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화 – 동아줄 (62/72)



〈 62화 〉62화 – 동아줄

“큭, 머리가….”

신재혁이 신음했다. 머리가 심하게 지끈거렸다. 깡통처럼 찌끄러진 투구를 간신히 머리에서 벗겨 멀리 던져 버렸다. 신재혁이 이마를 부여잡곤 눈꺼풀을 조금씩 들었다. 밤새 뛰어다니느라 익숙하지 않은 햇빛이 동공 속으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정신을 잃었던 건가?’

신재혁은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물컹하는 기분 나쁜 감각이 손에 전해졌다. 신재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감각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쓰레기봉투. 그제야 신재혁은 고개를 들어 자기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뒷골목..? 어째서 이런 골목에 쓰러져 있던 거지?.”

신재혁은 어느 더러운 뒷골목의 쓰레기더미 사이에 누워 있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서 골목 사이를 따스하게 비췄다.

이마를 짚은 손에서 피가 묻어나왔다. 추락하면서 머리를 다친 듯했다. 신재혁이 신성력을 일으키며 머리에 기운을 집중하자 그나마 두통이 가셨다. 낙하의 충격으로 뇌진탕이 왔던 머리가 차츰 일하기 시작하며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스카이스크래퍼와 싸우다 하늘로 날려지고, 그때부터 기억이 날아간 듯한….’

여전히 느껴지는 미약한 통증에 신재혁이 찡그렸다.통증이 가라앉자 신재혁이 추론을 이어갔다.

‘내가 이런 인적 없는 장소에 쓰러져 있었다는 말은 스카이스크래퍼가 마지막 순간 모종의 이유로 나를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얘기겠고. 누군가 도와준 건가? 하지만 근처에 있었던  곽태우나 스카이스크래퍼 뿐일 텐데. 나를 공격한 녀석들이 나를 도왔을 리는 없고….’

 생각을 이어나가려 해도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 도무지 누가 자신을 도와줬는지  수가 없었다. 신재혁은 어째서 자기가 이곳에 처박혔는지 추측하기를 포기하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의 격전으로 온몸이 삐걱거렸다.

신성력으로 찌뿌둥한 팔다리를 회복하며 신재혁이 스마트폰에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 격전에도 스마트폰은 부서지지 않고 무사히 작동했다.

“1시..! 오전 내내 정신을 잃고 있었다니.”

낭패감에 신재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쯤이면 지난밤 소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도처에 경찰들이 쫙 깔렸을 것이다. 혹시 테러 사건이 발생한 건가 하고.
미국은 게이트 전이든 후든 변함없이 테러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다. 간밤의 소란을 가볍게 넘어가진 않을 터….

‘당연히 호텔로 돌아갈 수도 없고.’

어지간히 무능한 게 아닌 이상 지금이면 경찰도 소란의 범인들이 호텔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 호텔로 간다면 제 발로 감옥 안에 걸어 들어가는 셈.

‘위조 신분으로 여행 오길 다행이었어. 아니면 진작에 내 신분이 털렸겠지….’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사실에 신재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짐도 모조리 곽태우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호텔에 자기를 특정할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뉴욕에 온 목적인 의뢰도 완수했겠다. 더 뉴욕에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미스터 B에게 연락해 비행기를 잡아야겠지. 바로 한국으로 튀어야-”

-아니, 잠깐.

번호를 입력하다 말고 신재혁이 굳었다. 습격 직후엔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생각지 못한 의문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의심암귀가 머리를 뒤덮었다.

‘그래. 나는 위조 신분으로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어떻게 곽태우가 나를 찾아냈지?’

기습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메모지에 상태창이라 적어 시야가 제한되게 유도하고, 문 뒤에서 폭탄을 터뜨린 것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면 뭐라 하겠는가.

‘곽태우는 누군가에게 내 정보를 들어 사전에 단단히 준비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어.’

그렇다면 어디서 정보가 흘렸겠는가? 신재혁의 위조 신분과 숙소의 위치를 아는 것은  명뿐이었다. 그 모든 일을 처리해 준 장본인.

“미스터 B..! 설마 당신이 배신을!”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한 신재혁이 비틀거렸다. 아직 상처의 후유증이 다 낫지 않았기 때문인지,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는 신재혁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배신감에 어질어질한 가운데 신재혁이 믿을 수 없는 추측을 부정하고자 애썼다.

