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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72화 - 맹세 (72/72)



〈 72화 〉72화 - 맹세

“…그래서, 네가 사천왕에 의해 멸망한 미래에서 돌아온 회귀자고, 네가 죽인 작자들은 미래에 극악한 범죄자가 된다는 말이냐?”
“…그래.”
“그게 네가 신재혁을 죽이려는 이유고?”
“…그렇다.”
“흠….”

5분 요약된 곽태우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는 김재민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기부터가 웬 중세 판타지 랜드에 납치당했던 전적이 있지 않던가. 기상천외한 일을 수없이 겪은 제 경우를 떠올리면 아주 믿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법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녀석이 거짓말하기는 불가능해. 그렇다면 정말로 곽태우가 회귀자고, 미래에 저 녀석이 타락한다는 말인가?’

김재민이 곁눈질로 슬쩍 신재혁을 훔쳐봤다. 그 역시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곽태우가 회귀자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 내가, 주님을 저버린다고?”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한 평생을 엘로아흐를 섬기며 엘로아흐의 뜻을 행하기 위해 살았다. 그런 자신이 자신의 신을 배신하고 악신 로힘을 섬기게 되리란 곽태우의 말은, 신재혁에게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모욕은 분노를 일으켰다.

“거짓말 마라-! 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이런 개소리를-”
“아니, 신재혁. 내 마법에 걸린 이상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곽태우의 증언은 오롯한 진실이다.”

김재민이 신재혁의 말을 끊으며 단언했다.

“곽태우의 말이 진실이라 가정해도, 어째서 내가 타락을? 무슨 계기로?”

떠오르는 가능성이 없었다. 타락은커녕 과거의 경지를 되찾고 각성까지 한 마당이었다. 여전히 주께서는 기도에 응하지 아니하시나, 자신이 신성력을 되찾은 일이 주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어디에도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곽태우는 신재혁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곽태우는 김재민의 발치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제 왜 신재혁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하겠지. 녀석은존재 자체가 악이다. 네 목숨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살인마란 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신재혁을 죽여 다오.”

신재혁을 제압한 김재민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곽태우는 자존심 따위는 내던져버리고 김재민에게 비참히 빌었다.  증오스런 신재혁을 죽일 수만 있다면 자존심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았다.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자신의 회귀와 동료의 희생은 모두 그것만을 위한 것이다….

“내가 싸이코란 걸 인정한다. 내가 연쇄 살인마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나로 인해 발생한 모든 피해를 인정하고 마땅히 처벌을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어떤 처벌을 받아도 상관없으니, 저놈만큼은 제발, 죽여줘. 제발, 제발….”

이제 곽태우의 목소리는 비는 것을넘어 흡사 흐느끼는 듯했다. 회귀 이전과 이후에 쌓이고 쌓인 울분의 응어리가 토해져 나왔다. 그 추레한 몰골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김재민이 신재혁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변명할 말이 있나? 생각해보니 너도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군. 벨리알을 쓰러뜨려 시스템에 신성력이 해금되기 전부터 신성력을 사용했지. 마나와 신성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고. 그리고 네놈의 신성력…. 순수한 양으로 나를 뛰어넘는 이를 보기는 네놈이 두 번째군.”

김재민이 천천히 검을 들어 신재혁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첫 번째는, 한 종교에서 성녀라 불리는 여인이었다.그런데 네놈의 신성력은 그녀마저 상회해.”

검을 겨눈 김재민이 한 발짝씩 신재혁에게 가까워졌다. 검 끝으로 목을 얕게 찌르며 김재민이 추궁했다.

“너. 정체가 뭐지?”

한줄기 핏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살해 위협까지. 신재혁은 식은땀이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신재혁은 되물었다.

“…그런 너는? 방금의 질문은 너에게도 해당하는 질문 아니야? 각성 첫날부터 신성력을 사용하며 S급 보스를 쓰러뜨린 것, 마나와 신성력을 동시에 사용한 것.”

이번엔 김재민이 침묵할 차례였다.

“처음 게이트가 열린 날에도 너는 한치의 당황도 없이 여유롭게 임프와 싸웠지. 전투에 몹시 익숙한 몸놀림으로. 게다가 이제는 소드마스터에 대마법사의 경지라니…. 고작 몇 년으로 도달하기는 불가능한 경지야.”

