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7화 - 고회苦懷
무릎 꿇은 곽태우에게 김재민이 물었다.
“그런데 너는 누구지? 저런 류의 스크롤은 몹시희귀한데. 왕족이나 쓰던 귀물을….”
단 몇 초 만의 패배에 충격에 빠진 곽태우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사이 화상을 치유한 신재혁이 대신 대답했다.
“그놈 곽태우야! 연쇄살인마!”
“곽태우? 그게 누구지.”
“아….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실종됐던 네가 돌아오기 직전에, 이유도 없이사람 찔러 죽이기로 유명했던 싸이코패스 새끼야! 나도 어젯밤 영문도 모른 채 습격당했고!”
김재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로 아는 사이 아니었나? 스카이스크래퍼에게 듣기로는 둘이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던데? 지금만 봐도 그렇고.”
“그야 녀석이 공격해오니까 정당방위로 반격한 거지! 이런 함정 파 놓은 거 보면 알겠지만 날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데, 그냥 잡혀 죽어 주라고?”
“그럼 스카이스크래퍼는? 그와도 전투를 벌였다며?”
“다짜고짜 칼부터 휘두른 건 그쪽이라고. 나는 대화로 풀고 싶었지만 영어를 몰라서 말도 못 걸고….”
김재민은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김재민도 테러리스트라 해서 잡으러 왔더니 아는 사람을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김재민이 보기에 신재혁은 상당히 억울해 보였다. 필사적인 손짓발짓이 그의 무고함에 근거를 더했다.
‘그럼 저기 쓰러진 곽태우라는 녀석 혼자 난리를 쳤다는 의미인가? 신재혁은 말려든 피해자고. 아니면 모두 신재혁의 거짓말?’
김재민이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한편, 신재혁은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눈앞의 상대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 탐지 수준보다 김재민의 은폐 수준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의미…. 게다가 방금의 순간이동은 6위계 마법, 블링크.’
에덴에서 마법사의 경지는 1위계부터 9위계까지 총 아홉 단계이며, 7위계부터는 대마법사라 불리는 경지다. 그리고 긴 영창 없이 시동어만으로 6위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상대가 최소한 7위계의 마법사라는 의미였다.
그뿐이 아니다. 신재혁은 김재민이 곽태우의 스크롤에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봤다. 자연의 마나를 조작해서 스크롤을 파훼하는 경지. 대마법사 정도의 마나 제어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신기다.
‘신성력 각성자인 줄 알았더니, 마법사였어? 아니, 나처럼 마나와 신성력을 모두 가진 특이 케이스인가?’
신재혁이 조심스레 통찰안을 발동했다.
「===
《이름》 김재민
《레벨》 1280
<천재> - 별을 보는 눈과 함께 별에 닿는 팔을 지니다.
<언어의 가호> - 바벨 이전의 언어.
<혼원> - 두 기운을 한 몸에 품다.
<영웅고찰> - 그대 자신을 알라.
<스토르게> -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한계돌파> - 종의 한계를 벗다.
<신검합일> - 육신은 줄기요, 검은 가지다.
<마나의 지배자> - 자연의 경외를 받는 자.
<악마의 공포> - 공포의 존재가 두려워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여기 해답이 있도다.
===」
‘1280?! 무슨 레벨이..!’
자릿수가 다른 수치. 예상치 못한 무력 수준에 신재혁이 경악했다. 현재 신재혁의 레벨은 810. 단순 수치로만 계산해도 자기보다 1.5배는 강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위업 칸마저 무척 화려했다. 평범한 헌터라면 꿈도 꾸지 못할 업적이 무려 9개…. 게이트가 열리고 단 몇 년 만에 저 정도 경지를 이룬 자의 존재에 신재혁이 전율하는 와중이었다.
문득 김재민이 중얼거렸다.
“-역시 거짓말이었나?”
그 말과 함께 김재민의 신형이 사라졌다. 전투에 익숙한 신재혁의 눈은 습관적으로 상대의 행동을 쫓았고, 그 덕분에 신재혁은 김재민이 취한 행동을 늦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대마법사이자 소드마스터의 마력으로 강화된 육신이 검을 휘둘렀다. 명백히 자신을 노린 공격에 신재혁이 다급히 창을 움직여 막았다.
“왜 공격을?!”
김재민은 쯧하고 혀를 한 번 차고는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추궁했다.
“방금 마나를 끌어 올려 은밀히 무언가 시도했지?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나를 기습하려던 걸 테고.”
에덴에서 피아를 가리지 않고 수 없는 암살시도에 시달렸던바, 김재민은 기습에 몹시 민감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중세 판타지 세계에 홀로 떨어진 소년은 유일하게 믿을만한 이였던 2대 성녀 아이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천왕 마몬의 기습으로 사망한 후, 김재민은 누군가 자기 몰래 수상한 행위를 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조금 전 감지한 극히 은밀한 마나의 유동은 김재민의 스위치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신재혁은 설마 고작 소량의 마나로 통찰안을 사용한 것을 기습으로 오해받으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하며 급히 해명했다.
