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제 01계-챕터 01: 에볼루션 시스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기질 한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 실제 금으로 뽑아낸 것 같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은으로 세공한 것 같은 찬란한 은백색의 날개.
그 미모만으로도 이미 인간과는 동떨어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 인간과 동떨어진 부위를 지니고 있는 소녀.
그 소녀가 자신을 기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내려 본다면 백 명이면 백 명 전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압도당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매료당하겠지. 머리 위에 링이 달려 있고, 등 뒤에 날개가 달려 있는, 인외의 외형임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아름다움은 인간을 현혹시키는 것에는 충분한 아름다움이었으니까.
“………………………………….”
“………………………………….”
그리고 그와 같이 아름답다는 표현 외에는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은 소녀를 앞에 두고 공선자, 정확히는 그 몸에 깃든 형의 인격이 한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이 년, 뭐하는 년이야? 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뚫어져라 눈앞의 천사를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야 이건 분명히 죽었겠구나! 하는 상황에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갑자기 눈앞에 미소녀 천사가 나타나 봐라.
누구라도 해도 의심스럽지 않은가? 어떻게 봐도 의심스럽지 않은가? 뭐, 어딘가의 종교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을 깊게 믿는 것으로 사후 천사들이 천국으로 인도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상황만 보면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말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
사후에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천사가 왔다고? ……악마가 아니라? 아니, 여기서는 악마가 나와야지. 천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일단 공선자라는 인물은 Z바이러스를 통해서 세계를 거창하게 멸망시키고 온 인물이란 말이지? 최악에서도 밑바닥의 심연급의 최악의 죄인이라고?
그런 사람 앞에 천사가? 이게 사실이라면 열심히 신을 부르짖던 신자들은 죄다 뭐가 된단 말인가?!
“…………………헛?! 설마 지구를 좀 먹던 인류라는 해충을 구제해버린 대가로서 나는 영웅 취급받는다는 소리인가?!”
“헛소리 그만해주시죠. 소환되자마자 혼자서 뭐가 그렇게 좋다고 오랫동안 웃던 걸 기다려줬는데 첫 대면부터 이해 불가능의 대사를 내뱉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능적으로 업무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게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낼 것 같으니 말이죠.”
공선자의 형의 인격이 일단 떠올린 것을 내뱉어 본 순간 싸늘한 목소리로 반박을 해오는 천사 소녀의 목소리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킬킬 웃었다.
“키키키, 이거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지만, 천사님.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말이죠.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희대의 대죄인이라고요. 천사님 같은 고유한 존재와 대면할만한 인간이 아니다. 뭐, 이런 이야기죠.”
“……이해불가능 한 말만 하시는군요. 챌린저의 후보자 자격에는 죄인의 유무를 따지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강렬한 욕망. 죽기 직전에 가지고 있던 살아남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과 무조건적인 성취욕. 이 두 가지야말로 챌린저가 될 자격은 논하는 조건. 빰빠라밤! 축하합니다. 당신은 죽음의 끝에서 소생하여, 지금 여기서 챌린저가 될 자격을 얻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어떻게 보아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일단 이 상황은 장난으로 무마할 수 있을까 시도해본 공선자였지만 보기 좋게 실패해버렸다.
상대는 오히려 공선자가 알아 처먹을 수 없는 말만 지껄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선자는 이래봬도 일류 에이전트였다.
당장은 정보를 얻을 만한 장소가 없으니 눈앞 상대의 발언을 진실로서 취급하여 사고를 돌려본다.
이 소녀의 발언……, 아니지, 소녀의 발언을 확인하기 전에 일단 소녀의 정체부터 파악해보자.
인간 같지 않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미모. 거기에 실제로 인간이 아니라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처럼 달려 있는 머리 위의 고리와 등 뒤의 날개.
겉모습만 보면 신화 속에 나오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존재는 천사인가? 일단 공선자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것보다 죽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리고 현재 그가 처한 상황. 자신과 눈앞의 천사(로 보이는 소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
정신력이 강한 것을 넘어서 기본적으로 광기로 무장한 형의 인격이라고 할지라도 한 몇 년 정도 갇혀 있으면 미칠 것 같은 공간이었다.
……뭐, 이미 미쳤으니 광기가 심해질 뿐일 테지만, 여하튼 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이라는 부분이 중요했다.
이런 공간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 것 같나? 당연히 무리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그 있을 수 없는 공간에 앉아있는다는 진귀한 경험 중.
……이것을 종합해서 생각해본 결과 역시 공선자는 자신이 죽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현실세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은 일을 수 없지만 사후세계라고 한다면야 뭐…….
이해 못 해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자신이 죽었고, 여기가 사후세계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기로 하였다.
자신은 죽었다. 상황을 보면 거의 확실하게 뒤졌다. 로켓 런처에 사지가 날아가는 걸 봤는데 살아있겠는가?
그렇다면 이 현실감 넘치는 광경은 뭐지? 사후세계. 영혼의 상태가 이렇게 살아있을 때와 다를 게 없다고?
‘죽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러니 사후세계도 이렇게 리얼하다고 치자. 자, 그럼 여기가 사후세계라면 눈앞의 천사는? 그야 천사겠지.
‘아니, 하지만 나 천사가 데리러 올 법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파트너라면 몰라도 말이지.’
-나도 그 선행을 했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뭐, 그 부분은 넘겨두고 만약 눈앞의 소녀가 천사가 맞다면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가? 자신의 영혼을 거둬가기 위해서?