신재혁이 그를 노려봤다.

“넌 도대체 뭐지? <네가 납치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김재민은 신재혁의 입 모양을 읽더니,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처음 보는 급격한 동요였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신재혁의 마지막 질문은 한국어가 아닌, 에덴 공용어로 던진 질문이었으니.

“너! 어떻게 에덴의 언어를..!”

김재민의 시선은 이제 경계를 넘어 불신과 경악으로 가득찼다. 지구의 존재가 알 수 있는 언어 체계가 아니다. 여유와 평정심은 사라지고 다급함이 빈자리를 채웠다.

‘혹시나 싶어 던져봤는데, 이런 극적인 반응이라니…. 역시.’

곽태우가 지닌 스크롤의 정체와 희귀성을 알고있는 눈치에, 그 파훼법까지 아는 모습을 통해 유추한 사실이었는데, 잭팟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신재혁은 눈앞의 사내가 에덴과 모종의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다.

그러나 김재민의 대응은 단호했다. 그의 손끝에다시 마력이 모였다.

“그래, 이렇게 협박한들 순순히 말할 리는 없겠지. <도미네이션>.”

곽태우에게  것과 동일한 마법이었다. 그러나.

우웅-

‘-! 술법이 실패했어?’

시도는 불발로 돌아갔다.

‘S급 정도 수준이면 정신 지배류 마법은 통하지 않는 건가?’

S급 각성자에게 지배의 술법을 걸기는 처음이었기에 S급의 정신력으로 술법을 저항했다고 김재민이 판단했다. 김재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

기다려도 몸의 자유를 박탈당한 낌새가 느껴지질 않자, 신재혁은 의아해하면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법을 실패했나? 대마법사가 마나가 부족할 리는 없고…. 아직 쿨타임이라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회다.’

김재민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신재혁이 추궁했다.

“역시. 네 공백의 10년은 에덴과 관련이 있구나?”
“말해라! 네놈은 누구냐! 그 10년간 네놈이 어머니를 감시한 거냐?!”

신재혁은 바인드 마법에 묶인 상태였음에도 신재혁을 향한 김재민의 경계도는 최고치로 끌어 올려졌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며 신재혁은 생각했다.

‘내 추측이 맞는 듯하군. 정말 김재민은  10년 동안 에덴에….’

초조한 속내를 숨기고 여유로운 태도로 신재혁이 제안했다.

“거래를 하자. 여기서 나를 풀어줘. 그리하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순순히 말하겠어.”

김재민은 심히 갈등했다. 신재혁을 놓아줘? 하지만 곽태우의 말이 진실이라면?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은  어쩌고?

‘그렇지만….’

김재민은 신재혁이 숨긴 비밀이 몹시 신경 쓰였다. 물론 그 비밀이 두렵기 때문은 아니고,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이런 정체불명의 인간이 일반인인 척 어머니에게 접근해 무슨 짓을 한 건지 의심되었다.

그리고 김재민에게 어머니란 역린이자, 동시에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라면 김재민은 단 일 퍼센트의 위험도 용납할 수 없었다. 김재민이 뜻을 굽혔다.

“…알겠다. 수락하지.”
“안 돼! 안돼안돼! 멈-춰-!!”

그 말에 옆에서 곽태우가 발광하는 걸 무시하면서 신재혁이 요구했다.

“아니. 단순한 말로는 믿지 못하겠는데. 마나의 맹세를 해라.”

마나의 맹세. 마나 제어력이 수준에 이른 대마법사만 가능한 주문이다. 자신의 마나를 걸고 계약을 맺는 것. 만일 시전자가 계약을 어기게 되면 마나 로드가 뒤틀리며 끔찍한 고통 속에 사망하게 된다.

효과는 절대적이나, 그 패널티가 일방적이고 치명적이기에 마법사에게 마나의 맹세를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무례였다. 김재민은 불쾌함을 느꼈으나 애초에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었기에 눈을 찡그리면서도 그 말에 따랐다.

“…마나에 맹세한다. 내 질문에 네가 거짓 없이 진실만을 말한다면,  역시 너를 놓아주겠다.”

