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일부로 자신이 진정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시선을 끌어 시간을 벌려고 뿌려놓은 더미.
은근슬쩍 찾아낼 수 있는 단서를 남겨 절묘한 시간 끝에 자신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었을 때는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곰 덫’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공선자는 몇 개월이라는 사투 끝에 드디어 최종목적지에 아무런 문제 없이 도착했다.
……뭐, 자신의 존재를 뒤늦게 눈치 챈 정부가 시간을 끌 목적으로 폭격을 가한 것은 역시 예상 밖이었지만 말이다.
그들도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는 이야기겠지. 하긴, 1초라도 시간을 벌지 못하면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민간인들의 시선을 신경 써서 선자를 막지 못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질책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폭격이라니 참 극단적인 녀석들이라고 쓴웃음이 지어질 정도.
……각설하고, 공선자가 실제로 바이러스를 퍼트릴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전염성이 뛰어난 바이러스라고 해도 감염될 인간이 없으면 이야기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감염될 인간이 한없이 좁은 장소에 끝없이 몰려 있으면 그 전염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다. 좁은 땅에 모여 있는 인구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Z바이러스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넓은 땅에 몇 사람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바이러스가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빠르게 진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로 사하라 사막에 존재하는 운석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조사단만을 전멸시키고 세계의 각 나라의 정부에 의해서 제압당하여 그 치료제가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사하라 사막은 물이 없었다.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바이러스인 만큼 물이 없는 사막지대였기에 판데믹(감염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빠르게 제압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이러스가 사막이라는 척박한 장소에서, 조사단이라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전염되었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살아가는 땅덩어리에 비하여 어마어마한 수준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장소에 이 Z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그날로 세계는 끝장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바이러스를 퍼트리기 적당한, 세계에서도 제일가는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장소는 과연 어디인가?
……당장 외국에 눈을 돌릴 것도 없지 않은가? 한국에 존재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렇다. 공선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고향이자, 지옥이었기도 한 ‘한국’을 시작으로 세계를 끌고 갈 생각이었다.
한국을, 세계를, 인류를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길동무로 끌어들여 그들의 비명이 섞인 단말마를 자장가 삼아 최후의 안식에 들어가 주겠다.
그것이 바로 공선자의 ‘형’의 인격이 계획한, 동생을 위한 장송곡으로 인류의 멸망을 연주해줄 계획이라는 녀석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인간들을 끌어들이다니, 악마라고?
미안하지만 공선자의 몸의 지배권을 지닌 형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이 모양 이 꼴인데 지들은 잘 사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죽일 이유는 되었다.
그리고 정 억울하면 자신처럼 복수해라. 형의 인격은 알고 있었다. 뭐라고 하던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은 명백하게 인간의 기준으로 ‘악’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각오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원망하고 죽이려들 것 같은 받아들일 각오를 그러니 어디 한번 복수를 하고 싶으면 복수를 해봐라.
자신은 기꺼이 받아들일 테니깐 말이다. ……뭐, 복수를 하고 있어도 당사자는 세상이 멸망했을 때 이미 황도천을 건넌 상태일 테지만 말이야!
아니, 그전에 살아서 복수의 칼날을 갈만한 인간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캬하하하하! 복수를 하고 싶어도 복수를 할 수 없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통쾌하지 그지없는 복수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복수는 이내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서울에 존재하는 한 상수도 시설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한 바이러스는 공선자라는 소년이 원한대로 세상을 집어삼키고 세계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좀비로 만들어버렸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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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마 좀비로 만들었겠지? 시뮬레이션 결과만 보면 그 정도 규모의 수도 시설에 바이러스가 퍼지면 그야말로 몇 달 안에 세계가 멸망한다고 했으니깐 말이야.”
그런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감염되는 이상 육지를 틀어막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산길을 이용하는 짐승은 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마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운반책이 될 테니까 세계는 확실하게 멸망했으리라.
‘하지만 멸망했을 거란 확신을 할 수는 있지만 정작 나는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니…….’
-어, 어쩔 수 없는 걸……. 우리는 죽었으니까.
자신의 뇌리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인격. 공선자라는 인물의 본래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동생’의 목소리에 ‘형’의 인격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 맞아. 우리는 죽었지. 캬하! 아주 통쾌하게 죽어버렸어! 우리를 죽여 봤자 상황이 달라질 것 없다는 사실을 알 게 된 그 녀석들의 절망에 빠진 표정 봤냐? 맨날 날(우릴) 사냥한다고 따라다니던 스토커 자식들이 그런 표정을 짓다니, 스마트폰이 고장 나질 않았으면 찍어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말이야! 아주 걸작이었지, 걸작!”
죽었기 때문에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동생 인격의 이야기에 형의 인격도 순순히 동의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자신들이 죽음으로 인하여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린 추격자들의 몰골을 한껏 비웃으며 폭소하는 그.
그들이 멸망해버린 세상 속에서 좀비가 되어서 지키려고 했던 것들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특히 높으신 분들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엄청 궁금한데 말이야! 후회할까? 후회할 거야, 후회할 수밖에! 괜히 어떤 인간이든 자신들이라고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오만함에 자신들이 죽게 생겼으니깐 말이야! 크하하! 결국, 그 녀석들도 죽이면 죽는 인간이라는 거지! 설마 내가 이런 식으로 너희들의 목을 조를 줄은 정말로 몰랐을 거다!’