“잠, 잠깐! 오해야! 기습을 시도한 게 아니라-”
“시끄럽다, 범죄자. 일단 너도 반항하지 못하게 힘줄 끊어 스카이스크래퍼에게 데려가면 되겠지.”
이미 골수깊은 의심병에 사로잡힌 김재민은 조금 전의 해명도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리고 무작정 주문을 달싹거렸다. 허공에서 생성되는 얼음 결정을 보며 신재혁이 외쳤다.
“씨발, 빛이여!”
신성한 빛이 창대를 휘감고돌았다. 황금빛 광채가 돌풍처럼 빠르게 창 주변을 돌며 뜨겁게 빛났다. 얼음 결정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신재혁이 빛으로 이루어진 창대를 공중에 팔자로 휘저었다. 날아오던 얼음 결정체들은 신성의 열기에 녹아 사라졌다.
“신성 주문? 그러고 보니 신성력 각성자인 줄 알았는데, 아까 마나를 썼지? 나처럼 마나와 신성력을 둘 다 쓸 수 있나 봐?”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신재혁이 흠칫하며 반사적으로 뒤편에 창을 크게 휘둘렀다. 창대에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가까스로 멈춰 정면을 쳐다봤다.
“어딜 보나?”
김재민은 이미 그의 눈앞에 있었다. 신재혁은 그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했다.
‘쿨타임도없는 연속 블링크…. 씨발, 마법사 씹사기..!’
암살자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신재혁이 식은땀을 흘렸다. 창술에 관해서 달인의 경지에 이른 신재혁이었기에 모든 전투의 핵심은 간격을 조절하는 것임 알았다. 또한 간격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았고.
뒤를 돌아보다 급히 멈추느라 빈틈이 훤히 드러났는데도 김재민은 신재혁을 공격하지 않았다. 단지 여유롭게 손가락을 빙글 돌려 공중에 새로운 얼음 결정 스무여 개를 생성했다.
‘검술도 최소 달인급인데, 간격 유지마저 자유자재인 마법사…. 이건 김재민이 거리 유지하며 시간만 끌어도 내가 진다.’
물론 죽기살기로 싸우면야 자기가 이길 수 있을 테지만, 소란을 피우는 사이 지원 병력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고 몇 없는지인과 사투를 벌이기도 껄끄러웠다.
신재혁이 허탈하게 제안했다.
“비긴 걸로 하지 않을래..?”
***
바인드 마법에 묶인 채 신재혁이 옆을 쳐다봤다. 같은 꼴의 곽태우가 자기를 사납게 째려보고 있었다.
‘시발.’
신재혁과 김재민의 짧은 교전 동안 곽태우는 도망도 못 치고 구석에 박혀있다. 신재혁이 인지도 못 한 사이 김재민이 진작에 바인드 마법을 날려 그를 포박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재혁과 곽태우는 재와 먼지가 날리는 폐공장 한가운데에 무릎 꿇은 채로 포박당해있었다. 둘을 붙잡은 김재민은 제시카에게 연락을 취한 후 각성자 범죄자를 호송하기 위한 특수 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속절없이 붙잡힌 상황이었으나 곽태우는 차라리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곽태우가 옆을 바라봤다. 자기처럼 꼴사납게 구속당한 신재혁을 보며 곽태우가 유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꼴이 우습구나. 신재혁…. 그래. 내 한 몸 바쳐서 너를 붙잡았으면 충분히 이득이지. 충분히 수지가 남는 장사야. 이번엔 암흑기사도 없고, S급의 암살도 없다….”
자기야 경찰에게 붙잡혀 사형을 면치 못하겠지만 곽태우는 만족했다. 진작에 죽어야 했을 목숨이었다. 차은경에게 구해진 목숨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용했으니 더 바랄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을 듣는 신재혁은 다만 황당하기만 했다.
“씹, 뭔 개소리야? 암흑기사라니? 전부터 자꾸 알아듣지 못할 소리나 지껄이고. 도대체 왜 나를 죽이려 한 거야?”
“크크, 이제 알아도바뀌는 건 없다. 그냥 모르는 채로 뒤져라.”
“둘 다 닥쳐. 범죄자들 주제에 어딜 떠들어?”
김재민이 검면으로 두 사람의 머리를 쾅쾅 때렸다. 미약한 짜증이 실린 구타에 곽태우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신재혁은 여전히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진짜 억울하다니까? 신께 맹세코 나는 피해자라고!”
신재혁이 강력히 무고를 호소했다. 김재민이 보기에도 저건 완벽한 피해자의 반응이었다. 만일 저게 연기라면 신재혁은 김재민이 아는 한 속임수와 기만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던 마왕, 사탄만큼이나 뛰어난 연기자라는 의미이리라.
