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69화 – 회고 (2)
인천 대참사가 끝났다.
재앙이 끝난 건 기뻤지만, 누구도 그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다. 피해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천 대부분의 기반 시설 파괴 및 인천 인구 90%의 사망. 사실상 인천의 멸망이나 다름없었다. 살아남은 시민들은 폐허가 되어버린 인천을 떠나 경기권이나 수도권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것뿐이었다면 한국의 미래가 이토록 심각하게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김재민이 폐에 영구적인 상처를 입었다-라.”
벨리알을 쓰러뜨린 용사, 김재민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김재민은 분전 끝에 벨리알을 쓰러뜨리는데 성공했으나 지옥불 채찍에서 흘러 나오는 유독 가스를 치사량의 수십배는 흡입해 폐에 영구적인 상처를 입었다 한다. 그리고 폐의 상처는 곧 호흡의 상실을 의미한다.
“폐활량이 적어지면 급격한 운동도 못한다는 거고, 스킬 시동어를 뱉기조차 힘겹겠지. 사실상 전투력을 절반 이상 상실한 셈…. 영원히 든든하게 한국을 지켜줄 줄 알았던 김재민이 저리심각한 부상을 입다니.”
뉴스를 보며 차은경이 혼잣말했다.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검술을 수련하던 곽태우가 물었다.
“그래서 그 보스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래? 듣자하니 게이트 열리기 전부터 목격됐다며 경찰에 헌터 협회랑 국정원 말고도 여기저기 연계해서 조사 중이라던데. 아직 결과 안 나왔어?”
“어제 나왔어. 벨리알을 소환해 준 협력자가 있다던데.”
심상치 않은 소리에 곽태우가 화들짝 놀랐다.
“뭐?! 소환! 누군가 의도적으로 보스를 불러들인 거란 말이야?”
“쉿! 목소리 낮춰…. 아직 언론 발표는 안 났는데, 용의자 찾았다더라. 반쯤 뜯어먹힌 듯한 시체로 발견되서 품속의 유서로 겨우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그 새끼가 보스를 소환했다는 것도 유서에 다 적혀 있었대.”
“그 씹새끼가 누군데?”
“송수정이라고, 송수권이랑 송수형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수정 기업의 회장이야.“
“송수정, 송수형, 송… 아이씨. 뭐이리 이름이 비슷비슷해. 헷갈리게.”
투덜거리는 곽태우에게 차은경이 걱정스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인천 참사야 이미 일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네.”
“어째서?”
“한국의유일한 S급인 김재민도 보스 하나에 저 모양이고, 앞으로 저런 월드 보스가 더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잖아? 저런게 만약 서울에 출현하기라도한다면….”
차은경이 뒷말을 삼켰다. 뒷일은 불보지 않아도 뻔했기에.
불길한 상상을 떨쳐내고자 차은경이 이를 악물었다.
“…레벨업 속도를 늘려야겠어.”
“여기서 더? 어떻게? 각성자의 체력으로도 초과 업무에 몸살까지 앓는 마당인데, 무슨 수로 더 짬을 내서 게이트에 돌아다녀?”
차은경이 고심했다. 그리고 결의에 가득찬 눈빛으로 말했다.
“경찰을 그만두겠어.”
“뭐?”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곽태우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천성이 경찰이었다. 사람들을 구하려는 정의로운 마음씨에 헌신적인 태도. 곽태우는 그녀가 언제까지나 경찰이라는 조직에 몸담을 줄 알았다.
“이런 시국에 경찰이란 직업이 정말 중요한 자리란 건 사실이지만, 경찰이란 직위에 묶여 위험하고 돈 안 되서 아무도 처리하지 않는 기피 게이트만 처리하고 있잖아? 그러니 전문 헌터보다 성장 속도도 느리고 경험도 쌓기 힘들지. 이대로면 급류처럼 빠르게 흐르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그녀는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점차 결연한 표정으로 변했다. 곽태우는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며칠 뒤, 차은경은 호언대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헌터 협회 소속 게이트 공략조에 가입했다. 그녀 뒤를 따라 곽태우 역시 경찰을 그만뒀다. 곽태우는 어떤 사명감보다는 차은경을 따르기 위해 경찰이 된 것이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헌터 업계에 발을 담갔다. 매일같이 게이트에 드나들며 힘을 길렀다. 남다른 의지와 실력을 지닌 두 사람은 이내 한국 최고의 게이트 공략조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다.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으니 은퇴해 평생 놀고먹을 법도 한데, 둘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차은경과 곽태우는 더 많은 전장을 찾아 용병이 되었다. 세계 방방곳곳, 가장 위험한 전장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사람을 구했다. 위험도는 높은데 벌이는 적어 다른 용병들이 기피하는 곳이 그들의 주된 목적지였다.