정말로 미스터 B가?

이 모든 사건의 발단으로 거슬러 올라가 찬찬히 일의 경과를 되새겨보니 하나둘 수상한 정황이 드러났다. 미스터 B가 자신에게 의뢰를 넣었고, 미스터 B가 포션 산업을 파보라 조언해서 자기가 뉴욕에 오게 됐다.

그러고 보니 습격 타이밍도 참으로 공교로웠다. 미스터 B에게 의뢰 완수 메일을 보내고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습격당하다니.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형편 좋은 타이밍. 이건 정말 미스터 B가 배후의 범인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가 나를….”

미스터 B와 신재혁은 상호 협력 관계였다. 미스터 B의 부하가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신재혁이 외주를 맡아 해결하기도 했고, 외부에서 들어온 어려운 의뢰를 신재혁이 완수해주기도 했다. 반대로 미스터 B는 신재혁의 각종 부탁과 편의를 들어주었고.  관계는 이십 년 넘게 지속된 끈끈한 관계였다.

신재혁은 자신이 미스터 B와 어느 정도 신뢰감을 구축했다 생각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미스터 B가 자신을 배신한 이유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최고의 협력자를 내치다 못해 등에 칼을 꽂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아니. 일단 그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자. 우선 당장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급해.’

신재혁이 잠깐 의문을 접어두었다.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 고민을 끝마치려면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면 이미 늦는다. 여기가 전투현장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고 수색 범위를 넓힌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는 시간문제다. 우선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신재혁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발길이 향할 목적지를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떡하지?’

막막했다. 호텔도, 공항도 가지 못한다. 위조 신분은 들통났을 테니 공항에 간들 보안 검색대에서 붙잡힐 것이다. 미스터 B가 협조해주지 않는 이상 신재혁 홀로 뉴욕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다.

그제야 지독한 현실감이 들었다. 자신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이국땅에 고립된 것이다. 그것도 이 도시에서 가장 눈이 좋고 강하기로 유명한 초인에게 찍힌 채로.

‘이 상태로 대낮에 도로를 활보했다간 ‘나 잡아주시오’하는 꼴….’

찌그러진 투구를 쓰레기더미 사이에 숨기며 신재혁이 생각했다. 그래도 스카이스크래퍼와 싸울 때는 계속 투구를 쓴 상태였으니 설령 자신을 보더라도 곧장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투구는 버리고 가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이동하려면 거추장스럽기만 하니. 나중에 새로 하나 사면 되겠지.’

투구를 숨기고 나니 정말  일이 없어졌다. 더욱 막막함을 느끼는 가운데, 신재혁이 양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할 짓 없는 손이 위치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장소다….

‘...응?’

맥없이 꿈지럭거리던 손가락 끝에 무엇인가 느껴졌다. 호주머니에 웬 종이가 들어있었다. 신재혁이 그것을 꺼내 확인했다. 쓸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명함.

[정보상 메피스토]

그리고 그것은 동아줄이기도 했다.

***

뉴욕, 센트럴 파크 근처 카페.

안대를 찬 남자가 창가 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무룩한 기색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모습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를 연상시켜 측은함을 불러일으켰다. 누군가  모습을 봤다면 몹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남자는 다름 아닌 뉴욕의 수호자인 스카이스크래퍼, 헨리 클라크였으니까.

스카이스크래퍼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경단 활동에 쏟아부으며 지냈기에.

그러나 헨리 클라크는 지금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지난밤의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 헨리 클라크는 S급도 아니면서 자기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고수를 두 명씩이나 만났다. 가뜩이나 능력이 화려하고 강력한 다른S급에비해 고작  좀 강해지는 능력의 헨리 클라크는 SNS상에서 자주 비교당하며 거품이라고 까이곤 했는데, 이런 믿을  없는 경험까지 겪으니 본신의 힘에 대한 회의감마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꺼림칙한 건….’

헨리 클라크가 커피숍 창밖을 바라봤다. 하룻밤 사이에 센트럴 파크 중앙에 생겨난 흉측한 검은 구체가 보였다. 딱 결정타를 먹이기 직전에 난데없이 등장해선 정체불명의 괴한을 집어삼킨 게이트.

‘헌터가 임의로 게이트를 열 수 있을 리 없으니 단지 우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몹시 신경 쓰이는군.’