그야말로 통쾌하고 상쾌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서 그 긴 시간을 인내해온 값어치가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할 정도의 상쾌함이었다.
같은 인간이 인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함이었다. 다수라는 이유로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 역시 오만함이었다.
자, 보아라! 너희들의 오만함에 의해서, 너희들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에 의해서 세계가 멸망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냐는 거냐고? 뭘, 간단한 이야기다.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설령 겉보기에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가슴 속에 어떤 비수를 갈아두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예를 들어서 어떤 로리콘이 눈앞에 초등학생이 지나가기에 충동을 못 이겨 납치, 강간을 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납치하려던 초등학생이 겉모습만 초등학생이고 사람 수 십 명 죽여 본 암살자라면?
그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 공선자는 약물로 일부로 체격을 조정하여 겉모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 초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암살에 능한 에이전트와 싸워본 적도 있었다.
심지어 이 여자, 특수한 성벽을 지닌 상대를 대상으로 한 암살에 실패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암살자 중의 암살자였다.
그러니 극히 드문 확률이지만 로리콘이 납치를 시도하다가 역으로 초등학생한테 난자당해버리는 일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 외에도 예를 들어볼까? 흔히 소설이나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양아치들. 길을 가다가 미인만 보이면 작업을 가는 그런 놈들 말이다.
그런 놈들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미인에게 헌팅을 하려고 말을 건 순간……, 그대로 목이 달아나 돌연사한 시체로 뉴스에 방송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남자의 목을 날린 이는 공선자가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에이전트를 예로 든 여성이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인간들 중에서 건들면 그날로 초상을 치러도 이상할 게 없는 이들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그러니 권력을 그 손에 지닌 채로 뭘 해도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모든 갑들에게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어떤 인간이라고 해도 건들고 싶다고 건들면 안 되었다고 말이다. 그 인간이 안에 뭘 품고 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니 세상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신과 같은 자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만만해 보여서 건드렸던 사람이……, 봐라 이처럼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사람 잘 못 건들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지. 그러니 건들 법하다고 아무 사람이나 건들면 x되는 거라고. 크흐흐흐흐. ……뭐, 이 교훈을 마음에 새겨둘 녀석이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 편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을 법한 소년을 납치 세뇌한 결과가 인류 멸망 아닌가? 그러니 죽기 전에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채고 앞으로는 갱생하여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뭐, 공선자가 중얼거린 대로 타인을 잘못 건들면 x되니 이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는 거 아니다, 라는 교훈 끝에 갱생을 할 만한 인간들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말이다.
만약 그들의 공선자라는 소년의 초능력 욕심내지 않고, 그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우해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벌어졌다. 그들이 공선자를 인간이 아닌 도구로서 대한 대가는 결국 인류 종말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인간들은 과연 마지막에 가서 후회했을까?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되었다고 갱생했을까?
아니, 갱생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공선자라는 인물을 건드렸으면 안 되었다고 그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후회를 해주기만 해도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공선자는 미친 듯이 웃을 수 있었다. 그래, 너희들은 건들면 안 되는 인간을 건드린 것이라고.
그저 벌레라고 취급했던 인간에 의해서 너희 자랑스러운 인류는 멸망하는 것이라고! 그 사실에 기쁜 듯이 실없이 웃던 공선자의 ‘형’의 인격.
-……형, 기쁜 건 이해하지만 주변을 봐.
“아아, 그래. 여운에 잠겨 있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기쁜 나머지 주변이 안 보인다는 건 이런 걸 이야기하나 보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웃어 재끼던 공선자는 동생의 인격이 발언에 정신을 되찾고 호흡을 골라 정돈한 뒤 자신의 누워있던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새하얀 방. 심지어 밟고 있어야 할 대지조차 존재하지 않아서 자신이 어떻게 누워있었던 것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방에, 공선자는 누워있었다.
‘……저기, 파트너. 우리 분명히 죽은 거지?’
-아마, 흐,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지 않았을까?
자신이 ‘존재’하는, 자신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찌푸리는 공선자.
자신들은 죽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라 로켓 런처의 세례에 얻어맞아서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것이었다.
아니,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Z바이러스를 스스로 섭취한 이상 다른 이들처럼 좀비가 되어 동족을 씹어 먹는 괴물이 되어야 옳았다.
그리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모든 이들은 억지로 끌고서 공선자라는 인물이 간신히 도달한 안식.
자아를 가졌을 때부터 자의(自意)따위 가지지 못하고 늘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움직였던 공선자가, 유일무이 하게 스스로 선택을 한 죽음.
……일 터였다. 그래, 그랬어야 했다. 공선자라는 인물은 세계를 멸망시킨 끝에 스스로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애초에 세계 멸망 자체가 자신을 위한 장송곡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본래라면 죽었을 자신(우리)이 어떻게 살아있냔 말인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방금 전까지 목표를 달성한 여운에 잠겨 있던 형의 인격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의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존재가 거기에 서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천사의 외형을 한 이형의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