푸른 빛줄기가 김재민의 심장을 감쌌다. 김재민의 맹세를 확인한 신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겠어.”
“이제 말해라. 각성자 호송 차량이 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신재혁이 짧게 심호흡을 했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래 자신의 비밀을 입 밖에 내기는 처음이었다. 떨리는, 그러나 명확한 목소리로 신재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한다. 지구에서 다시 태어나기 전의 삶을. 전생의 내가 살던 곳은 에덴이라 불리는 땅이었고, 나는 평생을 악마에 맞서 싸운 성기사였다.”



***


신재혁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자기가 죽은 경위, 신성력의 동결, 경지를 되찾은 과정. 그리고 에덴의 안위를 확인하겠다는 자신의 목적까지.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이 드러났으나 신재혁은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었다. 언젠가 누구에게는 밝혀야 했을 비밀이다.  상대가 용사라 불리는 김재민이라면 오히려 자기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네가 어머니 곁에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우연에 불과하다?”
“왜 자꾸 이야기가 네 어머니 쪽으로 향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여전히 신재혁을 믿지 못하며 김재민이 요구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라.  신의 이름에 맹세해.”

마법사에게 마나의 맹세를 요구하는 것이 결례이듯 성직자에게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맹세를 강요하는 일 역시 결례였으나 신재혁 역시 김재민에게 동일한 무례를 저질렀기 때문에 신재혁은 얌전히 맹세했다.

“나의 주, 엘로아흐 앞에   부끄럼 없이 진실만을 말했음을 맹세하노라.”

그제야 김재민도 신재혁의 이야기를 믿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무슨 수작을 부리지는 않았나 보군. 다행이야. 쯧, 스카이스크래퍼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안위와 비교할 바는 못되지.’

그리 생각하면서 김재민이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보다 론지노라…. 들어본 적이 있지. 분명 마스터 팔라딘이라 불리던가? 12 영웅의 일원.”
“! 나를 아나?”
“그래. 역사서에도 실려 있으니까. 그 유명한 인물을 모를 리가.”

쯧, 성녀가 신성 주문의 역사를 가르쳐 주면서 귀에 딱지가 돋게 언급했던, 역대 최강의 성기사라…. 그런 인물이라면  무지막지한 신성력도 이해가 갔다. 수많은 역사서에서 칭송한 고결한 성인의 이미지와 신재혁의 이미지가 영 매치가 되지 않았으나 상식에 괴리되는 저 신성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악인은 아니란 거겠지….’

김재민은 신재혁을 향한 경계심을 낮췄다.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자기를 이유 없이 적대하지 않으리란 사실은 확실했다.

“성녀에게서 신성 주문을 배우면서  일화를 많이 들었었지. 최고위 신성 주문인 ‘천벌’을 홀로 사용할  있다지? 이제 벨리알의 죽음이 납득이 가는군. 정체불명의 S급이 정말로 네놈이였구나.”
“그래. 그리고 너는 실종된 10년간 에덴에 있었던 거고! 에덴의 인류는 무사해? 에덴은 멸망하지 않았나?”

신재혁이 다급히 물었다. 평생의 숙원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그 해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신재혁의 기대와 어긋났다.

“모른다. 어떻게 됐을지. 나는 에덴의 땅보다 지옥의 땅을 밟고 있던 날이  많으니.”
“지옥?”
“초등학생이던 내가 지구에서 실종된 날, 나는 에덴으로 전이되었다. 나를 소환한 에덴인들은 나를 용사라 부르며 훈련 시켰지. 그치들의 말에 따라 나는 대륙에서 십여 년간 악마와 싸우고 또 싸웠다.”
“….”
“그런데  겁쟁이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자기네 땅이나 지키도록 요구하더군. 삼 분의 일도 채 남지 않은 에덴의 땅을 말이야. 그러나 나는 오직 집으로 돌아오길 바랬을 뿐이다. 그리하여 나 스스로 충분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이후, 나는 마왕을 쳐죽이고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자의로 지옥문을 넘었다.”

마왕.  키워드에 신재혁이 사탄의 직속 부하라던 리-템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떠올렸다.

“설마…. 마왕 사탄을 죽였다는  너였군!”
“그래.  설마가 맞다. 그리고 사탄이 지구를 염탐하려고 열어둔 일회용 게이트를 통해 간신히 지옥에서 지구로 돌아왔지.”

