이 스킬을 사용했다. 통찰안이 빛났다.
「===
《이름》 헨리 클라크
《레벨》 585
《위업》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눈에 뵈는게 없는 놈이 무서운 법.
-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 지렁이었을까.
===」
단출한 상태창이었으나 그 의미는 결코 단출하지 않았다. 짧은 몇 줄이 상태창의 주인이 세계 최강의 일각임을 보여줬으니.
"S급-! 스카이스크래퍼!"
마찬가지로 거인의 정체를 유추한 곽태우도 갑주 속에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낭패였다. 호텔에서 곧바로 암살에 성공할 줄 알고 스카이스크래퍼의 존재는 계산에도 넣지 않았는데…. 신재혁을 쫓는 동안 스카이스크래퍼가 습격해오리란 건 생각지도 못했다.
'Korean?'
신재혁과 곽태우가 뜻밖의 사태에 경악하는 한편, 스카이스크래퍼는 두 명이 한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S급 회의 때 김재민의 한국어를 들어봤기 때문에 의미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저 말이 한국어라는 것 자체는 알았다.
스카이스크래퍼는 순간 상대가 김재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멈칫했다. 한 명은 투구를 쓰고 있었고, 다른 놈은 전신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 얼굴 확인이 불가능했다. 혹시 저 밑의 얼굴이 김재민의 것이라면? 뉴욕의 위협인 게이트를 클리어해준 은인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스카이스크래퍼는 기감을 펼쳐 기운을 탐지했다. S급 초인의 기감은 어지간한 기운은 전부 감지할 수 있다….
‘투구만 쓴 놈은 B급, 갑옷 입은 놈은 A급 마나 각성자.’
즉, 어느 놈도 김재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상대가 김재민이 아님을 확신한 스카이스크래퍼의 머릿속에서 망설임이 지워졌다. 고삐가 풀린 초인이 근육을 긴장시켰다.
김재민 환영 행사가 있으니 부디 며칠만 얌전히 있어 달라던 외교부의 당부도 분노한 초인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들이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도시의 평화를 깬다면 자비 없이 척결할 뿐…. 뉴욕에 대한 그의 집착은 광증에 이른 수준이었다.
‘누구를 제압해야 하지?’
헨리 클라크는 날듯이 뛰어오면서 목격한 술래잡기를 떠올렸다. 투구 놈이 도망치고 갑옷 놈이 쫓아가는 형국. 술 취한 건지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추격자의 눈에 만연한 살기를 보아하니 평범한 도주극은 아니었다.
무력에 자신이 있는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초인의 선택은 단순했다. 일단 둘 다 때려눕히고 생각하자.
거인이 대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