‘저 휘황한 신성력…. 지금 감지되는 양만 해도 나보다 많군? 하기야 악인이 저리 압도적인 양의 신성력을 지닐 수는 없는데.’
김재민도 석연찮은 구석에 찜찜함을 느꼈지만 그게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을 저버리고 신재혁을 풀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거듭되는 호소에도 김재민이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신재혁은 머리를 싸맸다. 김재민이 자기를 놓아줄 이유를 찾아야 한다. 김재민과 자신의 공통점을 되짚던 신재혁이 한 가지 탈출구를 떠올렸다.
“그래! 김재민 너도 박주관 대통령과 계약을 맺었다 했지? 나도 했다! 내가 그 정체불명인 한국의 두 번째 S급이거든!”
“뭐? 그럴 리가!”
반응이 격렬하게 튀어나왔다. 그러나 정면에서가 아닌, 옆에서였다. 곽태우가 소리높여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네가 벨리알을 쓰러뜨릴 이유가 어디 있다고? 거짓말 마라!”
거의 악에 받친 듯한 목소리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지난밤 신재혁의 신성력에 혹여 그가 S급이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으나 곽태우는 애써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었다.
본래라면 마인으로 활동할 놈이 어울리지도 않게 신성력을 각성하고, 심지어는 S급이기까지 하다고?
곽태우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가 마음속에 새긴 확고한 행동방침과 현 상황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악행을 저지르는 이를 찾아 재앙의 씨앗을 틔우기 전에 모조리 죽여버리기. 그것이야말로 곽태우가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예외가 발생했다. 죽여 마땅한 놈이, 죽여선 안 될 놈이 되다니? 앞으로 게이트에서 속속들이 출현할 끔찍한 보스들을 떠올리면 S급 하나하나는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전력이었다. 인류의 등불이나 다름없는 S급은 한 명도 잃어선 안 된다. 그렇기에 S급 헌터의 사망원인 중 과반수를 차지하던 암흑기사를 없애는 게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고.
‘그런데 신재혁이 S급 신성력 각성자라고? S급 신성력 각성자면 홀로 사천왕도 맞상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죽이면 큰 전력 손실이야…. 그렇지만 녀석은 타락해 암흑기사가 될 텐데? 아니, 지금암흑기사인 건 아니잖아. 그는 이미 크게 변화했다. 본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S급이 되어있어….’
곽태우는 신재혁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차은경을 죽인 얼굴. 성배를 사용하기 직전, 차은경과 곽태우는 자기네를 방해하러 온 암흑기사와 맞서 싸웠다.
과연 암흑기사는 끔찍이 강력해서 두 사람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다 최후의 순간에 빈사 상태의 차은경이 방심한 암흑기사의 투구를 간신히 벗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얼굴은커녕 국적도, 인종도 투구 속에 감춰 알려지지 않은 암흑기사의 얼굴이 마침내 드러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격한 원수의생김새는 곽태우의 머릿속에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절대 착각할 수 없게.
아무리 곽태우가 빡대가리라도 안면인식 장애는 아니었다. 신재혁은 틀림없이 암흑기사가 맞다.
‘그런데 어째서 신재혁이 지금은 신성력을 각성해 S급이란 힘을 얻은 거지? 무슨 영향으로? ‘
딜레마 상황에 곽태우가 혼란스러워했다.
‘RPG 게임 1회차에서 최종 보스로 등장한 놈이 2회차에선 갑자기 착한 편으로 나오는 정신 나간 상황…. 어디서 틀어진 거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원 역사대로라면 지금쯤이 인천 멸망, 김재민의 치명상, 암흑기사의 등장 시기가 맞물리는 타이밍인데…. ’
곽태우는 불안했다. 운명이란 마치 정교한 시계장치와 같아서, 제 실수로 부품 하나를 잘못 건드렸다가 기계장치 전체가 망가질까 두려웠다. 그리고 곽태우는 자신의 멍청한 대가리로 고장난 톱니를 고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여기서 신재혁이 풀려났다가 이후에 신재혁이 타락하기라도 하면? S급의 타락이라니…. 그럼 원 역사보다도 강한 암흑기사가 탄생하고 마는 것 아닌가?’
반면 곽태우가 불안해할수록 신재혁은 자신감을 얻었다. 신재혁이 제안했다.
“정 못 믿겠으면 지금 박주관에게 연락해보지? 곽태우가 가져간 내 지갑에 박주관의 명함도 들어있는데. 그 번호로 연락하면 돼.”
그 소리에 김재민이 이번엔 곽태우를 쳐다봤다. 심상치 않은 낌새에 곽태우가 모든 고민을 뭉뚱그리곤 불안감을 묻고자 목청을 높였다.