차은경은 의뢰 보수 역시 최소한으로 받았는데, 거의 자선 활동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차은경의 목표는 물질적인 욕망이 아닌, 세상에서 몬스터를 몰아내는 것뿐이었다. 점차 의뢰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차은경의 명성이 퍼졌다.
돈이 아닌 사람을 위해 싸우는 검사가 있더라고.
차은경의 고명한 뜻에 감명받은 헌터들이 하나둘 모였다. 처음엔 모두가 순수한 의도로 모인 것은 아니었으나 차은경과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모두 그녀의 매력과 고결한 의지에 감화되어갔다. 마치 강렬히 타오르는 불빛에 홀린 반딧불처럼.
그리하여 두 사람으로 시작한 용병단은점차 차은경을 중심으로 인원이 늘며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쾅-!
“-뭐라고?!”
뉴스를 시청하던 차은경이 돌연 책상을 내리쳤다. 목소리에 경악이 가감없이 드러났다. 단장실 소파에 누워있던 곽태우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그래? S급 게이트라도 터졌어?”
“아니….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일이야.”
차은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S급 헌터, 제우스가 암살 당했대..!”
“뭐! 누가? 어떻게!”
충격적인 소식에 곽태우도 아연질색했다.
S급 헌터란 절대자였다. 결코 저물지 않을 태양과 같은 존재. 차은경과 같은 전장을 누비던 곽태우는 차은경이 얼마나 초월적인 초인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저 차은경조차 A급일진대, 고작 B급에 불과한 곽태우는 S급이 얼마나 강력할지 어림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강자가 암살되었다고?
‘불가능해….’
“CCTV 영상이 공개됐어. 지금 나온다. 봐봐.”
차은경의 말마따마 뉴스에서 영상이 흘러나왔다. 장소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처럼 보였다. 창가자리에 금발의 아리따운 미소녀가 앉아있었다. 누군지는 명확했다. 제우스, 유피미아 테일러.
전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로 유명한 영국의 S급 초인은 자리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를 따라 읽는듯 그녀가 입을 오물거렸다. 아주 평화로운 모습….
그리고 0.6 초 후, 창문을 뚫고 날아온 흑색창이 여인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어? 이, 이게 무슨-!”
곽태우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갑작스레 돌변한 상황을 뇌가 인지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그 사이에도 영상은 계속 재생되었다. 영상 속, 한때 이마가 존재했던 장소에서 피가 솟구쳤다. 잔인한 장면을 검열하기 위해 모자이크 되어 있었음에도 흐릿한 상 뒤편의 진실을 알기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저건 즉사다….’
넋을 놓은 곽태우가 중얼거렸다.
“S급이 저리 쉽게? 창이 아무리 빨라도 S급이 반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는데?”
인터넷으로 따로 사건에 관해 알아보던 차은경이 대답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상태창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 상태였대. 그래서 날아오는 창을 보지 못한 거지. 그런데 문제는.... 저 편지.”
“영상 초반부에 나온 편지? 그게 왜?”
곽태우로서는 저 편지가 무슨 문제인지 짐작가지 않았다. 차은경이 긴장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저 편지에 영어로 ‘상태창’이라 쓰여 있었대. 그녀가 상태창을 띄우도록 유도한 거지. 상태창에 가려 날아오는 창이 보이지 않게. 즉, 누군가 계획적으로 그녀를 살인했다는 의미….”
“도대체 누가?”
제우스의 암살은전 세계를 뒤흔든 대사건이었기에 조사는 몹시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하루가 지나지도 않아 근처 CCTV에 포착된 범인의 모습이 인터넷 상에 유포되었다.
그 사진을 보며 곽태우가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른 감상을 내뱉었다.
“흑기사?”
사진 속 범인은 온통 새까만 갑옷을 입은 흑기사였다. 한손에 창, 다른 손에 메이스를 든 독특한 무기 조합. 얼굴을 가린 불길한 흑색 투구 때문에 생김새도, 인종도 알 수 없었다. 차은경이 설명했다.
“SNS상에서는 암흑기사라 부르더라. 그가 어째서 제우스를 죽인 건지, 지금 그가 어디있는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대. 하지만….”
차은경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곽태우는 몹시 놀랐다. 차은경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두 번밖에 보지 못했더랬다. 첫째는 최초로 게이트가 터진 날, 둘째는 벨리알이 인천을 멸망시킨 날에.
차은경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암흑기사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란 예감. …어쩌면 언젠가 우리와도 충돌할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과연 그녀의 예감은 정확했다.
몇 달 뒤, 스카이스크래퍼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사망 원인은 역시 암흑기사였다.
***
그후로 세계 정세는 무척 급박하게 돌아갔다. S급이 둘이나 사망하자 모두가 암흑기사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갓난아기도 유추하리만큼 쉬웠다.
S급 헌터를 모조리 살해하는 것.
