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네놈의 계획은 실패했다. 보아하니 폭격과 함께 용기의 내용물을 잃어버린 모양인데 순순히 투항해라.”
그 집단의 중심에서 소년을 향해 로켓 런처를 향하고 있는 한 남자가 외침 말에 소년이 자신이 들고 있는 용기를 내려다보았다.
특수한 약품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리관은 금이 가서 이미 그 내용물이 흘러가버린 상태였다.
누가보아도 방금 전의 폭격에 의해서 내용물이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소년도 폭격이 끝난 뒤 잃어버렸던 병을 회수하기도 하였으니까.
허나, 저들이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존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애초부터’ 이 안의 내용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 이 플라스크 내부에 존재하던 Z바이러스라 불리는, 세간에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좀비’들을 만들어내는 바이러스의 내용물은 진작 비워진 상태였다.
“그야 내가 마셔버렸거든. 이 바이러스.”
“……뭐? 너,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서, 설마?!”
“말했던 대로야. 본래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설마 폭격을 가할 줄은 몰라서 말이야. 아무래도 이대로 있다가는 내용물이 폭격에 증발할 것 같아서 그대로 원샷! 애초에 오늘 여기서 살아나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말이야. 여하튼 그렇게 바이러스는 지금 제 신체 내부에 잠복하고 있답니다. 따다라단! 놀라운 사실! 개봉박두! 짝짝짝짝!!”
소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들고 있던 용기를 등 뒤로 던지며 내뱉는 말에 로켓 런처를 들고 있던 남자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소년이 등 뒤로 던진 약품 용기에 대해서 깨닫고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스, 스나이퍼! 사격! 절대로 용기를 시설 안에 떨어트리지 마!!!!”
남자의 외침과 동시에 피슝!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소년이 던진 용기를 격추하더니 그대로 허공에서 폭발하였다.
“휘익! 폭염탄, 날 잡기 위해서 특수 제작한, 착탄 하는 순간 퍼져 나가는 탄환이었나? 확인해 보니까 저걸 만들기 위해서 돈이 억 소리 나게 억수로 깨졌다면서? 축하! 축하! 드디어 그렇게 돈을 꼴아 박아서 만든 탄환으로 염원하던 날 박살 낼 수 있게 되었잖아? 안 그래?”
“……네 녀석,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정보에 따르면 그 바이러스는 노출되면 몇 분 지나지 않아서 좀비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네가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 사실이라면 넌 좀비가 되어 이성을 잃고 우리들한테 사냥 되었어야 한다고!!”
집단의 리더로 보인 남자의 말대로다. 소년은 타임 룰러라 불리는, 초능력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특급 레벨의 테러리스트였지만 그거야 소년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기에 위험한 것이었다.
명명하길 시안(時眼). 시간을 보고 조종할 수 있는 그 특수능력을 제외하면 소년은 단순히 인간이었다.
그를 병기로 만들기 위한 약물을 통한 신체개조, 정신을 깎아내며 몸에 때려 박은 각종 무술들.
그리고 살상에 특화된 지식이 그를 웬만한 에이전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만들어주지만 그렇다고 그를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아주 소수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특수능력인 초능력, 그중에서도 최상이 등급에 올라가 있는 시안(時眼)이라는 능력을 지닌 소년이기에 소년을 전담하는 대테러 부대인 ‘타임 헌터’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소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감염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지성이 없는 좀비를 상대하는 게 초능력을 사용하는 코드명 타임 룰러를 상대하는 것보다 나았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정부는 폭격을 요구하는 타임 헌터의 요청에 응답하여 이 장소에 폭격을 가한 것이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폭격과 함께 타임 룰러가 죽어주면 고맙다. 하지만 살아남는다고 해도 Z바이러스를 담은 용기를 지키지는 못할 것이다.
폭격에 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것은 확신. 그때 타임 룰러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좀비가 되어주면 일석이조.
또한 무엇보다 타임 룰러를 잡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상수도 시설에 접근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최근에 들어서 깨달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부는 나라를, 아니, 세계를 위해서 무슨 수를 쓰든지 그를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소년이 있던 장소에 폭격을 쏟아낸 것이었다.
“그런데 바이러스를 스스로 마셨다고?! 어, 어떻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거지?! 넌 이미 진작 좀비가 되어있어야 한단 말이다!!”