흠, 이것도 역시 이상하자. 공선자가 벌여놓은 일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쯤 천사나 저승사자들은 인력난(?)에 휩싸여 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야 좀비 상태에 의해서 지구가 멸망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뭐야, 사후세계는 사실 세계 하나가 멸망만 것도 가볍게 여길 만큼 어마어마한 스케일?
‘아니,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뭐가 되었던지 중요한 건 내 눈앞에 천사가 있다는 소리야. 자, 그럼 천사님께서 내 앞에 나타난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다. 다름 아닌, 처형! 아니, 이미 죽은 상태이니까 영혼의 소멸 뭐, 비슷한 건가? 그야 자신은 세계 하나를 날려 먹은 사람이라고?
보통 착한 이미지인 천사가 찾아오면 당연히 그런 쪽을 생각하게 되잖아? 그렇기에 공선자는 우선 눈앞의 천사를 ‘적’으로 규정했다.
그야 자신 같은 악당. 그것도 세계를 홀라당 해먹어버린 대 악당에게 천사가 아군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일단 천사의 발언을 반쯤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해석을 하기 시작하는 공선자. 일단 저 천사는 자신을 챌린저, 라고 호칭했다.
자, 그럼 이 챌린저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나? 챌린저의 의미는 도전자였다. 그렇다면 무언가에 도전을 한다는 의미인데…….
‘뭐에 도전을 해? 것보다 나 이미 죽었잖아?’
아니, 안 되겠다. 툭하면 이미 죽었는데 도대체 뭔 상황에 휘말린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딴죽이 먼저 나온다.
일단 죽었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사후세계도 마냥 편하지 않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할 경우……, 저 천사는 공선자에게 무엇인가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 나타났다는 모양이다.
그 자격의 이름이 챌린저고, 이 자격을 얻기 위한 조건이 죽을 때 까지고 있던 삶의 욕망과 강렬한 성취욕이라는 모양인데……. 흠, 공선자는 이 부분은 이해가 갔다.
공선자가 지구와 함께 자폭한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지가 ‘그것’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겠는가? 공선자는 절대로 ‘너 죽고 나 죽고, 다 같이 죽고 놀세!’ 라는 미친놈이어서 Z바이러스로 판데믹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자, ‘X발, 나 혼자서는 억울해서 못 죽어! 다 같이 뒤져!’ 라고 자폭한 케이스라는 이야기.
……전자나 후자나 미친놈 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원래 형의 인격 쪽은 미친놈이니까 태클 걸지 말자.
여하튼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어쩔 수 없이 죽었을 뿐이니 당연히 죽기 전에도 삶의 열망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렬한 성취욕. ……이건 아마 공선자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닌,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한국의 암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열망은 단순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 공선자는 천사가 이야기한 챌린저의 자격을 얻을 조건을 자신이 충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납득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죽음 끝에서 소생했다고?
‘……설마 우리 살아있는 거?’
-……모르겠는데?
눈앞의 소녀의 말을 반쯤 의심한다는 기분으로 해석해보던 공선자의 인격들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소녀의 발언을 상기할 수 있었다.
죽음 끝에서 소생했다, 인가. 그건 마치 공선자라는 인물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혹은 죽을 뻔했는데 살아났다, 라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는가?
공선자(들)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신체가 로켓 런처의 폭발 속에서 그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것을.
그렇기에 당연히 현재 상황을 그들은 사후에 일어나는 일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야 자신의 신체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 의식이 끊겼는데 멀쩡하게 신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아, 여기는 사후세계구나!’ 라고 수긍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공선자는 눈앞의 소녀를 천사,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처럼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오니 아무리 치열한 전장을 뚫고 나온 전적이 있는 공선자라고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드문 타입의 챌린저로 보이는군요. 아까부터 뭘 그렇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살펴보시는 거죠? 이 공간에는 당신과 저, 단 둘뿐입니다. 그 외의 사람을 찾는다고 하여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싶군요.”
약 2, 3초 정도의 시간을 가속하여 몇 분 정도로 늘려서 그 시간 동안 차분에서 현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공선자.
그에 틈틈이 이 주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잠깐씩 옮긴 적이 있는데, 공선자의 입장에서는 몇십 초에 한 번씩 옮긴 것이 상대의 입장에서는 거의 초 단위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 것처럼 느껴진 것이리라.
“흐음, 저기, 천사씨? 일단 말이죠. 한 60% 정도로 당신이 한 말이 거짓이리라고 받아들일 생각으로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대화를 할 의향은 있으신가요?”
“저는 챌린저 후보자를 위해서 배정된 튜토리얼 NPC.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제외한다면 대상이 묻는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할 존재입니다. 그런 제 말에 거짓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는 그 어조는 매우 불쾌하군요.”
이번에도 공선자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발언을 소녀가 내뱉어왔다. 튜토리얼 NPC? 어째서 여기서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인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누차 강조했다시피 지금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공선자의 형의 인격은 이 이상 딴죽을 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보다는 당장 눈앞의 정보원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우선시하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일단 물어보겠는데 말이죠. 저희……, 라고 할까 저는 죽은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어째 제가 살아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는데 말이죠.”
암지의 에이전트로 과거 여기저기 잠입한 경험이 있는 형의 인격에게 연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일단은 호감이 가는 인상의, 너무 호구스럽지 않는,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배려심이 어느 정도 있는 남자를 연기한다.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 너무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역효과다. 오히려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