스카이스크래퍼는 암흑기사와의 정면 대결에서 패배하여 사망했는데, 두 초인의 전투 영상은 인류에 얼얼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줬다. 예상과 달리 싸움의 양상이 너무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뉴욕의 영웅은 암흑기사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스카이스크래퍼가 S급 말석 취급이라지만 그럼에도 그는 S급이었다. 그런데 그 스카이스크래퍼를 압도하는 존재라니. 영상 하나만으로도 암흑기사의 무력 수준이 스카이스크래퍼보다 몇 단계는 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우스를 정면에서 처리하지 않고 암살한 이유도 그녀가 몸을 뇌전으로 바꿔 도망치면잡기 힘들다는 이유지, 필히 정면 승부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사악한 적흑의 뇌전을 다루는 암흑기사의 모습은 영상 본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의 모습은 각성자라기보단 보스몹에 가까워 보였다. 평범한 보스도 아니고, S급조차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극악의 보스. 이를테면, 월드 보스인 벨리알처럼.
연이은 살인 사건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S급 보유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S급 헌터를 외국으로 파견보내지 않고 꽁꽁 숨겼다. 인류 최강의 전력이 용병 일을 안 하고 몸을 사리니 타국에 고위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사망자 수가 급등했다.
죽어가는 이들의 필사적인 간청도 외면하고 인류의 등불은 암흑기사를 피해 숨었다. 그 의도가 자의든, 타의든.
그럼에도 암흑기사는 어떻게 찾았는지기어코 쉘터며 은닉지의 위치를 알아내선 습격했다. 철저한 암살 방비에 암흑기사의 습격은 대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흑기사는 집착적으로 S급을 찾아내 사냥했다.
반대로 인류는 암흑기사의 소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유령처럼 신출귀몰하게 나타났다 아무도 모르게 자취를 감췄다. 그를 찾으려는 모든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마치 현대 사회의 모든 정보가 제 손아귀 안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
그렇게 단 한명에 의해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 번째 사천왕이 북한에 강림했다.
월드 보스를 잡기 위해 살아있는 S급들이 단체로 은거를 깨고 북한에 결집했다. 용사 김재민, 초능자 장우이, 텔레포터 아드리아나 마노엘라, 검귀 타케하시, 파라오 . 그들이 모두 북한 전선에 모였다.
벨리알 전의 경험으로 월드 보스는 기존의 S급 보스를 훌쩍 뛰어넘는 끔찍한 힘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 바, 헌터 협회는 S급 헌터를 모두 모아 생존률을 극대화하려 했다. 또한 S급이 단체로 모인 상황이라면 암흑기사도 감히 습격하지 못하리란 판단이었다.
끔찍한 희생 끝에 인류는 두 번째 월드 보스, 벨페고르를잡아냈다. 순수히 기뻐하기엔 피해가 너무나 컸다. 벨페고르와 교전 중 검귀가 사망했다. 심지어 보스전 중간에 암흑기사가 난입하며 김재민마저 암흑기사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부지불식간에 김재민을 뒤에서 찔러죽인 암흑기사는 유유히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S급 최초의 7인 중에서 생존자는 이제 초능자, 파라오, 그리고 텔레포터 뿐. 앞으로도 월드 보스를 상대해야 할 S급 두 명의 사망이란 피해는 인류의 미래에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사망한 S급을 벌충이라도 하듯 헌터 협회는 S급 제한을 낮춰 A급 헌터를 마구 승급시켰으나 최초의 7인만큼 강력한 초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도리어 새로운 S급들은 암흑기사의 표적이 되며 죽어나갔다.
인류를 이끌 등대에서 불이 꺼지자 세상이 어두워졌다. 어두운 하늘 아래서 악마와 마인이 더욱 날뛰었다. 희망을 버리고 악마 편에 붙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렇게 인류는 점차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그 무렵 차은경은 S급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암흑기사의 충돌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녀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용병단을 키웠다.
그녀는 신생 S급 중 유일하게 최초의 7인에 비견할만한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망국의 생존자들은 그녀를 ‘검성’이라 부르며 차은경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 거대한 생존자 집단은 인류 결사대라 불렸고, 용병들은 결사대원으로써 몬스터를 박멸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싸웠다.
그럼에도 지옥의 군세는 너무나 강력했다. 몇몇 나라가 멸망하면서 국가간 용병 체계가 무너지자 멸망한 나라에 의지하던 인근 국가도 도미노 무너지듯 줄줄이 멸망했다. 세계 인구는 점차 수십억 단위에서 억단위, 그리고는 몇천만 단위로 자꾸만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사천왕이 강림하고, 거의 시간차 없이네 번째 사천왕마저 강림했을 때, 남아있는 인구는 오직 천만 단위뿐이었다. 그리고 차은경의 인류 결사대는, 진정한 의미로 인류의 결사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