헨리 클라크가 고민하는 가운데, CIA 요원이 다가왔다. 헨리도 아는 인물이었다. 자기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도시를감시하는 동안 각종 귀찮은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이었다. 일종의 비서, 아니면 서포터 정도로 이해할  있겠다.

헨리 맞은편에 앉으며 요원, 제시카가 말했다.

“휴우! 이제  쉴  있겠네. 눈은 좀 괜찮나요?”
“그래. 의사가 말하기를 시신경은 손상되지 않고 눈알만 손상되었다더군. 최상급 포션을 처방했으니 며칠 안으로 회복될 거라고도.”
“그거  다행이네요. 뉴욕의 영웅이 다쳤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기자들 입막음하느라 고생 좀 했는데. 영구적인 상처가 남으면  헛수고였던 거잖아요?”
“네가 늘 나를 위해 고생한다는 건  알고 있지. 언제나 고맙게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감사에 쑥스러운 듯 제시카가 볼을 긁적였다.

“아니 뭐…. 감사받으려  건 아니고.일이니까 하는 거죠, 일이니까. 여튼 위쪽의 여러 정치적인 사유로 엠바고 걸었으니 당신 상처에 대한 이야기나 게이트에 관한 뒷말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에휴, 그러게 내가 평소에 무작정 돌격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꼭 강한 헌터일수록 방심하다가 당한다니깐…. 앞으론 조심해요.”
“…그래. 그런데 게이트에 관한 조사는 끝났나?”
“얼추 긴급 정찰 결과는 나왔어요. A급 게이트고 들개형 몬스터가 서식하더군요. 아주 평범해요. 다른 조사관들도 입을 모아 정말 우연히 생겨난 게이트 같다는데?”

역시 우연에 불과했던 걸까. 하기야 녀석이 뭔가 술수를  거라면 무엇이라도 느껴져야 했을 텐데,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에는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 생각한 헨리 클라크가 다시 물었다.

“…안에 누군가 있었나?”

헨리의 질문에 제시카는 고개를저었다.

“아니요.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네요. 일단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범인이 B급 마나 유저라 하시지 않았나요? B급 헌터가 단신으로 A급 몬스터 무리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죠.”
“하지만 놈은 나를 몰아붙이고 검까지 부러뜨린 녀석이다. 고작 A급 몬스터 따위에게 당했을 리가 없어.”

제시카가 재미없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그야 당연히 아티팩트를 썼겠죠. 신성력이 몸에서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신성력을 썼다면서요? 마나와 신성력 두 기운을 동시에 지녔을 리도 없으니 남은 가능성은 아티팩트뿐 아니겠어요?”

설마 스카이스크래퍼를 정면에서 온전한 실력으로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불신하는 어조였다. 국가에서 떠받들어 모셔야  S급에게 하는 말치곤 꽤나 건방졌지만, 두 사람은 몇 년 사이 동고동락하며 친해져 절친한 친구나 다름없었기에 대화에 격식이 없었다.

“게다가 범인은 투구만 쓰고 있었다면서요? 얼굴을 가리려면 복면이나 가면으로도 충분했을 테고 방어를 위했더라면 갑옷까지 입었을 텐데, 굳이 그렇게 눈에 띄는 투구만 썼다는  그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는 아티팩트란 의미겠죠. 아마 충격파를 발산한다는 능력이나 번개를 쏘는 능력,  중 하나가 스킬이고 나머지는 아티팩트의 능력일 거고.”
‘그런 건가….’

이어지는 제시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얇은 헨리 클라크도 점점 설득되어갔다.

“그리고 S급 강체술사인 당신을 정면에서 몰아붙일 수 있는 이가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인물이 고작 A급에게 쫓길 이유는 더더욱 없고.”

그 말이 긴가민가하던 헨리 클라크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그제야 어제의 전투가 납득이 가자 기분이 한결 편안해진 헨리 클라크가 의자에 편하게 고쳐앉았다.

답지 않게 불안해하는 헨리 클라크를 제시카가 안심시켰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곰 같은 외모답지 않게 소심한 게 문제라니까? 한국인인 것까지 알아챘다면서요? 스킬을 알아낸이상 한국 헌터 협회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해 대조하면 용의자 후보를 좁힐  있어요. 그중에서 뉴욕 입국자는 더더욱 적을 테고. 어차피 범인은 게이트 내에서 죽었을 테니 신원을 알아낸다고  변하는 건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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