“아, 그거? 너희가 이름 붙여준 시안(時眼)이라는 능력으로 내 체내 시간을 조각하고 있는 거지. 너희들이 내 뇌를 산산이 분해하면서 그 기능을 알아내려고 했던 이 능력은 아무래도 바이러스의 침식도 억제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크헤헤헤헤! 그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목표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말씀!”
저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소년은 과거 자신의 신체를 잠식하는 각종 독을 자신의 초능력을 통해서 억제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폭격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눈치 챈 순간 주저하지 않고 바이러스를 원샷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장소에서 살아나갈 생각이라고는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생존이 아닌, 이 세계 자체를 지옥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
세뇌를 풀었음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이라면 차라리 세계 그 자체를 지옥으로 끌어내려서라도 복수를 하겠다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목적!
“그러니 여기서 시작해보자고 제군들! 세계의 멸망을! 나를 죽이기 위해서 광범위한 장소를 섬멸하는 무기를 가져온 것은 좋은데 이번만큼은 벌 쓸모가 없었다고 이야기해주지. 그야 이미 이 상수도 시설에는 내 ‘피’ 잔뜩 뿌려진 상태거든! 카하하하하!!!”
그렇다. 이미 모두 끝난 상태인 것이다. 전신이 바이러스나 다름없는 소년의 피는 이미 상수도시설 내부에 완전히 뿌려진 상태였다.
저들은 소년에게 투항을 요구하면 안 되었다. 소년이라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요소의 편린에 간섭할 수 있는 ‘괴물’을 상대로 쓸 만한 도구를 되찾겠다는 안이한 욕심에 투항을 요구하면 안 되었다.
곧바로 들고 있는 로켓 런처를 전부 포격하는 일이 있어도 소년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어야 했던 것이다.
허나, 과거 대한민국 정부의 도구로서 각종 작전을 기적처럼 성공해오던 도구를 되찾고 싶었던 안이한 욕심은 결국 이 세상을 파멸이라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제, 제기랄!!!!!!!!!!!!!!!!!!!!! 공격! 당장 전 탄두를 저 괴물 자식한테 때려 박아! 그리고 당장 상수도 시설의 물 공급을 중단시킬 방법을 찾아!!!!!!”
“무리입니다! 애초에 상수도 시설의 공급 속도를 생각할 경우 바이러스가 한 번 퍼지면 도저히 막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에 폭격을 해서라도 이 시설을 지키려고 했던 게 아닙니까?! 거기에 방금 전의 폭격 때문에 대부분의 상수도 시설의 기능이 마비가 되어서 개폐 장치의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젠장! 이렇게 되면 저 괴물이라도 확보해! 샘플로 데려가서 어떻게든 윗놈들한테 백신인지 뭔지를 만들어내라고…….”
-백수! 여기는 백수! 좀비가 나타났다! 반복한다! 좀비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현재 대원 중 5명이 감염된 상태! 잘못하면 감염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지원을 요청한다! 반복한다! 지원을 요청한다!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상황에 다급히 헌터 타임의 부대원이 움직이려는 순간 다른 장소에서 작전을 실행 중이던 이들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뭐?! 좀비?! 갑자기 왜 거기서 좀비가 튀어나와?! 설마 네 녀석, 이 장소에 바이러스를 살포 중이었다고?! 아니, 그렇다고 해도 감염자가 나올 리가……!”
현재 남자가 쓰고 있는 이 방탄 헬멧은 바이러스의 여부를 알고 있었기에 방독면처럼 필터가 장착된 특수 장비였다.
그러니 이 장비를 쓰고 있는 이상 상태가 이 시설에 바이러스를 살포했다는 만약의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감염자가 발생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살포 상태를 염려한 것 역시 폭격의 이유 중 하나. 이 장소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만약에라도 살포된 바이러스를 열기로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Z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는 감염이 어렵고 또 열기에 약하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실행한 작전이었는데……, 왜 감염자가 나온단 말인가?!