“김재민! 이놈 말은 듣지 말고 당장 녀석을 죽여라! 절대로 풀어줘선 안 돼!”
A급 각성자의 폐활량에 방 안의 공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막무가내스런 명령에 김재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처지를 알고 있기는 한가, 범죄자? 게다가 평범한 범죄자도 아니고 미치광이 연쇄살인마라며? 그런데 내가 왜 네놈 말을 들어야 하지?”
그 말에 곽태우는 망설였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내뱉는 것은 금기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무언가 비틀어도 될까 두려웠다. 나비의 날갯짓이 또 어떤 폭풍을 불러올 것인가? 곽태우는 운명이 기찻길을 탈선한 폭주 기관차처럼 예측할 수 없는 혼돈으로 들어설까두려웠다.
‘…그래도, 신재혁이 풀려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그보다 최악의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
한참의 고민 끝에 곽태우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녀석이 미래에 너를 죽일 테니까. 너와 함께 다른 S급들도.”
김재민은 악마를 심문해본 경험이 풍부했고, 그 덕에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이나 맥박의 변화 등을 관찰해 웬만한 참 거짓은 구분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곽태우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살인 예고. 그러나 그 살인 예고에 더 놀란 것은 피살자가 아닌 살인자로 점찍힌 사람이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김재민을 왜 죽여! 게다가 미래? 무슨 근거로 그리 확신-
그때 어떤 정보가 신재혁의 머릿속에 스쳤다. 곽태우의 상태창을 훔쳐보고 발견한 위업.
<여섯 번째 하늘을 기억하는 자> - 우주가 되감아진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너, 설마?”
위업이 가리키는 충격적인 비밀. 그 빙산의 일각을 포착한 신재혁이 눈을 크게 치켜뜨며 뭐라 말하려던 찰나, 김재민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스킬? 예언자? 아니면 신탁이라도 받는 건가?”
“…….”
“뭐든 상관없겠지. 넌 뭔가 많이 알고 있구나.”
“…….”
“순순히 말해줄 생각은 없고.”
“…….”
“그럼, 강제로 말하게 하는 수밖에.”
김재민이 이런 상황에 적합한 마법의 시동어를 입에 담았다.
“도미네이션Domination.”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면 고유 마법 한두 개 정도는 창조할 수 있는 법이다. 김재민이 창조한 지배의 술법은 주문에 걸린 대상의 정신을 지배해 꼭두각시처럼 술자의 명령에 따르게 한다.
효과가 강력한 마법인 만큼 지속시간이 짧다는 점, 지나치게 강한 대상이나 사역마처럼 이미 누군가에게 정신이 조작된 대상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누군가를 심문할 때는 더없이 훌륭한 술법이었다.
“잘 걸렸나? 오른손 들어 봐.”
신재혁이 난생처음 보는 주문에놀라워하는 가운데, 전력으로 지시를 거부하려는 듯 곽태우가 부들댔다. 피가 쏠리며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러나 필사적인 반항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명령에 따라 오른손을 들고 말았다.
곽태우가 주문에 걸렸음을 확인한 김재민이 명령했다.
“자, 그럼 네가 아는 것을 전부 읊어봐라. 네 정체와, 목적, 그리고 인생. 모두다.”
곽태우는 부서질 듯이 이를 악물었다. 각성자의 치악력에 이빨이 드륵드륵 갈리며 턱이 경련했다. 그러나 한낱 A급 각성자에 불과한 곽태우가 김재민의 마법에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결국 곽태우는 저항을 포기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신재혁도 곽태우가 곧 실토할 진실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의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왜 자신을 습격했으며, 이때까지의 이해 못 할 언행은 모두 무슨 의미였는지.
곽태우가 천천히 입을열었다.
“나는 곽태우다.”
한 사내의 담담한 고백에 두 사람이 집중했다.
“나는 한때 S급의 벽을 넘지 못한 A급 각성자였고,
인류 결사대의 일개 대원이었고,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극히 평범한 검사 나부랭이였다.”
신재혁은 의아했다. 일반인을 학살한 범죄자의 고백답지 않게 그 목소리는 극히 괴로움에 차 있었다. 어째서?
“너희가 보기엔 살인마나 다름없는 내가 무슨 이유로, 어떤 심정으로 사람을 죽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작은 악을 잘라내는 것이다.”
싸이코패스의 자기합리화일까? 아니면 미치광이의 헛소리? 신재혁은 성급히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내 모든 행위의 목표는 세계 종말을 막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의 멸망을 막는 것. 그것이 내 두번째 생의 모든 것이자, 세계의 시곗바늘이 한번 거꾸로 되감긴 이유다.”
왜냐하면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나는 멸망 직전까지 내몰린 미래를 거슬러 돌아온,
회귀자回歸者다.”
회귀자의 고회苦懷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