김재민이 칼을 늘어뜨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행히 에덴과 지옥에서 보낸 100년은 고작 지구의 10년에 해당했기에 어머니를 만날  있었지. 남은 생 동안은 효도하면서 편히 지내려 했는데…. 하필 지구에 게이트가 터지다니. 쯧.”

신재혁은 그제서야 어머니를 향한 김재민의 과도한 집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김재민이 끔찍한 백 년을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준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김재민의 이야기를 들은 신재혁도 희망을 얻었다. 김재민의 말에 따르면 약 90년 전까지는 에덴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왕의 죽음으로 지옥의 공세가 약해졌을 걸 고려하면 에덴의 인류가 여전히 생존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지자김재민이 주의를 환기했다.

“그나저나 곧 호송차량이 오겠군. 어서 가라. 약속대로 정체는 비밀로 해주마.”

김재민이 신재혁에게 걸린 바인드 마법을 풀며 말했다. 신재혁도 박주관과 계약을 맺었다 했더랬다. 사실상 같은 편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어머니를 지켜줄 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것도 웬만한 상처라면 순식간에 치유할  있는 성기사에 S급이라면 더욱. 스카이스크래퍼와 손을 잡는 것보다 신재혁과 손을 잡았을 때 이점이 훨씬 많아.’

김재민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때, 두사람이 잊고 있던 곽태우가 끼어들었다.

“자, 잠깐! 이대로 놓아주면-!”
“아 참. 네가 있었지? 이놈은 어떡하지?”

엄청난 정보량을 처리하느라 잠깐 두 사람의 생각에서 사라졌던 곽태우의 문제가 부상했다.

“내버려 뒀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비밀이나 정체를 까발릴 텐데…. 골치 아프군.”
“김, 재민-!! 나는 미래를 보고 왔단 말이다! 여기서 신재혁을 죽여! 아니면 네가 죽는다고-!!!!”

곽태우가 잔뜩 쉰 목소리로 이전까지 끊임없이 되뇌던 주장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김재민이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신재혁을 돌아봤다.

“날 죽일 거냐?”
“큭, 악마도 아닌데, 내가 미쳤다고 너를? 애초에 마왕 살해자를 내가 죽일 수는 있고?”

신재혁이 피식 웃었다. 죽일 이유도 없고, 방법도 없다. 둘다 그 사실을 알았다. 김재민이 거 보라는 듯한 눈길로 곽태우를 내려봤다.

“믿을  없다-! 녀석은 타락자! 인류의 배신자의 말을 어찌 믿으란 거냐!”
“그렇다는데?”

김재민의 추임새에 신재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맹세했다.

“주의 이름 앞에 약속하지. 김재민 네가 나를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내가 너를 죽이거나 배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신성력이 담긴 맹세가 힘을 이루었다. 신성한 제약이 신재혁의 영을 옭아맸다. 무형 무취의 주박. 그러나 성직자에겐 결코 벗을 수 없는 굴레였다.

“이… 이럴 수가….”

곽태우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김재민이 씨익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웃음이었다. 완전한 자기편이 하나 생겼음을 확신한 미소.

“훗. 내 죽음을 막기 위해 회귀했다고? 축하한다. 목적을 이뤘군. 그럼 이제 목적을 다한 널 어떡해야 할까…. 죽여?”

신재혁이 만류했다.

“잠깐. 미래의 정보는 값을 매길 수 없어. 일단 네 마법으로 계속 붙잡아 두면….”

아무리 자기 목숨을 노리는 살인마라 한들 곽태우는 중요인물이었다. 회귀자라니. 사천왕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민은 곽태우의 존재가 못내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지배의 술식은 심문용으로 만든 주문이라 지속시간이 짧아서 무리다. 어차피 미래에 관한 건 들을 만큼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녀석은 너무 많은 걸 들었다. 풀어주면 우리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겠지.”

문장을 완성하면서 김재민은 스스로의 주장에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김재민은 힘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회귀자의 정보 따위 필요 없이, 어떤 사천왕이 온들 제힘으로 꺾을  있다는 확신. 그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감옥에 쳐넣어봤자 이놈은 어떻게든 도망쳐서 다시 너를 죽이기만을 노릴 녀석이다. 차라리 지금 죽이는 편이 낫겠지.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자, 잠-”

신재혁이 멈추라고 채 말하기도 전에 김재민이 곽태우의 목을 향해 검을 벼락처럼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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