“실은 바이러스를 원샷 한 다음에 아직 좀비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물어뜯으면 감염이 되자 실험 겸 내가 이 장소에 도착하지 못했을 때의 보험을 들어뒀거든. 하지만 역시 내가 좀비가 되지 않아도 타액을 통해서 감염되는 모양이네! 크하하! 이거 참 걸작이라! 이걸로 너희들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던 Z바이러스는 보기 좋게 세상에 퍼져 나갔잖아! 알겠어? 이걸로 끝이라고! 세상은, 끝! 나와 함께! 동생과 함께! 우리와 함께 지옥으로 끌려가는 거라고! 만세!”
그야말로 광기(狂氣)의 집합체와 같은 광소를 토해내는 소년의 웃음소리에 타임 헌터의 리더가 울부짖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원!!!!! 전 탄두 발사!!!!! 저 악을 말살해라!!!!”
설령 이미 늦었다고 해도 네놈만큼은 살려둘 수 없다는 집념이 어린 외침과 함께 각종 로켓 런처들이 소년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똑, 딱, 똑, 딱!
그 광경에 순식간에 자신의 초능력 시안(時眼)을 통해서 세계의 시간을 늦춰버리는 소년. 그의 시안은 시간을 보고 거기에 간섭하는 게 가능했다.
그를 통해서 세계 그 자체를 늦춰버린 소년은 그 늘어진 세계 속에서 눈앞의 로켓 런처들을 회피할 궤적을 확인했다.
‘크흐흐! 역시 여러 번 나하고 부딪혀본 놈들답다니까.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그렇지 나 같이 탄환도 피해내는 괴물한테는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영역을 그대로 초토화시켜버리는 공격이야말로 정답이야.’
그렇기에 저들은 현대의 무장집단이 주로 사용하는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로켓 런처만 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총이 통하질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그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지역을 타격하는 것으로 그를 섬멸할 생각인 것이다.
-……도망칠 곳이 없어. 우, 우리 죽는 거야?
‘하하하! 상수도 시설에 피를 퍼트린다고 완전히 구석에 몰렸으니깐 말이야. 여태까지 이런 상황을 안 만들려고 최대한 조심을 하기는 했지만 실패, 실패! 어떻게 움직여도 폭발에서 벗어날 방법이 안 보이네. 엑셀을 쓴다고 해도 말이야.’
그렇다. 세계를 가속시키고, 그 가속된 세계의 시간을 억지로 따라잡는 능력인 엑셀.
사용할 때마다 그 부작용으로 수명이 깎여나가고, 전신이 으스러지는 통증에 휩싸이지만 다른 이들이 보면 혼자서 평범한 인간의 수십 배는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
설령 그 능력을 쓴다고 해도 저들이 만들어낸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웠다. 즉, 소년(그들)의 생은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었다.
‘뭐, 이것도 노린 거지만 말이야! 캬하하! 그야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좀비가 되어서 죽는다고? 그렇다면 너나 나나 인간으로 죽는 게 좋잖아? 이렇게 목적으로 했던 대로 세계를 우리의 길동무로 만들었다고?’
전 세계가 그 위험성을 직접 경험하고 유례없는 협력을 하여 연구 중이던, 한 정체불명의 운석에서 채취해낸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인 Z바이러스.
그 바이러스의 존재를 한국이라는 나라에 도구처럼 부려지다가 간신히 세뇌를 풀어낸 소년이 눈치 채는 순간 소년은 미친 듯이 그 바이러스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세뇌를 풀었다고 해도 도망칠 길이 없었다. 아니, 도망치는 건 가능해도 분명히 머지않아 잡힐 것이다.
그리고 잡힌다면 세뇌가 풀렸다는 사실이 들킨 뒤 그대로 더 강한 세뇌를 받거나 살해당하겠지.
그런 운명 밖에 기다리고 있지 않은 인생이었다. 그렇기에 사용하기에 따라 세계를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은 공상과학에서나 볼법한 바이러스를 조사하는 것에 매달렸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를 속박하는 세계 자체를 박살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그렇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피를 통해서 이 상수도 시설에서 퍼져 나간 바이러스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제로 소년이 이 바이러스를 몰래 연구하던 기업에서 탈취할 때 바이러스가 유포되었을 경우를 시뮬레이션한 자료를 확인한 적 있었다.
그 결과 바이러스가 퍼질 경우 이 세계에서 99.99%의 확률로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졌다. 어떻게든 좀비를 틀어막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애초에 Z바이러스는 물이라는 매개체를 타고 주로 감염되는데 이 속도를 막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